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글은 시닉스님이 담벼락에 쓰신 글입니다. 문체를 보아하니 아크로에 (정중한 스타일로) 쓰면 맛깔이 전혀 나지 않기 때문에 거기다가 쓰신 듯 하여 제가 퍼왔습니다. 아직 연재가 끝나지는 않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제목: 친노 스토리  1
한때 친노 아닌 닝구 있겠냐마는 나도 한때 노사모에, 서프 오프까지 나간 열렬회원에, 아무튼 기타 등등 엮어서 아는데까지 풀어볼 테니 혹시 틀리거나 추가할 흉아들 있으면 댓글 달아줘. 글고 좀 모이면 엠팍 아해들에게도 누가 좀 보여줘라.

1. 정청래 친노 맞다.
원래 노사모 출신이고 명계남과 함께 인터넷 정당 만들겠다고 의기투합, 사무실 하나 얻어 다른 노사모 회원들하고 이리저리 궁리하고 있었음. 이 대목에서 정청래와 악연 유시민이 등장함. 당시 유시민은 정청래,명계남이 얻어놓은 사무실 한 귀퉁이에 책상 하나 빌려쓰고 있던 신세였음.

어느날 명계남과 정청래는 벙찌는 뉴스를 접함. 유시민이 방송에 나와 자신들이 구상해오던 인터넷 정당 안을 자신의 아이디어인양 떠들고 있음.(여기까진 정청래 주장임, 유시민은 이에 대해 뭐라 언급한 적 없음.) 결국 유시민이 선수 치면서 정청래와 명계남은 인터넷 정당 계획을 접음.

2. 정동영이 원래 비노냐?
천만에. 참여정부 초창기 황태자라는 별명이 있었을 만큼 정동영은 친노 핵심이였음. 현역 의원중 처음으로 노무현 지지를 선언했던 천정배, 탈레반이라 불렸던 신기남등 호남 출신 3인방이 초창기엔 친노 핵심중 핵심이었음.

3. 그러면 왜 정청래가 정동영계로 분류됐었나?
지금이야 상전벽해를 느끼지만 참여정부 초창기 정,청,신이 친노 핵심이란건 앞에 밝혔음. 당시 노사모를 비롯해 새롭게 정치권에 진입한 '친노'들은 크게 두갈래로 갈라졌음. 

정청래를 비롯해 부산 노사모 회장으로 유명했던 '미키 루크' 등은 정동영 밑으로 모였음. 황당무계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대표 노빠 명계남도 당시 정동영과 친했음. 명계남은 사람이 좀 순진해서 당시 '이번에 호남이 영남에 양보했으니 다음은 영남이 호남에게 양보할 차례다.'라고 공공연히 떠들고 다녔음. 즉, 공개적으로 정동영을 지지하고 다녔음. (내가 극렬 노빠중 명계남은 인간적으로 미워하지 못하는게 바로 저런 점 때문임) 

또 한갈래는 바로 그 유명한 유시민의 국참 계열임. 정동영, 정청래, 유시민의 악연은 바로 이 당시부터 싹터잇던 것임.

사실 정동영은 유시민을 나름 포용하려 햇었음. 고양 보궐 선거 당시 유시민이 야권 단일 후보로 나오도록 힘을 썼던 사람이 바로 정동영임.

이러다 참여정부가 쫄딱 망하게 되는 단초가 되는 사건이 터졌으니....

4. 분당의 상처
분당이 호남에 대한 배신이네, 민주당에 대한 배신이네를 떠나 노무현 자신에게도 엄청난 불행의 시작점이었으니... 분당에서 바로 친노 그룹의 분열이 시작된 것임. 그 전까진 후단협과 닝구(ㅎㅎ. 사실 요즘 닝구들 중에 이때 닝구였던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임) 등과 맞서 나름 단합해오던 친노 그룹이 분당이후 당 및 청와대내 다수를 넘어 거의 독점적 지위를 누리게 되면서 자기들끼리 파이를 놓고 다투게 됨. 이런 이전투구를 잘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 터졌으니... 

5. 유시민이 열우당 최고위원에 출마하며 "도저히 같은 하늘 아래 함께 살 수 없는 정동영"이라며 각을 세움.
그야말로 열우당에 핵폭탄이 터졌음. 당시 분당의 상처도 채 아물기 전이었는데 내부에서 지진이 발생한 것임. 고양시 단일후보 만들어줬던 정동영이야말로 후회가 막심했을 텐데...사실 이것보다 더 큰 문제는 아래임.

