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의 국무총리 사퇴[편집]

5월 17일 새벽 수녀원에 있던 장면은 주한 미국대사관에 계속 연락했다. 그러나 장면은 주한미국대사관에도 자신의 은신처를 밝히지 않았다. 유엔군 사령관 매그루더는 미국 본국에 지원요청을 했으나 미국 국무부는 불개입 의사를 나타냈다. 5월 17일 미 국무부는 장면은 나타나지도 않았고 지도력을 행사하지도 않는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5월 18일 미국 측과의 통화에서 미국의 불개입 의사를 전달받은 장면은 전화를 끊고, 5월 18일 오후 카르멜 수녀원을 나왔다. 대통령 윤보선이 5·16 군사 정변을 추인했다는 소식과 “올 것이 왔다”고 하는 그의 발언 소식을 접한 뒤 5월 21일 3일 만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공식 기자회견에서 내각총사퇴서를 발표하였다.



금번 군사 쿠테타에 대한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통감하고 우리 국무위원일동은 전원 총 사퇴한다. 국민제위에게 양해있기를 바라는 바이다. 그리고 사후 수습에 있어서는 유혈을 방지하고 반공(反共) 태세를 강화하며, 국제적 지지를 확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희망한다. — 단기 4294년 5월 21일 국무총리 장면 외 국무위원 일동



이 짤막한 사퇴사를 남기고 퇴진하였다. 장면은 국무총리가 일을 못하게 된 큰 이유는 대통령 윤보선이 딴죽을 걸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윤보선과 민주당 구파, 신민당의 비협조와 구파 계열이 군사정변을 묵인 내지는 동조했다고 비판하였다. 한편 그는 자신이 왜 쿠데타로 축출되어야 하는가 알수 없다며 억울함을 토로하였다.

(출처는 여기를 클릭)



만일, 당시 대통령인 윤보선이나 장면이 살바도르 아옌데와 같이 쿠테타군에게 끝까지 저항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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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샌디에이고에 비가 내린다... 포스터)



피노체트의 쿠데타로 죽기 전 그는 마지막 라디오 선언에서 다음과 같은 고별 인사를 하였다.


“이번이 제가 여러분에게 말하는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 곧 마가야네스 라디오도 침묵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용기를 주고자 했던 나의 목소리도 닿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계속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항상 여러분과 함께 할 것입니다. 내가 이제 박해 받게 될 모든 사람들을 향해 말하는 것은, 여러분들에게 내가 물러서지 않을 것임을 이야기하기 위한 것입니다. 나는 민중의 충실한 마음에 대해 내 생명으로 보답할 것입니다. 나는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우리나라의 운명과 그 운명에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이 승리를 거둘 것이고, 곧 가로수 길들이 다시 개방되어 시민들이 걸어 다니게 될 것이고, 그리하여 보다 나은 사회가 건설될 것입니다. 칠레 만세! 민중 만세! 노동자 만세! 이것이 나의 마지막 말입니다. 나의 희생을 극복해내리라 믿습니다. 머지않아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보다 나은 사회를 향해 위대한 길을 열 것이라고 여러분과 함께 믿습니다. 그들은 힘으로 우리를, 우리를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무력이나 범죄행위로는 사회변혁 행위를 멈추게 할 수는 없습니다. 역사는 우리의 것이며, 인민이 이루어내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자유롭게 걷고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할 역사의 큰 길을 인민의 손으로 열게 될 것입니다.”



후일 군사평의회에 근무하던 요원이 토머스 하우저에제 증언한 바에 따르면, 아옌데의 시체는 머리가 쪼개지고 뇌가 마루와 벽에 흩뿌려졌다. 중남미 역사 전문가들은 민중의 편에서 정치를 한 아옌데 전 칠레 대통령을 진정한 좌파로 평가하지만, 기득권을 침해당한 보수층들의 반발을 대비하지 못해 쿠데타가 일어난 것에 대한 비판적인 평가도 있다. 즉 민주사회주의를 통해 사회주의 정책을 실시하고자 하였던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의 온건성이 군부의 보수반동적인 쿠데타를 막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다.




경제정책에 있어서는 장면정권이나 아옌데 정권이나 '무능하다'라는 평가가 지배적인 것이 공통적이기는 하다. 그 점에 있어서는 비판받아야 한다.



그러나 명성황후를 죽인 5인의 자객 중 한명이 큰할아버지였던 윤보선.... 친일 행각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장면을 생각하면서..... '조선 이래로 이 땅의 엘리트는 자신의 영일만 추구했다'라는 내 평가에 포함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씁쓸하다. 그들이 진짜 엘리트였다면 '자존심 때문'이라도 목숨을 걸고 쿠테타군에게 저항하지 않았을까?



장면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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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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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베르토 아옌데)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