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불평등의 기원
 
불평등의 발생을 논의하기 위해 몇가지 가정을 하겠습니다.
 
(1) 어떤나라의 분배구조를 A라고 가정
(2) A는 정의로움(분배구조가 정의롭다는 것은 재산/소득의 획득과정에서 강압, 사기 등의 법적, 도덕적 부조리가 없음을 의미)
(3) A라는 분배구조에서 우연히 전국민의 소득이 균등하게 배분되어 있음(한달에 100원의 소득을 얻는 구조)
 
A의 분배구조에서 마이클잭슨이라는 가수가 인기를 얻었고 공연을 합니다. 입장료는 20원 입니다. 공연에 10만명의 사람이 몰려들었습니다. 잭슨은 이 공연을 통해서 2백만원을 벌고 공연을 본 사람들은 2백만원 가난해졌습니다.(물론 잭슨이 2백만원을 다 벌지는 못합니다. 공연하는데 들어가는 비용, 연주자들에게도 댓가를 줘야하니까요. 그러나 공연을 본 10만명이 2백만원 가난해진것은 확실합니다.) 소득의 불평등이 생겼습니다. 마이클 잭슨은 평균 국민들의 월 소득의 2만배를 벌었습니다. 공연을 본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마이클 잭슨의 공연을 보기 위해 20원을 지불했습니다. 그 결과로 그들은 가난해졌습니다.
 
이러한 과정에 무슨 부조리가 있나요? 우리가 마이클 잭슨을 비난해야 하나요? 입장권을 산 사람들을 비난해야 하나요?  
 
이처럼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맛이 좋은 점심 한끼를 찾는 우리들의 선택이 회사주변 식당 주인과 종업원을 불평등하게 만듭니다. 내가 마음에 들어서 사는 볼펜 한자루, 생수 한병, 휴대폰 하나가 모여서 최종적으로 소비자의 선택을 받은 상품을 만들고 유통시킨 회사의 주주와 종업원은 부자가 되고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한 회사의 관련자들은 가난해집니다. 불평등은 소비자의 자발적 선택의 결과로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2. 불평등은 부정의한 것인가?
 
평등주의자들은 "불평등은 악"이라는 인식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불평등이 부정의한 것인지 논의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위의 분배구조 A는 정의롭다고 가정했습니다. A라는 분배구조가 마이클잭슨 공연과 같은 다양한 자발적 거래를 통해서 분배구조 B로 변했습니다. A라는 분배구조가 정의롭다면 A에서 유래된 B도 정의롭습니다. 시간이 흘러 자발적 거래에 따라 분배구조가 F로 변했습니다. 그런데 F라는 분배구조의 지니계수가 0.31 입니다. F는 부정의한가요? F상황에 있는 저소득자들이 고소득자들에게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배분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정의로운가요? 그들의 자발적 선택에 의해서 그러한 분배구조에 도달했을텐데요.

이것이 노직의 주장입니다. 역사적 분배원리와 종국결과적 분배원리중에서 평등주의자들의 "현재 분배구조가 불평등하다"는 주장은 결과적으로 확인가능한 종국결과적 분배원리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위에서 설명한 것들이 역사적 원리입니다. 노직은 개인의 자발성과 자기책임에 근거한 분배원리를 주장합니다.
<그들이 선택하는 바에 따라 각자로부터, 그들이 선택된 바에 따라 각자에게>
 
자발적으로 선택했더라도 결과적으로 저소득층이 되었다면 이를 인위적으로 교정해야 한다는 문제제기가 있을수 있습니다. 일견 타당해 보일수 있지만 종국결과 원리에 따라 소득을 분배하기로 합의하는 경우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무책임과 도덕적 해이입니다. 젊은 시절 방탕하게 지내서 현재 소득이 없는 갑이라는 친구에게 젊은 시절 성실하게 일하고 저축하고 노후를 대비한 을의 소득을 보조해주는 것이 정의로운가요? 종국결과원리에 따라 소득을 분배하는 경우 열심히 일할, 미래를 위해서 현재의 소비를 포기할 유인이 사라집니다. 이것이 사회보장제도가 발달한 서유럽의 실업율이 높은 이유를 설명해주는 것이고 우리나라의 사회복지지출이 지속적으로 확대됨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불평등과 빈곤이 줄었다고 느끼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복지국가를 주장하시는 분들은 빈곤이 어디서 비롯된것인지를 따지는 수고 없이 가난한자들이 편히 살수 있는 국가를 만들자고 합니다. 눈앞에 보이는 가난한자들의 삶은 비참하고 누구에겐가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인지상정일 수 있지만 만약 그것이 자발적 교환에 따라 그들이 선택한 결과이거나 그들이 다른자들에 비해 게을렀거나 낭비를 했거나 노력이 부족한 결과라면 우리의 선택은 어떠해야 하나요?
 
