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

 안녕하세요, 아크로 자주는 아니지만 꾸준히 눈팅중인 회원 얼짱명키입니다.

 빈도로 따지자면

 1. 볼만한 가치 있는 글이 올라올 때보다는 훨씬 자주,
 2. 새 글이 올라올 때보다는 약간 덜 자주, 드문드문하게 눈팅중입니다.('설치는' 몇분 빼고는 다들 비슷하실 거 같죠?)


 

 아크로에 가입해서 눈팅과 댓글만 반년정도 남긴 거 같은데 지금 아크로의 모습을 보면서 드시는 생각들은 비슷하실 거 같아요.

 차별화되는 척, 온건한 듯 확실한 방향성을 모색하는 척, 규모'만' 키우고 난 뒤에 곧바로 특정 도배수준 작성자들이 여론을 독점하고,

 자기들끼리 온건, 급진, 우파, 좌파로 나눠서 역할극 하면서 다시 하향평준화된 갑론을박의 장으로 몰아가는 모습도 보이고...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여론의 수렴을 막는 무언가가 있는 듯한 느낌도 들기도 하고요.


 

 그래서 한번 저같은 신참내기가 끼어들어도 실례가 되지 않는 선의 글쓰기가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글 한번 써보려고 합니다.

 지금 아크로의 모습을 보면서 느낄 수 있는 직관적인 기분에 따른 글입니다.

 "재상국 조선의 (흥은 없는) 일관적인 똥망성쇠 과정은 지금의 아크로의 모습인가?"


 


 

[본론 1] 드라마 <정도전>이 사실만 나열해서 왜곡한 진실 : 조선의 건국 - 과연 '조선' 인가? '조선'이란 이름을 선점한 신료내각제 국가인가? (드라마 vs 드라마 밖의 현실)


 

1. 드라마 : 민본정치를 꿈꿨지만 실현하지 못한 영웅 정도전

드라마 <정도전>에서는 이미 잘 알려진 조선의 건국 과정에 이성계와 정도전의 우정을 부각시키면서 드라마를 부각시키고,

마지막 '주인공' 정도전(조재현 역)이 최후를 맞이하는 과정은 유튜브 등 인터넷 공간에서 따로 잘라서 배부하기 딱 좋은 형태로 다시 한번 나레이션을 통해 그를 부각시킵니다. 물론 이에 대비해 이방원(안재모 역)을 '고려 최후의 충신 정몽주를 이용해 조선 개국 공신 정도전을 물타기하며 그를 비웃는 악의 화신'으로 부각시킵니다.
 

삼봉 정도전이 죽기 직전에 저승길에서 같은 경상도 출신 포은 정몽주와 만나 그에게 "이보게 포은, 난 정말이지 최선을 다했네."라고 피묻은 입으로 중얼거리는 마지막은 그 드라마만 보며 역사에 장면을 이입하는 대중들에게 "정도전 = 정말 큰 꿈을 꾸었지만 이루지 못한 개혁가"라고 부각될 듯한 인상깊은 '한국적 마무리'였지요.

하지만 질문해 봅시다. 이게 정말 그의 '결말'의 전부일까요?


 

2. 드라마 밖의 진실 : 성리학을 기반으로 한 신료내각제 국가 조선과, 실질적 패권주의자 정도전.

현대의 '정치'란 관점에서 냉정히 봤을 때, 정도전의 소위 '민본' 사상은 실질적인 정치체계와는 관련없는 사상적인 논의 체계였을 뿐입니다.

도올 김용옥 선생이 자신의 특강에서 정도전이 중국 문헌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이러이러한 문장을 앞에 놓고, 어느 문장을 더 뒤에 놨으니 이는 하늘보다 국민을 위로 하는 사상적 배경을 보여주는 것이었으며, 수백년을 앞서가는 혁신적인 것이었다.'라고 얘기하지만, 그것이 직접적으로 계급구조를 타파하거나, 그 경계를 좁히는 과정으로 이어지는 조치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가 '민본'을 얘기하면서 도입한 중국의 '성리학'이야말로, 

1) 기존의 학문사조보다 더 중국의 것에 기반하여 받아들이는 사대의 느낌이 강하였으며, 

2) 군신관계와 조선식 유교기반 사농공상의 차별구도를 설계하는 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기에
 

