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 역사는 국가 단위로 기록이 되고 그 기록은 국가의 통치자나 지배계급의 행위를 중심으로 기록이 됩니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면이 있습니다.

가장 기록이나 유물이 많이 남아있는 것도 지배층들이고 그들의 행위와 결정들은 국가 구성원들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리산이 그냥 성황봉 하나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수 많은 봉우리와 골짜기들로 이루어진 것처럼 역사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사건과 수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바닥에  깔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비극인 한국전쟁이라는 봉우리 아래 잘 알려지지 않는  작은 봉우리에 사람들이 모여들어서 65년동안 잠든채 말없이 소리치는 사람들의 외침을 토해내었습니다.


대전 산내 민간인 학살 사건이 있었던 대전시 산내동 곤령골 골짜기에서 한국전쟁기 대전 산내 민간인학살 유해 발굴 공동대책위원회(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와 세상을 바꾸는 대전민중의힘,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민족문제연구소대전지부, 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 대전충남인권연대 등 대전지역 18개 단체 그리고 민족문제 연구소등 외부단체의 지원과 재정) 주관으로 산내 학살 유골발굴이 있었습니다.


교수 그리고 영남대 문화 인류학과 학생들 10여명등 많은 자원 봉사자들이 참여하여 국가와 수 많은 잘나고 돈 많고 똑똑한 사람들이 외면한 불쌍한 원혼과 유족들의 아픔을 씻어내었습니다.


제가 사는 지역에서 가까운 곳인데 마침 그곳을 지나가다 발굴 현장을 목격하였습니다.


그런데 참 조선시대에도 외국의 침략은 막지 못하던 정부군이 민란이나 국민들 잡도리하는데는 빠르고 약삽하기 이를데 없더니만 한국전쟁때에도 그 와중에서 어떻게 5일만에 그렇게 빨리 재소자와 보도연맹원에 대한 학살 계획을 세우고 집행했는지 

국민들의 안전과 피난에 대한 계획의 실행보다 초법적으로 자국민을 죽이는일에 그렇게 신속 정확하다니 참 정이 떨어집니다.

그러는 가운데 티브에서는 애국심을 돋우기위해 태극기를 계양하는 운동을 벌인다고 하는데 국기 하강식도 검토한 모양이었습니다.

국가에 대한 신뢰와 자부심이 있으면 애국 하지 말라고해도 애국할텐데 자국민을 이렇게 홀대하고 학살하고서도 아직까지 발굴도 외면하고 위령비하나 만들지 않는 이나라 그리고 소위 정치 사회지도자들의 모습을 보면 조선시대 그 완고하고 명분에 집착한 성리학자들의 모습에서 한발자욱도 더 나아가지 못한 모습입니다.



대전산내 민간인 학살사건은 아래와 같습니다.


대전 산내 민간인 학살사건은 2010년 진실화해위원회가 진실규명을 결정한 조사보고서를 통해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전쟁 발발 당시 대전형무소에는 재소자 4000명이 있었고 제주 4·3사건과 여순사건을 거치며 재소자는 크게 늘었다. 
6월 25일부터 30일 사이 치안국에서 무선전문으로 보도연맹원들을 전부 검거해 처단하라는 지시가 충남경찰국에 하달됐고, 7월 1일 대전형무소에도 대전검찰청의 같은 내용의 전문이 접수됐다. 

헌병 지휘자의 구령에 따라 헌병대가 총살을 하고 헌병 지휘자가 확인사살을 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생존한 대전형무소 형무관과 충남경찰국과 대전경찰서 소속 경찰 등의 진술조서를 바탕으로 2010년 이같은 사실규명결정을 내렸다. 

이를 통해 진실화해위원회는 대전형무소 재소자와 보도연맹원 희생사건을 “1950년 6월 28일부터 7월 17일 새벽 사이 충남지구CIC, 제2사단 헌병대, 대전지역 경찰 등에 의해 법적 절차 없이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집단살해당한 사건”으로 규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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