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 비극의 원인: 친일파와 그들의 숙주 경상도


한국근현대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당한, 어느 나라보다도 더 비극적이고 폭력적인 역사였다. 그동안 한국근현대사는 친일파들에 의해 은폐, 조작, 왜곡돼왔다. 그러나 민주세력이 집권한 십년 동안 은폐, 왜곡된 역사들이 드러나고, 강대국들의 외교문서들의 비밀이 해제되거나, 위키리키 같은 사이트를 통해 폭로되면서 비극의 원인이 친일파 때문이라는 사실이 입증되고 있다.


한국근현대사에서 폭력적 대립구도는 일제식민지를 거치면서 형성, 증폭되었다. 나라를 찾으려는 항일세력과 개인의 영달을 위해 일제에 부역하며 항일세력들을 토벌했던 친일파들은 공존할 수 없는 관계였다. 상대를 제거해야 생존할 수 있는 사생대결의 관계였다. 2차 대전 종전 후 대부분의 식민지국가에서 외세의 지배에 부역했던 세력들이 단죄되면서 이런 대립구도는 끝났는데, 세계에서 유일하게 부역세력이 정권을 잡고 독립운동세력을 역처단하는 상황이 남한에서 벌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4.3 및 보도연맹학살 등 친일파들에게 학살당한 양민들이 드러난 것만 백만 명이 훨씬 넘고, 더 많은 학살자수가 계속 드러나고 있다. 반친일파들이 악질친일파들을 골라 선별적으로 처단한 반면 친일파들은 양민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했는데 그 수는 전자의 10배가 넘는다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등 참조). 단지 빨치산(반친일파 유격대)들이 밥을 요구해 밥을 주었다는 이유로 한 마을 주민들을 남녀어린이노약자 구별없이 몰살시킨 경우가 수도 없이 밝혀지고 있다.


학살당한 양민들은 이념이나 좌우파의 구분없었다. 좌파와 우파는 함께 항일운동을 한 입장에서 이념 때문에 사생대결의 관계는 아니었으나, 친일파들은 저지른 죄악 때문에 일제 때 누리던 권력을 놓치면 처단 또는 몰락할 수밖에 없기에 필사적으로 반친일파들을 학살하였다. 학살의 명분은 반친일파 대신 빨갱이 라는 이유였다. 친일파들은 거짓 우익의 탈을 쓰고 모든 반대파들에게 빨갱이 딱지를 붙이고 처단하고 있다. 반친일파/친일파 프레임을 교묘히 좌/우 프레임으로 둔갑시켜, 학살과 거세를 통해 권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친일파들은 자기들의 영달을 위해선 때에 따라 왜놈의 앞잡이도, 김일성의 앞잡이도, 미국의 개도 되는 기회주의를 최고의 이념으로 삼고 있다.


친일파들은 양민학살뿐만 아니라 숱한 사찰과 문화재, 민가들을 소각하는 악행도 저질렀다. 한국전쟁을 전후에 북한군과 빨치산들이 사찰이나 문화재, 또는 민가들을 이용할 수 있다는 이유로 수많은 문화재와 민간인들의 보금자리를 소각하였다. 친일파들에게는 자기들의 기득권 수호가 가장 중요한 문제지 문화재나 주민들의 삶은 전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해방후 남한을 점령한 미군들은 미국의 입맛에 맞게 남한을 통치할 통치세력들이 필요했다. 미군들의 입장에서 통치세력의 조건은 식민지행정 경험이 있고 미국의 이념과 다른 사회주의세력을 진압할 수 있는 인력들이었다. 그 조건에 이승만과 친일파들이 딱 맞아 떨어졌다. 김구 같은 우익세력은 통일을 우선시하고 좌우합작을 하려했기에 미군의 의도에 도움이 안 됐다. 해방후 처단의 위기를 맞은 친일파들과, 권력욕은 강했으나 지지세력이 약했던 이승만에게 미군은 구세주였다. 대일본제국을 위해 미국을 무찌르자고 외치던 친일파들은 미국의 개로 변신한다. 독립운동가들이 목숨을 건 항일운동을 할 동안, 외교활동으로 독립운동을 한다며 미국에서 편히 살며 파벌을 구축하고 독립자금을 횡령하던 출세주의자 이승만은 좌우파가 반대하던 남한단독정부수립을 친일파들과 함께 지지하고 미국의 비호로 남한의 대통령이 된다. 우익과 좌익의 반대로 정치기반이 취약했던 이승만은 친일파들을 기용함으로써 취약한 기반을 보강하고, 김구, 여운형, 조봉암등 정적들을 살해하고 친일파 청산을 요구하는 반친일파들을 빨갱이로 몰며 거세했다.


