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4.29 재‧보궐선거의 성격이 ‘누구를 뽑느냐’가 아닌, ‘누구를 떨어뜨리느냐’는 문제였다. 선거의 판세를 좌우하는 인물과 이슈, 구도가 모두 그랬다.

 

선거운동 과정에서는 뚜렷하게 이슈화되지 않았지만 이번 재‧보궐선거는 통합진보당의 해산에 따른 후속조치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 정당 해산 판결의 정당성을 유권자에게 묻겠다는 전 통진당 소속 후보들은 말할 것도 없고 선거 연대의 차원에서 통합진보당 측의 국회 진입을 도와준 새정치연합 후보들 역시 이번 재‧보궐선거를 통해 유권자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성완종 추문, 세월호 사건 수습 등도 이번 재‧보궐선거의 심판대에 오른 사안들이다. 그런 점에서 현정권 심판이라는 이슈를 내걸었던 새정치연합과 문재인이 오히려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의 심판대에 올랐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인물 측면에서는 그런 성격이 더욱 두드러졌다. 정동영과 천정배 특히 광주서을 천정배의 출마는 호남 유권자들에게 직접 “친노 정치세력을 계속 호남의 대표자로 용인할 것이냐?”를 묻는 성격이 강했다. 친노 세력도 심판을 피할 수 없었지만, 호남의 유권자들도 더 이상 선택을 미룰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무엇보다도 4 대 0이라는 선거 결과가 ‘누구를 떨어뜨리느냐가 문제’라는 이번 재‧보궐선거의 성격을 명확하게 입증해준다. 좋은 후보를 뽑아서 국회에 보내는 것이 유권자들의 표심을 움직이는 핵심 동기였다면 4 대 0이라는 선거 결과는 나오기 어렵다. 좋은 후보가 특정 정당에만 몰려있을 수도 없는데다, 정치 경제 사회적인 이해관계가 각각 다른 유권자들의 선택은 현실적으로 다양하게 분산되는 것이 정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거 결과는 4 대 0으로 나타났다. 승리했다는 새누리당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번 선거는 그냥 3승1패의 결과이다. 하지만 이번 선거 결과를 3대1이라는 말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그냥 4 대 0이다. 간단히 말해서 이번 선거는 새정치연합의 친노세력이 전 선거구에서 패배했다는 의미로 다들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분석을 뒷받침하는 것이 광주서을의 개표 결과이다. 무소속 천정배 후보가 52.37%, 새정치연합의 조영택 후보가 29.8% 득표했다. 22.57%포인트 차이이다. 성남중원의 신상진 새누리당 후보도 55.9% 득표로 2위 정환석 새정치연합 후보의 35.62%보다 20.28%포인트 앞섰지만 천정배 후보만큼의 차이는 아니다. 신상진 후보가 거대 여당의 막강한 지원을 등에 업었다는 것, 무소속 천정배 후보는 지역의 여당이라고 할 수 있는 새정치연합의 거당적인 공격과 싸워야 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천정배 후보의 득표가 더욱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표의 집중 현상과 압도적인 득표 차이는 그만큼 선거에 반영된 유권자의 요구가 절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광주서을이 대표적인 경우지만 이번 재‧보궐선거의 4개 선거구 가운데 3개 선거구가 원래 야권 우세지역으로 분류됐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번 선거의 4 대 0 결과는 유권자들이 ‘새정치연합에는 더 이상 표를 줄 수 없다’는, 일종의 퇴장선고를 내린 것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표면적으로는 새정치연합 심판이지만 실제 내용은 새정치연합을 장악하고 있는 친노 세력에 대한 거부이다. 명실상부한 친노의 좌장이자 대주주, 대표주자인 문재인이 새정치연합의 대표로서 당 운영의 전면에 등장하고 나서 치른 첫 선거라는 점에서 그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광주서을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천정배가 출마 직전까지 새정치연합 소속이었고, 친노 세력과의 갈등 속에서 탈당했다는 사실도 이 점을 확인해준다. 천정배가 호남정치의 복원을 내걸고 광주에서 정치적인 재기를 모색해왔지만 실제로 그에게 대중적인 지지가 몰리고 세력이 갖춰진 것은 그가 새정치연합 탈당을 통해 ‘반노’ 지향이라는 것을 분명히 한 뒤부터였다. 지금 호남 유권자들이 자신을 대변한다고 나서는 정치인들에게 가장 먼저 물어보는 것이 이것이다.

 

“너도 친노냐? 그러면 됐고, 또 누구 없나?”

 

인터넷 유행어식으로 말하자면 ‘네다노(네, 다음 노빠)’라고 불릴만한 호남 유권자의 이런 심리가 느닷없는 현상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2년여 전에 문재인 대선후보를 압도적으로 지지했고, 지난해 7.30 재‧보궐선거에서도 ‘이변’으로 해석된 순천 곡성의 이정현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새정치연합 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지 않았던 것이 호남의 표심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에서 완전한 평지돌출 현상은 없다. 특이하게 보이는 현상도 이면에는 반드시 그럴만한 배경과 원인, 맥락이 작용하고 있다. 이런 요인들은 평소에 일정한 신호음을 울리게 된다. 이런 신호음에 주의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저런 현상이 표면화될 때 이것을 이변이니, 평지돌출이니 하고 부를 뿐이다.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호남과 친노의 관계는 오랜 악연으로 점철돼왔다. 호남의 지지를 기반으로 집권한 노무현은 민주당 분당과 대북송금 특검에 이어 대연정 제안으로 호남 유권자들의 분노와 좌절을 부채질했다. 2007년 대선 때는 정동영이 아니라 사실상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를 지원했다는 내용이 최근 보도되기도 했다.

