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치고 정치: 김어준의 명랑시민 정치교본』, 김어준, 푸른숲, 2011 10

 

 

 

『닥치고 정치』에 왜 과학 이야기를 끌어들이는지 궁금한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저자인 김어준이 자신을 가리켜 과학자라고 한 적도 없고, 『닥치고 정치』가 과학 책이라고 광고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게다가 제목도 『닥치고 과학』이 아니라 『닥치고 정치』다.

 

 

 

우선 교권(magisterium, 敎權) 개념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해 보겠다. 자세한 것은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의 『Rocks of Ages: Science and Religion in the Fullness of Life』를 참조하라. 나는 “과학의 교권”과 “도덕 철학의 교권”을 구분한다. 그리고 이 글에서도 그런 용어를 쓸 생각이다. 교권이라는 용어가 어려우면 “과학의 영역”과 “도덕의 영역”이라는 좀 더 편한 말과 비슷하다고 생각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과학의 교권에서는 현상을 설명하려고 한다. 반면 도덕 철학의 교권에서는 규범 등을 정당화하려고 한다. 그런데 『닥치고 정치』의 상당 부분이 현상 설명에 대한 이야기다. 즉 과학의 교권에서 놀고 있다. 김어준은 이 책에서 인간에 대한 온갖 것들을 설명한다. 그리고 나는 그런 설명 대부분이 엉터리라고 생각하며 그 때문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김어준은 그냥 자신의 직관을 지껄이고 있다. 현상을 설명하고자 한다면, 즉 과학의 교권에서 놀고자 한다면 과학의 교권의 게임의 규칙에 따라야 한다. 즉 과학적 방법론에 따라야 한다. 과학적 방법론에 대해서 여러 가지 논란이 있긴 하지만 쉽게 말하자면 논리적 일관성과 실증이다. 김어준은 과학의 교권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과학적 방법론은 눈곱만큼도 고려하지 않는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과학의 교권”이라는 어려운 말까지 써 가며 굳이 이런 책까지 비판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할 것 같다. 그냥 우스갯소리로 넘기면 될 만한 책이 아닐까? 사실 이 책의 내용을 우스갯소리 이상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음을 김어준 자신이 어느 정도는 암시하고 있다.

 

그러니 사전 경고한다. 다음 페이지부터 펼쳐질 내용, 어수선하다. 근본도 없다. 막 간다. 근본 있는 자들은 괜히 읽고 승질내지 말고 여기서 덮으시라.

 

다만 한 가지는 약속한다.

어떤 이론서에도 없는,

무학의 통찰은 있다.

물론, 내 생각이다.

 

반론은 받지 않는다.

열 받으면 니들도

이런 거 하나 쓰든가.

(『닥치고 정치』, 4)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글을 쓴 이유가 있다. 『닥치고 정치』 한 권만 생각해 보면 굳이 과학이라는 단어까지 끌어들여서 비판할 필요가 별로 없어 보인다. <딴지일보> 총수인 김어준이 쓴 글 아닌가? 김어준은 아예 노골적으로 “근본”, “이론” 등을 무시한다.

 

세상의 모든 일에 과학적 근본과 이론을 따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개그콘서트> 같은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과학적으로 올바른 정보를 전달해야만 하는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닥치고 정치』를 코미디로 즐기려고 한다면 그냥 즐기면 된다. 재미가 있는지 여부는 순전히 개인 취향에 달려 있으니까.

 

 

 

그런데도 나는 그렇게 즐기려는 사람들 앞에서 파토를 내려고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닥치고 정치』를 읽으면서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 책을 비판하는 글을 썼다.

 

김정운 교수의 꼴값 심리학: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비판

http://cafe.daum.net/Psychoanalyse/8C80/23

 

두 책 모두 과학의 교권에서 놀면서 과학적 방법론을 무시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어떤 사람은 김정운의 책도 김어준의 책만큼이나 그냥 우스갯소리로 읽으면 될 것 아니냐고 이야기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는 약간 더 힘들다. 왜냐하면 김정운은 자신의 책이 근본 있는 이야기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요즘재미있어야 한다는 주제의 강의를 자주 한다. 그러다보니 가끔 사람들이 나를 어설픈 교수로 본다. 실력 없이 말재주만 가지고 버티는 허접한 교수 취급하기도 한다. 그러면 정말 열 받는다.

