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를 후대에 다시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태종 이방원의 공신숙청이 세종의 치세를 가져왔다거나 광해군의 중립외교에 대한 재평가등등이지요
역사적 재 평가는 후대 사람들 마음이지만 한계는 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당대에 살았던 대다수 사람들의 평가와 그들이 당했던 고통을 외면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어떤 국익이라도 당대에 살면서 고통을 당하고 죽음을 당했던 사람들의 판단을 바꿀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승만은 이미 부정선거로 인하여 국민들에 의하여 권좌에서 끌어내 망명한 독재자로 평가가 끝났습니다.
이승만의 잘못은 분명하지만 업적이라고 하는 것은 결과론적이거나 하나의 가능성일 뿐입니다.

잘못은 본질적인 것이고 공이라는 것은 지엽적인 것입니다.
이승만의 잘못을 나열해 보지요
여기에서 잘못은 지금 대통령들에게도 적용되는 기준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즉 직접 관여가 안되었어도 대통령으로서 책임이 있다면 잘못인 것입니다.

1. 독립운동시 횡령문제 등으로 임정에서 탄핵
1-2 반민특위 불법해산및 악질 친일파 요직등용
2. 해방후 김구암살을 비롯한 요인암살의 배후인물
3. 6.25전쟁시 한강다리폭파및 대전까지 피난하고서 서울사수 방송
4. 국민방위군 사령관을 군경험도 없는 서북청년단 출신에게 맡기고 제대로 관리감독 못하여 수만명 아사및 동사
   군부에서 알고도 손을 못쓴 이유는 서북청년단이 이승만의 직계 정치조직이기 때문 
5. 거창등지에서 양민학살인데 1960년 국회조사로는 약 100만명이 학살당한 것으로 추정
6. 한강다리 폭파하고서 돌아와서는 피난 안간 사람을 부역자로 처벌
7. 전쟁중 국회의원을 협박하여 대통령 직선제로 개헌
8. 전쟁이 방금 끝난후에 불법적인 사사오입 개헌으로 3선 
9 4선을 위해 부정선거하다 4.19로 하야및 망명

공적
1. 외교를 통한 독립운동
2. 건국공로가 있지만 분단 방지에 대한 노력을 방해
3. 농지개혁
4. 한미상호 방위조약 체결

위 공적중 독립운동은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했고 이승만이 외교적 성과를 얻은게 없습니다.
건국 역시 소련과 미국에 의해 이승만 아니라도 남한에는 자유민주주의국가가 건국될 수 밖에 없었고 김구역시 모르는바 아니었으나 적어도 
외세에 의한 지배 그리고 종국에는 무력충돌의 가능성을 생각하고 분단방지를 위한 노력을 해봐야 하지 않나라는 뜻에서 김일성과 만난 것임

농지개혁은 잘한 것임
한미 상호 방위조약은 이승만 아니라도 체결가능성이 높음
그리고 다른사람이 대통령이었어도 한국군만으로 방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미군의 주둔을 요구했을 것이고 미군 역시 중국 소련이 전쟁에 가담한 마당에 철수 할 수도 없고 방위조약을 맺을 수 밖에 없슴
미국의 동북아 안보 정책에 의한 하위개념일뿐


우리나라는 민주 공화국이고 소위 보수들이 이승만의 공적으로 내세우는 것이 자유민주주의 국가 건국인데 이승만은 그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압살한 인물인데도 국부니 존경이니 공적이니 재평가니 하는 것은 웃기는 자가당착일 뿐입니다.

그누구도 정당하지 않는 방법으로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도전하는 사람은 대통령으로서 자격도 없고 국민의 적입니다.
이승만은 권력욕에 사로잡혀서 불법을 밥먹듯이 했습니다.
당시 국민들은 이미 이승만을 평가하였습니다.
그는 국내에서는 살 수가 없어서 도망간 것입니다.
그런데 무슨 재평가니 국부니 헛소리를 해대는 것인지

오늘 이승만이 지적능력을 상실하여 프란체스카 여사와 30대 비서가 대신 결재를 했다는 미국 기밀문서가 떴군요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50722_0013806746&cID=10101&pID=10100
【뉴욕=뉴시스】노창현 특파원 = 이승만 대통령이 1950년대말부터 노령에 따른 심신쇠약으로 통치력을 사실상 상실했으며 30대 비서와 프란체스카 여사가 국정을 관리했다는 CIA 일급 기밀문서(Top Secret)가 공개돼 충격을 주고 있다. 뉴시스가 20일 입수한 CIA 문서(CIB)는 1959년 8월1일자로 '이 대통령의 정책과 국정운영이 약화되고 있음'이라는 제목아래 이 대통령이 정신건강 문제로 통치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내용과 그로 인한 비정상적인 행태를 상세히 전하고 있다. 또한 월터 다울링 주한미국대사는 1959년 8월15일 국무부 전문보고에서 "요즘 이 대통령은 서류도 거의 안읽고 사람도 안만난다. 모든 것은 박찬일 비서와 프란체스카 여사가 결정하고 있다"며 "3년전과 비교해 정신적 문제가 두드러지게 악화됐다"고 보고했다. 사진은 CIA 문서 일부. 2015.07.21. <사진=김태환 한국사료연구가 제공> robin@newsis.com 2015-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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