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진보정당이 오래 전부터 던져오면서도 아직까지 제대로 답변을 얻지 못한 질문이 있다. 현재의 진보정당 활동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민중의당 창당이 1988년이었으니 거의 30년 가까이 된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왜 진보세력의 지지기반인 기층 민중이 그들의 이익을 위해 투쟁하는 진보정당을 지지하지 않을까?"

이런 질문에 대해 진보 진영이 속시원한 대답을 내놓았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 물론 나름 답변을 하기는 했다. 그리고 진보 진영의 많은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본인이 의식하건 의식하지 않건 그 답변을 '정답'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 답변의 이름은 이른바 '국개론(국민 개새끼론)'이다.

진보 진영이 기층 민중의 이익을 위해서 이렇게 노력하고 투쟁하는데도 민중이 진보 세력을 지지하지 않는 것은 기층 민중이 어리석어서 보수세력의 세뇌에 현혹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난번 대선 때 문재인의 패배 이유를 따지면서 친노 세력 일부가 "결국 국민들이 개새끼들이기 때문"이라고 했던 국민 개새끼론이 그러한 인식의 연장선에 놓여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국민 개새끼론은 다양한 변주(變奏, variation)와 파생 상품을 낳는다. 가장 최근에 등장한 버전이 강준만 교수의 '싸가지론'이다.

강준만 교수의 싸가지론은 민중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진보 세력의 태도의 문제를 지적한다. 때문에 그런 지적이 어떻게 국민 개새끼론과 연결되는지 의아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싸가지론 역시 그 주장의 본질에 있어서는 기존의 개새끼론과 차이가 없다. 즉, 진보 세력이 기층 민중의 이익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는 대전제가 그것이다.

이러한 대전제를 깔고 있는 한 어떠한 변주도 결국은 국개론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진보 세력의 진실을 민중들이 몰라준다는 결론이 될 수밖에 없고 그것은 결국 민중들이 어리석다는 얘기로 연결된다.

강준만 교수의 싸가지론은 사실상 '민중들은 어리석어서 너희들 진실을 잘 몰라준다. 거기에다 싸가지 없는 짓까지 하면 상황이 더 악화되지 않느냐? 그러니 태도부터 바꿔라. 그래서 민중들이 너희들 주장에 귀를 기울이게 해라'는 얘기이다. 이게 기존의 국민 개새끼론과 과연 다르다고 할 수 있는가?

기존의 진보세력이고 강준만 교수고간에 제일 먼저 인정해야 할 사실이 있다. 이 사실부터 인정하고 들어가지 않으면 진보 세력이나 강준만 교수가 앞으로 1천년을 살아남아서 이 문제를 붙잡고 씨름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 사실은 간단하다. 즉, 대중은 최소한 당신들만큼은 영악하고 똑똑하다는 것 그리고 어떤 정치세력이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우리나라 진보세력이 이러한 기본적인 사실부터 인정하지 않는 한 앞으로도 민중을 위한답시고 머리띠 두르고 촛불 켜들고 짱돌 날리다가도 선거일이 되면 평소 수구 보수 꼴통이라고 욕하던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에게 그 기층민중의 표를 뺏기는 일은 영원히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유권자들이 어떻게 투표했는가? 긴 말 생략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 경상도 유권자들은 새누리당, 전라도 유권자들은 민주당 계열을 지지해왔다. 이들이 어리석어서 그런 선택을 했다고 보는가?

경향신문의 링크 기사를 유심히 들여다보면서 생각을 재검토해보기를 권한다. 영남의, 영남에 의한, 영남을 위한 인사라는 것이다. 그런 세월이 무려 50년 반 세기 동안이다. 한국처럼 정부의 권한이 비대하고, 국가 자원의 배분에서 정부가 거의 배타적인 권리를 행사하고, 혈연 지연 학연의 영향력이 막강한 나라에서 50년 영남 정권이 국가 자원의 배분을 결정할 때 영남 지역에 유리하게 처리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혈연 지연 학연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이런 모든 친연 관계를 포괄하고 뭉뚱그리고 출발하는 지점이 바로 지연(地緣)이다. 그 지연 속에서 혈연도 맺어지고 학연도 만들어진다. 즉, 영남 지역주의는 한국 사회의 선진화와 근대화, 첨단화를 가로막는 부족주의, 친연주의, 연고주의의 핵심이라고 해야 한다.

