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열흘 간 MB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을 읽었습니다. 787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책이지만(1,2 권 합쳐 약 1300페이지에 달하는 김대중 자선전보다는 얇지만) 비교적 수월하게 읽었던 것 같습니다. 그 이유로는 아마 내용이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 알고 있는 것들이 많은데다 평이하게 서술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회고록이 출간되자 비판적 여론이 많았는데 '때이른 출간이 아니냐' '외교 비밀을 너무 적나라하게 까발린 것 아니냐'하는 비판과 함께 '지나친 자화자찬이다'는 비난도 함께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정치적인 부분, 즉 인사실패나 MB의 형인 이상득 전 의원의 권력전횡 등에 대해서 아무 기술이 없는 점을 들어 MB 회고록을 폄하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출간 시기의 문제는 MB 스스로가 밝혔듯이 기억력이 흐려지기 전에 쓸려고 했다는 점에서 이해가 가는 일이고 외교 비밀의 공개도 엄청난 비밀을 공개한 것도 없었습니다. 대통령이 외교를 하면서 만났던 각국 정상들과의 비공식적 대화가 다수 있었지만 그 정도는 전직 대통령들의 모든 회고록에 있는 수준이라고 봅니다(조금은 자세한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또 MB정권의 최대 실책이라고 할 수 있는 인사 실패나 MB의 형인 이상득 전 의원의 권력 전횡 등 정치적 문제 등에 관해서는 차후 출판할 예정이라고 하니 그때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여하튼 그 모든 비판과 비난을 감안하더라도 회고록을 읽어 보니 MB가 나름 대통령으로서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 노력한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물론 모든 대통령들이 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대통령들의 회고록을 읽는 이유는 국정의 최고책임자가 국가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정책들에 대해서 어떤 마음으로, 어떤 시스템으로 결정하는가 하는 점이 궁금해서입니다. 물론 다수의 의사결정과정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나같은 일반인은 알 수 없는 정책결정 과정이나 비사(秘史) 등이 있을 것이기에 대통령의 회고록이 출간되면 책을 구입해서 읽습니다. 그동안 대통령들의 회고록을 읽다 보니 대다수의 책들이 정치를 중심으로 기술한 경우가 많은데 이번 MB의 회고록을 정책을 중심으로 기술된 점이 조금 독특한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 1장에서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MB의 개인적인 신상이 간략하게 기술되어 있는 것 외에는 책 전체가 정책 중심으로 쓰여져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제 입장에서 보면 타 전직 대통령들의 자서전이나 회고록보다는 읽을만한 내용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MB가 의외로 강단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천안함 폭침 때 유엔 안보리의 제재에 미온적인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에게 "이 문제로 한국과 중국이 얼굴 붉힐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할 정도였으니 MB의 강단도 보통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MB는 북한 문제로 중국과 의견이 충돌할 때 그저 부탁만 해서는 안 되며, 필요하면 강하게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는군요. 유달리 중국에 약한 모습을 보였던 전직 대통령들과는 조금 다른 점이었습니다. 그리고 연평도 폭격 때도 북한이 200발의 포탄을 발사했는데 우리는 교전수칙을 들어 80발만 쏘았다고 김태영 국방장관을 질책한 모양이더군요. 또 2011년 일본에서 열린 한중일 정상회담 때 일본의 간 총리가 평찰 동계올림픽을 지지하는 댓가로 독도 문제를 거론할려고 했을 때 MB는 "독도는 물론 영토의 '영'자만 나와도 간 총리와 회담을 할 수 없다"며 독도 문제를 거론하는 것에 반대했다는군요. 그런 내용들을 보면서 MB가 의외로 강단있는 인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MB는 역대 대통령들에 비해 상당히 평가가 인색합니다. 역대 대통령들에 대한 언론조사를 보면 최하위권에 속합니다.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MB에 대한 평가는 인색하기 그지없습니다. 특히 진보진영은 광우병 파동과 법인세 인하 등을 들어 MB에 대한 저주의 수준까지 비난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번 MB의 회고록에 대해서도 비난 일색이죠. 하지만 제가 회고록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자화자찬이 다소 있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MB가 대통령직을 비교적 잘 수행했구나 하는 점입니다. 