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세월호다!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는 달라야 한다. 2

 

황인채

 

 

3. 자본주의 물신풍조를 바꿀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작가 기록단 홍은전 씨가 단원고 2학년 6반 신성호 학생의 어머니 정부자 님에게서 채록한 글이 마무리 되었을 쯤에 어머니께서 채록자에게 연락해 오셨다. “선생님 호성이가 쓴 시가 있는데 실어주시면 안 돼요?” 그 시를 읽은 채록자는 철철 울었다. 시에 나오는 밑동만 남은 나무가어머니 같고, 호성이가 그 나무를 끌어안고 있는 듯해서였다. 아래 그 시를 읽어 보자.

 

나무

 

신호성

 

새들의 보금자리가 되는 곳

식물들이 모여 살 수 있는 곳

이 작은 나무에서 누군가는 울고 웃었을 나무

이 나무를 베어 넘기려는 나무군은 누구인가

그것을 말리지 않는 우리는 무엇인가

밑동만 남은 나무는

물을 주어도 햇빛을 주어도 소용이 없다

추억을 지키고 싶다면

나무를 끌어안고 봐보아라.

 

나도 이 시를 읽고 눈물을 철철 흘렸다. 한참을 울고 나자 내 마음에서는 카타르시스 뒤에 오는 평안이 오고, 환한 빛과도 같은, 깨달음이나 계시와도 같은 느낌이 느껴지고, 그 느낌이 나에게 이 글을 쓰게 만들었다.

채록자 홍은전 씨는 채록을 하는 동안 어머니 정부자 님의 고통스러워하는 마음을 너무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에 밑동만 남은 나무가 어머님 같고, 그 어머니를 위로해 줄 사람은 신호성 학생밖에 없다고 생각하였기에 호성이가 그 나무를 끌어안고 있는 듯이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 시가 신호성 학생이 우리에게 보내준 선시(禪詩)처럼 느껴져다. “뜰 앞에 잣나무이니라.”고 한 화두가 떠올랐다.

 

어떤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물었다.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 무엇입니까?’ 이에 대답하기를 뜰 앞에 잣나무이니라.’ 하였는데, 이것이 화두로 이른바 격 밖의 선지(禪旨)이다. *(출처 : 법정스님이 번역한 휴정대사께서 쓴 책 선가귀감에서 인용)

 

나는 요가 수행자다. 그래서 바가바드기타라는 힌두교 경전을 읽었다. 이 경전 929절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나는 모든 존재에 대하여 평등하다. 나에게는 미운 것도 없고 고운 것도 없다. --- 그들은 내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다.” 불교에서도 일체는 융화요, 만법은 평등이라고 같은 뜻의 말을 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나무와 사람은 평등하고 나무와 사람은 하나라는 말이다. 그런데 나는 신호성 학생의 시에서도 그와 같은 뜻을 보고, ‘뜰 앞에 잣나무라는 화두를 연상했던 것이다. 그리고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을 나무와 사람을 평등하게 보는 법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었다고 받아들인 것이다.

 

서양철학에서는 다르게 말한다. 철학을 배우는 첫 시간에 인간이 동물과 어떻게 다른 가를 가르친다. 인간만이 도구를 쓰는 동물이라느니, 인간은 이성을 가진 동물이라느니 따위를 말한다. 인간은 동물보다 우월하다. 인간은 식물이나 무생물과는 비교해 볼 필요도 없는 고귀한 존재이다. 인간중심주의다.

 

이 인간중심주의(anthropocentrism)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세계관이 유물론적 세계관이다. 모든 것이 물질이요, 모든 것은 물질의 법칙에서 따라 기계적으로 변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세계관이라고도 부른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근대 산업사회를 가능하게 하였던 사고방식이었다. 자본주의를 가능하게 한 사고 방식이고 현대의 공산주의를 가능하게 하였던 사고방식이기도하다. 물질중심의 세계관 물신 숭배의 세계관 쾌락 중심의 세계관이다.

 

이 유물론적 세계관에도 장점은 있다. 자연을 물질로 보고, 감각기관을 신뢰하여 감각기관으로 자연을 관찰하여 자연의 특성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서 자연을 법칙을 찾아내서 자연을 지배할 수 있게 된 것 때문에 인류는 근대 산업혁명을 이룩하고 풍요로운 세상을 만들었다.

 

그런데 이 물질적인 풍요가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었느냐고 묻는다면 결코 그렇다고만 할 수는 없다고 대답하겠다. 오히려 물질적인 풍요가 오히려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었다. 국민이 주관적으로 느끼는 행복감이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선진국에 사는 사람들보다는 뱅글라데시나 부탄 같은 저개발국가에서 사는 가난한 사람들이 더욱 크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것을 알 수 있다.

