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0808824.jpg 
1350808806.jpg 

2002년 월드컵의 열기와 함께 온 촛불 참여문화에 이은 노사모 정치참여 문화는 세계를 놀라게 한 붉은 악마의 평화적인 응원문화와 함께 전세계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한국 정치의 새바람을 몰고 온 것으로 평가된 노사모 정치참여 열기와 노무현 정권창출은 하나의 정치적 신화가 되었다.


하지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승승장구하던 그 열기가 이제는 우리사회의 광기문화, 정치공해의 핵이 되어 ‘공공의 적’ 신세가 되었다. 노사모를 바탕으로 한 노무현정권 역시 전 국민적 버림을 받고 인기없는 역대 최악의 왕따정권 신세가 되었다.


왜 이렇게 되었으며 무엇이 문제일까? 노사모의 노빠문화는 황우석의 황빠현상처럼 그 실체가 거짓에서 시작되어 거짓으로 끝나는 하나의 정치적 사기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노사모 문화의 핵은 거짓으로 형성된 정치적 상징조작과 그에 따른 무비판적 인터넷 지지열기가 응집되어 폭발적 ‘괴물’을 창출한 사건이었다.



외형적으로는 인터넷 참여문화가 발판이 된 최신의 현상 같아 보였지만 실상 내막을 알고 보면 우리사회 분단과 파시즘의 전체주의적 광기 등 구태정치의 모든 엑기스가 녹아들어간 퇴행적인 정치사기 사건일 따름이다. 황우석 광기파동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정치판의 황빠현상이라고 보면 될 정도이다. 초창기 황빠의 핵이 바로 노빠집단이라고 할 수 있으며 친노 매체의 핵인 ‘서프라이즈’가 황빠 광기문화의 핵을 이루고 있는 것을 주목해보면 상당히 그 내막을 짐작할 수 있다.

최근의 열린우리당 해체현상을 보며 그동안의 경과와 향후 정치판 변화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한국정치판을 극도로 교란한 희대의 정치적 사기사건인 노빠문화의 생성과 성장 및 쇠퇴과정을 정밀하게 조망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조장된 노무현 신화와 노빠 참여문화


노빠문화가 있게 한 단초가 되는 것이 바로 노무현 신화이다. 부산지역에서의 선거패배가 지역주의 타파를 위한 성스러운 패배, 아름다운 패배라는 주장이 인터넷 문화를 타고 확산되면서 노무현은 선거에서 패배했지만 정치적으로는 지역주의 타파의 상징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치가 노무현이 부산시장 선거에 도전하고 국회의원 선거에 도전한 것은 지역주의를 타파할 의지가 전혀 없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그 실패 하나가 무조건적으로 지역주의 타파의 상징이 될 정도의 일은 아니었다. 과거 전통적 야권에서 부산지역에 출마하는 후보자들은 흔히 쓰던 주장의 연장선상에서 한 일일 따름이다. 따라서 나름대로의 의미는 있다고 볼 수 있겠지만 이것이 노무현만의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성스런 주장은 결코 아닌 것이다.


하지만 노무현의 경우에는 이것이 아름다운 패배로 간주되며 일부의 동정론과 인터넷문화를 타고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사건 왜곡의 시작이었다. 정치판의 황우석 파동도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따지고 보면 황우석의 과학신화보다도 시작은 작았다고 할 수 있다.


                정치판의 찬양문화가 탄생시킨 '괴물'참여정권


정치인들은 흔히 자신의 행위를 좋은 명분으로 치장한다. 단순히 치장을 하는 정도를 넘어 극대화하며 위선화한다. 모두 선전선동의 달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이기에 여든 야든 혹은 모리배 정치가든 또는 훌륭한 지사형 정치가이든 모두 좋은 명분으로 자신의 이해관계를 은폐한다.


따라서 정치권의 전당대회나 지구당 대회에 한번 가보면 누구나 엄청난 열기에 휩싸이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지지 열기를 뜨겁게 만들어낸다. 종교집단의 광적인 지지열기를 쉽게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것이 정치판의 위력이고 괴력인 것이다. 국회의원 회관실에서 만나게 되는 국회의원들은 모두 하나같이 좋은 옷을 입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두 애국의 아름다룬 주장을 하고 있다. 말로는 모두 지고지순하게 깨끗한 것이다. 이들이 국민들로부터 가장 혐오를 받는 사람들이라는 것이 꿈에도 상상이 안 갈 정도로 좋은 명분을 노래하고 있는 존재들인 것이다.



이것이 한국의 정치현실이다. 국민들로부터 가장 혐오감을 받는 국회의원들조차도 만나보면 순진한 사람들은 모두 혹하지 않을 정도로 좋은 말과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단순한 언변이 아니라 순진한 사람들은 모두 넘어가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설득력 있게 주장을 하는 것이다. 이 바닥의 판이 늘 그러한 것이다.


따라서 정치인들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순진한 사람들은 쉽게 속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한국 구태 정치판의 현실이었던 것이다. 지금도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그러므로 정치인 노무현이 설령 액면 그대로 지역정치 구도 타파를 위해 부산선거에 뛰어들었고 또 그로 인해 아름다운 패배를 했다손 치더라도 그의 아름다운 행위는 그것으로 그쳐야 하는 정도의 것이지 그것이 마치 지고지순의 아름다운 행위, 순국의 행위 혹은 지역주의 타파를 위한 상징인 양 찬양되고 고무될 일은 아니었다. 그러한 주장은 사실 야권의 정치인들이 늘상 하던 주장의 하나였고 그 연장선상에서 있었던 일이다. 따라서 노무현의 선거 패배를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으로 폄하될 필요는 없겠지만 동시에 정권을 창출할 정도로 과장되고 극대화될 일은 결코 아니기도 했다.


