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의 일베직원 채용 파문에 대한 입장

 

일베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했던 사람이 KBS의 정식 직원으로 채용되었다는 뉴스가 화제였습니다. 드디어 일베전사(?)가 공영방송의 직원으로 진출한 것입니다. 물론 국정원의 공무원들과 사이버사령부의 군인들이 일베스러운 댓글을 업무의 일환으로 조직적으로 작성하던 나라, 로린이 운운하는 변태 소아성애 성향의 일베 유저가 초등학교 교사로 임용되는 나라이니 특별히 놀랄 필요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대한민국 수원지방법원의 부장판사께서 재판 업무와 일베 댓글 작성을 동시에 수행하셨던 사례가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조만간 일베 장관 일베 국회의원 아니 일베 대통령을 만나는 것도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각오를 다지는 것이 정신건강을 위해 유익할 것 같기도 합니다.

 

누구나 일탈은 합니다. 평소 멀쩡하던 사람들조차 상대적 소수자인 여성과 특정지역민들을 상대로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표현을 동원해 비하하는 일이 그다지 드물지 않기에 그런 사례에 대해 도덕적으로 분노하거나 사회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지나친 과민반응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공공의 영역 그것도 대한민국 공공의 여론과 담론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공영방송의 정식 직원으로 채용되는 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라고 판단합니다.

 

KBS 기자와 PD들의 항의 때문에 문제의 청년이 기자직에는 배치되지 않았지만 사회적 분위기의 변화 또는 내부 감시망이 느슨해지는 틈을 타서 기자직에까지 진출할 가능성도 적지 않습니다. 그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특정지역에서 태어났거나 몇 대 조상이 그쪽 지역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공영방송 KBS의 위력을 빌린 일베 성향 인종주의자의 공격에 노출될 수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이게 과연 21세기 국제화와 선진화로 향해 가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정상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상황일까요?

 

그런 사람이 공직자로 일할 수 있고 그런 사람이 공영방송의 기자도 될 수 있다면 그리하여 국가시스템이 그것을 당연한 일처럼 용인한다면, 국민들은 그런 국가와 방송사에 세금과 시청료를 납부해야 할 의무를 놓고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 의지 및 선택과 무관하게 나와 내 가족이 조롱하고 모욕당할 가능성 그것도 내 세금과 시청료로 일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일을 당할 가능성이 있다면 누가 그 국가와 방송사에 대해서 소속감과 애정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이번 KBS의 일베 직원 채용 파문은 그저 어느 일탈 청년의 채용이라는 단순한 사안이 아닙니다. 공공영역의 건강성이 더 이상 방관할 수 없을 정도로 무너지고, 더 이상 공공 서비스를 신뢰할 수 없게 만드는 중대 사안입니다. KBS는 사규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형식논리만을 앞세우고 있지만 엄격하게 말해서 이것은 형식논리 저편에 숨은 문제의 심각성을 감추는 국민 기만행위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박근혜정부가 자신들의 후원세력인 일베를 육성하기 위하여 고의적으로 이런 일을 저질렀다는 소문조차 돌고 있습니다. 비록 근거 없는 음모론일지라도 이 사안의 심각성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일 수밖에 없습니다.

 

KBS는 납득할 수 없는 이번 채용을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할 것을 요구합니다. 1980년대를 풍미했던 KBS 시청 거부와 시청료 납부 거부운동은 낡은 신문 지면이나 사회학 교재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사건인줄 알았는데, 어느새 우리 곁에 다시 되살아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합니다.

 

자칫하면 이것은 불안을 넘어 실제 비극으로 현실화할지도 모릅니다. 그런 일은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21세기 대한민국은 해야 할 일도 많고, 넘어서야 할 고개도 첩첩산중입니다. 이런 과제의 해결을 위해 국민들의 건전한 상식과 기대를 모아야 할 공영방송 KBS가 정반대의 퇴행으로 나아가지 않기를, 그런 퇴행으로 가는 발걸음을 멈추고 지금이라도 건전한 상식과 시민적 합의의 영역으로 돌아올 것을 촉구합니다.

 

201548

지역평등시민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