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하고 똑 같은 글이 있어 퍼왔습니다.
유성룡의 징비록을 읽다가 책을 집어 던졌습니다.
인정하기 싫지만 정말 못난 조상들이었습니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우리 역사에 존재하면 안되는 나라였다는 생각이 들었네요
그런데 오늘날 화폐에는 세종 이순신 율곡 신사임당 죄다 조선시대 인물이네요

다음은 징비록을 중심으로 조선시대 지배층의 의식구조와 삽질하는 모습을 정리해보았습니다.
선조 시대는 조선 최고의 성리학자인 이황과 율곡의 제자들이 정치하고 이산해 이덕형 유성룡등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대신들로 있었는데도 다른 관리나 수령들 지배층들은 한심한 모습을 보면 그들의 역량도 과장되고 허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율곡이나 유성룡 이순신 정도나 그래도 인정할 수 있을런가요


조선이라는 나라는 문약에 흘렀고 성리학에 치중하면서 입으로만 모든 것을 떠들고 실무에 능한 사람을 알아주지 않고 문벌이나 시문을 잘 짓고 허명을 날리는 사람을 알아주었다.요즈음 같으면 시인이나 소설가들이 경제 정치 심지어 일선 전쟁지휘관까지 한 셈이다.

결국 전쟁앞에서 그동안 주문처럼 외치던 나라와 임금에 대한 충성 백성을 위하는 관리로서의 명분은 사라지고 자기 목숨과 자신의 가족만을 살리는데 온힘을 다했고 그 무능한 와중에서 위엄을 세운다고 백성이나 군사들 목베기를 짚단 베듯 하였고 이것은 임금이나 신하나 매한가지였다.

문제는 이런 짓들이 수백년전 임진왜란때의 일이 아니라 지금에도 그러한 학습들이 전해져 온다는 사실이다.

임진왜란때 선조나 조정 대신 지방 수령 그리고 무관들의 행동의 문제점들을 짚어본다.

1. 무슨 쓸데 없는 옥상옥이 많아서 책임소재가 분명치 않았고 백성들과 일선 수령들만 힘들었다.

임진왜란 당시 정식 편제는 육군의 훈련과 지역 방위를 책임진 좌병사,우병사가 있었고 수군은 좌수사 우수사가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관찰사 역시 군사 지휘권이 있었다.

임시직으로 순변사,순찰사, 체찰사. 도순변사, 총 사령관 격인 도원수등이 수시로 임명되었는데 사실상 이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면서 쓸데 없는 간섭과 대접으로 백성과 지방 수령들만 힘들었다.

2. 장수들의 무능이었다.
최고의 명장이라던 신립과 이일의 실력을 우리는 보았다.
아무런 전략이나 통찰력은 없고 그냥 칼좀 쓸줄알고 용감하면 명장이다.
겨우 몇십명 몇백명 단위 여진족과 싸워 양민포함하여 몇십명 수급을 베면 대단한 승전이고 명장이었다.
문관출신 지휘관들은 더욱 한심하였다.
그들은 겁이 많아 도망치기에 바빴고 군사들을 지휘하고 진을 치는 법도 몰랐다.
심지어 무관인 신립이나 이일조차 가장 기본인 척후병조차 보내지 않고 오히려 제보자를 죽였다.

3. 걸핏하면 부하들 목을 베었다.
승전한 신각이 목에임당하여 죽은 것처럼 이런일이 비일비재하였다.

4. 신상 필벌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도망가고 모함해도 멀정하고 반면 힘없고 줄없으면 죄없어도 모함받아 죽는일이 전쟁기간 흔했다.
5. 겉으로만 그럴듯하지만 막상 위기속에서 시스템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임진왜란 시간순서대로 조선의 삽질을 보자

1. 통신사로 갔다가 엉터리 보고해서 국론을 분열하고 대비못하게 한 김성일은 오늘날도 거대한 저택에 빵빵한 후손들이 있다.
그는 자신도 일본이 침략할 거라는 것을 어느정도 알았지만 민심이 동요하고 겁먹을까봐서 반대로 말했다는 것이다.
이런 무능한 사람인데도 우리 역사는 지금도 그를 훌륭한 유학자로 칭찬하고 있다.
잘못 보고한 책임을 물어 체포압송하는 중간에 민심을 수습하고 다독거리는 초유사로 임명되었다.
이게 뭔 시추에이션이냐고요

2.경상 좌병사 이각은 전쟁이 터지자 부산포에 갔다가 퇴각하여 병영으로 오자 첩부터 피난시키고 저녁에 도망가자 병사들이 다 도망가버렸다.

3. 순찰사 김수는 부산 전투에서 도망쳐서 돌아와서 고작 하는 일이 고을에 격문을 돌렸는데 도망치라는 것이었다. 고을 수령을 다그치고 군사를 모아 싸울 준비를 해야하는 사람이

4. 용궁 현감 우복룡은 군사를 이끌고 가다 식사를 하는데 하양지역 병사들이 병사의 명에 따라 소집에 응하여 말타고 가는데 먼지를 일으킨다고 문초하자 병사들은 소집장을 보여주었지만 너희들은 역모를 꾀하는 군사라고하며 죽이라고 명령 수백명이 억울하게 아군에게 죽었지만 순찰사 김수는 공을 세웠다고 장계하여 그는 통정대부에다 안동부사로 승진하였다.