 

산업사회에 사는 사람들의 불행한 모습에 대하여 간디가 쓴 마을 스와라지라는 책의 서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현대 경제구조들은 욕망의 충족, 욕망의 다양화 그리고 경제로부터 윤리를 분리를 하는 것을 그 뿌리로 삶고 있는데, 거대한 규모로 기계화하고, 중심에 집중하며, 복잡하게 조직화하고 있다. 그것들은 실업, 불완전 고용, 빈곤, 착취, 시장을 점유하기 위한 미친 질주, 그리고 원자재를 확보하기 위한 국가정복 등에 의해서 추악한 모습을 나타내었다. 경쟁, 갈등 그리고 계급투쟁들이 사회조직을 병들게 하고 있다. 그것들은 개인을 노예로 삶고, 사람을 단지 기계를 먹여 살리는 도구로 취급하며, 사람을 기계의 부속품으로 여긴다. 개인은 영혼을 죽이는 반복적인 작업 때문에 좋은 감수성을 잃었다. 그 결과로서 공장의 혹독한 작업에서 벗어나면 오락을 찾아, 타락을 부추기는 영화관과, 술집, 그리고 창녀촌으로 쏜살같이 달려간다.” *출처 : 마을 스와라지 제2http://blog.daum.net/icwhang/18

 

더 나아가서 과학과 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자본주의 선진국들과 구소련이나 중국 같은 공산주의 국가들이 원자 무기를 만들어서 인류가 인간의 손으로 멸망할 수도 있는 위험에 빠뜨렸으며, 그들이 자연을 수탈하여 생태계 파괴와 자원 고갈로 인류는 큰 위협 속에 빠졌다.

 

나는 내가 쓴 다른 글들에서도 위와 같은 생각들을 발표하였다.

아래의 글은 내가 연속으로 트위터(@ICWhang)에 올린 세 편의 글이다.

 

돈이 출세와 성공의 표준이 되는 세상. 자본주의 물신숭배가 신앙이 되어버린 세상,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 추악하게 쓰는 자가 존경받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부처님 앞에 머리 숙여 탐욕으로 더럽혀진 마음을 청결하게 해달라고 빕니다.” *201456

 

세월호 참사에 희생된 분들과 그 분들의 가족들에게 부처님의 가피가 함께하길 빕니다. 탐욕과 쾌락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살며 오직 돈 만이 최고라고 생각했던 우리의 전도된 가치관이 세월호 참사를 부른 원흉입니다. 청정하신 관세음 보살님 귀의 합니다.” *201456

 

전도된 가치관의 가장 높은 곳에 박근혜 대통령과 재벌 총수들과 관료들이 있다. 그들이 변해야 썩어빠진 이 나라가 생명과 평화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나라로 바뀐다. 그런데 누가 저들을 변화시킬 수 있단 말인가? 부처님께 머리 숙여 절하며 눈물 뿌린다.” *2014 57

 

나는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자본주의 물신 숭배가 신앙이 되어버린 세상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현재의 우리의 문제는 근대 산업사회가 일으킨 문제이고, 이 문제의 해결은 근대 산업사회의 깊은 곳에 놓인 가치관인 유물론적 세계관을 바꾸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도 사람도 물질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유물론적 세계관이다. 나는 이 세계관에서 나온 자연과학이나 사회과학도 불신한다. 그래서 최근 수년 동안 시간이 나면 노자의 사상, 불교 사상, 인도 요가 사상들을 공부하며, 유심론적 세계관과 유신론적 세계관을 배우며 내 사고 방식과 생활 습관을 수정하여 왔다. 그래서 때가 되면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신자유주의를 극복하고 평화 생태 복지국가를 건설하는 방법들에 대하여 글을 써서 인터넷에 올려 보고 싶다.” *출처: 황인채 블로그 국민모임과 정동영”, 인터넷 주소: “http://blog.daum.net/icwhang/19에서 인용

 

자본주의 세계에서는 돈이면 다다. 오직 돈이다. 돈은 쾌락이고 명예이며,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돈을 벌기 위해서 세상 모든 것을 상품을 생산하기 위한 도구로 생각한다. 만물이 돈을 위해서 존재한다. 나무는 당연히 돈벌이 수단이다. 광물도 생물도 모두 돈벌이의 수단일 뿐이다. 돈을 벌기 위해서 나무를 베는 일은 선이다.

 

열심히 나무를 베고 그것을 이용하여 상품을 만들어서 돈을 벌어라. 그런데 신성호 학생에게는 나무를 베는 것은 악이었다. 나무는 있는 그대로가 생명의 보금자리였다. 그래서 밑둥만 남은 나무를 끌어안고 바라보며, 사죄하고 싶었다. 어쩌면 울고 실었다.

 

자본주의 물신숭배와 탐욕은 드디어 인간도 돈벌이의 도구로만 본다. 인간은 돈을 버는 기계이고, 또한 돈벌이를 위한 자원이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사람이 죽어도 어쩔 수 없다. 왜 세월호는 참사를 일어났는가? 왜 세월호는 침몰하였는가? 돈 때문이었다. 세월호 참사는 살인이다. 돈이면 다라고 생각하는 자들이 만들어낸 미필적 고의 살인이다.