나는 제대로 공부한 문화심리학자다. 독일에서 학위 따는 일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나는 베를린 자유대학 심리학과의 전임강사로 독일 학생들을 가르쳤다. 비고츠키, 피아제, 프로이트를 독일말로 가르쳤다. ……

내 이야기가 그리 간단한말장난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깊은 학문적 성찰의 결과란 뜻이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299)

 

 

 

나는 『닥치고 정치』에서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를 떠올렸으며 그 다음에는 여성주의(feminism) 이론들을 떠올렸다. 여성주의자들의 태도는 김어준과 매우 다르다. 그들은 여성 억압에 대한 자신의 이론이 우스갯소리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은 거의 김어준만큼이나 과학적 방법론을 무시한다.

 

내가 보기에는 김어준이 과학적 방법론을 무시하고 과학의 교권에서 노는 것은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나 여성주의 이론을 비롯한 온갖 조류들의 분위기와 관련이 있다. 인간에 대한 진지한 담론들에서는 대체로 과학적 방법론을 존중하는데 김어준만 그냥 웃자고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진지한 담론을 한답시고 열심히 떠드는 사람들도 대부분은 김어준과 비슷하다.

 

 

 

예컨대 김어준은 이런 말도 한다.

 

폼 잡는 이론이나 용어 빌리지 않고, 일상의 언어로 정치를 이야기해보자고.

(『닥치고 정치』, 28)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 아닌가? 어렵고 폼 잡는 이론이 인간을 이해하는 데 별로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은 김어준만 하는 것이 아니다. 논리와 실증을 철저히 따지려는 과학이 남성적이기 때문에 여성주의자들이 그것을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그들은 김어준처럼 농담조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진화 심리학을 공부하고 있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김어준이 무시하려고 하는 바로 그 “근본”을 매우 중시한다. 그들은 진화 생물학이라는 근본을 중시한다. 그리고 진화 생물학을 수학이라는 또 다른 근본에 바탕을 두고 정립하는 데 기여한 윌리엄 해밀턴(William Hamilton) 1964년 논문을 중시한다. 그들은 컴퓨터 과학이라는 근본을 중시한다. 그들은 뇌 과학이라는 근본을 중시한다. 그들은 사냥-채집 사회나 유인원에 대한 체계적 연구라는 근본을 중시한다. 그들은 비교 문화 연구라는 근본을 중시한다.

 

이렇게 근본에 충실하게 과학을 하려는 진화 심리학자들은 오히려 “그럴 듯한 이야기나 만드는 사람”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리고 과학적 방법론은 개나 줘 버리라는 식의 태도를 취하는 정신분석가들, 여성주의자들, 마르크스주의자들, 문화 인류학자들은 대단한 대접을 받고 있다. 오히려 실증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그럴 듯한 이야기나 만드는 사람들은 바로 그들인데도 말이다.

 

 

 

김어준의 책에 나오는 현상 설명들은 어떤 면에서는 아주 순수하다. 김어준은 철저하게 과학적 방법론을 무시한다. 그렇기 때문에 김어준의 설명은 순수한 쓰레기가 될 수 있었다. 이런 김어준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김어준의 책을 그냥 우스갯소리로 읽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정신분석가들, 여성주의자들, 마르크스주의자들, 문화 인류학자들의 책도 그냥 우스갯소리로 읽어도 되는지 자문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과연 그런 사람들이 쓴 책이 과학의 교권과 관련하여 김어준의 태도와 얼마나 다른지 따져보아야 한다. 즉 그런 사람들의 책이 김어준의 책보다 약간 덜 순수한 쓰레기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따져보아야 한다.

 

 

 

이덕하

2012-0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