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다룬 관저의 100시간이라는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프레시안에 책을 소개하는 내용을 보니까 어쩌면 우리나라와 닮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름 안전이나 재난대비는 우리보다 훨 선진국이라고 생각한 일본의 실상을 보니 너무나 형편없는데요
문제는 사고에 대처하는 책임자들이 우리나라 세월호 사건의 경우와 같았습니다.
도쿄 전력이나 세월호나 해경이나 안전위원회나 

일본도 이중 삼중으로 안전하다고 원전 마피아들이 주장하고 기구를 만들었지만 결정적일 때 그들은 아무것도 모르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보다 훨씬 철저하고 시스템이나 마인드가 재난에 훈련되었다고 보는 일본이 이런정도인데
무엇보다 사고전 일본의 원전 마피아들의 주장과 생각이 지금 우리나라 원전 마피아들과 똑 같다는데 소름이 끼칩니다

 총리 관저를 사고 수습의 컨트롤 타워로 세울 때에는 담당 관료와 전문가들의 지원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 이들을 통해 판단을 위한 최소한의 기본 정보가 제공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이는 아무리 보아도 그렇게 무리한 기대가 아니다. 우리나라를 떠올려 대입해 보면 원자력안전·보안원(이하 보안원) →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원자력안전위원회 → 원자력안전위원회, 도쿄전력 → 한국수력원자력, 문부과학성 → 미래창조과학부인 셈인데, 한국에서도 이들은 하나같이 원자력 전문가를 자임하며 온갖 핵발전 관련 의사 결정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일본 역시 그랬다. 

그러나 이 기대는 무참히 깨졌다. 안전 신화를 외치며 위험을 부정(否定)해 온 그들이 후쿠시마 사고 직후 100시간을 가득 채운 대표적인 말은 "모르겠습니다", "못 들었는데요", "그건 어디 어디 소관입니다", 그리고 "……(침묵)"이었다. 

마다라메(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는 이렇게 설명한다. (중략) "나로서는 낙관적인 관측을 했던 것인데, '보안원이 잘해 주고 있겠지. 그러면 관저에 굳이 있을 필요가 없겠다' 싶어서…." (42쪽)

"평소에 하는 방재 훈련처럼, 전문가들이 나름 논의를 해서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결정만 내려 주면 된다고 믿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보안원) 히라오카 차장도 아무 말도 없으니, (…) 도쿄전력의 가와마타 원자력품질·안전부장은 말을 거의 안 했어요." (50쪽) 

"지금 폭발음이 났습니다. 진동도 있었다고 합니다. 흰 연기 같은 물질이 날아다니는 것 같습니다. 경찰관이 목격했다고 합니다." (…) 이토(위기관리감)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5층의 총리 집무실로 향하기 전에 보안원 사람에게 상황을 물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똑같은 대답이었다. "모르겠습니다." "못 들었는데요." (111쪽)

이런 식이다. 


있어서는 안 될, 부정(不正)으로 가득한 100시간 

또한 필요한 정보는 없거나, 있는 정보도 제대로 된 경우가 드물었다. 이를테면, 초기 회의에서는 핵발전소의 도면도 없이 현장에서 떠난 지 한참 된 원자력안전위원장과 도쿄전력 고문의 '기억'에 의존해 판단이 이루어졌고, 방송에서 엄연히 폭발 영상이 나온 뒤인데도 도쿄전력이나 현장에서는 이것이 폭발이다 아니다와 같은 보고조차 없었다. 텔레비전과 기억만으로 초기 대응책을 모색하는 상황에 원자력안전위원장조차 "나도 섬뜩합니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관료와 전문가들의 무능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수소 폭발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호언장담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주민 피난을 위해서는 방출된 방사성물질의 비산 범위를 예측하는 SPEEDI 데이터를 활용하는 것이 방사능 방재의 기본 중의 기본이었지만 데이터는 관저에 전달되지 않았고 피난 구역을 정하는 어떠한 회의에서도 간 총리는 관료와 전문가로부터 SPEEDI의 존재를 듣지 못했다. 그 가운데 중대 결단을 내렸다. 도움이 될 만한 제안을 하는 이도 없었다. 