3. 불평등과 자유
 
만약 불평등이 싫다면 그래서 보다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종국결과적 분배원리가 필요합니다. 위에서 제시한 지니계수 0.31의 F라는 분배원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지니계수 0.2의 새로운 분배구조 G를 만들었습니다. 대중들의 자유(로운 거래)를 유지하면서 분배구조 G를 유지시킬 방법이 있나요? 한가지가 있습니다. 정부가 모든 대중들의 거래를 일일이 감시해서 지니계수 0.2에서 벗어나는 거래를 금지하는 방법이죠. 이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내가 원하는 평등은 지금보다 불평등이 개선되는 것이지 그런식의 전체주의적 분배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니계수가 얼마가 되어야 보다 평등한 분배가 달성되는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어떤이는 완전평등을 바랄테고 어떤이는 지니계수 0.1이 좋다고 생각하고 또 다른이는 0.2가 좋다고 여기는 상황에서 과연 어떤 수준의 분배구조가 적당한지 사회구성원이 합의하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설사 합의했다고 해도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자유가 박탈됩니다. 자유를 보장하면서 5년 또는 10년에 한번씩 세금을 왕창 내게해서 불평등을 교정하는 방법이 가능할까요? 이 경우 대중들은 어떻게 하면 내가 번 것을 5년,10년내에 다 써버릴지 경쟁하겠죠. 누구도 저축을 하지도 미래를 대비하지도 않겠죠. 이런사회는 영속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평등과 자유는 양립할 수 없으며 불평등을 없애기 위해서는 자유를 포기해야 합니다. 이런 자유의 침해는 점점 강해지고 있으며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동안에 우리는 (질낮고 비싼제품을 파는 중소자영업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일요일에 대형마트를 갈 자유를 상실했고, (맛없는 두부를 만드는 영세사업자들을 보호하기 위해)풀무원 두부를 먹을 자유도 뺐겼으며, (늘어나는 복지지출을 충당하기 위해)세금 증가에 따른 자유의 침해를 겪고 있습니다. 불평등을 줄이자고 주장하시는 분들은 결국 우리들이 가진 자유를 줄이자고 주장하는 것과 동일합니다. 마치 맛없는 식당에서 음식을 사먹고 질이 낮은 상품을 사라고 강제하는 것과 동일합니다.
 
4. 국가의 성장을 훼손하지 않고 근로자들의 실질소득을 증가시키기 위한 방법
 
유한한 자원은 인간 생활의 기본적인 제약요소 입니다. 유한한 자원을 활용해서 한 국가의 후생을 증가시키기 위한 유일한 수단은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물품의 생산량을 증가시키고 개선하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임금을 받고자하는 모든 사람들의 임금을 영원히 인상시키려면 (최저임금을 인상할 것이 아니라)1인당 자본투자량을 늘리고 생산방식을 혁신함으로써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방법 외에는 없습니다. 우리가 아프리카의 빈국보다 임금이 높은 것은 투자를 통한 기술혁신을 통해 노동생산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돌로 빵을 만드는 케인지안이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실업을 제거하기 위해 신용팽창과 인플레이션을 통해 조달된 자금으로 유효수요를 증가시킵니다. 눈앞에서는 돈이 돌고 경기가 활성화된다고 느끼지만 전체 근로자의 실질소득은 물가상승률 만큼 하락합니다. 근로자들의 실질적인 생활수준이 좋아지나요? 이자율이 인위적으로 하락됨에 따라 이전에는 투자가 불가능해 보였던 사업에 대해 수익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한 사업가는 추가 투자를 단행해서 생산량을 늘립니다. 그러나, 실질적 수요가 늘어난 것이 아니므로 필연적으로 이익이 하락하고 사업성이 악화되는 불황을 겪게 됩니다. 경기하강을 막기위해서는 정부의 지속적인 통화량 확대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지금도 계속되는 소위 "양적완화"죠.
 
