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종의 행동은 옹호의 여지가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김기종이 호남 출신이라고 해서 그의 행동을 또다시 까보전, 홍어 운운하는 인종주의적 혐오 발언을 내뱉는 빌미로 삼으려는 태도는 매우 우려스럽습니다.

김기종의 행동은 개인의 선택일 뿐입니다. 그가 자신의 행동의 배경으로 특정한 정치적 신념을 내세웠다고 해서 그 신념 자체 또는 그 신념을 공유한 사람들이 모두 김기종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위험한 행동의 배경이 된 신념을 공유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위험한 연좌제를 적용해서는 안된다는 얘기입니다. 간단히 예를 들어보자면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이 테러를 하고, 그 테러의 배경으로 자신의 이슬람 신앙을 내세운다고 해서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 모두에게 그 테러의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심지어 호남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전혀 자신의 선택이 아닌, 그냥 태어날 때 우연히 호남에서 또는 호남 출신 부모에게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생판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는 김기종의 행동에 대해서 같이 욕을 얻어먹어야 합니까?

그건 말이 안 되는 억지이자 폭력입니다.

가만히 보면 일베 등 김기종과 호남을 연결시키려고 발악을 하는 무리들이야말로 김기종의 행동을 가장 환영하고 기뻐하는 무리들 아닌가 싶습니다. 김기종 같은 사람들이 생각을 바꾸고 행동을 바꾸면 아마 저 일베 무리들이 가장 서운해할 것 같습니다.

김기종의 행동이 테러라면 지난번 익산에서 황산 공격을 한 친구의 행동도 테러입니다. 다같이 비판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김기종의 행동은 전국민이 하나같이 비판하는 반면, 그 철없는 익산의 고교생에 대해서는 국회의원까지 나서서 격려하고 거액의 성금도 답지합니다. 이거, 좀 기이한 현상 아닙니까?

결국 이것은 테러라는 행동 방식이 가치 판단의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진영에 속해있느냐가 가치 판단의 기준이 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신호입니다. 어느 진영에 속해 있느냐에 따라 탈법적 폭력도 정당화될 수 있다는,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라고 해석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자칫 전국민을 거대한 폭력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을 수도 있는 위험한 접근방식입니다.

그리고, 리퍼트 대사에게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사과한다고, 대한민국 국민들은 당신을 사랑한다고 하는 SNS 메시지가 넘쳐난다고 하더군요. 저는 리퍼트 대사의 이번 피습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위로할 생각도 있지만 그렇다고 사과씩이나 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왜 내가 하지도 않은 행동을 사과해야 하나요?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이 미국을 그리고 리퍼트 대사를 사랑한다는 식의 발언도 삼가했으면 합니다. 나도 대한민국 국민이지만 이런 사건을 계기로 미국을 사랑한다는 발언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내 명의를 이런 식으로 제멋대로 가져다 사용하지 말라는 겁니다(그렇다고 내가 미국을 미워한다는 얘기도 아닙니다).

웬디 셔먼 미 국무부 정무차관이 '동아시아의 과거사에 한미일 3국이 같이 책임이 있다'고 발언했다고 하더군요. THAAD 배치도 그렇고,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의 러시아 전승기념식 참석 사안에조차 미국의 일개 관료가 '가지 말라'고 발언했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이게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에다 전통적인 혈맹의 정상에게 보일 수 있는 예의인가요?

저는 한미 양국이 보다 탄탄한 우호관계를 다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한국에게 미국은 매우 중요한 우방입니다. 이러한 관계는 앞으로 상당 기간 변하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적어도 21세기 동안에는 이런 관계가 어떤 식으로든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더욱이, 이 관계가 시대의 변화를 반영해야 한다고 봅니다.

한미 관계가 한국의 위상 변화와 국제 정치의 역학관계 변화를 반영하는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지 못하면, 그러한 성숙의 시도를 기피한다면 김기종 같은 시대착오적 행동이 나올 가능성도 더 커질 것이라고 봅니다. 이러한 변화의 주도권도 김기종 같은 과거 시대의 유물이 아니라 변화의 전망과 역량을 갖춘 한미 양국의 양심적인 엘리트 계층이 쥐게 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