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인용문들은 모두 alleviate 님의 다음 글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지식이란 무엇이며, 발화된 '사실 명제'는 진정 가능한가?>
http://theacro.com/zbxe/?document_srl=50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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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좋아하는 언어,심리철학자 존 설(John R.Searle)의 '자연주의적 오류 반박' 코멘트를 빌리자면 가령,

(1) Jones는 Smith에게 “나는 돈 5달러를 네게 줄 것을 이에 약속한다.”고 말했다. (사실 명제)
(2) Jones는 Smith에게 5달러를 줄 것을 약속했다. (사실 명제)
(3) Jones는 Smith에게 5달러를 지불할 의무(obligation)를 지게 된다.
(4) Jones는 Smith에게 5달러를 지불할 의무가 있다.
(5) Jones는 Smith에게 5달러를 지불해야 한다.(ought to pay) (당위 명제)

다른 분들도 지적하셨듯이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당위 명제가 암묵적으로 가정되어 있습니다. 이런 반박에 대해 alleviate님은 결국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당위 명제도 거슬러 올라가면 사실 명제로 환원(?)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환원 자체가 자연주의적 오류를 범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A가 “왜 약속을 지켜야 하나?”라고 질문했을 때 자연주의적 오류를 범하고 싶지 않은 B는 “그냥”이라고 답할 것입니다. B에게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가 도덕 공리입니다. 공리이기 때문에 정당화 자체를 포기하고 “그냥 옳다”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반면 C는 “약속을 지켜야 모든 사람에게 이로우니까”라고 상당히 칸트스러운 답을 내놓습니다. 저는 이런 C의 답변이 칸트의 오류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답이 “모든 사람에게 이로운 것을 해야 한다”라는 당위 명제를 가정하고 있음에도 칸트와 C는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집요한 A는 “왜 모든 사람에게 이로운 것을 해야 하는가?”라고 질문할 것입니다. 게다가 “이롭다”라는 단어 자체에도 가치(즉 당위 명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실 저는, 이 세상에 엄격한 의미에서 궁극적으로는 '사실 명제'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물론 '발견,발화'되거나 '생각'된 것들을 말합니다. 아무도 생각해내거나 말하지 않은 명제는 물론 순수하게 사실 명제일 수 있지요) 영국의 일상언어 철학자 오스틴(J. L Austin)(존 설도 이 사람의 영향 하에 있지요)의 의견에 찬성한다는 점에서, 아예 엄밀한 의미에서의 '자연주의적 오류'자체는 기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가령, "저 집은 벽돌집이다, 물은 H2O다."라는 '사실 명제'조차 궁극적으로는 '현실'에 영향을 조금이라도 미칠 수 밖에 없는 '당위적 효과'를 지니게 된다는 오스틴의 주장을 전제한다면, 애초에 "오직 사실 명제들만으로 당위 명제를 추론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라는 '자연주의적 오류'의 근간을 뒤흔들게 되니까요.

사실 명제와 당위 명제 개념 역시 정의하기 나름입니다. 저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사실 명제를 정의할 때 “사회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전혀 발휘하지 않음”이라는 조건을 추가하지 않습니다. 어떤 효과를 발휘하든 말든 사실에 대한 기술이라면 사실 명제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당위 명제를 정의할 때에도 “사회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발휘해야 함”이라는 조건을 추가하지 않습니다. “~해야 한다”는 형식의 명제라면 그것이 어떤 효과를 발휘하든 말든 당위 명제입니다.


"사실 명제로만 당위 명제를 추론하는 것은 오류다. 즉 흑인 지능이 평균적으로 백인보다 떨어진다는 과학적 '사실'은 전혀 인종차별적 발언이 아니며, 그 사실과 인종차별과 같은 정치적 주장과는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걸 밝힌 과학자들보고 인종차별적 발언했다고 몰아가는 사람들은 오히려 자연주의적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인종주의도 정의하기 나름입니다. “어떤 인종이 어떤 측면에서 선천적으로 열등하다는 믿음”으로 정의할 수도 있지만 “어떤 인종에 속한다는 이유만으로 차별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도 있습니다. 후자로 정의할 때 저 자신은 인종주의자와 거리가 멀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자로 정의할 때에는 저도 인종주의자로 분류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쿵산족이 선천적으로 눈이 좋은 것 같다고, 선천적으로 100m 달리기에 소질이 적다고(선천적으로 키가 작으므로), 케냐의 어떤 부족이 선천적으로 장거리 달리기를 잘 한다고, 어떤 민족은 선천적으로 어른의 우유 소화 능력이 열등하다고 믿습니다. 또한 증거가 충분하다면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선천적으로 IQ가 낮다는 명제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흑인(아프리카 원주민이나 그 후손)이 선천적으로 IQ가 낮다”라는 명제에 대해서는 여러 입장이 존재합니다. 그 이야기를 하기 전에 “흑인이 선천적으로 지능이 낮다”와 “흑인이 선천적으로 IQ가 낮다”는 전혀 다른 명제라는 점을 지적해야 할 것입니다. 지능 역시 정의하기 나름이지만 저는 “뇌의 정보 처리 능력”으로 정의할 수 있다고 봅니다. 노래를 하거나, 연기를 하거나, 축구를 할 때에도 뇌에서 정보를 처리합니다. IQ는 주로 과학기술 능력을 측정합니다.

