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람의 실제 나이는 전통적인 개념의 숫자에 0.8을 곱해서 계산해야 한다고들 한다. 호적상 연령 50세인 중년에게 이런 계산을 적용할 경우 40세, 청년이라고 불러도 그다지 민망하지 않을 정도의 실제 연령이 된다.

이런 현상이 생긴 것에는 의학기술이 발달하고, 영양 상태가 좋아진 영향이 클 것이다. 요즘 활발하게 활동하시는 어르신들을 보면 나이보다 10살 이상 젊어보이는 경우도 많다. 적어도 내가 어렸을 때부터 경험하면서 고정된 이미지와 요즘 70~80대 노인들의 실제 인상이나 이미지와는 확연히 다르다.

신체적인 상태 말고 사회적 역할이나 위상이란 점에서도 변화가 뚜렷하다. 내가 사회 생활을 시작하던 80년대 중반 무렵만 해도 40대라면 가정에서 자녀 한둘을 둔 가장이요, 직장에서는 실무에서 손을 떼고 업무의 지휘 감독에만 신경을 쓰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요즘은 아직 결혼하지 않은 40대 청년도 많고, 직장에서도 지위와 무관하게 직접 실무를 챙겨야 하는 것으로 들었다.

20대 청년들도 80년대에는 취업이건 아니건 경제생활을 하고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데 별 무리가 없었지만 지금은 이게 쉽지 않다. 엄마 뱃속에서 태어나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서 자기 발로 서는 데 드는 기간이 점점 길어진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만큼 사회를 구성하는 지식의 분량이 많아지고, 사회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능의 수준도 높아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문제는 이것이 세대간의 갈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기성세대의 은퇴가 점점 늦춰지는 반면 젊은이들에 대한 사회적 진입장벽은 점점 높아진다. 이것은 매우 공포스러운 결과로 이어진다. 청년들이 점점 가난해지는 것이다. 최근 업종 전환을 생각한다는 한 사업가는 "청년층 대상의 아이템을 추천받았는데 요즘 구매력 있는 젊은이들이 많지 않은 것 같아서 포기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어느 사회, 어느 시대에나 청년들은 상대적으로 더 가난하고 힘들고 그래서 분노하기 쉽다. 문제는 그 기간이다.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가장 교육열이 높고 또 그만큼 국민 평균의 가방끈(학력)도 긴 것으로 아는데, 이것은 다른 말로 하자면 청년층이 이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는 데 소모되는 에너지와 스트레스, 비용, 기간이 다른 나라에 비해 엄청나게 많고, 높고, 비싸고, 길다는 얘기다.

이것은 사회적으로 매우 심각한 긴장을 낳게 된다. 구조적으로 장년층이나 노년층으로 인한 사회적 긴장보다 청년층의 불만으로 인한 긴장은 훨씬 장기화되고 악성화되기 쉽다. 냉정하지만 매우 명백한 팩트에 근거해서 말하자면 장년층이나 노년층에게 주어진 시간보다 청년층에게 주어진 시간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그 청년들이 평생 비정규직으로 고통스럽게 살아간다 해도 그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일본 영화 <나라야마 부시코>는 일종의 고려장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이 작품만 놓고 보자면 근대 이전 일본 사회가 기성세대에게 매우 냉혹하고 잔인한 시스템이었던 것으로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는 영화와 많이 달랐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일본의 전통적인 가족은 장남에게만 상속권을 인정하고, 차남 이하 자녀들은 그 집안의 피고용인처럼 취급했다.

차남 이하 아들들은 결혼도 쉽지 않았고 장남의 밑에서 머슴처럼 일하거나 집을 떠나 낭인처럼 떠돌다가 비참하게 삶을 마치는 경우가 많았다. 당연히 이들은 사회의 불안요소로 작용했다. 메이지유신도 사회에 정착할 수 없었던 차남들이 대거 가세해 이뤄낸 사회적 격변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문제는 청년층의 불만이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결과만 낳기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메이지유신 같은 경우가 오히려 예외이고 청년층의 불만은 파괴적인 힘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폭동, 민란, 비적 등 대규모의 저항에서 폭행이나 강도 사기 등 개인적인 일탈에 이르기까지.

