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은 상호 경쟁하는 선호를 다루는 학문이다. 환경주의는 선호의 문제를 도덕의 문제로 비약시켜 과학의 범주를 벗어나고 있다. 자연 녹지를 개간, 포장하여 주차장을 만들자고 하면 자연 녹지를 좋아하는 사람과 편리한 주차장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 분쟁이 야기된다. 분쟁이 진행되는 동안 사람들은 정치 및 경제제도를 변화시켜 자신의 선호를 관쳘하려고 시도한다. 한 쪽은 승리하고 다른 한쪽은 패배해야 하기 때문에 이 싸움은 치열하고 때로는 가혹하게 진행된다. 이 모든 것들은 통상 일어나는 일이다.

경제학은 우리로 하여금 근본적인 대칭성을 직시하게 한다. 분쟁이 일어나는 이유는 쌍방이 동일한 자원을 서로 다른 방법으로 사용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철수는 주차장이 아닌 자연 녹지를 원하고 영희는 자연녹지가 아닌 주차장을 원한다. 문제를 이와 같이 설명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볼 때 중립적이며, 철수와 영희 어느 한 쪽에 더 높은 도덕적인 위치를 부여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환경주의자들은 주차장을 건설하기로 하는 결정은 '돌이킬 수가 없기' 때문에 자연 녹지는 주차장에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그들은 옳다. 그러나 주차장을 건설하지 않기로 하는 결정도 마찬가지로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우리가 오늘 주차장을 건설하지 않는다면, 내일 주차할 수 있는 나의 기회는 내일이 한 번 지나가면 영원히 사라지듯이 역시 돌이킬 수 없이 사라진다. 내일보다 더 먼 미래에 주차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사라진 나의 기회를 적절히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시 환경주의자들은 우리가 자연 녹지를 선택해야 하는 이유를 우리 자신보다는 미래 세대에서 찾아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미래 세대가 주차장 보다 자연녹지를 상속받는 것을 더 좋아하리라고 생각할 어떤 이유가 있는가? 이는 정직한 태도를 요구하는 과학적 연구에서 가장 먼저 제기되어야 할 의문 중 하나이다.

환경주의자들의 또 다른 논리는, 주차장을 건설하려는 사람에게는 선호가 아니라 이윤이 동기라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두가지 반론을 할 수 있다. 첫째, 주차장 개발업자의 이윤은 고객의 선호 때문에 나타난다. 따라서 환경주의자와 분쟁하는 사람은 궁극적으로 볼 때 주차장 개발업자가 아니라 주차를 원하는 사람이다. 둘째, 이 논리는 어찌되었건 이윤에 대한 선호가 자연 녹지에 대한 선호보다 도덕적으로 열등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이는 바로 이러한 논리에서는 포함되지 않아야 할 도덕적 우월성을 주장하는 행위인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돌이킬 수 없다'는 주장, '미래 세대'에 대한 주장, '이윤이 아닌 선호'의 주장들은 모두 정직한 태도로 따져보면 허물어지고 마는 엉터리 구분법에 근거하고 있다. 그런데도 왜 일부 환경주의자들은 이러한 주장을 반복하는가? 아마 그들은 정직하게 따져보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많은 경우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전제 하에서 출발하고, 사람들을 자신들의 대의에 따르도록하는 신성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지성적으로는 정직하지 못한 선전을 널리 퍼뜨릴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

과학의 특징은 한 논리를 결론에 도달할 때까지 성실하게 따라가는 것이다. 반면 어떤 종류의 종교의 특징은 논리에 호소하는 듯 하다가도,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흐르면 재빨리 후퇴해버리는 것이다. 환경주의자들은 산림의 중요성에 대한 수많은 통계를 인용하고는 곧바로 종이를 재활용하는 것이 좋은 생각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정반대의 결론도 역시 똑같이 좋은 생각이다. 종이를 재활용하면 제지회사는 나무를 심을 인센티브가 적어지고 따라서 산림은 줄어들 것이다. 만약 당신이 큰 산림을 원한다면, 당신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전략은 종이를 가능한 한 많이 낭비하거나 벌목 산업에 대한 보조금을 주자고 로비하는 것이다.

환경주의자들, 적어도 내가 만났던 환경주의자들은 산림을 유지하는데 대해 실제로는 관심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관심이 있었다면, 그들은 재활용의 장기적인 효과를 진지하게 조사했을 것이다. 나는 그들이 그렇게 할 의사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진정한 관심은 재활용의 종교의식 그 자체이지 그 결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이 희생하고, 또 다른 사람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욕구는 근본적으로 종교적인 충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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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강압적인 이데올로기처럼 환경주의도 특히 어린이들을 표적으로 삼는다. 내 딸이 유치원에서 초등학교로 진학한 이후, 선생님은 내 딸에게 종이컵을 버리지 말고 씻어 사용하여 자원을 보존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나는 딸에게 시간도역시 값진 자원이고 또 시간 절약을 위해서는 컵 몇개를 버릴 가치가 있다고 설명하였다. 선생님은 내 딸에게 자연 녹지가 쓰레기 매립장으로 변하지 않도록 종이를 재활용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나는 딸에게 쓰레기를 일일이 분리하지 않는 사치를 위해 일부의 자연 녹지를 희생할 가치가 있다고 설명하였다. 이 모든 경우에 딸애의 다섯살 짜리 두뇌는 나의 논리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딸이 주입식 교육을 몇년 더 받으면 그 선생님처럼 마음이 굳어져 마침내 나의 논리를 이해하지 못하게 될까봐 걱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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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은 가장 좁게 해석하면 가치가 배재된 학문이다. 그러나 경제학은 또한 생각하는 방법의 하나이고, 이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공식적인 논리를 초월하는 어떤 영향을 미친다. 인간이 가지는 관심의 다양성이 그 주제이기 때문에, 경제학 분야는 관용과 다원주의 같은 가치들이 자라나는 기름진 토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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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랜즈버그의 글입니다. 이미 보신분들도 많으실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