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 하와이에서 사망한지 5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래서인지 조선일보는 이승만에 대한 재조명을 시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조선일보는 이승만이 하와이 망명생활을 하면서 고국에 돌아오기 위해 노심초사했다는 기사를 비롯해 이승만에 관한 추억을 실었습니다. 또한 새누리당의 김무성 대표는 지난 17일 국립 현충원에서 열린 '이승만 대통령 서거 50주기 추모식에 참석해  “우리 후손들은 그간 이승만 전 대통령의 역사적 공로를 인정하는 데 몹시 인색했다”며 “이 전 대통령을 국부의 자리로 앉혀야 한다”고 했습니다. 김 대표는 “그동안 이 전 대통령의 흠결을 파헤치고 드러내는 데만 골몰했다”고 했다며 "국가는 존재해도 국부는 존재하지 않았다. 칠흙같은 건국의 길에서 때로 비틀비틀 거리지 않고, 때로 넘어지지 않고 걸어갈 수는 없었을 것”이라며 “한국 현대사의 성숙과 함께 이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도 성숙해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 김 대표는 "이제 국부를 국부의 자리로 앉혀야 한다. 건국 대통령을 자랑스러워 하는 것이 대한민국에 대한 자부심의 출발”이라며 “이 전 대통령은 1948년 8월15일 새벽에 대한민국을 세운 분이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마음을 모아 삼가 존경의 뜻을 표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조선일보 양상훈 논설 주간은 '한 위대한 한국인을 무릎 꿇고 추모하며'라는 사설에서  "15일 아침 서울 국립현충원 이승만 대통령 묘소를 찾았다. 나흘 뒤면 그의 50주기다. 필자 역시 이 대통령에 대해 부정적 얘기만 듣고 자랐다. 그의 생애 전체를 보고 머리를 숙이게 된 것은 쉰이 넘어서였다. 이 대통령 묘 앞에서 '만약 우리 건국 대통령이 미국과 국제정치의 변동을 알고 이용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보았다. 고개를 흔들 수밖에 없었다. 그 없이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그 없이 우리가 자유민주 진영에 서고, 그 없이 전쟁에서 나라를 지키고, 그 없이 한·미 동맹의 대전략이 가능했겠느냐는 질문에 누가 "그렇다"고 답할 수 있을까. 추모비에 적힌 지주(地主) 철폐, 교육 진흥, 제도 신설 등 지금 우리가 디디고 서 있는 바탕이 그의 손에서 나왔다. 원자력발전조차 그에 의해 첫발을 내디뎠다."고 추모했습니다. 조선일보나 김무성 대표의 이승만 재평가 작업에 대한 의견이야 다양하겠습니다만, 제 개인적으론 이승만에 대한 재평가는 당연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우리에게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야누스로 비춰지고 있습니다. 한편으론 건국의 원훈이자 한민족의 독립과 번영의 기초를 닦은 국부로 숭앙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론 한반도의 분단을 고착화하고 민주주의를 압살한 시대착오적 독재자로 매도되고 있습니다. 1960년 대 이후 태어난 사람들의 경우 대부분 후자의 인식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론조사를 보더라도 이승만에 대한 평가는 부정적 일색입니다. 이승만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은 그를 유아독존적이고 이기적인 독재자라고 손가락질 합니다. 장준하는 이승만에 대해 '희대의 협잡꾼이오, 정치적 악한'이라고 맹비난을 퍼부었다고 합니다.좌파나 진보 성향의 사람들 중에는 이승만의 독립운동도 평가절하하면서 이승만은 단지 자신이 대통령이 되기 위해 독립운동을 한 것 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이승만에 대한 정반대의 시각을 가진 경우도 많습니다. 이러한 시각은 특히 이승만을 가까이서 지켜 본 사람들의 평가인데 그 중에서도 한국전쟁 당시 미8군 사령관으로 복무했던 밴플리트 장군은 이승만을 '한국의 조지 워싱턴,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사상가, 정치가, 애국자의 한 사람'이라고 극찬했다고 합니다. 이승만에 대한 강력한 옹호자는 1942년부터 1959년까지 이승만의 정치고문 역할을 한 미국의 시라큐스 대학의 교수이자 언론이었던 로버트 올리브 박사는 이승만에 대해"한국 역사상 누구보다도 두터운 신망을 획득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지도자"로 평가하고 "그의 이름은 한국 역사에서 단연 가장 위대한 정치가로 기록될 것이다"라고 평가했습니다. 또 올리브 박사는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민국이 건국 초창기에 직면했던 극도의 혼란과 6.25전쟁이라는 미증유의 재앙을 극복하면서 국가 안보와 외교, 군사, 경제 등 여러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룩해 신생 공화국을 굳건한 반석 위에 올려놓았으며 결과적으로 1960년대 이후 남한의 눈부신 번영에 근원적으로 공헌했다고 평가했습니다.