 

신성호 학생은 나무였다. 생명이었고 생명의 보금자리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탐욕스러운 자들의 더러운 욕망에 의해서 아직 다 자라지도 않은 나무로 밑동이 잘려서 죽었다. 나무를 벤 자가 신성호 학생도 죽였다. 그를 우리가 죽였다. 내가 죽였다. 우리와 나의 탐욕이 어린 학생을 죽였다. 나무 관세음보살!

 

나는 위에서 요가수행자라고 하였다. ‘마하르쉬라는 분을 스승으로 삼아서 요가를 닦는다. 마하르쉬님의 가르침에는 유심론적 세계관과 유신론적 세계관이 하나로 묶여 있고, 유신론에는 유일신론과 다신론이 하나로 묶여 있다. 인간과 세계를 영혼이라고 보는 사고방식이 유신론적인 세계관이고, 인간과 세계를 진아(眞我)라고 보는 사고방식이 유심론적 세계관이다.

 

이 세계관들에서는 인간과 나무를 평등하게 본다. 돈을 벌기 위해서 나무를 마구 베지 않는다.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집도 짓고 가구도 지어야 하기 때문에 나무를 베지 않을 수는 없지만 나무를 가려서 벤다. 우리의 탐욕을 줄여서 소박하고 검소하게 살아서 자연 훼손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우리가 죽으면 우리의 육신을 나무의 영양분으로 제공하여 나무를 키운다.

 

마하르쉬 님의 가르침과 같은 사고방식은 우리의 민속신앙이나 무속신앙, 불교에도 있었다. 바위나 산이나 나무나 동물이 숭배의 대상이고 신이었다. 산에는 산신령이 있고 산신령은 호랑이라는 영물을 타고 다녔다. 당산에는 당산나무가 있는데 마을을 지키는 신으로 추앙받았다. 구렁이가 업이라고 숭배되기도 하였다. 조상은 죽어서 조상신이 되었다. 아기는 죽어서 동자나 명두라는 신이 되었다. 그리고 천지신명이나 천지왕(天地王)이라고 하는 유일신도 다른 많은 신들과 모순이 없이 살고 있었다.

 

불교의 어떤 선승은 자신을 주인공이라고 부르며 진아(眞我)를 찾아서 진아 안에서 해탈을 얻었다. 천도교에서는 사람은 곧 한울이라고 보고, 한울은 또한 사람이었다. 그런 생각 속에서는 인간을 이윤을 얻기 위한 도구나 물질로 보는 생각이나 태도는 털끝만큼도 없었다. 그리고 이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가난하지만 행복했다.

 

나무를 스승으로 삼아서 나무의 인도로 행복한 삶은 찾은 사람이 있다. 야마오 산세이(1938-2001)라는 농부이자, 시인, 철학자, 구도자였던 그 사람에게 서른아홉에 일어난 일이다. 그는 일본 남쪽 야쿠시마 섬에서 성스러운 노인을 만났다. 그 노인은 수령 7,200년 된 거대한 삼나무다. 어느 날 그 노인은, 평생 정착하고 싶은 장소를 찾아 바다로 산으로 헤매던 그를 부른다. ‘너는 이 섬에서 살아야 한다. 이 섬에서 살면 평생을 안심하고 편안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라고. 무녀처럼 하늘의 소리를 들은 것은 아니었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그 나무가 주는 메시지를 느낀 산세이는 야쿠시마로 삶터를 옮기고 그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죽을 때까지 산다.” *출처 : 녹생평론 127225 페이지

 

시로 시작했으니 시로써 마무리 하겠다.

 

뜰 앞에 잣나무

 

황인채

 

잣나무가 진아로 서 있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으로, 지극한 행복으로

 

잣나무를 베어다 돈을 벌겠다는 자는 누구인가?

인간 백정인가?

아서라,

돈에 돈 인간 백정은 반드시 지옥에 떨어진다.

바닷물 지옥에 떨어진다.

돈은 바닷물이다. 마실수록 목을 더 마르게 하는 아편이다.

 

기어이,

잣나무는 베어졌는가?

밑동만 남고 살아졌는가.

어머님의 애끊는 통곡 소리에

산천도 따라 울고

초목도 몸부림치고

 

아직도

잣나무는 큰 스승으로 서 있었다.

거룩한 당산 나무로 서 있었다.

나는 잣나무님께 합장하였다.

잣나무 님 앞에 엎드려 절하고, 절하고,

세세토록 절하려니

스승님이여,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참사 없는 세상 열어 주소서!

 

이윽고

베어져 밑동만 남은 나무에서, 보이지 않는

잎이 나고, 꽃이 피고, 향기가 모락모락 피어난다.

어화, 덩실 춤을 추자

잣나무가 서있다, 하늘 끝까지 서기가 뻗치고

나무가 곧 한울님으로

끄떡없이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