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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끌로드 드뷔시의 음악은 어느 것이나 점묘법 화가의 풍경화처럼 뚜렷한 모습을 드러
내지 않고 언제나 귓가에서 가물거린다. 다분히 몽환적이란 말이 어울리는데 드뷔시
연주의 대가인 파스칼 로제(Pascal Roze.1951~)는 드뷔시 음악은 청중이 쉽게 간파
못하는 이면의 동기를 감추고 있다고 말한 적도 있다. 연주도 그만큼 까다로운 건
당연하다. 드뷔시의 중요한 작품 중 하나인 바이올린 소나타를 이것저것 찾아 들어
보는데 마음에 드는 연주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러던 중 마침내 기대에 맞는
연주를 찾았는데 그게 정경화 연주였다. 점묘화가 그렇듯 음 한 조각만 비틀려도 전
체가 어색해진다. 참으로 섬세하고 정확하고 앙칼진-긍정적 의미로-프레이징으로 끌
고 가는데 두 악기의 다툼이 상쾌감을 자아낸다. 아주 오래 전 일이지만 스트라빈스
키가 스스로 걸작이라고 뽐내는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정경화 연주로 듣고 몹시
감탄했던 일이 떠올랐다. 감성적으로 백치상태지만 재즈와 집시음악의 활달한 리듬
이 결합된 이 다이나믹한 협주곡을 정경화는 마치 늘 부르는 콧노래처럼 능숙하게
연주했다. 1973년 녹음으로 그는 이제 겨우 이십대 중반 나이인데 그 배짱과 돌파력
이 놀랍기만 했다. 지금도 이 곡의 무수한 연주들이 있지만 그의 연주가 가장 좋다
고 생각하고 있다.
 

 드뷔시 곡을 계기로 정경화 연주를 다시 들어본다. 그에 관해 대강은 알고 있다고 생
각했으나 큰 착각이었다는 걸 이번에 새삼 깨달았다. 초기를 제외하고 그는 한국 무대
에도 자주 선 걸로 아는데 불행히도 나는 한 차례도 객석에서 그의 연주를 실연으로
듣지 못했다. 아마 그가 한창 뻗어오르던 시기는 내가 십여년 엄혹한 궁핍의 시기를
보낸 시간과 겹칠 것이다. 정장을 갗추고 음악회에 입장하는 것은 꿈도 못 꾸던 시절
이다. 그러나 마음은 그 연주회에 가 있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평가되는 브르흐
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비롯, 다수의 그의 음반을 일찍부터 구입해 들어온 것이 그 증
거이다. 그런데 음반과 실황에는 이해의 폭과 깊이에서 확실히 적잖은 차이가 있다. 
좋은 시절이 되어 연주실황을 방에 앉아 감상할 수 없었다면 나는 정경화가 클라우스
텐슈테트(1926~1998)가 지휘하는 로열콘서트허바우와 협연한 <베토벤 바이올린협주곡>연
주의 그 압도하는 분위기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준비된 가공미를 극도로 싫어한다는
텐쉬테트와 습관적 연주를 혐오하는 독주자, 두 사람의 즉흥적 순발력이 맞아떨어져
아주 흥미롭고 순도높은 베토벤이 연출되었는데 청중 반응도 그만큼 뜨거웠다. 청중들이
바라는 것도 자발성이 강한 이런 연주일 것이다. 괴짜로 알려진 텐쉬테트가 독주자 손등
에 입을 맟추는 순간, 이 연주회는 기념비적 연주회로 완성되었다.  

그가 정상급 악단과 연출해낸 협주곡 무대는 열거하기 어려울만큼 많다. 1983년 리카르도
샤이(Riccardo Chailly.1953~) 지휘의 베르린 방송교향악단과 협연한 드볼작 협주곡 연주
도 넘치는 활력, 빈틈이 전혀 없는 완벽무대라는 점에서 인상에 남는다. 어느 정도 관록
이 쌓인만큼 그의 동작도 부드러워지고 그는 아기자기한 3악장 악구를 스스로 즐기는 여
유마저 보인다. 그는 협주곡에 강하다. 차이코프스키건 브르흐건 바르토크건 언제나 그는
완벽무대를 연출해낸다. 협주곡에 강하다는 것은 그가 큰 무대에 강하다는 것이고 오케
스트라와의 일치감을 위해 자기 모든 열정을 거기 바친다는 것이다. 그가 무대에서 활
을 잡고 얼마나 맹렬한 기세로 돌진하는지 그 모습을 보노라면 손에 땀이 난다. 그는 팔
과 손으로만 연주하지 않고 온 몸으로 연주한다. 오직 정확하고 간결한 한줄기 소리를 만
들어내기 위해 그가 쏟아내는 열정 앞에 잠시 숙연해진다.
 오래 전 읽은 기억이라 명확하진 않으나 그가 유학 초기에 자신은 서양 경쟁자들에 비
해 손이 작고 팔도 짧아 도저히 경쟁이 될 것 같지 않아 숙소에서 혼자 울었다는 기록
만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그 글을 읽었을 때 몹시 애처로운 기분에 젖었다.
그는 동양인의 그 작은 손과 팔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그토록 온 몸의 힘을 쏟아 연
주하는 습관을 기른 것인가.지금 정상에 선 그를 보며 이런 생각이 터무니 없다고는 여
겨지지 않는다.
 
 드뷔시와 스트라빈스키 사례에서 보듯 정경화는 고전과 낭만 뿐 아니라 바르톡, 베르
크, 라벨 등 현대음악에도 강한 면을 보인다. 라벨의  <피아노소나타 No.2>에서 조용한
정경의 한 순간을 정갈하게 그려내는 솜씨는 그가 세밀화에 능하다는 걸 보여준다. 그
는 1995년 현대작곡가 피에르 불레즈(Pierre Boulez.1925~)의 70회 탄생 기념 음악제
에도 바렌보임, 폴리니 등과 함께 초빙되어 <바르톡 바이올린 협주곡 2번>연주로 갈채
를 받은 바도 있다. 그만큼 현대음악 해석자로 인정을 받고 있는 셈이다.
<Return to London>,정경화 연주를 듣다가 우연히 만난 연주의 명칭이다. 그는 런던 페
스티벌 홀의, 무대가 아닌 객석 통로 복판에 서서, 당연히 청중 없는 빈 공간에서 바흐
의 <샤꼰>을 15분 동안 열연했다.자신이 절정기를 보내던 주무대일 것이다. 몇 해만의
귀환인지 모르지만 이 연주가 들려주는 얘기가 많다는 걸 느꼈다. 15분간 이 음악을 듣
고나면 마치 곡절많은 삶의 긴 회랑을 거쳐온 것 같은 깊은 감회에 젖게된다. 여왕에게
도 곡절은 있기 마련이다. 그도 스스로 위안과 다짐을 얻기 위해 이 장면을 연출했을 것
이다. 그는 바흐 음악을 가장 높이 평가한다고 말한다. 나는 그가 바흐 연주에 뭔가 미
진하다고 느꼈는데 이것을 계기로 그가 바흐 음악 연주에도 더욱 열정을 보여주길 기대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