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이글은 현실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그러한 문제점을 만들어 내는 근원을 밝히며 얻어진 현상인식을 바탕으로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여진 것이다. 과거 모든 참된 인물들이 공통적으로 간절하게 찾아해메던 역사 발전의 참된 ( 정말 그러한 것이 있다면) 방향으로의 여정에 쏟았던 노력에 대한 찬양 또한 들어있음을 미리 밝힌다.


현상 파악

내가 파악하는 현실에 대한 문제점은 무엇인가? 우선 한국이 선택하고 지향하고 있는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한국이란 나라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부족하다 못해 무지하다는 점이다. 대중들의 무지속에 오히려 악용하려는 사람들이 기득권을 가지면서 한국이란 나라의 정체성을 심하게 훼손하고 있는 것이 내가 파악하는 가장 심각한 문제점이다. 대중들의 무지와 이를 악용하려는 사람들이 주도적으로 만들어가는 사회상에 대해서는 20세기초 나치의 파울 요제프 괴벨스가 괴뚤어보았던 괴롭지만 부정하기 힘든 인간 성격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다음은 위의 문제제기와 관련해서 연관되는 괴벨스가 했다고 전해지는 어록들을 발췌한 것이다.

1. 대중은 여자와 같아 자신을 정복하고 지배해줄 강력한 지도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2. 언론은 정부의 손안에 있는 피아노가 되어야 한다.
3. 선전가는 국민의 흔들리는 영혼을 이해하는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
4. 피에 굶주리고 복수에 목마른 적에 맞서려면 무엇보다 한없는 증오를 활용해야 한다.
5.대중에게는 생각이란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이 말하는 생각이란 것은 모두 다른 사람이 한 말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다.
6. 모든 선전과 전쟁 앞에서 사람들은 세 부류로 나뉜다. 협력자와 반역자,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대중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대중을 협력자로 만드는 것이 선전의 기술이다.

위에 언급한 내용들은 국민들은 무지하기 때문에 지도자의 생각과 의도를 주입하면 그냥 따라하는 노예와 다를 바 없다는 괴벨스의 인간파악에 해당할 텐데 불행하게도 21세기 한국의 현실이 바로 괴벨스가 보았던 시대상황과 딱맞아 떨어진다는 생각을 떨칠수 없게 만들고 있다.


선동하는 기득권층과 선동당하는 국민

현재 여당이던 야당이던 모든 이들의 이해관계의 가장 핵심은 공천권을 포함한 정치권력이다. 이걸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만일 부정하는 이가 있다면 세상물정을 모르는 바보이거나 남과 자신까지 속일수 있는 사이코 정신병자 둘중에 하나이다. 부연하자면 공천권이 목적일리는 없다. 사실 공천권을 얻으려 하는 목적의 근본 바탕에는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에 당선되기만 하면 국가 세금을 대상으로 한몫단단히 벌수 있다는 한탕주의가 도사려 있다. 정당같은 정치결사대의 목적은 정권창출이고 정권창출의 목적은 자신들의 사익을 충족시킬수 있는 예산과 인사의 결정권 획득에 있기 때문이다. 예산과 인사를 자신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는 그 권리를 가지고 있는 측에 엄청난 혜택을 가져다 준다. 불확실한 미래보다는 풍족하고 안락한 미래를 선호하는 것은 생명보존본능에 가까운 것으로 특히 그것을 잃어버릴수 있다는 공포감이 강한 집단 일 수록 권력의 유지에 더욱 필사적으로 집착하게 된다. 이는 과거 일제에 협력하므로써 민족을 배신하고 부당한 이익을 독차지했던 그리고 아직고 그 기득권의 혜택을 충실히 보고 있는 매국친일주의자들이나 후손들이 가지고 있는 공포감을 상상해 보면 알수 있다.

