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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어제 저녁에 <휴가>라는 일본 영화를 한편 보았습니다. 부부를 살해하고 사형수가 된 젊은이와 늦결혼을 앞두고 일주일 간의 휴가를 얻기 위해 사형집행장의 지지역(형장에서 교수형에 처해진 사형수의 흔들리는 하반신을 잡는 역할인 것 같음)을 자청한 교도관을 중심으로 생명에 대한 소중함과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영화입니다. 영화에서는 교도관 생활을 30년 넘게 하면서 사형수의 죽음을 수없이 지켜 본 어느 베테랑 교도관도 사형집행이 결정되었다는 소리를 듣자 극도의 긴장을 하고 힘들어 하더군요. 또 사형 집행에 참석하는 모든 교도관이 식사를 못할 정도로 예민해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평소에는 그림을 그리는 등 조용하게 지내던 사형수가 사형집행 전날부터 벽에 머리를 찧는 등 뭔가 이상행동을 하고 갑자기 발작을 하기도 했습니다. 마치 자신의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아는 듯한 행동이었고 마침내 사형집행일이 되자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사형제의 존치를 찬성하는 저도 그 영화를 보면서 한 인간의 생명을 강제로 끊게 만든다는 것은 참으로 못쓸짓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사형제의 폐지에 선뜻 찬성하기는 어려운 것은, 잔인무도하게 타인의 생명을 살해한 자는 자신의 목숨으로 배상을 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최근에 두 사건의 법원 판결이 제 관심을 끌었는데 하나는 지난 2014년에 발생한 강원도 모 부대 GOP에서 수류탄을 터뜨려 동료 5명을 살해한 임 모 병장의 공판이고, 또 하나는 여고생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한 이 모씨에 대한 판결이었습니다. 임 모병장은 사형이 선고되었고 이 씨 등은 무기징역이 선고되었습니다. 임 모 병장의 경우 다수의 사람들이 희생되었고 일반인이 아닌 군인의 신분이기에 당연히 사형이 선고되리라고 예측이 가능했지만 여고생 살인사건의 경우는 조금 의외였습니다. 여고생 살인사건이 비록 게획적인 살인은 아니었다고 해도 범행의 잔인성으로 비춰볼 때 사형이 선고될 것으로 보였는 데 '무기징역'으로 판결이 났습니다. 재판부는 가해자가 책임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과 아직 20대의 젊은이로써 교화의 여지가 있다는 점을 들어 극형인 사형보다는 무기징역형을 통해 반성과 참회로써 죄를 뉘우치도록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판결의 이유를 밝혔습니다. 하지만 여고생의 부모님들은 무기징역형을 수긍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부모님들로서는 당연한 반응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자식이 잔인하게 살해를 당했는데 그 범인을 살려준다면 누가 원통하지 않겠습니까.
사형제도의 찬반 논의는 많이 등장했던 주제인 것은 분명하고 또 현시점에서 결론이 나기 어려운 문제임은 분명합니다. 어쩌면 아크로에서도 몇 번 논의되었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제가 어제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감정들과 본문에서 언급된 사건들에 대한 판결 내용이 생각나서 글을 한번 써 보았지요. 사형제가 오직 '복수'의 목적 만을 위한 것으로 보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님이 언급한 '경고'의 목적도 분명히 존재한다고 봅니다. 물론 경고의 목적이 충분히 달성되고 있느냐 하는 판단에 있어서는 '그렇지는 않다'는 점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고대로부터 범죄에 대한 사형이 시행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강력범죄는 발생하고 있으니까요. 따라서 사형제도가 그 목적을 충분히 달성하고 있는 제도가 아니라는 점은 인정됩니다. 그럼에도 '사형제'가 강력 범죄를 줄인다고 연구보고도 있습니다. 싱가폴이 마약범죄에 대해 사형을 실시함으로써 마약 범죄가 현저히 줄었다는 기사를 본 적도 있구요.
그런데 제가 참 궁금한 것은, 끔찍한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자신이 그 범죄의 결과로 사형을 당할 수도 있다는 점을 안다면 과연 그 범죄를 저지를까 하는 점입니다. 제 생각이지만 살인을 저지르는 순간에는 그런 생각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죽음을 각오하고 살인을 하는 사람들이 과연 있을까요?
저도 사형제 찬성론자입니다. 오판 가능성이야 어느 재판에든 다 있는 것이니까 새삼스레 말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복수를 국가가 대신해 줌으로써 보복의 악순환이 끊어지는데, 살인은 적절한 보복이 오직 사형뿐입니다. 오판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무기징역형을 선고하는 것은 법관의 재량에 맡기더라도, 사형을 금지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적으로 사형을 집행하려면, 교도관(?)의 정신적인 고통을 감안해서 '시한부 자동 자살형'으로 집행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사형수의 독방에 자살용 버튼을 만들어 두고, 독가스나 독물로 자살할 수 있게 만들어 줍니다. 사형 판결 이후 6개월 내에 자살이 이뤄지지 않으면, 컴퓨터에 의해서 자동으로 버튼이 눌러집니다.
그리고 많이들 그렇지 않다고들 말하지만, 대개 죽음의 문화에서 주인공은 죽을 이가 아니라 산 자들입니다.
인기를 누리는 것은 항상 후일담 문학이죠.
'지금 여기'는 후일담을 이기지 못합니다.
과거 사형제와 관련해 썼던 글을 링크하니 참고 하세요.
http://theacro.com/zbxe/?mid=refer&search_target=nick_name&search_keyword=%EA%B8%B8%EB%B2%97&page=3&document_srl=284987
http://theacro.com/zbxe/?mid=free&search_target=nick_name&search_keyword=%EA%B8%B8%EB%B2%97&page=19&document_srl=134254
http://theacro.com/zbxe/?mid=free&search_target=nick_name&search_keyword=%EA%B8%B8%EB%B2%97&page=19&document_srl=134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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