이승만의 친일파 정권은 반친일파/친일파의 대립구도를 교묘히 좌/우의 대립구도로 바꾸며 거짓 우익의 탈을 쓰고 반친일파들을 거세하며 일제 때 누리던 친일파들의 기득권을 계속 유지시킨다. 해방전후 실제로 좌/우 대립은 반친일파/친일파 대립만큼 심하지 않았다. 일제시대에 항일운동세력들이 식민지제국들의 자본주의를 반대해 사회주의를 더 선호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에게 독립이 최우선이고 사회주의는 항일운동의 수단이었고 좌우문제는 해방후에 좌우합작을 통해 통일된 나라를 만든 후 타협으로 해결하려 하였다. 나라를 먼저 생각한 좌우파들에게 좌우의 대립은 부수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친일파들은 통일이 되면 몰락할 수밖에 없기에 필사적으로 통일을 막고 남한에서 친일파의 국가를 건설하려고 혈안이 되었다. 그들은 우파의 탈을 쓰고 좌우파를 갈라놓는 전략을 썼으며, 북한에서 숙청당한 친일파들은 남한으로 몰려들어 서북청년단 같은 친일파 단체들을 만들어 반친일파들을 무참히 제거하는데 앞장을 선다. 친일파/반친일파의 대립구도는 묻혀지고 우익의 탈을 쓴 친일파가 우파로 행세하고, 우익과 민족주의세력과 좌익들은 모두 좌파로 분류되는 왜곡된 좌/우 구도가 확립된다. 친일파들은 한국전쟁의 원인에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 친일파들은 남한에서 친일파에 동조하지 않는 양민들을 빨갱이라는 딱지를 붙이며 집단 학살을 계속함으로써 북한(김일성의 야욕도 있었겠지만)에게 학살당하는 남한인민을 친일파들로부터 해방시킨다는 전쟁의 빌미를 주었다. 미국의 개입으로 전쟁에서 패망의 위기를 넘기지만 정통성이 없는 친일정권은 독재와 부정선거로 버티다 4.19 의거로 몰려나고, 그 후 제2공화국이 들어선다.


제2공화국이 탄생하면서 개정된 헌법에 강력한 친일파 처벌조항이 생겨 친일파들은 다시 몰락할 위기를 맞았는데 관동군 출신 다카키 마사오(박정희)가 앞장서 5.16 쿠테타를 일으킨다. 출세지향적이었던 오카모토 미노루(처음 창씨개명한 다카키 마사오란 이름을 버리고 더 일본화 되기 위해 일본식으로 두 번째 창씨개명한 이름)는 일본천황에 충성혈서를 쓰고 관동군에 입대해 독립군을 토벌하던 중 일본이 패망을 한다. 승승장구하던 자기의 출세가도가 종말을 맞게 되자 낙담한 오카모토는 자기의 관동군 경력을 세탁하기 위해 광복군에 입대한다. 그러다 좌익세력에 붙는 게 이득이라 판단한 오카모토는 좌익으로 둔갑해 여순사건에 가담하다 체포된다. 체포돼 죽게 된 박정희는 동지들을 밀고하여 모두 죽게 하고 그 댓가로 혼자만 사면을 받아 이승만 정권에서 소장까지 진급한 도저히 인간으로선 할 수 없는 배신질을 하던 전형적인 박쥐였다.


이승만이 쫓겨난 후 몰락의 위기를 맞던 친일파들은 5.16 군사반란 덕분에 친일파의 세상을 다시 만나 반친일파와 반독재파들을 빨갱이 딱지를 붙여 무자비하게 제거한다. 그 후 오카모토는 3선개헌을 하고 유신헌법을 만들어 종신집권의 틀을 만든다. 잔악하고 패륜적인 오카모토의 무단정치가 어떻게 국민의 저항을 물리치고 종신집권의 틀까지 만들 수 있었을까? 오카모토는 종신집권을 위해 이 땅에 망국적 지역주의를 이식시킨다. 선거 때 위협적 경쟁자였던 김대중과 전라도를 희생양으로 하고 자기의 고향 경상도를 친일파의 숙주로 하고 부하 김종필의 고향 충청도를 들러리로 하는 지역대립구도를 만든다. 경상도는 오카모토가 만들어 준 경상도독식주의에 넘어가 민족의 반역세력 친일파들에 부역하며 묻지마 투표와 묻지마 지지로 그들의 숙주가 되었고 더 나아가 범친일파가 돼서 이 땅의 암적 존재로 전락해버렸다.