J. Philippe Rushton을 비롯한 여러 학자들은 흑인이 선천적으로 IQ가 낮다고 주장합니다.
Rushton의 생각은 <RACE, EVOLUTION, AND BEHAVIOR>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charlesdarwinresearch.org/Race_Evolution_Behavior.pdf

많은 진보주의자들이 인종 간 선천적 IQ 차이는 없다고 주장합니다. 저는 이런 진보주의자들이 한심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온갖 말도 안 되는 사이비과학적 이유를 들면서 인종 간 IQ 차이가 없다고 우기고 있습니다.

예컨대 인종 또는 개체군(population)이 분화된 것은 10만 년 정도 밖에 안 되었기 때문에 선천적으로 IQ가 달라질 만큼 진화가 일어날 수 없었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됩니다. 그 동안 피부색을 비롯한 온갖 육체적 특성이 인종마다 다르게 진화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Q에 영향을 끼치는 진화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고 가정할 수 있는 것은 인종 차별적인 진화가 일어나지 않도록 어떤 수호 천사가 진화를 돌봤다는 식으로 암묵적으로 믿기 때문입니다.

저는 인종주의에 대한 걱정은 정당하다고 보지만 이런 식으로 반과학적으로 인종 평등을 옹호하려는 시도에는 반대합니다. 그들의 주장이 통하는 이유는 순전히 정치적으로 올바르다(politically correct)는 것 때문입니다.

저는 “잘 모르겠다”는 입장입니다. 이것은 부분적으로는 제가 인종과 IQ에 대한 문헌을 섭렵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 흑인의 IQ가 선천적으로 낮음을 암시하는 증거들이 있습니다. IQ 검사를 해 보면 흑인의 IQ가 상당히 낮게 나옵니다. 1, 2 점 정도의 차이가 아니라 무려 20점 정도의 차이가 납니다. 이것이 가난과 차별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흑인 연예인들과 흑인 운동 선수들이 대단한 활약을 하고 있음에도 대단한 업적을 남긴 흑인 과학자는 거의 없습니다. 가난과 차별이 오직 과학기술 영역에서만 효과를 발휘했다고 보기에는 뭔가 이상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인종 간 IQ 차이가 후천적임을 암시하는 증거도 있습니다. 바로 미국의 원주민(Native American, 인디언)의 IQ 검사 결과입니다. 그들은 Rushton이 뇌가 가장 크기 때문에 가장 IQ가 높다고 주장한 아시아인으로 분류되지만 백인보다도 IQ가 훨씬 낮게 나옵니다.


과학자들이 아무리 자기네들은 '순수한 사실 발견 차원에서 연구'를 했다고 주장해도, 아무리 정치적 당위 주장과는 별개로 진리 발견을 한 것이라고 '주장'을 했어도, 애초에 위의 사례에서 "나는 돈 5달러를 네게 줄 것을 이에 약속했다."라는 명제가 '당위적으로 작동'하듯 (물론 이 작동은 과학자-인종차별주의반대자들과의 관계와는 다르게 올바르게(?) 작동한 것이지만) 인종차별주의 반대론자들의 '관점'에서는 당연히 그런 연구 행위 자체가 '흑인'에 대한 부정적 편견을 조장할 수 있다고 여겨질 수 있다는 것이지요.

“부정적 편견”이라고 쓰셨는데 정확한 인식은 편견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만약 흑인의 IQ가 선천적으로 낮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의심의 여지 없이 입증되었다면 그것은 편견이 아니라 진리입니다. 물론 평등을 지향하는 공산주의자들에게는 달갑지 않은 진리지요.


제가 볼 때 과학자들은 전자의 '진리성'에 너무 몰두하다보니, 후자의 것, 즉 '언어의 발화 상황이 필연적으로 초래하게 될 당위적 효과'를 고려하지 않는 경향이 있지요.

물론 과학자들 중에는 아무런 성찰 없이 그냥 진리만 추구하면 장땡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과학자들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많은 과학자들이 무기 산업에서 연구하기를 거부합니다. 왜냐하면 “어떤 생화학 무기를 만들어야 사람들을 더 효과적으로 죽일 수 있는가?”와 관련된 진리 추구가 정당화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리처드 도킨스 같은 과학자가 진리에 대해 거품을 물고 강조하는 이유는 미신과 종교의 폐해에 주목하기 때문입니다. 즉 진리를 추구했을 때와 미신을 추구했을 때를 비교해 보았더니 전체적으로 볼 때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인류에게 이롭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대부분의 경우 전체적으로 볼 때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미신적으로 사고하는 것보다 낫다고 봅니다.

물론 과학적으로 사고하는 것과 그 사고 결과를 발화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많은 경우 모르는 것이 약입니다. 뚱뚱한 여자에게 “당신은 인류가 진화시킨 미적 감각에 비추어볼 때 매력이 상당히 떨어진다”라는 식의 명제를 대놓고 이야기하는 것은 별로 추천할 만한 것이 못 되지요. 다른 분이 지적했듯이 상처를 주는 말이니까요. 저는 그렇다고 학술지에 뚱뚱함과 진화적 미적 감각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같은 발화라고 하더라도 때와 장소를 잘 가려서 하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