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궐선거에서 압도적 승리로 당선된 천정배가 승리의 기쁨에 도취해 마치 호남의 맹주가 된 것 같습니다. 호남정치의 복원을 외치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뉴DJ'를 키우겠다느니, 내년 총선에서 30석을 확보하겠다느니, 새정연에서 절반의 의원을 빼오고 싶다느니 하는 호기를 부리고 있습니다. 천정배의 얘기를 듣다보면 마치 대통령에 당선된 것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뭐 새정연에서 팽 당했다가 기적적으로 회생했으니 환호작약하는 심정이야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만 조금 촐싹대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새정연에서 절반 정도를 빼오고 싶다'는 발언은 정치도의상 해서는 안 되는 발언으로 보입니다. 물론 그 발언이 진심은 아닐찌라도 엊그제까지 한솥밥을 먹던 당에 대한 예의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럼에도 새정연 내에서 비판이나 반박성 논평 하나 없는 것을 보면 새정연이 보궐선거 패배로 상당히 큰 충격을 받고 아직 정신이 없는 모양입니다. 하긴 뭐 의총에서 문재인 사퇴 얘기가 나오기도 하고 해서 당 분위기가 뒤숭숭 하겠지요. 그러니 천정배의 도발적 발언에도 대응하기가 마땅찮을 것으로 생각은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나면 선거 패배의 충격도 조금 가라앉을 것이고 친노의 단결력으로 볼 때 천정배에 대한 강력한 포탄을 쏘지 않을까 싶습니다. 천정배의 성격 또한 만만치 않으니 새정연과 천정배의 배틀이 어떻게 진행될지 심히 궁금하기 짝이 없습니다. 저같은 관전자의 입장에서는 누가 이기든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만 싸우더라도 치졸하게는 싸우지 않았으면 합니다.


천정배는 보궐선거에 출마하면서 '호남정치의 복원'을 내세웠고 승리를 거머쥐었습니다. 불과 몇 년 전에 '친노'의 원조였던 그가 느닷없이 호남정치를 부르짖는 모습이 조금 의아스럽습니다만, 아크로에서 '호남정치'의 복원을 열망하는 분들이 많은 것을 보고 천정배의 '호남정치 복원'이 단순한 선거전략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호남정치'의 복원이 과연 이루어질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천정배와 관련한 기사와 댓글들을 보니 천정배의 '호남정치 복원'에 대한 비판이 가득하더군요. 댓글의 내용 대다수가 '호남정치'는 곧 '지역주의'라거나 '호남 이기주의'라는 댓글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호남정치'의 부활은 야권의 분열을 뜻하며 정권교체를 불가능하게 하는 '배신의 정치'라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반면에 '호남정치'의 복원을 찬성하는 분들도 제법 있었는 데 주로 아크로의 몇몇 분들처럼 친노에 대해 분노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비판적 시각이 다수인 것으로 보아 '호남정치'를 복원하는 일이 생각처럼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듭니다. 더욱이 모든 호남 분들이 '호남정치'의 복원을 찬성하는 것도 아닐 것이고 또 '호남정치'의 복원이 본격적으로 시도되면 한겨례를 비롯한 진보 언론과 시민단체 등에서 집중포화를 가할 것이 틀림없는 바 '호남정치'의 앞길은 가시밭길 일 것입니다. 오마이뉴스 같은 곳은 이번 보궐선거에서 천정배가 승리했다고 해서 문재인이 패배한 것은 아니라며 내년 총선을 지켜봐야 한다고 애써 천정배의 승리를 평가절하 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진보 언론이 문재인에 우호적인 환경에서 천정배가 '호남정치'를 제대로 복원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저는 '호남정치'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비판자들이 애기하는 '지역주의의 부활'이라거나 '호남 토호 정치의 부활'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약 '호남정치'가 그런 것이라면 '호남정치의 복원'은 결코 바람직스럽지 않은 퇴행적인 정치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할 때 '호남정치'는 곧 '김대중 정신의 계승'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천정배가 '뉴DJ'를 언급한 이유도 호남정치가 김대중 정신의 맥을 잇는 것이라는 의미로 보입니다. 또 아크로에서도 '호남정치'를 부르짖는 분들이 노무현 정부에서의 호남 홀대와 더불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북송금에 대한 특검 등에 상당한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볼 때도 '호남정치'란 곧 '김대중 정신'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김대중 정신'은 뭐냐는 의문이 남습니다만, 일반적으로 '민주주의의 진전'과 '대북 포용정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김대중 자서전을 보니까 김 전 대통령이 많은 지면을 할해한 부분도 민주주의와 대북포용정책이었던 것으로 압니다. 따라서 '호남정치'란 호남이 중심이 되어 김대중 정신을 계승하고 정권교체의 주춧돌이 되겠다고 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호남정치'는 단순히 호남의 제몫찾기를 떠나 호남이 또한번 진보진영의 중심축이 되어 민주주의를 보다 심화시키고 평화적인 남북통일의 기반조성에 일조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판단합니다.  


