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역사발전에 대한 개념을 바로잡기 위해 필요한 현실의 문제점을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역사발전을 어떤것에서 찾아야 할지에 대해 나름의 견해를 밝히고자 한다. 

우선 역사발전은 사람마다 다른 판단기준을 가질수 있는 주관적인 개념일수 있음을 인정한다. 여기서 내가 언급하는 역사발전의 개념은 사실 누구도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현생에서의 업보를 토대로 다음 세대의 지위를 얻게 된다는 윤회설을 믿는 사람들에게 역사의 발전이라는 개념이 필요할까 생각하면 그렇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우선든다. 또는 종말론을 믿는 사람들에게 역사발전이라는 개념또한 쓸데없이 시간만 낭비하는 행위로 비춰질수 있을 것이다. 약간 극단적인 개념을 든 이유는 역사발전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을 늘어놓는다 하여 이를 심각하게 받아 들일 필요는 전혀 없다는 점을 우선 밝히고자 함에 있다. 이렇게 역사발전이 자의적이고 상대적인 개념일수 있음을 우선 인정하고 있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울타리안에서 최대한 객관적인 판단 기준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또한 가지고 있다. 그럼 나름 객관적인 역사발전에 대한 척도에 대해 얘기해보자.

역사발전의 가장 큰 동인은 무지의 대상에 대한 공포.

개인적으로 역사발전을 이뤄내는 가장 큰 동인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무지의 대상에 대한 공포이었다고 생각한다. 기록을 찾지 못했지만 인류 문화의 시원은 요즘 동물과 인간이 생활상에서 뚜렷하게 차이나게 되던 무렵부터 시작했을거라 짐작이 되고 그 분화는 무지에 대한 공포이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해본다. 동물들은 모두 생명 보존의 본능을 가지고 있다. 모든 생명은 당면한 위급한 상황에 처해 있을때 모든 힘을 짜내어 살아남아 종족을 보존하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고 경우에 따라서 일상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것을 요즘에도 때때로 목격할수 있다. 동물과 다르지 않던 인간이 동물과 차별되는 시기는 아마도 기억력과 사고능력의 진화에 따라 당면한 위험뿐만 아니라 조금 더 미래에 닥칠수 있는 위험요소에 대한 인지와 그에 따른 공포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시도되기 시작한 시점이었으리라 본다. 

강의 범람이나 태풍, 번개, 화재와 같이 초자연적인 현상과 더불어 맹수들의 공격이나 다른 종족의 침공 또한 원시인들에게 그들의 생명보존본능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요인이었음을 상상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언제 생명을 위협하는 사건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상상은 인간들에게 자연스럽게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고 그러한 이유로 절실하게 대비책을 찾으려는 노력을 기울였으며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 종교를 만들어 내었다고 본다. 아마도 기록에 의하면 인류최초의 집단체제는 제정일치의 사회일것으로 믿어진다. 무지의 대상에 대한 공포심을 가지고 있는 원시인들을 대상으로 그 공포를 절대자에 대한 신앙심으로 극복하는 해결책을 제시할수 있었던 제사장은 공포심의 제어에 대한 보답으로 리더의 위치에 올라 집단을 이끌어간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물론 내가 알고 있기로 이러한 일들은 인류가 글을 가지고 기록으로 남기기 이전에 벌어진 일로 상상의 일이지만 개연성을 따져 볼때 충분히 벌어졌을법한 일로 생각된다.

제정일치 집단체제에서 눈여겨 봐야 할 것은 계급의 분화이다. 사람은 저마다 독특한 성격과 능력을 타고 태어나게 마련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지의 대상이 가져다 주는 공포에 떨기만 하는 부류인가 하면 어떤 누구는 겁이 없이 태어나기도 하고 그런 누군가 는 이익을 챙길수 있는 머리를 지니고 태어나기도 한다. 그렇게 남들의 공포심을 무마시켜주고 통솔할수 있는 능력자는 리더가 되는 길을 밟아 나가기도 한다. 그렇게 성장한 리더 또는 부족장, 제사장 들 사이에서도 상대적인 경쟁력이 유별나게 뛰어난 이들이 나오게 마련이니 이들이 주변 부족들을 통합해서 통합된 사회집단의 강력한 수장이 되게 된다. 

고대 사회에서 제사장의 입지는 무지한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해 인간들이 가지는 공포를 제어할수 있는 능력에 따라 강력해지기도 하고 약화되기도 한다. 또한 주변 부족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해줄수 있는 무력의 보유 또한 공포심을 누그러뜨리는데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신정일치이면서 강력한 무력을 보유햇던 이집트의 파라오는 신성시되는 절대권력으로 모든 국민을 소유물로 할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게 되었고 이에 공포감에서 해방된 이집트 인들은 다른 지역보다 삶의 여유를 즐길수 있는 환경을 바탕으로 빛나는 고대 문명을 만들어 낼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정리하면 인간의 능력이 당면한 위험인 무지의 대상이 가져오는 공포심의 극복에 최우선적으로 이용되었을때 그 공포심을 제어할수 있었던 능력자가 홀로 깨어있었고 홀로 권력을 독차지하여 신격화된 왕의 자리에 있었던 반면 나머지 대다수 인간들은 지배자가 보여주는 비전에 의거하여 노예의 생활을 하고 있던 시기가 고대 왕정이었다 할 수 있다.  이시기의 권력의 소유량을 그림으로 치면 유일자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되고 나머지는 모두 똑같은 ㅗ자 모양이 된다고 할수 있다.