실질적으로 조선왕조의 설계와 그 이후의 조선왕조의 사대적, 사변적 흐름에 더 큰 영향을 미친 기초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도전이 만들고자 했던 통치체계는 '민본'이라는 추상적인 관념을 떠나 실질적인 정치체계로 보았을 때, '재상중심의 통치체계'라는 것이 학계의 다수설이며, 실제 역사에서도 이로 인해 굳이 이방원이 아니더라도 이성계를 포함한 왕족들과 의견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정도전이 지역과 정파, 신하로서의 이해관계를 초월한 중립적인 개국공신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이유는, 이러한 재상중심의 통치체계는 결국 요즘 정치권에서 보수 및 수구정치인들을 주체로 이야기되는 '내각제 개헌' 이야기, 혹은 더 적극적으로 보면 노무현 대통령이 박근혜 등 당시 한나라당 야당 세력들에게 제안했던 '대연정' 제안과도 떼어놓고 해석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아크로에 꾸준히 글을 올리고 저를 굳이 얼짱'멍'키라고 지칭하시며 징계요구글을 올렸던,(그리고 자기 스스로도 징계요청을 많이 받았던) 아크로 내 활발한 <흐르는강물> 유저의 언급을 인용하면 '경상도인들은 조선에서 여론을 주도하긴 했지만 조선에 구걸하지 않았다.'라고 했는데, 결국 <흐르는강물> 유저도 당시 경상도에도 지금의 사회구조와 비슷한 여론 '주도'(라고 쓰고 독점과 압박이라고 읽는) 과정이 있었다는 것을 잠재적으로 인정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한 가지 더, 정도전이 왕위계승 과정에서 이방원의 견제차원을 넘어서서 왕위를 이어받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였던 이성계의 막내아들을 후계자로 지지하는 쪽에 섰었다는 점은 정도전의 '재상정치'가 어디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가 이해하는 일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본론 2]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과 <징비록>이 사실만 나열해서 왜곡한 진실 : '피로 쓴 교훈' - 과연 '교훈' 인가? 아니면 '교훈'이란 이름을 선점한 또다른 공과 왜곡인가? (드라마 vs 드라마 밖의 현실)

1. 드라마 : 무능한 임금 선조, 구국의 영웅 이순신, 그리고 그의 뒤에 늘 함께했던 친구 '숨은' 구국의 영웅 류성룡.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은 구국의 영웅 이순신의 '인간적 면모'를 부각시킨 김명민의 연기가 화제가 된 작품이었으며,
 1) 이순신, 원균, 류성룡의 우정과
 2) 최고 권력자 선조가 생존하기 위해서 이순신을 내치고 공격하는 과정,
 3) 그리고 이에 맞춰 이루어지는 동인과 서인의 정쟁을 부각시켰던 상품입니다.

 이에 대한 후속작품의 성격으로 최근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징비록>에서는
 1) 그 구국의 영웅 이순신 뒤에 있었던 류성룡의 면모를 부각시키고,
 2) 그의 기록에 초점을 맞추어 무능하고 갈팡질팡하는 선조의 모습을 <불멸의 이순신> 때보다 더 부각시키고 묘사하여 SNS 상에서 가장 많은 가십거리를 만들어내며 선조의 '무능한 임금' 이미지를 확정하는 마침표를 찍는 느낌을 줍니다.
 

'피로 쓴 교훈 '이라는 부제를 붙인 드라마 <징비록> 과연 진실은 어떨까요?

 

2. 드라마 밖의 진실 : 무능을 가장한 이기적 재상들의 희생자 선조, 구국에 '동원된' 이순신, 그리고 그의 위에서 후세의 평가를 준비하던 이순신의 명줄 담당가 류성룡.


 임진왜란의 발발 과정에서는 외교적으로 동인의 책임 또한 적지 않았습니다.
 

