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엔 모든 게 눈부시게 아름다와요

황인채

 호박꽃이 아침 햇살 아래 눈부시게 빛났다. 조금은 붉은빛이 도는 노랑 색 호박꽃이 더없이 아름다웠다. 작년 늦여름 아침 산책을 나섰던 길에서 발견한 호박꽃은 우리가 흔히 아름다운 꽃으로 치는 장미나 백합에 못지않은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호박꽃도 역시 아름다운데 왜 사람들은 못생긴 여자를 호박꽃이라고 부르지? 머리 속에 이런 의문이 떠올랐다.


 가장 아름답다는 장미꽃이나 백합꽃에는 열매가 없다. 그러나 미운 꽃으로 치는 호박꽃에는 열매가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호박꽃은 실속이 있는 꽃이다.

 집 울타리 밑에는 호박을 심어
 밭둑 쓸모없는 땅에도 호박을 심어
 불경기 허기지고 서러운 날에
 호박을 삶아서 배불리 먹고
 둥글둥글 둥근 세상
 호박 타령이라도 만들어 부를 꿈을 꾸며
 호박죽처럼 부푼 꿈에 겨워
 배시시 웃으며 살아나가요

 그날 나는 이런 노래라도 부르고 싶도록 호박꽃의 실속을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진심으로 호박꽃 자태가 주는 아름다움에 나도 몰래 깊이 빠져서 큰 즐거움을 느꼈을 뿐이다.


 호박꽃이 아름다웠다. 그냥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호박꽃을 보며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기쁨을 느꼈다. 이것은 아름다운 것을 찾아낸 기쁨이기보다는 신이 만든 세상에서 모든 것이 좋다는 신에 대한 고마움 같은 느낌이었다. 또는 문득 한 생각 깨우친 도가 높은 스님이 느꼈을 듯한 법열과도 같은 것이었다. 아침 산책에서 돌아온 나는 비망록에 “호박꽃이 눈부시게 아름다워요.”라고 써 두었다.

 지난 토요일(04년 3월 20일) 아침 일찍 나는 인력 시장에 갔다. 노동 품팔이를 하기 위해서 직업소개소에 간 것이다. 그런데 일을 나가려는 사람은 많고 일을 시키려고 부르는 건설현장은 적어서 한 시간 반 이상을 기다리다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불경기에 힘이 드는 사람은 누구보다도 도시빈민 들이여라.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섰다. 밖으로 나가서 걸으며 운동도 하고 다가오는 봄을 즐기기도 할 생각이었다.


 집에서 몇 분 거리 되지 않는 공원 터 옆 도로 가에는 가로수로 산수유나무가 줄지어 서 있었다. 산수유나무에 노란 꽃이 피었다. 그 꽃에서 지난여름 호박꽃을 보고 즐겼던 기쁨을 되살려 보고 싶었다. 산수유 꽃은 호박꽃보다 보잘 것 없는 꽃이었다. 그래도 산수유 꽃에 내 마음은 머물고 잔잔한 기쁨이 일었다. 봄이다. 무주구천동 산골 바위틈에서 사는 개구리도 몸에 힘이 솟고 신바람이 날 봄이 찾아왔다.


 공원에서 산수유 꽃보다 더 보 잘 것 없는 꽃을 만났다. 바위 사이사이에 다복다복 심어 놓은 키 3,40 cm 작은 상록수가 있었다. 그 나무에는 완두콩만한 크기의 푸른 잎들 사이로 꽃이라고 부르기가 민망할 만치 눈에 거의 띄지 않는 작은 꽃이 피어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이 나무의 이름을 모른다. (이 나무가 인터넷에서 정원수라는 검색어로 찾아보다가 비슷해 보여 사진으로 올리는 회향목이라는 이름의 나무일지 모르겠다.) 아, 또 그런데, 이 나무 사이 못난 꽃에서 꿀을 모으는 부지런한 꿀벌도 한 마리 볼 수 있었다. 이 꽃을 제일 먼저 알아 모시고 반기는 것은 바로 이 꿀벌이로구나.

 이른 봄
 꽃 같지도 않은 작고 못난 꽃이 피었는데


 눈이 밝은 꿀벌이
 먼저 알아보고
 꽃 속에 안겨
 기쁨에 웅얼웅얼 감탄사를 쏟아내며
 꽃향기에 흠뻑 취했구나.

 꿀벌아,
 나도 너 되어
 꽃향기에 묻혀
 뿅! 가고파라.

 꽃에서 시선을 옮겨 바위를 살피다가 똥파리 한 마리가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이 그 이름도 더러운 곤충 똥파리는 참 귀찮은 동물이었다. 내 방에 똥파리가 한두 마리 날라 들면 나는 짜증을 냈다. “너 좋은 말로 할 때 내 방에서 썩 나가! 나가지 않으면 부득이 너를 한 대 갈겨 줄 거야. 그러다 네가 죽으면… 나 죄 없어. 너를 죽이려 한 것은 아니었거든. 미워서 그냥 한 대 때린 것뿐이라고.”


 나는 창문을 열고 타월을 휘둘러서 똥파리를 쫓아냈다. 대개는 똥파리가 창문 밖으로 날아가고 나는 창문을 닫는 것으로 똥파리와 나 사이에 구역 다툼은 끝났다. 그런데 어쩌다 정말 눈치가 없는 똥파리가 기어이 내 방에서 나가려 하지 않으면 신문지 접은 것으로 때릴 때도 있었다. 그러면 이 불행한 동물은 죽기 아니면 중상이고, 나는 중얼거렸다. “이 살생은 내 책임이 아니라고. 내가 수 차례 경고 방송을 하고 경고 사격까지 해도 나를 얕보고 무시한 너 때문이야.”


 그런데 그 날에 바위에 앉아서 빛나는 검은빛을 자랑하는 똥파리는 귀찮은 동물이 아니었다. 봄날에 생동하는 기운을 받아 싱그러운 곤충일 뿐이었다. 살다보니 똥파리와 내가 이렇게 마주 손을 내밀어 잡듯이 화해를 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기쁨을 던져 줄 때도 있구나.


 얼마 후면 한두 마리 노랑나비 흰나비도 이 곳을 찾아오리라. 와서 따스한 봄날을 마음껏 즐기리라. 봄날 봄볕에는 마약이 녹아있다. 봄볕을 즐기는 생물의 몸속으로 이 마약은 스미어 들어 뿅, 가게 한다.


 뿅 가고 나면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의 사이에 놓인 담장이 허물어지고
 모든 것이 그저 그대로 좋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