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인의 얘기를 들어두면 어떤 상황에서 적절하게 써먹을 때가 있어요. 슬라보예 지젝이 동영상에서 말하는 내용은 이런 거예요. Political correctness에 집착하는 것이 오히려 산통을 다 깨거나 소통에서 걸림돌이 될 때도 있다는 얘기인데요. 심지어는 political correctness가 전체주의의 압박보다 더 심한 심리적 부담감을 주는 경우도 있다고 이야기하죠. 

이를테면, 때는 일요일 오후예요. 권위적인 아빠가 어린 아들에게 오늘 할머니 뵈러 가니 그리 알고 있으라고 명령을 내릴 때 아들이 느끼는 심리적 압박감과, 권위적이지 않은 아빠가 네가 할머니를 좋아하니 강요는 않겠다만 할머니를 오늘 뵈러 가는 것이 어떻겠냐 물어보는 경우 아들이 느끼는 심리적 압박을 비교했을 때 오히려 권위적이지 않은 아빠의, 명령 아닌 제안이 아들에게 주는 심리적 부담감이 더 클 수도 있어요. 왜냐면 후자에서 아빠는 할머니를 방문할 것을 압박하는 것은 물론 할머니를 즐거운 마음으로 방문해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내 기분까지 강요하는 상황이거든요. 누군가가 내가 어떻게 느껴야하는가를 강요하는 상황(political correctness를 강요하는 상황)은 그 어떤 억압보다 크게 다가올 수 있어요. 

지젝은 말해요. 전체주의(totalitarianism)은 '시끄럿, 내가 시키는대로만 해라'가 아니라고요(이것은 전통적인 의미의 전체주의). 요즘의 전체주의는 '네가 원하는 바를 내가 더 잘 안다'와 같은 접근이라고요. 다르게 말하면 '내가 말하는 이 방식이 바로 네가 마땅히 느껴야하는 방식이다'라고 접근하는 것이죠. 그 예로 담배를 들었어요. 담배는 몸에 매우 해롭죠. 그래서 한국 같은 경우 드라마에도 담배피는 장면이 잘 안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어떤 항공사는 전자담배조차도 금지하고 있다고 하는군요. 지젝 왈, 전자담배를 금지하는 이유를 살펴보면 이래요. 물론 전자담배도 몸에 해롭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연기를 피우는 담배와 비교했을 때 그 유해성에 많은 차이가 있어요. 굳이 전자담배까지 금지시키는 항공사의 이유에는 일면, 담배라는 유해한 물질에 탐닉하는 모습을 공공장소에 드러내는 행위는 자기절제라는 가치에 위배되는, 하나의 비윤리적 행위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인 거예요. 그래서 단지 불담배를 금지시키는 것에서 더 나아가 전자담배까지 금지시키는 규범은 전통적 의미의 전체주의의 성격을 띠는 것이 아니라 포스트모더니즘적 전체주의의 성격을 약간 띤다고 볼 수 있는 거죠. 지젝 자신은 애연가가 아니지만 대중 속에 퍼진 담배포비아를 보고 이것이 단지 순수하게 과학적인 팩트에 의한 반응일 뿐이냐 의문을 제기해 본 거예요. 

