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줄 알았으면 저녁 늦게 느긋하게, 천천히 쓰는 게 좋을 뻔 했습니다.  쓰고 나니 할 말을 미처 다 못했다는 미진한 느낌이 남아서 찜찜하고 아쉬웠는데, 실제로 댓글들의 반응을 보니 제가 원래 쓰고 싶었지만 약간 서둘러 쓰느라고 미처 쓰지를 못했던 논점들과 직결되는 내용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더군요. 고로 이하는 보론 겸 답변입니다.


 1. 서사예술 

 서사예술이란 용어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여기서 서사예술이라고 할 때는 '이야기'가 그 예술분야에서 불가결한 요소로 기능하는 예술장르를 두루 일컬어 하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서사시, 소설문학, 신화, 연극대본 및 영화대본 (또한 영화, 연극), , 만화, 애니 및 뮤지컬, RPG(role playing game) 게임, TV 드라마 등등이 여기에 포함될 수 있겠죠. 물론 이들 예술 장르 가운데서는 이야기성이 불가결한 요소라고 보기 어려운 전위적이며 실험적인 작품들도 간혹 나오곤 합니다. 그러나 일반적이진 않죠. 



 2. 한국문학의 상업적 부진은 대체재가 늘어난 것에 있다는 주장에 관해. 

 흐강, 바스티아님 및 getabeam님의 댓글이 이런 주장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데요, 저도 동의합니다. 단, 그것만으론 한국문학의 상업적 부진을 충분히 설명하기에 미흡하단 단서는 달아야겠습니다.

 소설문학의 대체제, 그 중에서도 직접적인 대체재 및 그에 가까운 것들이라면 앞서 언급한 서사예술들입니다. 영화, 애니, TV 드라마, 게임 등을 소설문학의 가까운 대체재로 꼽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들 별로 없을 것. 이들 대체재들의 등장은 소설문학의 생산/소비 양면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우선 서사예술적 재능을 가진 재원들 중 과거 같았다면 소설에 그 재능과 열의을 쏟아부었을 사람들이 다른 서사예술장르로 빠져나가겠죠 (영화라든지...). 소비 측면에서도 마찬가지. 그리고 이건 한국만이 겪고 있는 현상이 아닙니다. 전세계적인 현상이죠. 또한 장기적으로 볼 때, 그간 서사예술장르의 왕으로 군림해왔던 소설문학의 상대적 위상이 점차 축소되는 일은 불가피한 일입니다 (그리고 이것 자체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을 일).    

 문제는, 한국문학의 상업적 부진에는 그런 남들도 다 겪고있는 불가피한 난점과는 구분되는 뭔가 독특한 면이 있다는 겁니다 (전 아마 그럴거라고 봅니다).

 이건 몇 가지 순문학 판매 관련 통계치를 뽑아보면 분명하게 드러날텐데요, 예를 들어 국내 출판시장의 연간 소설분야 총매출액 중 국산소설의 매출액이 차지하는 비중의 추세를 생각해 볼 수 있죠.  최근 5년간, 혹은 10년 내지 20년 정도의 기간을 잡아 이 통계치의 장기추세를 살펴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거라 보세요? 물론 확실한 것이야 직접 자료를 까봐야 알겠지만 사람들에게 한번 걸어보라면 대개는 한국산 소설의 매출액 비중이 완만하게마나 꾸준한 하락세를 탔다는 결과에 걸겁니다 (저도 그렇고요). 부수를 기준으로 해도 비슷한 결과가 나올테고. 

 결국 요지는 뭐냐면 소설문학장르를 읽는데 돈과 시간을 쓸 (잠재적) 소비자들은 제 아무리 대체재가 늘었다고 해도 여전히 만만찮게 존재한며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러할 것이란 겁니다. 소설문학의 상대적 위상 축소는 어디까지나 <장기적 추세>일 뿐이지 이게 하루아침에 소설문학읽는 사람들이 확 줄어든다는 걸 의미하는 게 결코 아니란 거죠. 예컨대 2014년 베스트셀러 종합순위를 보면 10위 안에 드는 서적 중 소설문학장르에 속하는 서적이 무려 6개나 들어있습니다. (링크: 2014년 국내 독자들은 ‘소설’과 ‘미디어셀러’를 선택했다)   

 그런데 그 6개 소설 중에 국내소설은 딱 하나, <정글만리 1권> 밖에 없어요. 게다가 그 중에 순위가 가장 낮은 10위. 이건 무슨 말이냐면 국내에서 소설장르를 선호하는 소비자층은 여전히 광범위하게 버티고 있지만 (당연하죠. 소설문학의 전통이 1, 2년에 걸쳐 형성된 것도 아닌데 이게 하루아침에 무너질 리가 없죠), 그저 이 사람들이 한국소설을 기피한고 그 대신 외국산 소설을 찾는다는 겁니다. 특히 눈길을 장르문학으로 돌리면 이 불균형, 다시 말해 한국산 소설의 상업적 부진은 더더욱 두드러질 겁니다. 

