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저는 백범 김구 선생을 독립운동가들 중에서 존경했지만
지금은 백범 김구 선생의 과격한 노선이 하나둘씩 드러나면서

결국 저는 고하 송진우 선생을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이분을 재조명하고 재발견하게 된 사람들은 여러사람들이 있었으나
그중에서 강준만 교수님이 이분을 재조명하고 재발견했던 것입니다.

우선 이분은 신사참배를 거절했습니다. 개신교를 안좋아하는 사람이 많으나.
그 개신교의 이념이 때로는 그것까지 거절하게 하니..뭐 부정적으로 볼수가 없겠지요.

일단 이분의 신탁론을 많은 사람들이 비난을 하는데, 사실 이분이 찬성한건
오스트리아식 신탁론이었다고 봐요.

단지 그것만 본 나머지 국제정세를 순간에 못읽은 아차의 실수로 동아일보 오보사건이 터지고
암살이라는 비극적인 서거를 맞이하셨지요.

결국 이분의 죽음으로 좌우의 대립은 물론 우파는 우파끼리 좌파는 좌파끼리 죽이지 못해 안달이었고
그로 인해 많은 국민들이 당시에 희생을 당했습니다. 그 3년의 기간 중에 그 고하가 그리도 싫어했던
박헌영은 얼마동안 박헌영은 실컷 분탕질을 치다가
김일성과 더불어 6.25의 전범이되면서까지 김일성에게 이용당하고 숙청당했습니다. 
여운형은 건준을 중시하고 임정을 배제할때 고하 선생님은 임정을 중심으로 나라를 세우려고 했지요.
동아일보 오보사건은 물론 컸지만.....아차의 실수를 하고 인정하면 암살을 하면 안되는 것이었지요.

이후 살아생전에 이분이 책임을 지고 다른 훌륭한 일을 하면 그만인것을.....그러고도 남을 분에게 암살이 뭔가요.
누구보다도 사려가 깊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인데.....

결국 그분이 서거한 이후 3년의 혼란기가 결국에는 아직까지도 국민들에게 많은 상처를 준 셈이죠.
어쩌면 야당의 아버지로써
지금 지금 한국 야당의 꼴이 개판이 된것도 결국 저분이 해방기때 암살을 당했던 것이 컸던 것이라는걸 깨닫습니다.
지금 한국의 야당이 고하 송진우 선생님께서 바라는 야당이 되었는지 전 묻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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