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기 전에 한번 간단히 끄적여 봅니다.

그냥 제 소감이니, 너무 깊에 의미부여는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문학이라는게 원래 읽는 사람마다 각기 다른 소감을 갖기 마련이어서...


--------------------------------------------------------------------------------------------------------------------------------------------------


변신 VS 아내의 상자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르는 평범한 세일즈맨이다. 기실 그는 그의 집안을 부양하던 자였다. 그가 벌레로 변신하였음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제 그가 돈을 벌던 일을 더이상 계속할 수 없었음을 뜻하는 것 외에 다름 아니다. 가족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고유의 기능을 하지 못했을 때, 그는 한마리의 벌레로 변신한다. 그의 실존은 이것 만큼이다.

 

벌레로 변신한 그레고르는 가족들의 점진적인 냉내 속에서, 그리고 나중에는 노골적인 냉대 속에서 생을 마감한다. 그리고 가족들은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온을 되찾는다. 돈을 벌어야 하는 자기 역할을 하지 못하는 그레고르는, 적어도 그의 가족 안에서는 어떠한 실존적 가치도 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그레고르가 죽은 후 가족들은 별다른 가책이나 미련을 갖지 않고 그의 방을 비우게 된다.

 

아내의 상자에서 아내는 평범한 가정주부이다. 가정주부의 역할은 된장을 맛있게 끓여내는 등 아내로의 역할을 충실하게 하는 것이다. 정작 자신 불감증이지만, 남편과 잠자리를 해야 하는 것도 아내로서의 몫이다. 여기까지는 아내로서 부족한 점이 없었다. 아내로서의 가장 중요한 역할의 하나인, 아이를 낳지 못함으로써, 아내는 아내라는 부품으로서의 커다란 결함을 갖고 있었다.

 

아내는 결혼생활 이후 한번도 자신의 실존적 자각을 경험하지 못한다. 아니 그보다는 오히려, 점차 무력해지고 망가져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외출이라는 경험을 통해, 혹여 실존적 자각에 대한 기대를 해보지만, 이미 망가질대로 망가진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불륜녀라는 낙인, 즉 이제는 폐기되어야 할 부품이 되어버렸다는 사실 뿐이다.

 

신도시로 표현되는 평범한 현대인은 누구나 부품과 같은 존재이다. 남편 또한 마찬가지이다. 평범한 직장인인 그 또한, 회사에 출근하여 돈을 벌어야 하는 존재 이외의 것이 되는 순간 폐기의 대상이 될 것이다.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르처럼...

 

남편이 아내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이 소설 어디에도, 남편이 아내를 부품 이상으로 대한 흔적은 없다. 불임의 아내에게 제시한 것은 불임클리닉을 찾는 일이 전부었다. 그저 그에게는 자신의 역할, 아내의 역할, 이런 것들만이 중요한 관심사였고, 불임아내에 대한 그의 태도는 바로 그러한 역할에 충실하기 위한 노력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불륜이라는 사건을 통해, 아내는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폐기부품으로 전락한다. 그녀를 폐기한 후 그는 평범한 일상으로 복귀한다. 다음날 평범하게 일상처럼 출근하고, 그녀의 방을 비운다. 그레고르의 가족들이 방을 비우듯이....

 

-----------------------------------------

부품으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할 때, 그의 존재가치는 이제 더 이상 없다. 버려지고, 그의 방은 비워진다. 부품이란 사용하다가 그 기능을 다하지 못할 때, 다른 부품으로 대체하면 그만이다. 실제 그레고르의 가족들은, 구성원들 각자가 스스로 돈을 벌기 시작함으로써 폐기된 부품을 대체하게 된다. 아내의 빈자리는? 아내의 병을 고쳐 언젠가는 제자리로 데려올까? 천만에. 이미 아내는 폐기된 부품이고, 이제 그 부품은 새로운 완전한 부품으로 교체하기만 하면 된다. 밥 잘짓고, 살림 잘하고, 애 낳을 수 있는 새로운 부품으로... 이 점에서 이 작품은 일상성에 갇혀, 자신의 실존을 상실하고 있는, 또한 언제든지 다른 부품으로 대체될 수 있는, 현대인들에 대한 은유이다.

 

P.S. 아주 오래 전에 반칙왕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모티브가 비슷하면서도 매우 다르다. 그 영화의 주인공은 결국 가면이라는 탈출구를 통해 일상성에서 벗어나 자신의 실존을 되찾으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변신과 아내의 상자를 읽으셨다면, 잠시 머리를 식히기 위해 영화  반칙왕을 한번 보시라고 권해드린다. 단 영화는 그렇고 그런 싸구려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