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메이지정부가 새로운 개혁정치를 해나가는 데는, 무엇보다도 많은 자금이 필요했다. 따라서 1873년 정부는 세수입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농민들로부터 세금을 거두는 방법을 바꿨다(地租改正). 그것은 우선 지주나 자작농에게 지권을 나누어 주고, 에도시대에 애매했던 토지의 소유권을 확실히 만든 다음, 그 지권을 갖고 있는 자에게 그 토지에 상당하는 만큼의 세금을 현금으로 납입하게 했다. 그러나 이 개정은, 납입하는 세금이 에도시대와 같은 정도의 중과세였기 때문에, 농민들 중에는 세금을 낼 수 없어서 토지를 파는 사람도 생겨났고, 또 토지를 갖지 못하는 일반 소작인은 수확한 쌀의 50%를 소작료로서 지주에게 내어야만 했다. 게다가 에도시대에는 부락에서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던 토지를, 신정부가 모두 빼앗아가 버렸기 때문에 농민이 이용할 수 있는 토지는 전시대보다 더 적어져, 대다수 농민의 생활은 에도시대와 별반 다르지 않은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http://www.guidejapan.net/History/meiji.html


 조선

 소작료는 생산량에 대한 비율로 환산하면 조선시대에는 30∼50%였고, 소작인은 종자·비료·농기구와 세금을 부담해야 했다. 또, 일제강점하에서는 40∼60%였고, 세금만은 지주와 소작인 단독, 혹은 둘이 함께 부담하였다. 이렇게 소작료가 증액된 이유는 생산력의 증대도 있었지만, 지주들이 더욱 상업적인 이득을 꾀하였던 까닭도 있다.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dataType=0201&contents_id=E0050873


 잠정적 결론:  이상의 자료를 따른다면 <중세시대 농노를 빼고는 조선처럼 노예제 사회 그리고 소작료가 비싼 경우가 없습니다.>라는 흐강님의 주장은 무지와 억측에 근거한 '망상'에 불과한 것이었음. 

 멀리 갈 것 없이 옆동네 일본만 해도 조선에 비해 나을 게 없었는데, 조선처럼 소작료가 높은 나라가 없었단 말은 허랑방탕한 주장이지요.

 제 말 깨고 싶으면 더 신빙성 높은 자료 갖다 주시기 바랍니다. 할 수 있다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