높은 곳에서 보다 낮은 곳으로의 권력의 흐름

한동안 절대왕권의 시기를 지난후 지식의 발전으로 초자연적인 현상과 침공에 대한 공포심이 사라지고 나면서부터 인간에게는 새로운 종류에 대한 공포심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으니 바로 자신들이 노력해서 쌓아 놓은 재산상실에 대한 공포심이 바로 그것이다. 인간사회가 보다 복잡해지면서 다양한 계층과 사회적 관계가 생겨나게되었다. 너무 다양해져서 기존 왕과 귀족들이 챙기기 힘들었던 분야에서의 다양한 계층간의 교류 활성화로 인해 개인 재산의 축적이 가능하게 되었고 이러한 재산의 축적은 종족보존본능에서 오는 압박감을 느슨하게 풀어주는데  아주 유용했다. 원초적인 공포심을 극복한 인간이 그 다음으로 인지하게 된 것은 내 자손이 대대로 번성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었다. 대대손손 종족보존시킬 확률을 높이기기 위해서는 물질의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걸 보다 많은 사람들이 깨닫게 된 것이었다. 그러한 두려움이 동인이 되어 남들보다 앞서 깨인 일련의 무리들은 이제 재산을 갖기 위해 온갖 노력을 경주하게 되고 이들의 가장 큰 바램은 재산을 빼앗기지 않고 불릴수 있는 안전한 체제를 강구하게 되었다. 절대왕정은 왕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모든 국가자원을 동원할수 있는 위치를 원했고 국가에 강요했으니 이는 새롭게 등장한 선각자들로 하여금 재산상실에 대한 공포를 품지 않을 수없도록 만들었고 대책 또한 강구하게 만들었다.

민주주의에 이르게 되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과거 왕과 봉건귀족이 밟았던 깨달음의 길을 걷게 된다. 다시 말해서 과거로 올라갈수록 자원분배에 대해 관여하는 사람의 수가 적어지고 현대로 올수록 이해관계에 대한 참여자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되는 경향성을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모두 인간의 생명보존의 본능 더 나아가 보다 위험이 적은 종족보존의 본능이 그 욕망의 근원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 왕과 귀족 그다음 부르조아 순으로 종족보존본능과 관련 확률을 높일수 있는 방법에 대한 깨달음이라는 역사적 순서는 이제 모든 국민들에게 까지 다다르고 있으며 그러한 정신의 반영이 민주주의 체제 인것이다. 

민주주의 체제는 고도화된 사회체제이다. 생각해 보자. 과거 유일한 권력자만 존재하고 다른 인간들은 지배자의 지시에 따라 행동하는 시기에서는 절대자가 마음먹은 대로 쉽게 결정할 수 있었고 결정에 필요한 정치력은 극히 낮은 수준이면 충분했었다. 이후 현대로 오면서 국가의 정책이나 자원분배관련한 결정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이들간에 생기는 갈등을 해소해야 하는 정치력 또한 증가하게 마련이다. 민주주의에 이르러 일반 대중의 이해까지 고려해야 하는 시점에 이르면 민주주의를 정상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정치력은 다른 어떤 체제보다도 높은 수준을 요구할수 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하게 될것이다.

역사를 볼때 뚜렷하게 감지되는 몇가지 흐름을 찾아 낼수 있는데 위에 언급한 국가정책에 관련해서 챙겨야 할 사람의 수가 점진적으로 늘어난 다는 점이 그중 한가지이다. 간헐적으로 이러한 흐름이 뒤집히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지만 전체적인 흐름에서 보면 이는 명백한 사실로 역사의 발전방향의 한가지 척도로 삼을 만하다. 이러한 관점에 동의한다면 오늘보다 다가오는 내일에서는 보다 많은 사람들의 이해를 챙겨야 한다는 당위성을 확인하게 된다. 오늘날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조선시대의 깨어있음은 왕과 사대부에 국한되었다. 이후 광복을 거쳐 민주주의가 주입된 한국은 체제 당위성만으로 보면 모든 국가구성원의 이해관계를 골고루 챙기도록 시스템을 갖춰나가야함을 알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일부 계층만 혜택을 받고 나머지가 피해를 받게 되면 이전 세대인 조선의 상황으로 복귀하게 되는 것으로 역사의 퇴보라 할수 있을 것이다. 

현실을 보면 경상도만 고위공직에 뽑히고 경상도에만 예산을 배분하고 경상도에 속하지 않는 타지역을 배척하는 동향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역사의 반동으로 기록되어야 할 것이다. 경상도출신으로 대통령을 독식하고 경상도 기반 대기업에만 현금이 가득하며 배타적인 경상도가 잘나가는 오늘보다 모두가 잘사는 내일로의 행진이 참된 역사의 발전 방향이다. 한국은 지금 역사의 퇴행과 발전중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그 갈림길에 서 있다. 역사의 발전 방향이 어디로 향하는지 많은 이들의 자각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