복지를 주장하시는 분들은 복지를 확대하더라도 전체 생산량에 변화가 없다고 가정합니다. 그러나, 복지를 위해 쓰일 재원은 경쟁력 있는 사업가가 활용했다면 엄청난 산출물을 가져올 수도 있었던 자원이었으며 이것이 축적되지 않고 일반 대중에게 흩어지는 효과가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5. 불평등에도 좋은것과 나쁜것이 있다?
 
불평등 문제를 제기하시는 분들이 범하는 오류가 있습니다. 기득권을 없애자는 주장을 함에 있어 대기업과 부자들의 기득권만을 공격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입니다. 농민들이 향유하는 기득권, 노조가 향유하는 기득권, 국가가 향유하는 기득권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입을 다뭅니다. 기득권이, 특권이 잘못된 것이라면 모든 이의 특권이 모두 문제인 것입니다. 귀족과 평민으로 구분된 사회가 아닐진대 왜 특정집단의 기득권에만 집착하나요?
 
좋습니다.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들이 그렇게 싫어하는 대기업과 부자들을 해외로 추방합시다. 평등한 사회라는 소기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습니다. 다같이 가난하다는것이 문제이지만 평등을 달성했는데 그까짓 가난이 대수가 아니죠. 
 
6. 불평등은 필연적인 것
 
우리는 모두 다릅니다. 재능, 능력, 지식, 의욕, 외모 등 전세계 인류는 모두 다릅니다. 전인류를 공평하게 대한다면 그 결과는 불평등한 것이 당연합니다. 부와 소득과 관련된 개인들의 불평등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본질적인 특징입니다. 결과를 같게 만들기 위해서는 자유를 제약할 수 밖에 없고 사람들을 차별대우 해야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불평등을 공격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다양성과 대중들의 선택할 자유를 공격하는 것입니다. 자유냐 아니냐의 선택에서 중도는 없습니다. 우리들이 불평등을 두려워하는 순간 우리의 자유는 제약됩니다.
 
자유사회에서 성공하기 힘든(원시시대에는 태어나자마자 버려졌을)자들과 노인 등은 국가에서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가난하다는 이유로 (가난의 원인이 어디에서 비롯된것인지를 불문하고) 그들을 보조하는 순간 우리는 도덕적 무책임을 용인하는 것이며 이것이 확대될수록 자유와 대중들의 책임의식은 줄어들 것이고 무책임한 자들로 가득찬 세상이 어떠할지는 상상해보시기 바랍니다.
 
(넋두리)
우리사회에 대기업에서 비롯된 구조적인 문제가 있고 이것이 불평등을 유발한다고 생각하시는 사람들이 있다. 문제의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 정부가 대기업에 부여한 기득권일까? 그렇다면 그들은 정부가 부여한 기득권으로 얼마만큼의 이득을 보았을까? 그들이 세금과 일자리 창출을 통해서 국가경제에 기여한 부분은 없나? 그들이 무언가 사회에 보답을 해야한다면 얼마나 해야 하나? 그냥 국민들이 만족할때까지 해야 하나?
 
이상한 점은 정부가 특정 대기업에만 특혜를 준것이 아닐진대 왜 망하는 대기업이 생기는 걸까? 어디는 망하고 어디는 잘되는데 이것도 정부가 대기업도 나름대로 차별적으로 지원해서 그런걸까? 망한 대기업은 그들이 잘못해서 망한것이고 잘나가는 대기업은 특혜를 받아서 성장한다는 걸까? 삼성과 현대차가 성장한 이유가 특혜때문인가? 기업의 능력인가? 이미 대한민국을 초월한 글로벌 기업인데 특혜를 통해서 성장했다고 주장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맞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