그 중에서도 MB 스스로가 대단한 자부심을 느끼는 2008년 금융위기를 무난하게 극복했다는 점에 상당히 후한 평가를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최근에 붉어지고 있는 '자원외교'의 문제점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MB가 2008년의 금융위기를 무사히 넘겼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MB의 공(功)에 인색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2008년 세계금융위기는 과거 1997년의 외환위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위기였기 때문입니다. 1997년의 외환위기 때 수 만개의 기업이 무너지고 수백 만이 직장을 잃고 실업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2008년의 금융위기를 무사히 넘기지 못하고 경제가 어려워졌다면 그 결과가 얼마나 참혹했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당시 MB정부는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새벽부터 회의를 하면서 밤낮없이 뛰어다녔더군요. 더욱이 MB는 폐에 이상이 생겨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상태에서도 직원들 몰래 약을 먹어가면서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노심초사했다고 합니다. 2008년 당시 대한민국이 금융위기에 쓰러지지 않고 미국을 비롯한 타 국가에 비해 그나마 선방을 한 것은 MB를 비롯한 당시 공직자들의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008년의 금융위기에 대해 폴 크루그만이 2008년 10월 27일 뉴욕타임즈 칼럼에서 "세계 금융위기로 러시아, 한국, 브라질 등이 곤경에 빠졌다. 이 나라들은 1990년대 말, 당시로서는 엄청나다는 아시아 금융위기의 한복판에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지금에 비하면 해변가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낸 시절이다"고 했다니 2008년의 세계 금융위기가 얼마나 급박한 상황이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진보 학자로 유명한 장하성 교수도 최근작 <한국 자본주의>라는 책에서 2008년에 시작된 금융위기는 1960년 이후 50년 만에 처음 있는 심각한 상황이었다고 했더군요. 따라서 그처럼 위중한 경제위기를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더라도 비교적 무사히 넘긴 MB정권은 공(功)은 인정해야할 것 같습니다.


저는 MB 회고록을 읽으면서 참 답답한 것이 하나 있었는데, 박근혜 정권의 대일(對日)관계입니다. 지금 한일 관계는 최악인데요 그 근본적인 이유야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경직된 자세 때문이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문제 해결방식도 답답하기 그지 없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일본이 위안부 문제에 진심으로 사과하고 배상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취임 2년이 지나도 한일 정상회담을 하지 않고 있으며 일본을 압박만 하고 있습니다. 아베가 구걸하다시피 정상회담을 갈구하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문제 해결을 위해 만날 생각은 하지 않고 공포탄만 쏘아대고 있으니 한심하기 그지없습니다. 국가 간의 첨예한 갈등이 존재하는 사안은 정상들 간의 만남으로 풀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과거 김대중 대통령 때도 일본의 역사인식 문제에 대해 오부치 게이조 총리와 회담을 통해 일정부분 사과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일본 참의원 연설에서 일본이 과거사에 대해 변화된 모습을 보일 것을 촉구했는데 당시 일본 참의원 의원들이 큰 박수를 보내면서 경청했다고 하더군요. 또 MB만 보더라도 노다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면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의 결단을 촉구했습니다. 그리고 노다가 직접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서한을 보내 사과를 하고 일본 정부의 예산으로 할머니들에게 피해 보상을 하기로 했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데 한일 정상들이 만나서 솔직한 속내를 주고받고 하다보면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높아지는데도 불구하고 박근혜 대통령은 무조건 사과와 보상만 요구하면서 아베를 만나지도 않고 있으니 위안부 문제가 해결난망이 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대면접촉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무조건 우리 입장만 강조해서 위안부 문제가 해결이 됩니까? 절대 안 됩니다. MB는 적극적으로 만나서 해결할려고 했던 비해 박근혜는 똥고집만 내세우면서 공갈포만 날리고 있으니 참 한심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