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로 거는 시외전화가 끊긴 것을 계기로 광주에서 벌어졌다는 그리고 벌어지고 있다는 사건에 대해서 이런저런 소문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전투경찰도 경찰인지라 일반 군인들에 비해서는 아무래도 대민 접촉이 좀더 자유로운 편이었고, 마을 사람들을 만나는 일도 잦았다. 특히 야간 근무를 지원하는 방위병들은 낮에는 민간인 신분처럼 지내기 때문에 정보가 풍부했다. 전경대원들과 나이가 비슷한 또래들이어서 말도 쉽게 통했다.

그때 내가 전해들은 이야기는 "광주에서 사람들이 엄청 죽었다더라"부터 시작해서 "광주 사람들 다 죽인다고 합디다"는 것까지 그 수위는 다양했지만 내용 자체는 구체적이지 못했다. 아마 마을 사람들이나 방위병들이 전해들은 정보 자체도 제한적이었거나 또는 경찰에 대한 기본적인 경계심이 작용해서 자세한 이야기를 피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광주에 가족이 있는 내 입장에서는 그런 이야기들만으로도 속이 뒤집힐 것 같은 충격과 불안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건 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경찰 인사는 기본적으로 연고지 배정 우선이기 때문에 내가 있던 초소에도 호남 출신 특히 광주에 가족이 있는 전경대원들이 몇 명 있었다. 전남대를 다니다가 온 고참도 두 명이나 있었다. 그 중 한 명과는 "탈영을 해야 하느냐"를 놓고 진지하게 계획 수립을 얘기한 적도 있었다.

그런 계획을 그냥 계획으로만 그치게 만든 것은 아무래도 시스템이 강제하는 일상 생활이었다. 하루하루 숨가쁘게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듯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는 설혹 무슨 음모를 꾸민다 해도 일회성에 그치기 쉬웠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광주 집으로 전화를 걸어보고 방위병들이나 마을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수소문을 해보는 것 이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날씨는 순식간에 여름이라도 다가온 것처럼, 전라도 말로 '징하게' 밝고 화창하고 찬란했다. 해안초소에서는 아침마다 순찰로를 깨끗하게 청소한다. 위생이나 청결 등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니고, 순찰로 상태가 깨끗해야 가령 간첩이나 거수자(거동 수상자)가 그 순찰로를 밟고 지나갔을 때 흔적이 남은 것을 잡아낼 수 있다는 이유였다.

그해 5월 아침 내가 순찰로를 청소할 때마다 눈에 띄었던 것은 붉은 황토흙 길을 까맣게 뒤덮었던 개미떼들이었다. 무슨 일인가 유심히 들여다보니 손가락 마디 하나만큼이나 긴 개미떼들이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내가 살아오면서 그때 이전이나 이후로도 그렇게 큰 개미들을 본 적이 없다. 그렇게 큰 개미가 한반도 땅에 살고 있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개미들이 몇백 몇천마리 정도가 아니라 몇백미터에 이르는 순찰로를 온통 새까맣게 뒤덮을 정도로 그렇게 거대한 군집을 이루어 전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세히 보니 살아서 싸우는 개미들보다 목이나 허리가 잘려서 이미 죽었거나 다리만 움직이는 개미들이 더 많았다. 이런 개미전쟁이 하루 이틀이 아니라 거의 1주일 가까이 진행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 장면을 직접 봤던 당시에는 그런 생각까지 하지는 못했고 그저 청소 작업 부담이 커진 것에만 신경이 쓰였지만 나중에 그 장면이 떠오를 때마다 '거대한 사회적 사건이 생길 때에는 자연계에서도 뭔가 상응하는 조짐이 생기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비슷한 장면을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광주항쟁을 전후로 한 기이한 경험담은 내 주위 분들을 통해서도 들을 수 있었다.

광주에서 벌어진,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한 소문은 점점 더 구체적이 되었다. 전남도경에서 내려오는 지침에도 관련 내용이 포함되기 시작했다. 졸병이던 내가 그런 전문 내용을 다 알 수는 없지만 나에게까지 내려오는 내용을 통해서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소대장은 대원들을 모아놓고 현재 상황을 간략하게 정리해주곤 했다.

폭도(당시에는 그렇게 불렀다)들이 광주에서 파출소나 무기고 등을 습격했다는 것, 광주는 이제 공권력이 사라진 상태라는 것, 폭도들이 광주를 벗어나 전남 일대를 휘젓고 다닌다는 얘기 등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지침에는 우리 초소와 나에게까지 직접 연결되는 내용이 포함되기 시작했다.

해남으로 넘어오는 유명한 우슬재로 폭도들이 버스를 타고 넘어오다가 매복하고 있던 군인들의 집중사격에 의해 몰살당했다는 이야기를 그때 들었고 이후 광주항쟁 자료에서도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중에는 폭도들이 우리 초소로 몰려온다는 소문까지 떠돌았고, 소대장은 상부의 지침에 따라서 대응 작업을 지시했다. 기억나는 내용은 대충 다음과 같다.

-폭도(이때부터는 폭도라는 표현과 함께 '시민군'이라는 표현도 함께 쓰이기 시작했던 것 같다)들은 광주의 희생 때문에 군인들에게 격렬한 적대감을 갖고 있다. 그들의 적대감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전경대원들은 작업복 상의를 벗고 작업복 바지에 런닝셔츠 차림을 해라
-무장한 시민군이 초소로 접근하면 경고하되 일정한 거리 이내로 다가오면 사격한다. 다만 무릎 아래를 쏘아서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라
-정 급박한 상황이 되면 시민군들과 극렬한 전투를 피하고 차라리 피신하라. 그때를 대비해서 초소의 핵심 장비는 미리서 은밀한 장소에 은닉한다.

경찰들은 평상시 시위진압 등에 동원되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평소 업무 자체가 대민활동이고 직접 연고지에서 친인척들을 보면서 근무하기 때문인지 시민군들에 대해서도 그렇게 극렬한 적대성을 갖기는 어려웠던 것 같다.

실제로 우리 초소에서는 중요한 화기와 탄약, 기타 장비들을 초소 근처 산꼭대기로 옮기고 이런저런 위장막을 덮어서 숨기는 작업을 했다. 대원들이 피신할 수 있는 보트도 구해서 초소 근처에 대기시켰다. 어느 날인가는 거수자가 초소로 다가온다고 해서 대원들이 작업복 바지에 런닝셔츠 바람으로 모자도 쓰지 않고 초소 근처 수풀에 숨어서 경무장 상태로 대기한 적도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