 건국 이래 200여년의 (발전없는) '태평성대'를 누린 조선에서 양반계층은 성리학을 기반으로 한 사림계통 기반으로 권력 교체가 이루어지고, 다시 여기서 붕당 형성과 붕당 형태의 정쟁이 본격화되면서 이미 안으로 곪아들어가기 시작한 상황이었고, 이런 상황은 일본의 '정명가도'(명나라를 칠 수 있게 길을 빌려달라는) 요청을 받고 여기에 대응하는 방식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서인과 동인 측에서 각기 한명의 사신을 내보냈고, 여기서 동인 김성일이 일본의 최고권력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외모를 인신공격으로 비하하면서 '그는 임진왜란을 일으킬 그릇이 못 된다.'라고 당리당락에 맞춰서 '허위에 가까운' 보고를 한 것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이 부분을 류성룡이 김성일을 꾸짖는 장면을 덧붙이고, 류성룡이 유사시에 대비하여 명나라에 주도적으로 이 상황을 보고하는 서면을 제출하게 하는 장면을 집어넣음으로서 의도적으로 그의 책임을 축소하려고 하지만, 당파의 과실에서 그 당파의 수장이었던 류성룡만 분리하려는 드라마 각본에는 분명한 왜곡의 의도가 보입니다.


 무엇보다, 임진왜란에 앞서 서인 율곡 이이가 '십만양병설'이라는 주장으로 유사시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 당쟁의 성격으로 류성룡은 이에 반대했었죠. (율곡 이이가 '몇년 뒤에 임진왜란이 일어날 것이다.'라는 예언성 유언을 남겼다느니, '그 때 이러이러한 조치를 하라.'는 선견지명을 발휘했다느니 하는 얘기는 후대에 덧붙여지고 과장된 느낌이 있기는 하지만, 분명 율곡 이이가 당시 유명무실해져가던 조선의 징병제도와 그 징병제도가 가져다 줄 치명적인 재앙을 예상하고 이를 개선할 것을 주창했던 것 또한 사실입니다.)


 왕권이 뒤로 물러나고 (앞에서 정도전이 주창했던 대로) 재상중심의 붕당정치가 장악한 이러한 상황 속에서 선조가 취할 수 있었던 조치는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요즘 말로 하자면 '내각제'를 취하기 위해서 필요한 군사적 안정성과 정치적 성숙도, 국민의 참여 등 제반조건들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먼저 주장했던 내각제는 조선 내에서 이미 '여론 상의 기득권'으로 자리하고 있던 영남 지방의 우위를 더 공고히 하는 성격이 강한 종류의 것이었을 뿐, 그 내각제가 어떤 효율성이나 정당성을 가지기는 어려웠던 셈이죠.

 

  이런 사실관계와 지금도 보편적인 국민 인식 속에 확고한 영남패권성향에 비추어 봤을 때 류성룡의 <징비록>은 이미 예견되었던 자신의 과실에 대해 면책과 역사평가를 왜곡하기 위해서 준비한 자신 위주의 사실관계 정리였다고 보는 게 정확합니다.

 P.S. 이순신과 류성룡은 친구관계가 아니라, 같은 건천동 출생일 뿐이며 나이도 둘이 다릅니다. 더군다나 이순신을 실질적으로 발탁한 건 최종건의권이 있어서 숟가락만 올린 류성룡보다는, 처음 이순신을 발견하고 추천했던 청주 정씨 정탁 대감의 공이 더 크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실질적으로 이순신이 감옥에서 풀리자마자 류성룡을 찾아간 것은 우정의 맥락보다는 정치적 '예속' 관계에 묶여있던 약자적 위치 이순신의 비애라고 보는 게 더 적절하고요.

 


 

[본론 3] 영화 <광해>와 <역린>, 드라마 <이산> 등을 통해 꾸준히 부각되고 트위터로 확산되는 노론 망국론의 실체는? (드라마 vs 드라마 밖의 현실)

1. 드라마 : 융통성 없는 사대사상에 찌들었던 노론, 국민을 위하는 입장에서 실용적인 개혁에 치중했던 남인 + 트위터로 덧붙여지는 친일파 노론독점설.


 

 

2. 드라마 밖의 진실 : 오로지 '노론'으로서만 집권할 수 있었던 흉노패권국가 조선, 자신들이 야기한 모순 속에서만 빛을 발하는 '결자해지'(자기가 저지른 일은 자신이 해결하라는 의미의 사자성어)의 집권을 '개혁'으로 포장하는 역사왜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