자원이 배분되면 공장이 세워지고 일자리가 늘어난다. 당연히 임금이 오르고, 그 일자리 보고 다른 지역에서 사람들이 찾아온다. 땅값 집값이 오른다. 대대로 농사 지으며 힘들게 살았던 사람들이 벼락부자가 되고 여윳돈으로 서울에 진출해 아파트도 사고 자식들 교육도 더 잘 시킨다. 그 애들이 고등교육을 받고 해외유학도 가서 이른바 '유능한 인재'가 된다.

게다가 정부 요직 요소요소에 앉아있는 선배들이 시시때때로 이끌어주니 더 좋은 경력과 스펙을 갖추게 된다. 언제나 마찬가지지만 지식기반 사회인 현대사회에서 경력이 곧 능력이 된다. 그러니 정부요직 인사에서 영남 편중인사라는 지적이 나올 때마다 '유능한 인재를 고르다 보니 그렇게 됐다'는 얘기가 변명이랍시고 나온다. 애초부터 영남 출신들 위주로 엘리트들을 양성했다는 얘기이다.

게다가 청와대 주인장은 몇 단계만 건너면 알음알음 인사를 주고받을 수도 있는 관계다. 어려운 일 생길 때 하소연할 수도 있다. 든든하기도 하고, 이런 관계를 아는 사람들이 이런저런 청탁도 한다. 청탁하면서 맨입으로 처리할 수 있나? 정말 일이 잘 처리되면 댓가를 받는 것도 당연하다. 우리가 남이가, 정으로 끈끈하게 맺어진 우리 전통의 미덕 아닌가? 지는 깨끗하답시고 이런 거 지랄맞게 따지는 것들은 다들 저 냄새나는 7시 출신이다.

이거 엉터리 얘기 같은가? 제발 현실에서 배워라. 진보의 출발점은 실사구시이다. 몇십년째 진보가 좋아하는 영남 진보벨트, 노동자 지역에서 새누리당 후보의 일방적인 우세가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도 여전히 '저들이 우리를 잘 이해하지 못해서'라고 이해하는가? 꿈깨라.

영남 유권자들은 잘 안다. 영남 정권, 영남패권주의야말로 자신들의 이익을 가장 잘 챙겨주는 정치세력이기 때문에 죽어라고 지지하는 것이다. 유권자들이 자신의 한 표를 아무렇게나 던지는 것 같은가? 자신이 선거 때 어떤 방식으로 지지할 후보를 결정하는지 생각해보면 분명하지 않은가? 자신이 하는 행동을 다른 사람들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제멋대로 판단하는 버릇은 버리는 게 본인을 위해서도 좋다.

신당 추진하는 분들 얘기 들어보면 여전히 1대9 사회를 얘기하곤 한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이해관계가 10%의 가진 자와 90%의 갖지 못한 자의 구도로 명쾌하게 나뉘어져 있다고 믿는 분들이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왜 1대99로는 나누지 않는지 모르겠다. 까놓고 말해서 재벌과 몇몇 수퍼리치, 수퍼엘리트들 빼면 다들 그 사람들 눈치 보고 심부름해주며 먹고사는 처지 아닌가? 0.01%와 나머지로 나누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현실에서 사람들의 이해관계는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게 구성돼 있다. 이것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단순화하면 물론 1대9 사회로 구분할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우리 모두 죽는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현실에서 작동하는 이해관계를 봐야 한다. 대한민국은 영남패권이 가장 결정적인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 주도 세력이자 상수이다.

호남을 얘기하는 것은 바로 이 영남패권의 대립항으로서 도저히 빼놓고 갈 수 없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호남 이기주의가 아니다. 영남패권이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호남 죽이기에 올인했기 때문이다. 호남이 무슨 타고난 진보주의나 정의파여서가 아니다.

호남 얘기만 하면 '또 지역주의자 한 마리 등장했네'라며 비웃는 자칭 진보주의자, 합리주의자들은 정신차려야 한다. 호남에서 출발해야 하고, 호남의 문제를 극복하는 대안을 제시하지 않으면 현재 나타나는 모든 정치적 변화나 그를 위한 노력이 모두 무의미해진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3071500061&code=910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