 

노무현의 자살로 친노가 정치적으로 부활한 뒤에도 이런 관계는 변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끊임없이 악화일로를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친노를 비롯한 새정치연합 정치인들은 표는 호남에서 얻으면서 호남의 이익을 위해서는 노력하지 않고 심지어 호남에 대한 폄하와 왕따를 통해서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행보를 계속해왔다.

 

새정치연합이 모바일선거나 여론조사를 통해 주요 선거의 후보 등을 선출하는 것은 권리당원의 다수를 차지하는 호남 출신의 권한을 축소하겠다는 의도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2.8 전당대회에서는 선거 직전에 문재인에게 유리하게 경선 룰을 바꾸기도 했다. 권리당원의 선택은 문재인이 아닌 박지원이었다. 무조건 친노의 승리라는 결론이 도출될 수밖에 없는 새정치연합의 경선은 관악을에서도 김희철의 패배와 정태호의 승리 그리고 유권자의 분노와 외면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작년 7.30 재‧보궐선거에서 이정현의 승리에 이어 이번 4.29의 결과는 호남 유권자들이 더 이상 친노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해석해야 한다. 정치판을 축구장에 비유하자면 일종의 퇴장명령, 레드카드를 내민 것이다. 130석의 국회의석을 보유한 제1야당에게는 이런 신호음이 들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내년 4월 치러지는 20대 총선에서 새정치연합 출마자들 특히 호남지역 출마자들은 “나는 절대 노무현이나 문재인과 가깝지 않다”는 얘기를 목이 터지도록 외쳐야 할 가능성이 크다. 노무현이나 문재인과 함께 찍은 사진 한 장이라도 없으면 야당 정치인으로서 명함 내밀기도 힘들었던 상황이 180도 바뀌게 된다는 얘기이다.

 

유권자들에게는 선거에서 행사한 한 표도 일종의 투자나 마찬가지다. 주식시장에서 산 주식이나 마찬가지로 함부로 버리기 어려운 가치를 지닌다는 얘기이다. 아니, 주식시장에서 산 주식은 손절매라도 해서 비교적 쉽게 현금화할 수 있지만 선거에서 행사한 한 표는 그럴 수도 없다. 호남 유권자들도 마찬가지다. 김대중의 민주당 시절부터 이 당을 지지해온 그 투자의 이력 때문에 쉽사리 새정치연합에 대한 정을 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동안 내가 던져온 한 표를 부인하라는 얘기인가?” 이런 심리가 작용한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이번 4.29 재‧보궐선거는 호남 유권자들의 그런 심리, 새정치연합을 지지해왔던 심리적 명분의 마지노선마저도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무한정 보내줬던 애정과 지지가 배신당한 반대급부는 애초부터 애정도 관심도 없었던 대상에 대한 외면보다 훨씬 격렬하고 잔인하고 무자비하다. 앞으로 호남 유권자는 “제일 먼저 친노 정치인들부터 떨어트린다”는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이다. 이 분노는 아마 친노 정치인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 될 것으로 본다.

 

호남 유권자들이 그동안 친노를 본격 외면하기 어려웠던 또 다른 이유로 고립에 대한 호남의 절대적인 공포심을 들 수 있다. 이 나라 주류들이 노골적으로 호남을 고립시키고 왕따시키는 상황에서 호남 사람들은 자신들의 선택을 호남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동조해주고 지지해주는 것을 간절하게 바란다.

 

친노 세력이 객관적인 영향력에서 절대 열세인 상황에서도 구 민주계 등에 비해 압도적인 당내 지분을 챙길 수 있었던 것이 바로 호남 사람들의 이런 공포심을 최대한 악용하는 수법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호남 사람들의 약점을 건드리는 공갈 협박 무기가 먹혀들었던 것이다. 노무현 이후 무려 10여년 이상 친노 세력은 이 무기를 조자룡 헌 창 쓰듯 휘둘러왔다.

 

이제 그 무기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된 것이다. 호남 유권자들끼리도 친노 세력과 문재인에 대한 불만을 대놓고 말하지 못하던 자기검열과 금기가 이번 4.29 재‧보궐선거를 계기로 깨진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파장은 앞으로 갈수록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더욱 큰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단순히 정치권으로 국한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번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한겨레신문 곽병찬이 쓴 칼럼이 보여주는 것처럼 친노가 정치권에서 유지하는 영향력은 언론과 문화, 운동권 원로 등의 무조건적 지지에 힘입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공생관계를 승인하고 지탱해준 최종적인 존립기반이 바로 호남의 무조건적인 지지였다. 이것이 현재 친노가 누리는 모든 영향력의 기반인 것이다.

 

호남이 친노를 외면하기 시작할 경우 친노의 영향력을 유지해왔던 카르텔은 붕괴의 위험에 직면한다. 그걸 잘 알기 때문에 곽병찬의 칼럼 같은 글이 나오는 것이다. 알량하나마 기득권을 누리는 자들의 반응은 예외가 없다.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린다.

 

새정치연합의 친노 패권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트렌드이다. 호남에서 친노와 문재인 그리고 노무현에 대한 인식은 지금까지 표면에 드러났던 것과는 180도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얼마나 빠르게 진전되느냐 느리게 진전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천정배 등이 주도하는 호남정치 복원이 어떤 성과를 거두느냐에 따라 구체적인 양상은 달라지겠지만, 커다란 흐름이 바뀌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야권과 호남, 개혁진보 진영의 대표주자가 바뀌고 있다는 얘기이다. 친노는 이제 물러나야 하고, 물러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