한국의 현 기득권인 과거 50년간 정권을 창출해 낸 경상도 정권의 정권상실의 공포감 또한 친일파의 공포감과 다르지 않다. 친일파와 경상도 정권의 공통점을 보면 알수 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다른 국가구성원의 피해를 기반으로 자신들의 부당한 이익을 챙겨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독립운동을 억압하고 일제의 식민통치를 옹호하는 과정에서 얻은 반대급부로 돈과 명예를 얻은 친일파와 마찬가지로 투데타를 통한 정권뒤집기로 필연적으로 정당한 권력에 엄청난 피해를 주었으며, 정권 정당성에 대한 의심을 죄없는 이들에 대한 억압과 살인과 같은 폭력행사를 통해 공포 정치로 억눌렀고, 개발 독재를 통해 과반이 넘는 사람들에게 불이익을 강요시킨 반면 기득권에게 엄청난 이익과 혜택을 보장했다는 점에서 과거 50년간 경상도 정권이 유발한 남에게는 피해를 본인들에게는 이익이라는 역사상 한국이라는 대상에 저지른 역사적 오류를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경상도 정권이 부당하게 취득한 이익을 언제고 빼앗길 수 있다는 공포감은 경상도인들로 하여금 정권에 대한 집착도를 더욱 심화 시키고 있다. 과거 김대중정권과 노무현정권 기간을 잃어버린 10년이라 부르면서 집권하고 나서는 노무현 흔적을 말살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것은 과거 경상도에게 배타적으로 유리했던 부당한 이익을 보장하기 위한 시스템을 새롭게 갖추려 했던 것으로 봐야 한다. 그이후 다시는 잃어버린 기간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이는 경상도 정권이 부당하게 배타적으로 이익을 소유하는 구조를 정상으로 간주하고 있고 필연적으로 비경상도가 피해를 볼수 밖에 없는 현재의 구도를 변화시킬 의지가 없는 집단임을 명백하게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배타적인 경상도 정권이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취한 전략은 바로 경제권력과의 공생관계를 돈독히 유지하는 것이다. 선거에서 이기려면 기본적으로 돈이 필요할 수 밖에 없다. 이때 절대적으로 부족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 돈을 외부로부터 끌어와야 하는데 한국에서 돈이 풍족한 곳은 한군데 바로 대기업집단으로 이들은 풍부한 현금보유고를 자랑하고 있다. 사실 이들 한국의 대기업집단은 대부분 박정희때 개발독재의 일환으로 전략적으로 키워진 집단으로 뿌리는 경상도에 있다. 이들은 배타적인 경상도 정권의 일방적인 혜택속에 커왔기 때문에 정치권력에 상당히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고 이는 삼성의 떡값검사 관리 사건에서도 그 일부 맥락을 확인 할 수 있다. 이들 대기업 또한 정권의 혜택으로 경제발전에 걸맞지 않는 저임금의 혜택을 받아 왔다는 점에서 남의 피해를 기반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취해왔다는 배타성을 경상도 정권과 공유한다. 이러한 일련의 사실을 통해 경상도 집단의 배타성을 잘 엿볼수 있다.

이렇게 타지역에 배타적이고 압도적인 경상도의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의 밀접한 관계는 그 자체로 한국의 민주정치를 좀먹는 해악이 되고 있다. 이익집단으로 부터 선거에 이길수 있는 금전을 제공받고 이에 대한 댓가로 이익집단의 이익을 챙겨주는 공생관계는 사실 한국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공통적으로 목격된다. 이 배타적이고 수혜적 관계가 깊어지고 끈적해질수록 이른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한편은 편하게 다른쪽은 불리하게 경선에 임할수 밖에 없게 되어 그 결과로 대중들의 의사가 반영될 여지는 점점 줄어들게 된다.

이렇듯 기득권을 차지하고 유지하기 위한 목표만이 유일한 지상목표로 남아 다른 모든 가치를 억누르게 되면서 한국 민주주의는 그 근본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 이나라의 정치인들에게는 오로지 정책과 운영을 결정지을 수 있는 권한을 잡고 공익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챙기기를 챙겨도 무방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들이 선거때마다 국민에게 표를 갈구하면서도 당선이 되고 나서는 입을 씻을 수 있는 여유는 국민들이 기본적으로 무지하고 자발적인 노예를 자처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이 서로 어울리게 되면 그 사회는 나치의 파울 요제프 괴벨스가 파악했던 전체주의로 나아가게 된다. 경상도 정권이 타지역에 배타적인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명백한 사실이다. 적어도 경상도를 제외한 타지역사람에게는 분명하게 보이는 사실인 것이다. 하지만 경상도인들에게 이러한 사실은 별로 양심의 가책을 주지 못하고 있음이 바로 지속적으로 경상도 새누리당에게 표를 주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치역차별적인 정당이 분명한 새누리당과 그들이 창출한 정권이 무능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지속적으로 표를 주고 있는 경상도인들을 바라볼때 위에서 언급한 괴벨스가 바라보는 대중에 대한 인식이 떠오르는 것을 쉽게 떨칠수 없게 만든다.

경상도 정치권력, 경상도 경제권력 그리고 정치권력에 일관된 지지를 보여주는 경상도 대중들은 삼위일체가 되어 경상도왕국을 건설하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부인할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본다. 한국은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고 민주주의의 기본 정신인 자유 평등은 양보할수 없는 가치로 인정받고 있다. 전자는 부인하기 어려운 현실이고 후자는 이제 책에서나 찾아보게 되는 이상이 되어가고 있다. 적어도 현재의 진행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진다면 현실과 이상은 점점 극복할수 없는 간격으로 벌어지게 될 것이다. 나는 이러한 현상을 나라의 정체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문제점으로 커질 것으로 진단한다. 여기서 한국인들에게 선택권이 주어져있다. 경상도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을 인정하고 국가체제를 전체주의로 할것인가가 한가지 방안이고 다른 방안은 민주주의의 이상이 현실로 반영되게 운동장의 기울기를 되돌려 놓을 것인가 이다. 적어도 한번쯤은 집고 넘어가야 하지 않겟나? 국가 구성원 모두 안녕을 보장받을수 있는 미래를 꿈꿀 자유는 아직 남아있으니 말이다.

지금까지 현실에서 파악한 가장 큰 문제점에 대해 살펴보았다. 다음 글은 왜 이러한 현상이 벌어졌는지 역사발전단계라는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