6. 4에서 지적했듯 노무현이 자신의 독자적 지지기반으로 삼으려 했던 신규 지지 그룹 자체가 분열한 것임. 여기서 신규 지지 그룹이라하면 노사모 이후 새롭게 진입했던 정치 지망생 기타 등등을 뜻함.

말이 새는데 문재인이 '친노 없다~~'하는, 영구 스타일 항변이 아주 근거가 없는건 아님.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사실 친노 그룹 색깔을 보면 나름 다양하긴 함. 이참에 정리겸 내가 분류해보면,

하나는 안희정,이광재,김경수등 오래전부터 함께 해왔던 측근 그룹임. 이 그룹은 정치를 알기에 함부로 다른 정치 세력과 척을 지지 않았고 나름 균형을 잡으려 애썼음.  노무현도 유빠들 상상과 달리 이들에게 제일 의지하는 편이었고 감정적으로 애틋해 했음.(안희정 출정식에 보낼 영상편지를 찍다 노무현이 울었던 사건은 잘 알 것임) 개인적으로 제일 인정하는 친노임. (유시민 부류와는 다르다...) 

두번째는 정동영 등의 그룹이 있었음. 이건 앞에 설명했으니 생략. 다만 정동영이 노사모 일부를 흡수하는 등, 당내 최대 계파로 떠오르자 오브 코스하게도 이를 견제하려는 세력 등이 나타났으니...이 부분이 아주 중요함. 일단 노무현도 최고 권력자답게 정동영을 견제하기 시작함.이걸 특별히 욕할 건 없음. 원래 정치와 권력이란게 그런 것임. 요즘 김무성을 바라보는 박근혜도 그런 거고...아무튼 노무현의 심기를 눈치채고 아래 말하는 기존 정치권 그룹도 정동영 견제에 나섬. 여기까진 통상적인 파워게임임. 문제는 기존 방식과 전혀 다른 애들이 나타나 당을 극도의 혼란 상태로 몰아넣었으니...바로 유시민 그룹임. 

일단 세번째 그룹을 설명하겠음. 바로 이해찬, 한명숙, 정세균등 기존 정치권 그룹임. 사실 이들이 친노인지는 나도 종종 헷갈림. 이들이 원래 노무현을 극진히 좋아했으면 대선 경선 당시 일빠로 노무현에게 붙었어야 정상이나 이들은 그러지 않았음.(일빠이자 경선 시작까지 유일하게 노무현을 지지했던 국회의원은 지금 비노 선두주자 천정배...) 그러다 노무현이 통 먹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친노 그룹을 형성하게 됨. 이해찬이야 원래 노무현과 친하긴 했지만 사실 노무현이 통먹기 전이나 후나 은근히 자신이 노무현보다 위라는 생각이 강했고...아무튼 선수로 보나 나이로 보나 그래도 박지원 급에 해당하는 이해찬이 노무현의 당내 후원인 노릇을 하면서 정세균, 한명숙 등과 손을 잡고 당내 세력 관계를 조율함...앞에 말했듯 이 그룹은 정동영 그룹 견제를 위해 유시민 등과도 연합전선을 형성함. 쉽게 말해 이들은 유시민 등이 매스컴 타며 열심히 돌격대 노릇하고 자신들은 배후 조종한다고 생각했으나...이게...