그러나 하늘은 오카모토를 가만 놔두지 않았다. 그는 밤마다 딸보다 어린 여자들을 불러 엽색질을 하던 중 부하 김재규의 손에 총살당한다. 그는 죽지만 그가 만들어 논 지역주의와 경상도독식주의는 강고해 오카모토의 양아들로 불리던 전두환과 친일파 후예들이 오카모토의 심적, 물적 유산을 그대로 물려받아 이 나라 인구 중 가장 많은 경상도의 강력한 묻지마 지지를 받으며 공화당으로부터 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으로 이름만 바꾸어 이어오며 부정선거까지 저지르며 이 땅의 지배계급으로 계속 군림하며 을사늑약 이래 100년 넘게 매국노 짓을 하며 이 땅을 더럽히고 있다. 친일파들은 정권뿐만 아니라 군부, 학계, 행정부, 사법부, 언론, 경제계 등 사회각계에 일제 때부터 부역하던 자들을 계속 유임시켜 온 나라를 장악해 민족정기와 공동체정신을 말살시키고 아비규환으로 몰아넣고 있다. 특히 군대는 독립군 토벌하는데 왜놈군대보다도 더 악질적이었다는 간도특설대 출신들(백선엽 같은)이 만들었고 그 전통을 이어오며 친일파와 그 자식들은 군면제 받고 반친일파의 자식들은 징집돼 친일파들의 총알받이로 이용되고 있다.


정통성과 합법성이 없는 친일파정권은 합법적, 민주적 방식으로는 생존할 수 없기 때문에 정권과 기득권 유지를 위해 온갖 불법, 부정, 비리, 공작, 독재, 폭력적 방법을 쓸 수밖에 없으며, 그 결과 이 나라는 해방 이후 혼탁한 아비규환을 겪고 있는 것이다.


친일파에 대한 Q/A


- 친일파들의 정의와 범위는?

친일파는 친일부역을 하고도 뉘우치고 반성을 안 하는 사람들과 친일파들의 사상과 활동에 동조하는 사람들이라 정의 할 수 있다. 실제 친일파들의 수는 생각보다 많다. 일본의 식민지하에서 친일부역이 최고의 출세방법이었기에 식민지기간이 늘어남에 따라 친일파들의 수는 늘어난다. 해방이후 권력을 잡거나 공직을 유지하거나, 적산을 바탕으로 재벌이 되고 대지주를 유지한 사람들 대부분이 친일파들이다. 해방후와 6.25 이후 북한의 친일파들이 친일파를 청산하던 북한을 떠나 대거 월남하면서 남한에 친일파들은 더 농축된다. 게다가 친일파들이 남한에서 집권하고 지배계급을 형성하고 반대파들을 제거하고 일반민중을 세뇌시켜 친일파들의 사상에 동조하는 숫자가 엄청나게 늘어난다. 민중들은 외부의 압력에 의해 자기세뇌화를 하는 경향이 있어, 반친일파가 제거되는 사회에서 타의와 자의에 의해 저절로 친일파들에 동화되어 친일파가 된다. 지금은 친일파 선조들의 정권적 유산을 물려받은 새누리당이 친일파의 핵심이고, 그들의 입장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뉴라이트, 친일파들이 혈세로부터 할당한 모이를 받아먹고 친일파들의 홍위병 노릇을 하는 각종 수구 관변단체, 친일권력과 결탁한 일부 기독교단체, 친일파들에게 세뇌돼 우익의 탈을 쓴 친일파들이 진짜 우익인 줄 알고 그들을 지지하고 있는 새누리성향 민중들이 친일파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새누리성향 민중들의 대부분은 친일파들에게 속고 있기 때문에 친일파의 정체를 알게 되면 반친일파가 될 가능성이 높다.

