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티벳 승려들의 분신시위 소식이 자주 들려온다. 항의와 호소를, 몸을 불태우는, 십중팔구 죽음에 이르는 극한적 행동으로 행한다는 것은 나같은 이들에게는 그 자체만으로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무엇이 그리 절실할 수 있다는 말인가? 내가 기왕에 내 자신만의 영화를 위해 온갖 못된 짓을 다해 내 목숨값이 까마득하게 떨어져 있는게 아니라면, 세상에 내 한 목숨보다 소중한 것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아니 있다 쳐도, 꼭 목숨을, 그것도 그런 식으로 바쳐야만 그 소중한 것을 지키거나 그 소중한 것을 박탈당한 상황의 불의에 시선을 끌고 그 상황에 대한 분노를 표현할 수 있다는 말인가?

세속을 사는 평범한 갑을병정들이 그런 행동을 해도 이런 의문이 드는 마당에, 세속을 어느 정도 초월한 생명윤리를 지녀야 하는 수도자들이 그리했다는 것은 내게는 불가해하다. 무엇에 대해서든 그들보다 집착과 욕망이 더 강하기 쉬운 속인들도 그리하지 않는데, 무엇에 대해서든 더 초연해야 하는 승려들이 한술 더 뜨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불교 안에는 승려들의 독립운동 자체를 금지하는 어떤 것도 없지만 그런 식으로 생명을 희생시키는 것을 금지하는 것은 불교의 바로 그 정신에 속한다. 불교의 어떤 원리가 육체를 그토록 철저하게 정신승리를 위한 수단으로 환원하는 것을 허용한다는 말인가? 부처가 자신의 조국이 코살라국에 유린당했을 때 분신으로 항의하고 다른 카필라국 출신 수도자들한테 그리 하도록 권유했던가?  

나는 민족자결주의를 무조건적으로 신봉하지도 않고 티벳이 중국의 식민지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그 반대라고 하더라도 티벳의 상황은 그런 식의 독립운동을 해야 할 만큼 절박하지도 않고 그런 식의 독립운동을 해서 무슨 긍정적 효과가 생길 만큼 유동적이지도 않다. 자신이나 동족이나 인류의 인간적 존엄성이 무자비하게 짓밟히는 상황, 그래서 그 상황에 대한 죽음도 불사하는 저항이야말로 인간적 존엄성을 지키는 유일한 길이 아닌 어떤 상황 앞에서도 그 상황에 생명을 초개처럼 버리는 행동으로 항의해서는 안된다. 그러한 과잉은 그것이 항의하는 불의보다 더 인간적인 것을 결코 창출할 수 없다. 중국의 티벳 억압이 그다지도 가혹하고 흉악한가? 그렇다면 승려들 사이에서보다 속인들 사이에서 훨씬 더 많이 분신시위가 행해졌을 것이고 그들이 승려들보다 더 민족주의적이 되었을 것이며 달라이 라마 망명 정부의 공식노선도 독립이었을것이다.       

티벳 독립이라는 대의에 승려들은 왜 자신들의 불교 수도자로서의 정체성조차 위태롭게 하는 행동으로 앞장서는가? 왜 그들은 속인들보다 더 민족주의적 대의에 목을 매는가? 선각자이고 지식인들이기에 평범한 속인들은 꿰뚫어볼 수 없는 억압이라도 꿰뚫어본 것인가? 나는 그들의 극단적 행동에서 오직 '나'의 과잉만을 본다. 과거 중국 왕조들에 의해 현재보다 더 자치를 허용받았던 티벳에서 승려들은 온갖 특권을 다 누리는 지배계급이었다. 문화혁명이 단죄된 이래 중국정부는 독립운동과 연관된 인사들을 구금하는 외에는 티벳불교를 탄압하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티벳의 민심을 얻기 위해 대폭적인 지원을 해주었다. 티벳 불교가 티벳 민중의 일상생활의 정신적 핵이었던 전통의 잔존과 국가적 지원으로 인해 티벳 승려들은 평균적인 티벳인들에 비해, 그리고 기울이는 육체적 노고에 비해, 물질적으로 더 걱정없고 정신적으로 더 긍지있는 생활을 누린다. 한 마디로 그들은 현재 티벳에서 특권계층이거나 적어도 명망계층이다. 

티벳 승려들 일부가 분신시위라는 극단적 행동에 나서고 하나의 전체로서의 티벳 불교가 전혀 불교적이지 않은 그 행동을 제지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은 이 지위가 상실되거나 약화될 수도 있다는 티벳 승려들 다수의 위기감을 뿌리로 한다. 중국은 세속화된 나라고 공산당이 가열차게 추진하는 거의 자본주의적인 근대화의 파도는 티벳이라고 비켜가지는 않는다. 물질적 가치 추구에 치중하는 생활방식이 티벳인들을 조금씩 더 장악해 가고  티벳인들 사이에서 물질적 이해관계를 둘러싼 갈등이 심해질 수록 티벳 불교라는 손바닥 위에서 소박하고 경건한 자세로 한데 어울려 사는, 승려들을 극진히 대접하는 전통적인 티벳 생활방식은 조금씩 허물어져 갈 것이다. 티벳은 조만간 터키 이상으로 세속화된 나라가 될 것이고 티벳 불교는 문화재로 전락할 것이다. 이 추세는 오직 승려들의 주도 하에 티벳이 중국으로부터 독립해 티벳이 약화된 형태로나마 일종의 불교신정국이 될 때만 저지될 수 있다.

문제의 그 승려들은 티벳 민중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을 위해서 티벳의 자본주의적 세속화를 염려한다. 그 아집에 기반한 염려로 인해 그들은, 세속화가 불가피하고 당연한 추세라는 점을, 아주 긴 시간이 걸리더라도 중국의 장기적 민주화 흐름을 지지하고 그 흐름에 동참하면서 그 세속화에 민주주의를 각인하고 티벳인들이 누리는 자치의 범위가 조금씩 더 늘어나게 하는 것이 티벳인들 전체가 지금보다 더 행복한 삶을 누리기위한 실현가능한 유일한 대안이라는 점에 맹목이 된다. 미국 다음의 슈퍼 파워의 지위에 올라서고 있는 중국을 두고 볼때, 티벳의 독립이라는 대의를 지지해주는 나라는 존재할 수 없다. 티벳 내부에서라면, 잘 조직된 독립운동세력은 중국당국의 삼엄한 단속과 티벳 일반 민중들로부터의 충분한 지지의 결여로 인해 존속이 불가능하다. 중국 당국은 조그만 도전에도 과격하게 대응하는 독재체제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으며 극소수 티벳 독립운동가들의 과격한 행동은 티벳 민중들 전체의 불편한 일상과 상대적으로 온건한 티벳 자치운동 세력의 운신의 폭의 협소화로 이어질 뿐이다. 티벳 승려들이여, 수도자의 위치로 돌아가라. 당신들이 티벳을 대표한다는 자부심을 버려라. 세속화와 물질주의는 당신들이 대화를 나누어야 할 것이지 억압해야 할 것이 아님을, 당신들이 관심갖는 것은 티벳의 중생이 아니라 당신들 자신의 물질적 특권임을 깨달으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