 게다가 그나마 유일하게 종합순위 10위안에 이름을 올린 한국소설가가 누군지 확인하면 현실은 더 암울합니다. 조정래에요. 조정래가 언제적 사람입니까? 그 대표작이 태백산맥으로 유명한 작가죠. 이는 한국문학이 <세대교체>에도 실패하고 있음을 말합니다. 2014년 한해 뿐이 아닙니다. 근 5년간 국내소설 가운데 좀 팔린 작가라면 황석영(오래된 정원)이나 김훈, 신경숙 정도 아닌가요?  이 작가들, 다 노장들입니다. 신인이 없어요. 아~ 5만부가 팔렸다는 <투명인간>의 성석제가 있나요?  그런데 성석제도 60년 생이면 노장이라고 봐야죠. 결국 빈약하고 불충분하나마 한국문학이 내고 있는 상업적 성과라는 것도 신인발굴의 결과가 아니라 과거에 이미 축적해뒀던 성과들을 곶감 빼먹듯이 빼먹음으로써 낸 것이란 말입니다.  이러니 현실이 더 암울할 수 밖에.

 바로 이런 이유에서, 한국문학의 상업적 부진에는 뭔가 특별한 것, 한국만의 특수사정이 작용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대체재의 증가에 따른 자연스런 상대적 위상의 축소라는 전세계적 현상만으로는 홈 어드밴티지까지 누리고 있는 한국문학이 외국문학에 턱없이 밀리는 이 부진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3. 진퇴양난론: 상업성이 중요하다지마 창비같은 고급문예지들이 귀여니같은 작가의 소설을 밀어줄 순 없잖은가?

 이건 feed님의 댓글에서 제기된 주장인데, 당연히 귀여니같은 소설을 밀어준 순 없죠. 너무나 당연합니다. 전 창비나 문지가 귀여니 미는 걸 보느니 차라리 한국소설문단/문예지 모두가 폭싹 망하는 결과를 더 선호하겠습니다. 아니, 한국소설 존재 자체가 완전소멸하는 쪽이 차라리 낫다고 봅니다.

 그런데 <시대에 뒤떨어진 고루한 감각 vs 귀여니>, 이런 양극단의 선택지밖에 없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이에 관해선 제가 뭐라 길게 떠들기보단 출판인 한기호의 글을 인용하는 것으로 대신하겠습니다.

 
 
 더구나 작년에 가장 많이 팔린 국내소설은 5만부가 팔린 성석제의 『투명인간』이 유일하다. 작년 최고의 소설로 평가받은 한강의 『소년이 온다』가 3만부였다. 물론 지금은 5만부를 넘겼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독자들은 새로운 감성의 소설을 즐겼다. 얼굴 없는 작가인 정은궐의 『해를 품은 달』을 한 번 읽어보자. 
 
 “왕은 해, 왕비는 달이라 하오. 이것은 백산호를 입에 문 봉황이 적산호를 가슴에 품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소. 백산호는 하얀 달, 적산호는 붉은 해를 뜻하오. 내 마음은 이미 연우낭자를 왕비로 삼았으니 그에 대한 나의 정표로 이 봉잠을 보내는 것이오.” (이게 바로 ‘해로 품은 달’이다.)
 
 “만나서 나누는 정만이 전부라 하더이까? 세자저하께옵서 꿈길로 찾아오시었고, 소녀 또한 꿈길로 가 뵈었으니 그렇게 만나 서로 나누었던 정만 해도 만 리 길은 더 갈 것이옵니다. 그렇기에 세자저하를 믿고 있사옵니다. 소녀가 세자빈이 될 수 없는 것이 하늘의 뜻이라 하더라도, 세자저하의 여인이 되는 것은 그 분의 뜻임을.”(요즘 우리는 꿈결로만 그리워하는 사람이 얼마이던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을 페이스북이나 블로그 글만 읽고 간절히 만남을 기다려본 적은 없었던가?)
 