- 친일파를 용인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프랑스는 전쟁 중 독일에 부역을 했던 비시정권 하의 친독부역자들 50 만명 정도를 처벌하고 3-4만명을 사형시키는 철저한 청산작업을 이뤘다. 선진국 프랑스가 부역자 청산에 이렇게 가혹했던 이유는 내부의 적이 외부의 적보다 더 해롭고 공동체에 해를 끼친 부류들을 용인하면 도덕성이 해이해지고 또 다시 공동체를 위협하는 부류들이 생겨날 수 있어 공동체가 쉽게 멸망할 수 있다는 인식에서 나온 것이다. 뿐만 아니라 친일파들은 원칙과 이념과 상관없이 자기들의 이득에 따라 극우도 됐다, 극좌도 됐다, 외세에 부역도 하는 기회주의세력이라 언제든 민족의 반역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내부의 암세포적 존재다. 그리고 친일파와 같은 기회주의를 용인하면 국민들은 정의를 비웃고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남에게 피해를 주든 말든 이득만 취하려고 할 것이다. 실제로 지금 이 사회에서 팽배한 도덕적 타락, 물질지상주의, 출세지상주의, 기회주의는 친일파들이 득세하고 그들의 정신을 퍼뜨리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 친일파들은 “그 당시에 누구나 다 친일을 했어 너희 부모들도 마찬가지야“라는 말을 종종 하는데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그것은 친일을 합리화하는 말이다. 그 당시 목숨 바쳐 항일운동을 했던 사람들도 많았고 심정적 또는 물질적으로 지지를 했던 사람들이 친일파보다는 더 많았는데 다 친일을 했다니? 설사 친일파가 더 많았어도 나쁜 것은 나쁜 것이다. 자기가 친일을 했어도 반성하면 반친일파가 될 수 있다. 자기 조상이 친일파였어도 자기까지 친일에 동조하며 친일파가 돼서는 안 된다. 스탈린의 딸은 스탈린의 악행을 인정하고 거기에 대해 사과했다. 필자의 부친도 친일파였다. 친일부역을 한 친일파가 아니라 일본에서 대학을 나오고 일본에 호의를 가진 친일부역자와 구별되는 친일파였다. 그러나 부친은 이승만, 박정희의 기회주의와 독재정치를 싫어했다. 부친과 상관없이 나는 독립된 인간으로서 친일파의 폐해를 깨닫고 친일파의 정체를 폭로하는 전도사로 나섰다.


- 친일파들이 일제 36년 (을사 늑약을 포함하면 41년) 그리고 해방후 60년간 정치, 사회, 경제, 학계 등 모든 권력을 잡고 국민들을 세뇌시키면서 대한민국을 장악하고 있는데 어떻게 친일세력을 몰아내나?

한국정치가 발전을 못하는 가장 큰 문제는 이념대립보다 도덕적 대립 때문이다. 한국은 이념 대립이 심한 나라라고 하는데 그것은 친일파들이 반친일파/친일파 사이의 도덕적 대립을 좌/우 이념대립인양 둔갑시켰기 때문이다. 이념은 대체로 취향의 문제다. 노동자권익/자본가권익, 복지/자생, 자본주의/사회주의 문제처럼 도덕이 아닌 정책적 사안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논란이 돼온 문제는 주로 옳고 그름에 관한 문제였다. 친일부역/항일운동, 독재/민주주의, 부패/청렴 같은 선악의 대립에서 한 발짝도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그 원인은 바로 한국이 취향의 문제에 의한 좌/우의 대립이 아니라 선악의 문제로 인한 친일파/반친일파가 대립하기 때문이다.


거의 백년간 항일운동파와 정의파들은 제거당하고 친일파나 매판세력은 호사를 누림으로써 사회에서 정의와 공동체주의가 사라지고 기회주의, 황금만능주의가 팽배해지고 나라가 아비규환에 빠졌지만, 아무리 친일파들의 세력이 강해도 악이 선을 이길 수는 없다.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 가리지 않고 모든 양심세력은 힘을 합쳐 민중들에게 친일파들의 실체를 폭로하고 경상도를 친일파의 숙주로부터 벗어나게 해서 친일세력을 몰아내는데 전력을 다해야한다. 하지만 이 땅에서 친일파가 패권을 쥐고 있고 숙주인 경상도가 가장 인구수가 많기 때문에 친일파와 경상도의 눈치를 보며 그들에게 부역하며 부패한 과실을 주어먹는 지식인과 정치인들이 많다. 그런 부역자들도 청산돼야할 기회주의 친일파에 포함되지만 풍향이 바뀌면 돌아올 부류들이다. 새누리성향 민중들은 친일파들에게 세뇌됐지만 근현대사를 제대로 알리면 반친일파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좌/우, 진보/보수, NL/PD, 등등 모든 양심세력은 서로의 대립을 유보하고 힘을 합해 친일파를 먼저 몰아낸 후, 민주적으로 그 다음 단계를 논의해야 한다. 친일파에게 나라가 먹힌 상태에서는 그런 대립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쉽게 말하면 지금의 상황은 집 지을 땅을 뺏겼는데도 남향집이냐 서향집이냐를 놓고 싸우는 격이다. 일단 양심세력 모두가 힘을 합해 친일파에게 빼앗긴 땅부터 찾은 후 지을 집의 모양새에 대해서 논의하는 게 올바른 수순이다.


필자소개:

필자는 서울출신이지만 시골에서 살며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지지하지 않으며 자급자족과 생태적 삶을 추구하는 원시적 아나키스트다. 필자의 목표는 인류의 정신 및 물질문명의 폐해를 밝혀내고 대안을 찾아 실천하는 것이다. 또한 불의를 적극 거부하며 정의세상을 이루는 꿈을 꾸며 민족의 질곡인 친일파세력의 정체를 알리는 노력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