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잡지사에서 광복 분단 70년 특집호를 낸다며 그 70년을 돌아보는
"자유에세이"를 써달라는 연락이 왔다. 편집자와 통화를 해보니
아직 자기네도 뭐 뚜렷한 주제를 잡아놓은 게 없고 그냥 필자 재량으로 알아서
써보라는 이야기이다.
광복과 분단 70년을 돌아본다...너무 막연하고 애매하다. 어찌보면 매우 한가롭게 들린다.
뭘 돌아본다는 것인가? 아름다운 추억이라도 돌아본다는 것인가? 문학잡지니까 살벌하게
정치상황 따지지 말고 부드럽게 지난 시간에 접근한다는 자세는 이해가 간다. 한때 국내 문학지를
대표하던 잡지인데 인터넷 시대에 아직도 거르지 않고 잡지가 나오고 있다는 게 대견하긴 하다.
회장님이 9순인데 여전히 회사를 지휘하고 그리고 분단문제에도 관심이 지대하시다고 한다.

광복, 분단 70년...70년은 69넌과 뭐가 다른가? 71년과는 뭐가 다를까? 다만 숫자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70년이라고 해서 특별한 이벤트가 벌어질 것도 아니고 지금 그런 일이 생길
상황도 아니다. 분단 70년 기념 도발이나 없었으면 다행일만큼 서로간에 표정들이 냉랭하고 살
벌하다.
나는 기왕에 아크로에서 분단을 소재로 꽤 여러차례 이런저런 글을 써왔다. 내가 편집자에게
그런 얘길 하고 또 지금도 유튜브에서 북한상황 동영상을 매일밤 열심히 보고 있노라고 얘기하자,
편집여직원이 자기네가 필자를 제대로 선정했다고 생각했는지 반색한다.
뭐 덥고 번거로운데 새로 원고 쓸 것도 없이 기왕에 아크로에 썼던 원고 하나를 골라 보낼까 하고
어젯밤에 읽어봤는데 내용들이 문학잡지에 게재하기에는 너무 과격하고 정치적인 것들이다.
집권자를 비판하는 내용들이 태반이라 아마 잡지측에서 달가와하지 않을 것 같다. 요즘 문학상
업주의 소동으로 출판사들이 비판받고 있는데 모처럼 그 잡지에서 분단문제를 비록 부드럽게나
마 다룰려고 하는데 과격한 언사와 정부비판으로 재를 뿌리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면
아주 부드럽고 부드러운 내용으로 새로 써야 하나? 알맹이도 없는 이야기를 , 마치 정겹고 멋들
어진 젊은날의 추억을 회고하는 것 같은 논조로 써줘야 하나? 종일 그 문제를 고민했으나 결론을
못 얻었다.

 광복과 분단 70년, 참 많은 시간이 흘러갔고 곡절도 많았다. 그게 고스란히 우리의 현대사 자체이다.
전쟁과 살육이 있었고 남북 체제경쟁이 있었고 근래에는 핵무기 소동이 돌출해서 현재진행형이다.
광복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분단으로 온전하게 광복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복의 주민들은 기아와
속박에 시달리고 있고 남쪽 사람들은 경제개발 덕으로 밥은 잘 먹고 지내고 있으나 분단의 여파로
지역갈등, 계층갈등 , 새대갈등, 정파갈등 등으로 행복지수는 중간에서 한참 뒤로 밀리고 있다. 지금
도 눈만 뜨면 좌파 우파 종북 꼴통 이런 어휘들과 한데 뒤엉켜 24시간을 보내야 한다.

얼마 전 작고한 독일작가 귄터 그라스 선생은 말했다.
"내가 분단국 작가라면 나는 남은 시간을 모두 분단문제 집필에만 쓰겠다."
그 기사를 읽고 그의 충고에 공감했다. 09년 내가 방북했을 때 거기서 만난 많은 사람들, 특히
여성안내원들(묘향산 김일성 유물기념관)은 내 앞에서 닭기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선생님, 통일을 위해 좋은 글 많이 써주시라요." 라고 말했다. 단군릉 관리소장이 여성인데
이 중년여성도 나와 악수하는 순간에 같은 말을 해줬다." 통일 위해 글 많이 써주시라요."
글 몇줄이 통일에 영향을 주나? 어림없는 얘기다. 그러나 안 쓰는 것 보다는, 무관심 보다는
관심을 갖고 쓰는 게 낫다. 우리 세대는 전쟁을 경험했고 살육을 보았고 그 참상으로 뒤틀려버린
삶을 살아왔다. 당장 나 자신의 삶도 전쟁으로 뒤틀려버린 삶이었다. 그 끔찍한 기억이 아니라면
나는 글장이가 되어있지 않을 것이다. 구차한 얘길 늘어놓을 자린 아니지만 이건 틀림없는 얘기이다.
 젊은 세대는 우리와는 분단을 대하는 생각 ,자세가 많이 다르다. 경험치가 다르니 생각과 인식이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그들과 소통을 위해 뭔가 써야 한다. 귄터 그라스 선생 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