 “한 발짝을 걸었다. 한 발짝만큼 연우가 멀어졌다. 두 발짝을 걸었다. 두 발짝만큼 연우가 멀어졌다. 훤이 걸으면 걸을수록 연우와 점점 멀어져 갔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다. 고작 얼굴 한 번 보고 싶었을 뿐인데 그조차 이루지 못하고 멀어져 갔다.”(단문으로 그리워하는 감정을 이처럼 애절하게 그리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이 소설은 드라마로 방영되는 바람에 엄청나게 팔려나갔다. 이런 감성을 주류 문단에서 수용할 수는 없었을까? 일본 같으면 새로운 문학상을 만들어서라도 상을 주었을 것이다. 지금 독자는 아날로그 시대를 살지 않는다. 그들은 스마트 기기로 문자 텍스트뿐만 아니라 영상과 음성도 동시에 즐긴다. 그 기기로 일과 놀이를 동시에 진행하기도 한다. 이들은 문체미학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순간적인 감동이나 공감을 즐긴다. 

  - 소설이 처음부터 엘리트 문학은 아니었다. - 
  
  http://blog.naver.com/khhan21/220394640680

 


 정은궐의 저 소설은 저도 읽어보지 못했지만 발췌된 부분만 봐도 저게 귀여니류의 쓰레기소설은 아니란 점은 분명합니다.  창비-문지-문학동네로 상징되는 주류문단의 입맛에는 안 맞을지도 모르지만. 

 장르문학에 속하는 소설들이 따로있고 본격문학/순문학에 속하는 소설들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이 둘은 상호배타적인 개념이 아니라는 것. 적어도 순문학 작품 중 전부는 아니더라도 그 상당수는 장르문학의 소설 가운데 문학성이 유달리 뛰어난 것을 골라내어 순문학에 편입시킨 겁니다. 한국의 경우 SF 쪽의 작품으로 유명한 듀나의 작품들이 그런 케이스에 속한다고 할 수 있죠. 본격문예지에 발표된 단편작들이 여럿 있다고 하니까요. 

 그렇다면 문예지들이 떠맡아야 할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자기네들 입맛에 맞는 스타일의 순문학 신인들을 획일적으로 양산할 것이 아니라 그와는 이질적인 감각을 가진 장르문학작품들 가운데서 감각이 참신하고 문학적으로 그 싹이 보이는 작가들을 발굴해서 완성도를 높이고 다듬어서 키워주는 겁니다. 장르문학과 순문학의 사이에서 매개자 역할을 하는 것도 본격문예지들이 해야 할 일 중 하나란 거죠. 

 이전 글에서도 지적했다시피 사실 소설문학은 애시당초 그 출발점에서부터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의미에서의 근대적 소설문학이 아니라 하위문화의 일종인 장르문학(구운몽, 홍길동전, 전우치전)이었고, 근대소설문학이 출현한 뒤에도 소설문학의 기본토양을 이룬 건 장르문학이었거든요. 한국문학에 비해 여러발 앞서 있는 일본이나 서구가 장르문학분야에서도 넘사벽 수준으로 한국문학을 앞서도 있는 게 전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봅니다. 



 4. 기타 

 하하하님 : 굳이 따지자면 저도 아마 2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만, 하하하님만큼 비관적이진 않습니다. 

 feed님 : " 표절 문제를 뭉게고 간 문예지들의 경우, 신경숙 작품을 상업성과 작품성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어느 정도 잡은 성공 사례로 생각하고 차마 포기 못했던 것이 아닌가하는 싶은데..."

  ==> 저도 동감입니다. 아마 그런 이유에서였겠죠. 그런 생각에서 창비가 맨 처음 대충 뭉게려고 했던 게 결코 잘한 건 아닌데, 심정적으로 이해는 가죠. 
 
 비행소년님 : "근본적인 성찰이나 치열한 분석보다는 시류에 영합하는 처방이랄까."
 
 ==> 이게 박철화 문학평론가의 발언에 관한 말이라면 저도 동감. 너무 안이해요. 사회의 대세에 저항하는 문학의 가치에 철저하지 못해서 이 모든 문제가 생겼다니... 안이한 정신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