이것은 우리 사회가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짜내어 시급하게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최우선과제의 하나이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가는 것 같다. 공무원연금 개혁이 엉뚱하게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파문으로 번진 것이 대표적이다. 여러가지 명분을 동원해 변명하지만 본질은 간단하다. 이미 더 많은 것(실은 대부분)을 가진 기성세대가 별로 가진 것이 없는 청년층에게 미래의 부담까지 더 키워서 떠넘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대간 전쟁, 세대간 착취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청년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고용유연성의 강화도 필수적이다. 경력직원을 쉽게 해고할 수 있어야 하고, 과감하게 신입사원을 채용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정년은 연장되고, 한번 채용한 인력은 쉽게 해고하기 어려우니 기업들 입장에서는 신입을 채용하는 위험을 감수하느니 그나마 검증된 인력을 쓰게 된다. 우리나라 고용시장이 점차 경력직 채용 위주로 옮겨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웃기는 건 기성세대보다 청년층, 과거 가치보다 미래가치를 우선해야 할 이른바 진보진영이 정반대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새정치연합, 정의당 등 새누리당보다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색깔이 강한 정치세력들이 정년연장과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상승을 강력하게 추진한다. '정치세력의 성격을 판단하려면 그들이 내건 깃발이 아니라 그들이 실제 추진하는 정책을 봐야 한다'는 레닌의 말을 빌리자면 이들은 그냥 진보의 깃발을 내걸었을 뿐 실제로는 수구세력이라고 봐야 한다.

경제사회적인 위상은 결국 개인적이고 실존적인 삶의 질에도 영향을 끼친다. 복잡한 이론이나 지표 동원할 필요 없이 요즘 유행하는 '결혼불능세대'라는 말이 이러한 현실을 무엇보다 분명하게 웅변해준다. 사회적인 위상이 추락한 요즘 청년들은 결혼조차 하기 힘들다. 또한, 국민연금에서 드러난 세대간 착취가 사실이라면 결혼시장 또는 성(性) 시장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다고 봐야 한다.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노래가 꽤 인기를 끄는 것으로 들었다. 이 노래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이 바로 가사 내용이다. '세월아 비켜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좋은 나인데.' 나이와 무관한 본성인 애정 희구 심리를 잘 표현한 가사인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긍정적 또는 중립적으로 봐주기만은 어려운 심정이 작용한다. 바로 청년층과 기성세대의 그 경제적 사회적 위상의 차이 때문이다.

저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 또는 거기에 감정이입을 하는 사람들은 누구이며 그들이 느끼는 연정의 대상은 누구일까? '사랑에 나이가 있나요' 또는 '그대만이 정말 내 사랑인데 눈물이 나네요' 등의 가사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저 노래의 주체는 나이먹은 기성세대 남성이며, 그 연정의 대상은 그들보다 훨씬 더 젊은 여성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기성세대 남성이 모두 저런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를 수 있을까? 일인가구로 살면서 폐지를 줍다가 고독사할 가능성이 큰 노인들 또는 자식들이 이혼하면서 버리고 간 손자손녀를 힘겹게 키우는 노인들이 저런 노래를 부를 가능성은 정확하게 제로에 수렴한다. 돈푼깨나 만졌거나 연금 덕분에 별 걱정 없이 살아가면서 영양상태도 좋은, 그래서 정력도 젊은이들 못지 않고 어린 여자들에게 베풀어줄 금전적 심리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바로 저 유행가의 주인공들이다.

우리 사회는 변화해야 한다. 변화하려면 먼저 변화의 담론이 바로서야 한다. 가장 절망스러운 부분이 바로 이 담론의 건강성 그리고 이 담론을 만들어내는 지식인들과 진영의 건강성이다. 대안을 만들어내야 할 세력이 가장 대안 모색에 게으르거나 심지어 적대적이라는 사실이다.

변화를 주도할 자들이 주도하지 않으면 그들이 변화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내 경우 과거에는 그런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것을 걱정했지만 요즘은 그런 시간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게 짜증스럽다. 아마 나와 비슷한 심리적 여정을 거친 사람이 적지 않을 것 같다. 4.29재보궐선거의 결과를 이런 관점에서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