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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년대 음악잡지가 서너종 발간되던 시기 이맘때 쯤 피서음악을 찾는 청탁들이
들어와 마땅한 곡을 찾느라 곤욕을 치르던 기억이 새롭다. 엄밀히 말하면 피서음
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거꾸로 이열치열 요법으로 규모가 크고 심각미를 담고
있는 교향곡 몇 편을 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먼저 말러 교향곡 2번. 그리고
<영웅>으로 알려진 베토벤의 3번과 쇼스타코비치 10번을 들고싶다. 이 곡들은 무
거운 주제라는 공통점 외에 각 시대를 대표하는 곡이며 작곡자의 사상과 특징을
함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 닮아있다.

 

 다만 여기 한가지 단서가 따른다. 반드시 구스타보 두다멜이 리드하는 시몬 볼리바르

악단(Simon Bolivar Youth Ochestra)의 연주로 들을 것. 영상과 함께라면 더욱 좋다.

 이 악단을 내세운 이유가 몇가지 있다.
 말러 곡은 이 악단의 출발점이며 내가 보기에 존립의 근원이기도 하다. 그런만
큼 연주가 치열하다. 다음 두 곡은 말러 곡과 함께 고전, 후기낭만, 현대를 대표
해서 어떤 흐름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마침 시몬 볼리바르는 비슷한 시기에 영국과

독일의 중요한 음악축제에서 이 곡들을 연주하고 있는데 말러 곡 뿐 아니라
다른 두 곡 연주도 비길 데 없이 탁월하다.
시몬 볼리바르 스토리는 이미 영화로도 나왔고 많이 알려져 새삼스러울 것은 없
다. 다만 풍문이 아니라 그들의 연주를 이 시점에서 음미해보는 것은 충분한 가
치가 있을 것이다.
 

 시몬 볼리바르 하면 언제나 말러 곡이 연상된다. 서로 연관이 안 될 듯 싶은데
좀 특이한 현상이다. 그런데 구스타보 두다멜이 처음 지휘공부를 말러 곡으로 배
웠다거나 말러 지휘콩클 우승으로 입지를 세웠다는 등 이런 얘기는 그다지 큰 의
미는 없다. 그보다 말러 사상이 압축된 교향곡 2번 <부활>에서 나는 엉뚱하게도
시몬 볼리바르의 탄생과 역사가 곡 안에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
는다. 교향곡 2번이 그들의 길지 않은 역사와 매우 닮아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
운 대목이다.

 마약과 각종 범죄, 가난에 찌든 빈민촌, 한때 도시 살인율 세계 1위이던 수도 카라

카스. 죽음과 파멸의 도시, 묘지와도 같은 곳에서 그들은 일어나 부활했다. 모태가

된 음악교육재단 <엘 시스테마>는 처음 전과자 11명으로 시작했다 한다. 4악장에

등장하는 알토의 노래와 5악장 피날레를 장식하는 합창의 가사에는 고난에서 축복의

빛을 받아 부활하는 내용이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기독교적 표현을 빌리면

그들은 사망의 행렬에서 뛰어나와 음악의 천사로 부활했다. 래세가 아닌 현실에서

그 과정이 이루어진 점이 다를 뿐이다.

 시몬 볼리바르 단원들의 눈빛은 기존 다른 악단의 그것과 확연히 다르다. 그들은 부활을
외치는 결연한 자세로 말러 곡을 연주하고 있다. 장송곡을 차용한 탓도 있겠지만
서주는 매우 엄숙한 분위기로 열린다. 나는 이 엄숙함이 좋다.삶을 엄숙하게 받
아들이는 것, 권력이나 규율에 의해 요구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삶의 의미를 진
지하게 받아들인다는, 자신과의 약속, 이 자세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
관객은 말러 곡에서 이 자세를 배우고 시몬 볼리바르가 이것을 연주로 시현하고
있다.
 베토벤의 <Eroica>는 1982~1985년 사이 카라얀과 베를린 필의 녹음이 높이 평가
받는데 악단과 지휘자의 전성기 연주로 충실도와 박력에서 청자를 압도하는 수작
인 것은 맞다. 관록과 중후함에서 시몬 볼리바르가 거기 미치지 못하는 것은 당
연하지만 이들의 젊은 패기와 열정, 혼이 스며든 연주는 노쇄하고 노련한 연주와
는 또 다른 신선감으로 다가온다. 모든 악절에서 잘 조련되고 짧은 년륜에 걸맞
지 않게 세련되었다는 점에서 부족함이 없는 연주다.

 "내 작품은 나의 묘비이다."
어둠의 시대를 살다 간 쇼스타코비치의 말이다. 교향곡 10번은 여기에 가장 합당
한 작품 중 하나이다. 그는 질곡의 시대를 작품으로 증언하고 있는데 즐거운 순
간이라곤 한 점도 없는 이 음울한 곡을 시몬 볼리바르는 마치 "이 어둠과 우울이
야말로 우리에게 익숙하고 우리가 잘 요리할 수 있다." 는 걸 보여주기라도 할 듯
미동도 하지 않고 시대의 그늘을 완벽하게 묘파해내고 있다. 탄식할 틈도 숨 돌
릴 틈도 주지 않았다고 어떤 관객은 말한다. 너무도 완벽하다. 누구에 의해 이런
조련이 이루어졌을까? 그 세세한 과정이 밝혀진 바가 없는데 천둥이 갑자기 그치
듯 쇼스타코비치 10번이 끝났을 때 이런 궁금증이 문득 떠올랐다.
 

 놀라운 점이 하나 더 있다. 쏟아지는 갈채와 탄성 속에서도 그들 모두가 표정에
전혀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그 또래 젊은이라면 스스로 자랑스럽고 으스대고 싶
기도 할텐데 그런 기미가 전혀 없다. 그들은 마치 오랜 수도생활을 거쳐온 수도사
같다. 구스타보 두다멜은 지금 지구촌에서 가장 바쁜 지휘자라 한다. 그가 동작이
크고 제스처가 다소 요란하긴 하지만 흔히 보아 온 믿음 없는 목자의 설교 같은 공
허감을 안겨주는 제스처들과는 성격이 많이 다르다. 그는 모든 스코어를 꿰고 있고
모든 악기의 발성에 관여하고 있다. 그가 해외 유명 악단에 자주 초빙되어 지휘를
하고 있는데 시몬 볼리바르와 함께 할 때 그도 악단도 가장 빛이 난다.

 한 사람의 선의와 지혜로운 결단에 의해 도시가 국가가 그 정신의 토양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시몬 볼리바르는 해방자 시몬 볼리바르가 남미통합을 꿈꾸
었듯이 음악으로 세계인의 마음을 한데 묶을 듯한 기세로 뻗어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