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등기소에 가면 브로커가 있었습니다. 요즘은 인터넷으로 다 되는 거 같던데 당시에는 직접가서 관련 서류를 발급받는데 여기서 꼭 브로커가 개입됐습니다. 실질적으로 개인이 가서 해도 되는데 어느 정도의 처리비만 내면 복잡한 서류 양식을 대신 써주곤 했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브로커와 등기소간 카르텔,  무지하고 어리버리한(?) 민원인들에 대한 눈치와 윽박이 있었겠죠. 정보 독점에서 오는.

 

법체계가 일본을 따랐기 때문에 행정 관련법 규정에도 해태” “양태” “비산등 알아 먹기도 힘든 용어가 나오고 또 그것 또한 한자, 정확하게는 일본식 한자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일반들이 법에 접근한다는게 사실상 등기소에서도 부터 막혔습니다. 즉 정보를 독점한 카르텔이 존재했고 이 카르텔은 어려운 법조 용어에서부터 시작한 것이죠. 결국 개인은 충분히 자력으로 할 수 있는 등기관련 발급조차 의지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는데 아마 김영삼, 김대중 정부때 사회 이슈화 되서 없어졌을 겁니다.

 

현재도 역시 법 서비스를 받는데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고 법조 카르텔이 유형무형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법 자체가 권력이 되는 현상이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것이죠. 이런 것은 다분히 후진적인 것이죠. 따라서 법조문이나 법 해석은 실체를 판단하고 규율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적 성격이지 모든 것을 판단하는 기준의 논거로는 사용하기 부적당합니다.

 

그리고 그 기준이란 것도 아랫글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고무줄 엿가락으로 그런 기준을 판단의 중요한 논거로 사용한다는 건 아니라고 봐야죠. 어떤 논거를 정당화하고 옹호하기 위한 법이 실질적으로 대중에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법은 현실에서 일어나는 실체적 관계를 해결해 줄 수만 있으면 되는 겁니다. 그걸 가져다 법리 논쟁을 벌인다던가 하는 건 제도권에서 하는 일이지 그걸 가져다 정당화 수단으로 삼는 건 아니죠.

 

대륙법계 하에서 법이라는 완장을 차고 법에 약한 일반인에게 무식” “어리버리모욕적인 언사 등 언어적 칼날을 휘두르는 것은 몰상식한 행윈데 이런게 쉽게 나올수가 있는 법 구조죠. 법 구조가 인식을 그렇게 만들고 있으니. 그러나 어쨋든 이 정도면 등기소 브로커를 넘어서는 겁니다. 모르면 알려줘서 처리하면 되는 것이지 그들만의 카르텔로 개인적 이익을 위해 법을 이용하는 것과 마찬가지죠.

 

이런 게 일어나는 이유가 당시 관념론의 독일에서 출발했던 대륙법계 법체계의 특이성과 당시 후진적 독일의 상황에서 기원하는 게 아닐까 추론합니다. 대륙법계에서는 탑다운식의 성문법전을 통해 법이 사건에 적용되는데 이 과정에서 손실이 일어나고 이 형식적 법치를 대표하는 독일의 법이 히틀러가 자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면서도 제어받지 않고 칼날을 휘두르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사용됩니다.

 

리걸 마인드 이런 용어가 나오는데 대륙법 법률체계에서 리걸 마인드가 중요할까요? 진정한 리걸 마인드라면 영미법계식의 자유로운 토론형식으로 법률의 적용보다는 실체 판단이 먼저일 겁니다.. 대륙법계에서는 사실관계에 판단보다는 법 적용이 일차적이고 법에 사실 관계를 때려 맞추는 것이죠. 여기서 전후좌우 없이 법을 달달 외운다는 말이 나오게 됩니다. 일단 외워야 뒷 수순으로 갈 수 있는 것이죠.

 

즉 대륙법계 법률 체계에서는 법을 안다고 해서 리걸마인드(사실적 지적논리)가 배양되는게 아니라 영미법계 식으로 실질적으로 사실관계를 파고 들어가는 훈련이 되어야 리걸 마인드라 덜지, 지적 논리가 파생되는 겁니다. 여기에 지성이 개입될 소지가 크고 따라서 인격적으로 존경받는 법조인이 나올 확률이 큽니다.

 

미국의 법조인과 한국의 법조인을 비교하면 그 차이가 확연합니다. 즉 사실관계에 파악에 전인적인 노력과 판단력을 사용하는 영미법계의 법조인과 대륙법계에서 단순히 법률에 사실관계를 때려 맞추는 식의 후진적 법체계에서 출발한 마인드가 대비되죠.

 

따라서 법조인 중에서도 논리적 정합성 떨어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것은 다분히 암기에 의한 그리고 다분히 트레이닝에 의한 법 적용이나 판단이 많기 때문입니다. 본질적으로 후진 독일에서 출발하고 법에 와서는 한계를 드러낸 관념론 철학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영미법계의 법조인에 비해 대륙법계의 법조인들은 단순한 기능인력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상 국가 발전의 도구로 성립한 대륙법계 성문법과 실제 대중의 권익과 재산권 보호를 위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영미법계의 판례법인 보통법(common law)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죠.

 

미국에서 변호사는 논리적 완결성이 최고 수준에 다다라야 합니다. 그래야 사건의 실체를 규율하는데 중요한 논리력에서 밀리지 않을 수가 있죠. 그러나 대륙법계에서는 누가 법조문 조항을 정확하게 적용 하는냐에 따라 달라지고 논리력이 들어갈 여지가 적어집니다.

 

따라서 법조인 그러면 지성인이라는 등식은 영미법계에서는 통할지 모르지만 대륙법계에서는 단순한 법 기술자에 가깝다는 것이죠. 여기서 지성인과 기술자간의 차이가 나옵니다. 따라서 미국과는 다르게 법을 가지고 완장질 하는 이유가 나오는 것은 실체적 관계를 밝히는데 고안된 영미법계보다 맹목적일 정도의 법적용 등 후진적 대륙법계 법체계와 그걸 가능케 했던 독일의 관념론이 한계 정도로 보면 됩니다.

 

대륙법 법체계를 논할 때 법조인이 최소한의 인문학적 지식이나 소양이 필요한 이유는 이 법체계에서 만들어 낸법 기술자들이 빠질 수 있는 단순 무식성을 커버하기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따라서 로스쿨 졸업성의 법 이해도가 떨어진다는 법조 카르텔의 우려는 인문학적 지식이나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소양으로 충분히 대체될 수 있고 이러한 대체물들이 영미법계 법원리, 법절차를 차츰 받아들이고 있는 한국에 다양화하는  실체 관계를 파악하고 규율하는데 더 나아 보입니다. 논리력을 기르는데 제약을 가하는 과도한 법  집착에서  벗어나서 실체관계 파악을 위한 인지적 능력을 해방시킬 수 있다는 말이죠. 사회가 갈수록 세분화되고 있는 시점에 당연한 귀결이기도 합니다.

 

결론적으로 당시 후졌던 독일을 기원으로 한 대륙법체계, 그 기초인 관념론이 법에 확장 됐을시의 한계 , 법에 사실관계을 꿰어 맞추고 그 법의 정합성에 따라 사실관계가 규정되는 현실에서, 이러한 법과 해석을 담보로 비법조인 일반논객을 향하여 "무식" 드립에, 사회현상을 논의마져 억압되는 마치 쌍팔년도의 등기소와 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건 아니라고 봅니다.


P.S.

법기술적으로는 무지하니 많은 지도편달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