이런 철저한 correctness가 인종차별이라는 개념에까지 스며들면 오히려 불통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그는 얘기해요. 인종차별적 농담은 물론 그 자체로 모욕적인 언사고 매우 나빠요. 그치만 경우에 따라 인종차별을 담은 농담이 분위기를 오히려 화기애애하게 만들거나 사람들 사이의 경계를 푸는 아이스브레이커 역할을 하는 경우도 분명 존재해요. 지젝 자신도 사람들과 더티한 농담을 아무렇지도 않게 주고 받곤 하죠. 꼭 다른 인종이 아니더라도 지젝의 출신지와는 긴장을 두고 있는 타지역 지인들과의 사이에서요. 그런 농담이 항상 연대감을 파괴하는 것은 아녜요. 오히려 강화시켜주기도 해요.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 정색하며 political correctness를 철저하게 고수한다면 오히려 사이가 더 어색해져 버리고 말 거예요. 그는 계속 이어가길, 타국이나 타문화지역에서 온 이들과 만날 때면 음식이 어떠니 날씨가 어떠니라는 피상적인 대화보다는 오히려 dirty jokes로 푸하하 웃어버리는 분위기를 선호한다고 해요. It's a great art how to do it => 지젝은 이렇게 표현하는데 politically incorrect한 농담이라도 매우 센스있게 하는 사람이 있어요. 저는 이 부분을 듣고 '무명전사'님이 생각났어요. 한 때 무명전사님이 친한 친구들(경상도 전라도 친구) 사이에서 주고 받은 농담을 풀었다가 집단포화를 맞으셨는데요. 이 상황이 바로 지젝이 설명하는 상황이었을 거예요. 이해심을 발휘하면 이런 경우가 없지는 않잖아요. 아크로는 political correctness를 현실세계보다 까다롭게 추구하는 토론장이다 보니 무명전사님이 공격을 많이 받으셨던 거죠. 

이 글을 굳이 정사게에 올리는 이유는 세월호가 생각났기 때문이에요. 세월호사건을 정치와 뚝 떼어놓고 볼 수 있다면 우리 국민 대다수는 비극을 통감할 거예요.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아니 제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인지도 모르겠네요. 그것은 political correctness에 결박당해서 소통을 시도하기가 매우 어려워졌다는 거예요. 제가, 4월 16일 세월호 추모일을 앞두고 시간적 여유없이 해외순방계획을 서둘러 세운 박근혜를 두고 격한 말을 했는데요. 이에 대해 침묵하는 보수를 질타했을 때 그 글을 읽은 보수는 아마 제가 할머니댁을 방문할 것을 좋아하길 강요하는 전체주의자로 느껴졌을 수도 있을 거예요. 저 또한 압박감을 느낍니다. 시민/유가족들과 경찰이 충돌하는 동영상을 보면서 박근혜를 그렇게 욕해 놓고도 '도대체 저분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저 스스로 답하지 못하고 있는 걸 저도 알아요. 문제가 무엇이길래 이렇게까지 충돌해야하는가에 대한 답을 알지도 못하면서 저는 현 정부를 비난했는데요. 이건 문제가 없다는 말이 아니에요. 논리적으로 유가족들이 절규하는 이유를 모르면서 그들에 공감할 순 없는 거예요. 맹목적이지 않고선 그럴 순 없는 거죠. 정부시행령과 유가족의 진상규명요구의 차이가 분명하게 무엇이며 어느 쪽의 주장이 더 상식적인지 저는 알지 못해요. 기사에 나와 있지만 읽어도 정당성을 제대로 이해하기란 법률전문가나 상당한 식자가 아니면 어렵지 않나란 생각도 들어요. 그렇다면 제가 맹목적이었다는 결론이 나와요. 그리고 제가 진심으로 느끼는 압박은 절규하는 유가족들을 목도하면서 political correctness를 끊임없이 강요당하는 듯한 부담감을 느낄 때예요. 정부가 신뢰를 주지 못하는 이유가 크지만 이 피로감은 상당합니다. 특히나 유가족이신 김영오아버님이 단식농성을 오랜 시간 끌며 제게 가한 political correctness는 대단했었죠... 눈물이 멈추지 않던 온라인상의 아짐마들도 마찬가지구요. 이 압박감에서 벗어나고 싶어서라도 정부가 유가족들과 소통해주길 바라는 것도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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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igthink.com/videos/slavoj-zizek-political-correctness-is-fake (여기 가시면 영어 script 찾을 수 있어요)

"Somewhere unwritten poems wait, like lonely lakes not seen by any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