저는 '호남정치'가 성공적으로 복원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첫째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능가하는 정치인이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호남정치'가 한국 정치발전에 기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선 첫째 조건부터 살펴 보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행태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극명하게 엇갈립니다만 대단히 뛰어난 정치인이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정치적 테크닉과 카리스마가 탁월했습니다. 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정치적 수단의 활용에 있어서 그를 따라갈 사람이 거의 없다고 봅니다. 문제는 그러한 그의 정치적 테크닉과 카리스마가 하루이틀에 형성된 것이고 아니고 수 십년에 걸쳐 만들어졌다는 사실입니다. 또 무엇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호남의 상징이 된 것은 고 박정희 대통령에 의한 정치적 핍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현 정치의 상황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선생님'으로 만들어진 시대와는 전혀 다릅니다. 지금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부르짖던 민주화도 많이 진척되었기 때문에 '민주주의' 담론으로는 더이상 통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천정배가 단순히 사람만 키운다고 해서 호남정치의 부활이 달성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물의 개인적 비르투(virtu)도 중요하지만 정치환경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두번째로, '호남정치'의 복원은 한국 정치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동안 한국정치의 가장 큰 병폐 중의 하나가 인물 중심의 정치, 지역 중심의 정치였습니다. 한국 정치는 제도에 의해서 확립되고 질서정연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물에 따라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고 있고 지역에 의한 분할정치가 이루어져 왔죠. 즉 한국정치는 정치적 신념과 가치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권력과 이익에 따른 이합집산이 이루어진 행태였습니다. 그러다보니 같은 당 안에서도 우파와 좌파, 보수와 진보가 뒤섞여 잡탕 정당이 되기 일쑤이고 각 정당 간의 정책적 차이가 거의 없을 정도였습니다. 정치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념과 가치에 의한 정치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호남정치'의 복원이 이념과 가치를 지향하는 정치가 아니라 또하나의 인물 정당, 지역 정당으로 고착화되면 한국 정치는 발전이 아니라 퇴행화되는 것입니다. 호남정치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형성되고 한국정치 발전에 기여하려면 단순한 호남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정치가 아니라 제대로 된 진보정치, 개혁정치를 추구하기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동안 한국의 진보는 무조건적인 반대와 투쟁에 익숙해 있었습니다.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고 정책을 통한 경쟁이 아니라 보수와 우파에 무조건 반대함으로써 자신들의 입지를 구축해 왔죠. 한국의 진보는 1980년 대의 운동권적 투쟁방식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만약 '호남정치'가 성숙한 민주주의를 지향하지 않고 과거의 천민민주주의 방식을 답습한다면 호남정치의 복원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호남정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김대중 전 대통령을 잇는 정치인이 나타나 인물 중심의 패권정치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화된 정치, 성숙한 민주주의를 구축하는 데 이바지하는 정치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처럼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극한적인 대결을 선호하고 대중을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도구화하면 호남정치는 국민들의 불신과 불만을 사게 될 것이고 호남을 고립화시켜 또한번 좌절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천정배가 명심해야 하는 것은, 호남에서 30석을 얻어서 호남의 맹주로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 진보, 대안있는 정책정당, 진일보한 정치를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천정배는 욕심을 버려야 할 것입니다. 천정배는 스스로 '광주 서을에 참신한 인물이 공천되었다면 내가 어떻게 출마할 생각을 했겠느냐"고 했습니다. 즉 천정배는 자신이 당선된 것은 자신이 훌륭하다거나 '호남정치'를 이끌 적임자라서가 아니라 새정연의 공천 실패에 기인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입니다. 따라서 천정배는 자신의 약속처럼 후배를 키우는데 전력을 다해야지 행여나 권력욕망에 사로잡혀 총선이 끝난 후 새정연과 담합을 모색한다든가, 대통령병에 걸려 출마를 저울질하는 추태를 부려서는 안 됩니다. 저는 원조 친노였던 천정배가 '호남정치'를 외치면서 과거를 진지하게 반성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습니다. 자신의 과거는 반성하지 않고 호남을 볼모로 자신의 정치적 욕심을 달성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많이 있습니다. 따라서 천정배는 세간의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정말로 '사심없이' 임해야 합니다. 그것만이 호남정치가 대한민국 정치의 망국병인 '지역주의의 복원'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