 

이승만에 대한 저의 인식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책이 로버트 올리브 박사의 <이승만 없었다면 대한민국 없다>라는 책입니다. 저는 그 책이야 말로 이승만에 대한 가장 정확한 사실을 보여준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사적 서신들이기 때문입니다. 그 편지들과 문서들은 이승만이 건국 과정에서 왜 반공주의를 표방하였는지, 또 왜 이승만이 대통령제를 고집했는지를 보여줍니다. 특히 제가 참 관심있게 살펴본 것은 한국전쟁 당시 이승만이 대통령으로서 국가를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노심초사 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들입니다. 한국전쟁 당시 우리 국군은 소총도 제대로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전쟁이 발발할 경우 3일간을 지탱할 탄약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이승만은 북한 공산군의 침공을 예상하고 미국에 대해 끊임없이 무기와 탄약을 달라고 했지만 미국은 거절했고 결국 스스로를 방어할 충분한 무기도 없이 한국전쟁을 맞이했습니다. 이승만은 올리브 박사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남한의 2천만 이상의 국민을 보호할 아무런 수단도 강구하지 않고서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소. 미국의 원조가 있든 없든 간에 우리의 국방에 대비하기 위해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바쳐야 할 것이오"라고 적었습니다. 또한 이승만은 서울이 함락되고 대구까지 밀리자 당시 무초 대사가 수도를 제주도로 옮길 것을 권유하자 호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들고 "이 권총은 공산당이 우리를 포위했을 때 나와 나의 내자를 쏘기 위한 것이오. 우리는 정부를 한반도에서 다른 곳으로 옮길 생각이 없소. 우리는 총궐기하여 싸울 것이오. 우리는 도망가지 않겠소"라고 화를 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최근에 KBS가 이승만이 전쟁 발발 이틀 만에 일본으로 망명을 시도했다는 오보를 해 말썽을 빚었는데 이승만은 결코 일본 망명이니 하는 생각 따위를 한 적이 없습니다. 또 흔히들 이승만이 수도 서울을 버리고 서울 시민들보다 먼저 도망갔다고 비난하지만 이승만은 결코 먼저 피신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이승만은 올리브 박사에게 보낸 편지에서 "차라리 이곳에서 죽었으면 좋겠다"고 적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이승만이 피신을 한 이유는, 당시 군부와 미국의 강력한 권유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전쟁과 같은 국가존망의 위기가 닥치고 최악의 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최고 지도부는 일시 피신을 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기 때문에 이승만이 서을을 빠져나간 것에 대해 과도한 비난을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입니다. 더구나 한국전쟁 당시 김일성 또한 유엔군이 평양에 입성하기도 전에 도망갔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이승만에 대한 비판은 사리에 맞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이승만을 높이 평가하는 것 중의 하나가 이승만이 독재자로서는 극도의 청빈한 생활을 했다는 점입니다. 대개의 독재자들이 권력을 이용해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는 사실에 비추어볼 때 이승만의 청빈한 삶은 대단히 경이롭습니다. 아마 대한민국의 지도자 가운데 이승만처럼 청빈한 생활을 유지한 지도자는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이승만이 비록 완고한 권위주의적 리더십을 행사했지만 그의 개인적인 사생활은 지극히 검소하고 소박했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이승만의 진면목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독재적 권력을 휘두른 국가에서 그 지도자가 이승만처럼 검소하게 생활한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이 점은 이승만이 이번에 조선일보에서 보도한 이승만의 이화장 양도 각서를 보더라도 분명해 집니다. 아니 어느 독재자가 생활비와 병원비가 없어서 자기가 살던 집을 양도합니까? 저는 그런 독재자가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습니다. 이승만은 한 나라의 대통령임에도 불구하고 낭비나 사치를 일삼지 않았습니다. 비록 당시의 대한민국이 가난한 나라였다고는 하나 일국의 대통령이 석탄값이 비싸 추운 겨울에 마음대로 쓰지 못하고 아침에만 살짝 덥히고 오후 내내 난방을 못하고 전기 난로 하나로 겨울을 버텼다는 사실은 놀랍기만 합니다. 심지어는 전기가 들어 오지 않아 영부인 프란체스카 여사가 촛불을 밝히고 저녁을 먹었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이승만의 절약과 검소함이 얼마나 몸에 베였는지를 실감케 합니다. 이승만의 경호원 (우석근 씨. 미국 거주) 얘기에 따르면 이화장에 살 때 때로는 경호원들이 돈을 모아 연료를 사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승만의 하와이 생활도 전적으로 교포들과 미국인 친구들의 도움으로 살았다고 합니다. 이승만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나라가 가난했으니 당연히 그러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주장하겠지만 가까운 북한의 경우 처럼 국민은 굶어죽어도 권력자는 자기 배를 살찌우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사실에서 이승만의 절약과 검소함은 특별합니다. 

  

이제 우리는 이승만이 비록 불명예스럽게 물러났다고 하더라도 그가 신생 독립국의 초대 대통령으로서 자신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고자 노력했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승만이 부정선거를 획책해 쫓겨났다는 이유로 그의 모든 업적을 폄하하거나 부정하지만 그가 오늘날의 대한민국의 기초가 되는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는 것도 인정해야 합니다. 김무성 대표의 말처럼 우리는 이승만에 대해 지나치게 인색합니다. 정치적 편향성에 사로잡혀 무조건 독재자라고만 비난할 게 아니라 오늘날 대한민국이 탄생하기까지에는 이승만의 역할이 중요했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