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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반을 한번 들으면 대단한 감동이 아니어도 좋은 인상으로 머리 속에 각인되는
연주가가 있다. 노르웨이 출신의 신진(처음 만난 당시) 피아니스트 라이프 오베
안스네스(Leif Ove Andsnes,1970~)가 그런 사람이다. 그다지 중요한 곡을 들은
것도 없고 특별한 솜씨를 보인 것도 아닌데 이름이 머리 속에 오래 맴돌았다.
노르웨이 해변풍경에서 명칭을 빌린 소품 모음집 <Horizons>, 2006년 출시된 것
이니 벌써 9년 전 일이다. 며칠 전 그가 5월에 서울에서 최근 말러 체임버 오케
스트라와 함께 진행해온 <베토벤 (협주곡)연주여행>의 무대를 갖는다는 기사를
읽고 무척 반가왔다.

 그 음반의 특징이라면 앵콜곡 정도로 가볍게 취급되는 소
품들을 자기 존재를 빨리 세상에 알려야 하는 신진이 과감하게 들고 나온 것, 그
리고 구성도 대중선호가 강한 흔한 곡 보다 스크랴빈의 <즉흥곡>, 카타루냐 작
곡가 페테리코 몸포우의 <칸시온과 춤곡> 등 이색적 곡들을 다수 동원하고 있
다는 것 정도였다. 지금 돌아보면 이건 신예 연주가로 대단한 자신감의 표현이
고 아주 현명한 선택이기도 했다. 소품들은 그 작곡가에게 접근을 용이하게 하
는 통로이며 듣는 쪽도 그렇다. 대체로 소품에 작곡가의 본질이 선명하게 드러
나고 있다. 안스네스는  음악학교 초기부터 스승에게서 소품의 중요성을 배웠고
그것들을 늘 가까이 했다 하는데 이 음반은 그의 초기 음악자전적 성격도 띠고
있다.

 그러나 소품에 오래 집착하는 청중은 없다. 나도 리뷰 때문에 잠시 들은 것 뿐
이후 다시 <Horizons>을 듣지는 않았다. 가끔 노르웨이 해변을 거니는 한 창백
한 청년 연주가의 모습이 눈에 어른거렸다. 촉망받는 신예라고 하나 그의 전도
가 그다지 밝아 보이지는 않았다. 유럽 변방 소국 출신에 큰 콩클의 훈장 같은
것도 없는 이 젊은이는 모국에서나 인정받는 정도로 만족해야 하지 않을까. 당
시 내 생각이었다.
그 생각은 완전히 빗나갔다. 이 청년 연주가는 한적한 해변에서 뚜벅뚜벅 걸어
나와서 베를린과 비엔나와 뉴욕의 큰 무대를 이미 차례로 섭렵하고 지금은 음악
연주의 한 경향을 리드하는 영향력 있는 연주자로 키가 훌쩍 커버렸다. 지금 만
나는 안스네스는 노련하고 준비가 철저하게 되어있는, 관록마저 엿보이는 중후
한 프로 연주가 안스네스이다. 나는 최근 그가 수년간 동행한 말러 체임버와 함
께 연주한 베토벤 협주곡 1,5번 그리고 모차르트 협주곡 등을 듣고 그의 능숙한 리
드와 그 완벽한 하머니에 매우 놀랐다. 1인 2역의 경우 독주자의 팔동작이 어색
하고 미세한 시간차의 간극으로 흐름이 자주 끊기기도 하는데 이 경우는 서로 한
몸처럼 호흡이 척척 맞는다. 너무 호흡이 잘 맞아 흥에 겨운 나머지 약간 빠른
템포로 흐르는 경향이 있지만. 안스네스의 피아노 소리는 감각적이며 경쾌한데
신중하게 계산된 조심스런 건반터치가 몸에 배어 있으며 이것이 그의 기본자산
이다. 그는 음악을 참 맛있게 연주한다. 아마 청중도 맛 좋은 음식을 대하는 기
분을 느낄 것이다. 마치 1급 요리사가 조력자를 거느리고 능숙하게 요리과정을
이끌어가듯 그는 능숙하게 악단을 이끌어간다. 그 황량한 해변에서 습득한 비책
일까. 그는 청중을 음악 속에 끌어들이는 마력 같은 걸 지닌 듯 하다. 너무 귀
에 익어 별로 새롭지 않은 곡도 그의 손을 거치면 갑자기 새롭고 신선한 음악으
로 변한다. <베토벤 5번(황제)>을 듣고 "이렇게 처연하고 아름다운 5번이 있었던
가?" 하고 나는 자문했다.

 모국 악단인 Norwegian Chamber Ochestra 와 손을 맞춘 <모차르트 18>번은 탄성을

 자아낼만큼 하머니의 일치가 극점에 달했다. 여백이 보이지 않는다는 불평을 할 수

 있으나 청중은 빈틈이 보이지 않는 연주에 박수 대신 요란한 탄성으로 응답한다.

 그에게는 별도의 지휘자가 거추장스런 훼방꾼일 뿐일 것 같다는 생각마저 했다.

실제로 지휘자와 협연한 그리그 협주곡이나 다른 곡에서는 그가 말러 챔버와 함께

 보여주던 일치감은 느끼지 못했다. 어딘지 느슨해지고 긴장감이 떨어져 전혀 다른

연주자를 보는 것 같았다. 앞으로 지휘자 없는 '협주곡의 시대'를 예고하는 현상이

 될지 지켜볼 일이다. 쇼팽 <피아노 소나타 3번>에서 안스네스는 만능 독주자의 면모를
보여줬다. 쇼팽 특유의 보라색 색채를 화려하고 간결하게 살려내는 솜씨에서
"쇼팽까지 이렇게 잘 치나?" 하는 푸념 아닌 감탄이 절로 나왔다.
 

 안스네스는 협연이건 독주건 철저하게 준비된 프로 연주가이다. 그에게서 현대
청중 취향에 맞게 진화된 새 유형의 연주가를 본다. 템포를 조금씩 빨리 진행하
는 것, 작은 무대 연주를 즐기는 것도 그렇다. 그는 시즌의 첫 독주무대를 뉴욕
의 <녹색공간>이란 작은 홀에서 갖기도 했다. 사람 몇 명만 모이면 언제라도 그
는 건반 앞에 앉을 준비와 자세가 되어있는 연주가로 보인다. 그에게 무대에 나
서는 연주가의 긴장감, 비장감 같은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 늘 준비되어 있고 음
악 속에 깊이 빠져 살고있기 때문이다.

 "내가 자란 노르웨이 서해안 카르뫼이 섬, 그곳 수평선을 돌아볼 때마다 바람이
불고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의 모양이 떠오른다. 그 모양은 언제나 다르다."
안스네스의 음악을 대하는 내면의 한가닥을 암시하는 것 같은 그 자신의 고백이
다.

*협연악단 오기 정정-이 연주는 Norwegian Chamber Ochetsra 연주인데 Maler Chamber Ochestra 로 잘 못 표기되어

정정합니다. 본문내용에도 나오지만 서울연주에서 Maler.C.O 와 베토벤 협주곡을 연주하기로 되어 있어 잠시

착각했습니다. 이 글은 모 주간지에 연재물로 나가는데 독자의 지적을 받고 착오를 바로 잡았음을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