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고속철도가 개통한지 한 달이 지났습니다. 아직 초창기기에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만 결과적으로 호남고속철도는 성공입니다. 예상치를 훌쩍 넘는 승객수로 인해 고속철도를 통해 호남을 물고 뜯으려던 사람들은 입맛만 다신채 물러서야 했죠. 포항 KTX와 비교해 호남 KTX는 돈낭비라는 구도를 만드려던 시도들 역시 물거품이 되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이번 호남고속철도를 보면서 여러가지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는 점을 밝히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전라도에 고속철도를 놓는 것은 돈낭비라며 무수히 많은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죠. 만약 오송분기가 아니었다면 호남고속철도는 대성공이었을 겁니다. 오송으로 우회하는 바람에 3천원 정도(왕복 6천원)의 요금이 더 부과되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대해선 오송분기 결정 당시에 오송으로 우회하는 만큼의 비용은 부과하지 않겠다고 건교부 장관이 직접 언급했습니다만 그 약속은 잊혀진 것 같습니다.) 서대전을 지나가지 않는 전라선 (전주~여수)조차 매진이 연일 계속되고 있습니다. 서대전을 지나가지 않으면 호남고속철도는 실패한다던 주장은 보기 좋게 나가리가 되고 말았죠. 호남고속철도 개통 직전 여객 수요를 생각해 서대전 경유를 1/4이상 해야 한다며 바득바득 우기던 사람들 역시 꼴이 우습게 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되자 오송분기가 더욱 안타까워집니다. 본래 예측은 버스 수요가 대폭 줄어들고 KTX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했죠. 즉 버스 손님이 KTX 손님으로 바뀐다는 예측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전혀 다릅니다. 철도 수요가 2배 가까이 증가했고 버스의 경우 10% 밖에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항공기의 경우 25% 정도 수요 감소) 한 마디로 호남고속철도가 새로운 철도 승객 수요를 창출해낸 것이죠. 정읍 내장산이나 남원의 지리산, 목포의 다도해 같은 관광지들이 수도권으로부터 더욱 가까워졌습니다. 천안분기였다면 더 많은 승객들이 호남을 찾았을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입니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요금이 왕복 6천원정도 더 저렴했을 테니까요)


 제가 호남 정치권에 요구하는 것은 호남을 부유하게 하고 발전시키는데 최선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저는 호남 정치권에서 대북문제에 대해서, 금강산을 이렇게 해라 개성공단을 저렇게 해라라는 말은 끝없이 들었지만(북한측에서 되려 호남을 정치적으로도 곤혹스럽게 만드는데도 불구하고) 정작 호남을 위해 이렇게 해야 한다는 말은 들은 기억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F1보다도, 금강산관광보다도 더 중요한 호남고속철도 분기와 관련해 당시 호남의 정치인들 (집권 여당의 총재였던 사람도 포함)은 무슨 말을 했나요? 호남과 충청(정확히 말하면 충청도도 아니고 충청북도도 아닌 오송일대)의 이익이 상충될 때, 충청도의 정치인은 충청도를 위해 일하고 전라도의 정치인은 전라도를 위해 일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왜 전라도의 정치인들은 충청도 사람들이 기분나빠할까봐 아무말도 못하고 충청도의 눈치만 보고 있나요? 게다가 오송분기 사태의 경우 충청남도지역은 천안분기를 희망하고 있었습니다. 충청북도 역시 충청북도 전체가 오송분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극히 작은 시골동네 오송 일원에서만 오송분기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었죠. 조금 더 확대하면 청주도 포함이 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청주 사람들이 오송분기에 얼마나 관심을 두고 있었을 지는 알 수 없습니다. 청주 한복판에 KTX역이 생기면 모를까 오송까지 가는 시간을 생각하면 차라리 청주 한 가운데에 있는 버스터미널에서 버스타고 가는게 시간적, 경제적으로 유리할테니까요. 오송일원을 제외하고 충남지역 (천안, 공주, 논산)과 세종시를 생각해서도 천안 분기가 더더욱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천안분기로 역을 낼 경우 세종시 기준으로 오송역보다 훨씬 더 가까운 거리에 KTX역이 생기게 됩니다.


 아무튼 망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라 예상됬던 호남고속철도는 오히려 호남의 가능성을 반증했습니다. 지금까지 전라도 지역에서 철도를 이용하지 않았던 것은, 전라도에 기차를 탈 정도로 돈 있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도 아니었고, 전라도 사람들이 특별히 금호고속을 사랑해서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말도안되게 여기저기 우회하면서 요금만 줄창 올렸던 기차보다, 일직선으로 난 고속도로를 따라 내려오면서 기차와 시간차이도 별로 없는 버스가 경제적으로 훨씬 합리적인 선택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정치적으로 조용히 침묵을 지켜야 할 때가 있다는 점도 알고 있습니다. 일처리를 하는 데에 여기저기 시끄럽게 하면서 해야 하는 일이 있고 반대로 조용히 처리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제가 호남 정치권이 오송분기를 저지하기 위해 어떤 일을 했는 지는 물밑에서 처절하게 노력했던 정치인이 있었다면 모르는 것이 당연한 것일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론 실패했죠. 이러한 오송분기와 같은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선 안되는 일입니다.


 오송분기와 같은 일이란 호남의 가능성을 폄하하고 그 폄하에 맞추어 수동적인 태도로 있다가 호남의 발전 가능성을 상실해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목포는 수심이 안좋아서 망하는게 당연해(제가 했던 말입니다), 전라도는 입지가 애매해 등과 같은 말들은, 실상 구불구불 돌고돌아 내려가던 과거의 (지금도 오송분기 때문에 돌아가고 있긴 하지만) 철도 노선에 입각한 평가와 비슷한 것이죠. 실제로 호남은 국토의 남서부에 위치해 있어 풍부한 일조량과 거대한 평야를 가진, 남중국과 서일본에 매우 가까운 훌륭한 입지입니다. 거기에 남해와 서해 양면에 바다를 끼고 있어 무역을 하기에도 유리한 지역이죠. 목포는 바다만 건너면 지척에 상하이가 있고, 군산은 바로 칭다오와 롄윈강이, 여수는 나가사키와 후쿠오카가 있습니다. 호남의 입지가 좋지 않아 경제적으로 발전되지 못했다는 것은 결과론적인 해석입니다. 실제로 산업화 초기에 호남에 공단이 제대로 조성됬더라면 지금과 같은 인구 불균형도 초래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아가 호남에 수심이 얕아서 공단이 조성되기 어려웠다는 말도 다른 공단들을 생각해 봤을 때에 이상한 말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남이 아닌 충청도 정도의 인구 증가만 있었어도, 지금 현재 호남에는 800만에서 900만 정도의 인구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금 현재 500, 충청도보다 적은 인구가 살고 있습니다.(이제 곧 충청도 제 3의 도시 천안이 전라도 제 2의 도시 전주를 추월합니다. 이미 경제적으로는 추월당한지 오래입니다.) 지금도 호남은 여기 저기 난도질당하며 정치권에게 이용당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이래서는 안되겠지요. 이제 호남은 호남의 발전을 위해 나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그 방향은 영남에 대한 비난이 결코 아닐 것입니다. 이제 새로운 변화에 맞춰 새로운 미래를 준비해야 합니다. 지역주의는 지역주의로 극복할 수 없습니다. 지역주의에 차원을 넘어선 새로운 미래가 전라도에서부터 시작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