드디어 마지막으로 유시민 부류가 있음. 국참인가 개미당인가부터 유시민 졸졸 따라다니던 그룹들, 이들 중 국회의원도 여럿 나왔음. 애니웨이, 사실 이들은 참여정부 초창기 친노그룹중 제일 불리한 처지였음. 측근들처럼 노무현과 오래전부터 볼 거, 안볼거 나눈 사이도 아니고 천신정처럼 지역 지지 기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명계남 등처럼 노사모 열풍의 공로자도 아니었음. 쉽게 말해 논공행상 제대로 따져보면 제일 몫이 작았음. 놀랄지 모르겠으나 앞의 명계남, 정청래 예에서 보듯 노사모 내에서도 이들이 다수는 아니었음. 그나마 이들이 자신들 공에 비해 많은 몫을 차지할 수 있었던 건 유시민의 명망, 후단협 등을 제거하려는 정동영의 정략(참여정부 초기), 그런 정동영을 견제하려는 노무현의 정략(참여정부 중후기) 등등이 어우러진 결과였음. 아무튼 이들은 자신들의 이런 처지를 극복하기 위해 가장 공격적인 그룹으로 변신하게됨. 처음에 이들이 후단협 등을 공격할 땐 좋았으나 이후 정동영을 비롯해 마구 팀킬을 해대자(임마, 견제만 하랬지, 누가 죽창 들고 싸우랫어?) 노무현도 근심하기 시작함.  그래서 복지부 장관 시켜주며 노무현이 한소리함. "예전엔 안그랬는데 요즘 보면 얼굴에 남을 조롱하는 기가 보이고..."

에고 여기까지 쓰고나니 지치네. 아무튼 세월도 무상하여 벌써 10년이나 지난지라 요즘 아해들은 잘 모르는 것 같아서 흉아가 좀 써봤으나 흉아도 이제 가물가물하니 틀린 거 있으면 지적해주고.... 흉아들 반응이 괜찮으면 이어서 쓸께. 요즘 국민 티비가 하도 개판치고 있어서 예전 서프의 추억을 좀 써볼까해서 시작했는데 서론만 썼으이....


제목: 친노 스토리 2

뭐 예상대로, 사실은 내 애원대로 1편의 추천수가 꽤 돼서 내친 김에 2편도 써볼께. ㅎㅎ.

이 앞에 참여정부 당시 친노내 각 계파에 대해 썼지? 그 뒤 열우당이 판판이 지고 국현이 나오고 동영이 미끄러지고 재인이 미끄러지고 기타 등등은 아무튼 넘어가자고. 이번 편에는 시간 순서 넘어서 생각나는대로 쓰려고 해.

7. 유시민의 폭주
전편에서 왜 유시민 그룹이 그렇게 공격적이 될 수 밖에 없었는지 썼어. 한마디로 친노 일색(?) 열우당 내에서 제일 세력과 기여가 적은 계파로서 존재감을 부각시켜 조금이라도 많은 파이를 먹으려는 전략이었고 그 뒤에는 정동영을 견제하려는 노무현, 이회찬 등의 응원과 후원이 있었지.
정권 중기 이전까지, 최소한 대연정 제안 전까지는 노무현으로선 정동영으로 대표되는 호남 그룹과 이해찬, 유시민 등등을 상호 견제도 시키고...라기보다는 최대 계파 정동영 계를 견제하면서도 균형을 맞추려 했던 것 같아. 그런데 대연정이 터졌지. 이거 일단 노무현의 선의를 믿고 그의 발언만 인용해보자고. "상대방 진영에서 터질 줄 알았는데 우리 진영에서 터졌다. 헛발질 했다.".... 우리 진영에서 터졌다는게 뭘까? 호남의 이반? 그것도 있겠지. 그런데 그것 만일까?

다시 한번 노무현의 선의를 믿어보자고. 노무현이 '호남 1/2-2/3'+'영남 1/3-1/2'을 지지기반으로 하는 전국 야당을 꿈꿨다고 가정해보자고. 그럴 듯 하잖아? 여기서 앞은 정동영, 천정배등 호남 그룹, 뒤의 영남은 자신의 직계, 유시민 기타 등등 그룹으로 상정해보면 노무현의 그런 꿈을 아주 이해못할 것도 아냐.... 그런데 말이지. 이 대목에서 난 임기말 노무현의 후회가 겹쳐. '그럴 의도는 없었는데 내가 계몽주의처럼 뭘 가르치려는 꼴이 됐다.' 뭐 이렇던가?

지지층의 이반은 물론이거니와 - 노무현이 미처 예상 못한 것중 하나는 대연정 선언후 당내 계파들이 강한 원심력을 갖고 맹렬히 싸우기 시작했다는 거야. 노무현의 장기 구상에 의구심을 갖게 된 정동영은 서서히 친노에서 이탈하기 시작했지. 노무현이 영남 진출에 정치적 사활을 걸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유시민 등의 비호남 친노들은(이 당시로선 이렇게 말하는게 정확할 거야) 확장될, 그렇지만 현재는 공백 상태인 영남 지분을 차지하기 위해 맹렬히 정동영계를 물어 뜯기 시작했어. 이 대목에서 살짝 이야기를 좀 샐께. 바로 명계남 이야기. 왜냐면 이 과정에서 정확하게 유탄 맞아 폐인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했거든...이라고 난 전해들었어.