발전차는 후쿠시마 제1원전에 도착했지만, 이번에는 발전차에서 원전까지 연결할 케이블이 부족했다. 애써 조달한 발전차가 무용지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 총리는 보안원·안전위원회·도쿄전력의 전문가들에게 물었다. 아무도 총리와 눈을 맞추지 못한 채 묵묵부답이었다. 참지 못한 시모무라가 입을 뗐다. "발전기를 보내면 그걸 원전에 연결해야 된다는 얘기 정도는 미리 했어야죠. 생각해 보세요. 지금 일어나는 현상의 다음, 그다음을 전문가들이 예상해 줘야 해요. 뭐가 필요한지 아랫사람에게 확인하든지, 제발 무슨 말을 좀 해주세요." 전문가들은 침묵을 지켰다. 시모무라는 이렇게 회상한다. "결국 정치인들이 모든 판단을 했죠. 도쿄전력과 보안원,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전문가들은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이제 곧 냉각수가 바닥날 겁니다"라는 식으로 얘기하는 거예요. 그러면 "일찍 얘기했어야지!" 하면서 허둥대는 식이었던 거죠. (…) 할 수 없이 총리가 "지금 당장 아는 사람한테 물어 보게"라고 했죠. 그렇게까지 얘기하는데도 안 움직이나 싶어 기가 막혀서 쳐다봤는데, "네" 하는 대답만 하고 꼼짝도 안 하더라고요. (…) 옆에 가서 슬쩍 말했죠. "손에 든 휴대전화를 들어 올려 다이얼 누르고 총리가 지금 하신 말씀을 물어 봐요"라고. 그랬더니 말한 대로 하더라고요. (63∼64쪽)

그리고 무책임의 최고 절정은 도쿄전력이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던 100시간의 거의 대부분을 무응답·무능력·무대책으로 일관하던 도쿄전력이 가장 절실하게 무언가를 먼저 제안하고 유일하게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처한 것은, 원전 철수 즉 원전을 포기하겠다는 것이었다.

"도쿄전력이 원전 사고 현장에서 철수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습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간 총리가 받아쳤다. "철수하면 어찌 되는지 알고 하는 소린가? 철수 따위는 있을 수 없어, 그렇지 않나?" (…) (도쿄전력으로 찾아간) 간은 이렇게 훈시했다. 비서관 메모에서 채록한 내용이다. "(…) 여러분은 당사자입니다. 목숨을 거세요. (…) 일본이 무너질지도 모르는 이때, 철수는 있을 수 없습니다. 회장·사장도 각오해야 합니다. 60세 이상이 현지에 가면 됩니다. 나는 그런 각오로 하겠습니다. 철수는 있을 수 없습니다. 철수하면 도쿄전력은 반드시 망할 겁니다." (223∼234쪽) 

위와 같은 총리의 강력한 발언에도 불구하고 도쿄전력의 철수 시도는 끈질기게 계속되었다.

15일에 도쿄전력이 본사에서 대기하던 기자들에게 나누어 준 문서의 표제에는 "후쿠시마의 제1원자력발전소의 직원 이동에 관해"라고 되어 있었다. (…) 위기에 처한 플랜트의 제어를 실질적으로 포기했는지 여부가 본질이다. 거기다 본부 기능까지 철수해 현장에 있던 사람들을 어디론가 피신시키려고 했다. 플랜트의 제어에서 두 손 두 발 다 든 것이라면 '전원'이 아니든, '일시적'이든, 더 나아가 '대피'라는 단어를 쓰든 그것은 원전을 포기하는 것이다. 도쿄전력은 일촉즉발의 원전을 앞에 두고 제어를 포기하고 방기하려 했다. (240∼241쪽)

결국 이는 간 총리가 도쿄전력에 사고대책통합본부를 두기로 한 결정에 가장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뿐만 아니라 간 총리는 결국 보안원, 안전위원회, 도쿄전력에서 정보도 제언도 책임도 기대할 수 없게 되자 개인적 인맥을 동원해 함께 상황을 판단하고 해결책을 찾을 별도 부대를 가동시키기도 했다. 핵발전에 대해 비판적이면 '잘 몰라서 그런다'는 식의 무시를 일삼던 핵마피아 전문가들은, 결국은 그들이 아무것도 몰랐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들은 완전히 무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