5. 이일이 순변사로 임명되어 상주로 떠나려고 하여 300명의 중앙군을 데려가려 하였으나 군사들을 구할 수 없어 몇십명만 데리고 갔고 신립역시 최고 사령관으로 싸움터에 가는데 지원병도 없자 유성룡이 자신이 모집한 군사를 넘겨주었다.
명색이 수도인데 좌우포청 내금위 우림위 겸사복도 있고 병조 형조 한성부 의금부등 병력을 운용하는 부서가 많고 지방 번상병이 있는데도 정규병력은 하나도 안주고 어중이 떠중이만 데리고 떠났다.

이것은 왕과 조정 고관들이 자신들이 있는 한양의 안위를 생각하여 군사를 내주지 않은 것이다.
6. 순변사 이일은 상주에 도착하여 군사를 모집하고 싸울 준비를 하는데 개령사람이 왜군이 가까이 왔다고 제보하자 군심을 동요케 한다고 목베어 죽이려 했는데 이 사람이 아침까지 기다려도 적이 보이지 않으면 그때 죽이라고 했는데 아침에 목베어 죽이고 훈련을 냇가에서 시작하는데 이미 아침에 10리 밖까지 진출, 척후병만 보냈어도 알텐데
결국 훈련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적의 기습으로 싸움다운 싸움도 못하고 도망


7. 신립은 충청도 기병 8천을 모아서 전투를 준비하는데 군관하나가 적이 조령을 넘었다고 보고하자 군심을 어지럽힌다고 참수 이미 적은 십리밖에 와 있고 허겁지겁 탄금대에 진을 쳤으나 기병전 할 장소가 아니었고 전멸
역시 척후병 보내지 않음

8. 선조 피난길에 내금위 우림위 겸사복등 궁궐 호위부대 군사들 대부분 도망갔고 파주목사 장단부사가 와서 음식을 장만하여 왕과 대신들을 대접하려하는데 하루 굶었다고 호위 군사들이 부엌에 와서 만드는 족족 먹어버려 임금 먹을 것도 부족하자 목사와 부사는 문책이 두려워 도망. 하루 굶었다고 군사들이 이정도면 기강이 어느정도인지

9.개경에서 탄핵이 올라와 영의정 파직 유성룡을 영의정임명 저녁에 유성룡 파직

10. 한강 방어 도원수 김명원 적이 보이자 화포와 무기를 물에 던지고 갑옷벗고 도망

11. 전라감사 충청감사 경상 순찰사 김수 5만명 대군용인에서 허망하게 패배

12. 부원수 신각이 최초로 승리했지만 김명원이 거짓 장계 올리자 무려 부원수를 경위조사도 없이 참수하라고 선전관 보내 참수 이후 진실이 밝혀져 승리했다고 하자 취소선전관을 보내지만 이미 참수

13. 한응인은 평안도 정예 병사 3천명을 데리고 방어선 도착 병사들이 진을 정비하고 쉬고 싸움을 준비하자고 하자 몇몇 병사를 목베어 죽여버리고 별장 유복량에게 강을 건너 공격하라고하자 유복량이 적의 유인책일수도 있고 그러니 살피고 싸우자고하자 목베려고 하여 출격했으나 적에게 매복당함 
결국 본진까지 도망가고 패배했지만 한응인 김명원은 문책이 없었음
14. 함경도 병사 한극형은 6진의 전투경험 많고 기병들인 병사를 이끌고 들판에서 초전에 잘 싸웠으나 적이 숨고 어두워지자 병사들이 잠시 물러나서 다시 공격을 하자고 했으나 포위공격을 명하다 조총탄에 모두 전멸

당시 조선 관리들의 특징은
자기 한몸 살자고 여차하면 도망가고 문제되면 빽을 써서 당파로 무마
반면 충신이나 고지식하고 유능한 장수나 인재는 바로 파직이나 참수

그리고 관직 임명이 조변석개
당시 조선 병사들은 북쪽은 전투경험도 있고 단련된 병사들이지만 장수들의 지휘력 부족

그리고 다른 지방 병사들도 농업이 본업이고 급하게 소집하지만 본래 번상을 해서 군사훈련을 받았기에 정예병은 아니지만 모두 군대경험이 있는 사람들로 지휘관만 유능하면 전투가 가능한 병사들이었음
무기또한 개인소지 준비가 되어서 군량과 지휘관만 올바르면 얼마든지 싸울수 있고 임진왜란의 특징상 대규모 회전이 많지 않고 우리는 지방 고을이 거점이 되어 충분히 싸울 수 있었음


그런데 임진왜란의 지도층들의 삽질은 병자호란때도 반복되고 구한말에도 한국전쟁때도 그리고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이 무서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