8. 유탄 명계남
앞에 명계남이 정동영 계보에 속해있었다고 말했지? 정확히 말하면 범친노로서의 정동영 계보야. 참정연이었나? 아무튼 명계남은 친노로서 정동영과 친했지. 그렇지만 대놓고 친하고 그런건 아니었지. 2002년 선거운동 같이 하면서 인연맺고 친해지고 노무현 당선 후엔 '다음엔 영남이 양보해서 호남 후보가 나와야 한다' 뭐 이런 정도 생각을 갖고 있었지. 아무튼 명계남이 정동영과 친하다는건 당시 유빠들도 다 알고 있었지만 워낙 명계남의 상징성이 있으니 처음엔 함부로 공격하지 못했어.그렇지만 대연정 이후 당내 강한 원심력이 작동하기 시작했다고 했지? 그 뒤부터 유시민 계열의 폭주가 거세졌다고 했지? 그 흐름에서 명계남이라고 무사할 수가 없었던 거지. 대선 경선 시작 즈음이엇나? 그 전이었나? 명계남이 정동영 지지 선언한다는 소문에 유빠들이 맹렬하게 명계남을 물어뜯기 시작한거야. 온갖 육두문자가 적힌 비난 글이 인터넷 게시판을 도배하고 직접 명계남에게 문자를 날리기도 하고...술자리 등에서 협박하기도 하고...가히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개새끼가 되는 순간이었지. 결국 명계남은 중립을 선언할 수 밖에 없었지...(라고 쓰고보니 명계남이 정동영 변신에 실망해서 스스로 돌아섰다고 주장하는 노빠들도 있네. 난 둘 다가 겹쳤다고 보지만 애니웨이 판단은 각자가...)

여기까진 그러려니 해. 명계남은 다 알다시피 그때도 노빠였고 지금도 노빠...겠지? 아무튼 명계남은 언제나 노빠였어. 그런데 자신이 정동영과 친하다는 이유로 온갖 욕을 퍼붓던 인간들이, 명계남보고 배신자라고 했던 인간들이, 어느 순간 보니 국현이 밑에 가 있지 않나, 심지어 한나라 공천 신청하지 않나....노무현 퇴임후 위기에 몰리니 온갖 배신을 다 하지 않나....명계남으로선 정말 피눈물이 날 지경이었지. 인간에 대한 환멸도 컸고... 아무튼 이 이야긴 여기까지.

9. 유시민의 폭주2
아무튼 처음엔 자신이 의도한 바라 생각했는데 이 유시민의 폭주가 날로 거칠어지니 노무현으로서도 참 난처한 입장이었지. 앞에도 적었듯 적당히 혼내주고 타이르랬더니 죽창들고 쑤시겠다고 난리치는 격이었거든.

유시민이 설칠 때마다 정동영계는 노무현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지. '저거 너가 시킨 거 맞지? 너 나 빼고 유시민과 해찬이만 챙겨줄려고 그러는 거지?' 노무현은 '아냠마. 유시민이 쟤가 오버하는 거야. 그런데 너도 좀 잘해 봐. 너가 잘못하니까 쟤가 더 설치는 거잖아." 뭐 이렇게 둘러대고 유시민 불러다가는 "야, 너 맘 알겠는데 정치 그렇게 하는기 아이다" 타이르기도 했지만 이것도 하루이틀이야 통하지...어느 순간부터 유시민의 폭주는 더 거칠어져서 통제 불능 상태로 접어 들었지. 자, 여기서 유시민의 인간성을 들먹이는건 하나만 보는 걸게야. 유시민이 그렇게 폭주할 수 밖에 없었던 건...어떻게든 정동영 계의 몫을 뺐어야 나눠줄게 있었어...벌써 이 때는 참여정부 4년차야. 간단히 말해 그의 주변엔 있는 사람들은 이제 열정 페이 주고 끝낼 수 있는 단계가 아니야... 청와대 행정관, 기타 등등 나눠주고 돌려먹고 하던 것도 한계를 보이는 타이밍이었지. 

아무튼... 이건 좀 뒤에 다시 이야기하고...

흉아들 기억할 거야. 노무현 후원회장이었던 강금원...그 분이 '유시민은 친노가 아니다'라고 했던 거. 그런게 바로 이런 맥락에서 나왔어. 강금원도 그렇고 노무현의 최측근들이 보기에도 유시민의 폭주는, 단순히 노무현에 대한 충성심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거였지. 당내 원심력을 불러일으켜 점점 더 노무현을 곤란하게 만들고 있었거든. 그나마 이해찬 등이 유시민을 좀 제어하고 있었지만..... 다시 정동영이 민주당과의 통합을 추진하면서...노무현에 대한 충성 전쟁은 결국 유시민이 승리햇어. 정동영은 애시당초 참가도 안했던 전쟁, 혼자 선포하고 혼자 승리한 전쟁, 알고 보면 충성도 하지 않았던 전쟁...이제 왜 노무현 최측근 출신들이 유시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있을 거야.

10. 서프라이스, 노사모, 개혁당, 정치 낭인
사실 이거 쓰려다 여기까지 온건데...지금 다른 창에서 담벼락 검색해보니 DB 접근이 안되고 어쩌고 한다. 불안해서 오늘은 여기까지.


제목: 친노 스토리3- 부록


아래 문서를 난 처음 봤어. 그런데 이 문서를 보는 순간 예전에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던게 또렷해졌지. 

http://www.wikileaks-kr.org/dokuwiki/07seoul3224

간단히 말해 당시 친노들은 '진심으로 정동영 낙선을 바라고 있다'는 것. 그러면 이명박 당선을 바랐냐, 그건 아니지.

그들이 바라는 건 이거였어. '야당내 패권을 자신들이 쥐고 국회의원 대거 당선되는 것.'

자, 여기서 친노들이 왜 민주당에 남지 않고 '문국현 캠프로 가거나' 혹은 '유시민 2012년 프로젝트로 가거나'를 선택했을까? 여기서 유시민 2012년 프로젝트는 이른바 국참당 프로젝트였을 거야. (이거 관련해서 조기숙의 웃기는 이야기들이 좀 있어. 대선 직후 조기숙은 너무나 당당히 오마이 뉴스에 '친노들은 노무현을 부정한 정동영보다 부정하지 않았던 이명박을 더 찍었다'고 당당히 주장했어. 그러고는 그렇게 이명박을 찍은 대도시 고학력 층을 대상으로 한 신당이 뜨면 대박날 것이라고도 주장했지. 재밌지 않아?)

아무튼, 여기서 다시 질문을 던져볼께, 왜 그들은 민주당에 남지 않고 나가는 걸 택했는가?

왜? 물론 아주 간 건 아냐. 친노 그룹중 안희정 이광재등 노무현 최측근 그룹과 정세균,한명숙,이해찬등 기존 정치인 그룹은 민주당에 남았지. 노사모 중에서도 정청래등 기존 민주당에서 나름 한자리 꿰찬 애들도 남았지.

반면 천 누구던가, 아무튼 다크 서클, 그 애를 비롯해 노사모를 통해 입신한 인간들, 개혁당 출신등은 왜 기어이 당에 남지 않고 나가는 걸 선택했을까?

내 생각에 답은 너무 뻔해. '그게 더 남는 장사라 여겼을 테니까.'

왜 그게 더 남는 장사라 여겼을까?

'과거 경험으로 보건대 그랬으니까."

자....내 보기에 현 새정연의 가장 큰 문제는 저기서 출발해. 왜 자꾸 문재인은 '친노 없다'고 우기는가, 그럼에도 왜 친노는 항상 문제가 되는가. 

내 보기에 당의 주인이 없다는 유시민의 지적은 - 주인을 없애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인간이 그렇게 떠느는게 참 웃기긴 하지만 - 일면 타당해.

자....이렇게 친노 스토리를 쓰다보니 어쩌다가 이리 오래 될지 몰랐던 10여년 닝구(?) 생활이 정리되는 느낌이 들어. 어쩌면 결론에 해당될 다음 글을 끝으로 닝구 생활도 쫑낼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해.

아무튼 커밍순, 다음 글을 기대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