하지만 그 누군가는 그 행위를 과도하게 띄우고 찬양하는 가운데 어느듯 노무현은 마치 살아있는 순국애국 열사처럼 상징화되어 갔다. 이것이 바로 참여 부흥회정치의 시발이 된 것이다. 유사 종교집단의 신앙간증처럼 전개되는 노무현 찬양 고무 숭배 열기는 혁명적 통신수단인 인터넷문화와 겹치면서 전국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노무현의 부산선거 도전은 마치 높이뛰기 선수가 한 단계 더 높은 기록을 세우려고 도전하다가 능력부족으로 실족한 사건에 불과하다고 간단히 볼 수도 있는 사건인데, 특정 집단에서 일부의 동정심리를 이용하고 극대화하며 엉뚱한 ‘신화’가 창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노무현의 부산선거는 분명한 정치적 실리가 내다보이는 도전이었다. 만약 노무현이 부산지역에서 국회의원이 되든 혹은 시장이 되든 선거에서 승리했다면 당시 현존하던 지역구도 하에서 명실공히 김영삼의 뒤를 잇는 영남권의 지역맹주가 되는 거대한 실익이 보장되는 선거였다.


하기에 단순히 전국적인 지명도를 더 높일 수 있는 종로선거보다는 현존하는 지역정치 구도 속에서 영남지역의 패권장악이라는 거대한 정치적 실리를 보장받게 되는 부산지역 선거구가 훨씬 더 매력적인 선거였던 것이다. 바둑으로 비유하자면 종로라는 중심 세확산에 도움이 되는 싸움보다는 실리가 곧 바로 보장되는 귀퉁이 지역싸움에 도전한 셈인 것이다. 어차피 계산에 의한 선택이었지 결코 순수하게 지고지순의 지역정치 타파를 위한 순교자 게임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것은 그가 대통령이 되고서도 지역정치구도를 해소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보다 명확해진다.)


또 부산선거는 비록 확실치는 않았지만 노무현 캠프 측에서 보면 당선가능성도 상당히 내다볼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야심이 있는 정치가로서 충분히 욕심을 내어볼 수 있는 선거였다. 그래서 3김 반열에 들기 위해 한번 야심차게 도전해봤으나 예상보다 큰 지역주의 장벽과 자신의 능력부족 때문에 거듭 패배를 하며 좌절한 것이다.


그것이 노무현 스토리의 핵인 것이다. 영남권의 패권 장악이라는 확실한 정치적 실리에 도전하다가 실패했을 뿐 그 이상의 아름다움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추가로 더 많은 일화가 필요한 경우인 것이다.


                  조작된 신화의 확산과 부흥회 정치의 시작


한국의 상황에서 그렇게 혐오스런 국회의원만 해도 만나보면 모두가 아름다운 이야기, 나라를 사랑하는 지고지순한 마음, 미래의 아름다운 비젼 등을 청산유수로 이야기하는 것이 한국의 정치판이다. 누구든 아름답게 포장할 기술과 언변이 있기에 누구든 신화 창조가 가능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따라서 일부에서 조직적으로 띄워주기만 하면 약간의 단초가 될 사건이 있을 경우 언제든 정치적 신화가 창조되고 또 확산될 수 있는 것이다.

노무현신화는 그렇게 창조된 것이다. 결국 내용을 보면 좌회전 깜빡이를 넣으며 우회전을 하는 양두구육의 정치인이며 영삼시계 사건을 일으킨 소심한 기회주의적 정치인인데 사람들의 상상력 속에서는 이미 망국병을 치유할 지고지순의 애국지사, 독재자에게 명패를 던졌던 정의의 천사, 미국에 대해서는 얼굴 붉힐 일도 과감하게 할 수 있는 자주의 화신이 되어있었던 것이다. 실제 현실과 관념속의 상상력과 이렇게 큰 괴리 현상이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

5공 청문회스타라는 좋은 이미지와 이를 밀어주는 운동권세력의 선전선동 능력이 결합하여 노무현의 상징조작은 끝없이 전개되었던 것이며 그 결과 결국 정권탄생으로까지 연결된 것이다.

정치판에서 상징조작은 흔히 일어나는 법이며 약간의 과장은 흔히 있는 일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노무현신화의 경우에는 이러한 과장이 단순한 과장으로 끝나지 않고 인터넷 훌리건이라는 폭력문화와 연결되어 광기정치라는 새로운 브랜드의 괴물정치를 탄생시켰기에 문제가 된다.

이 괴물정치는 겉포장은 개혁이네 참여네 민주세력이네, 좌파네 진보네 하고 있지만 실제 모습은 여장남자 혹은 남장여자 처럼 전혀 다른 속모습을 하고 있다. 반공 냉전 분단이라는 독극물에 의해 유전자 돌연변이가 되어 탄생된 새로운 브랜드의 전체주의, 파시즘 광기정치 메카니즘을 그 주요 속성으로 갖고 있기 때문이다. 친노세력의 정치를 깊이 있게 살펴보면 모두가 분단, 파시즘에서 파생된 매도 분열 광기 폭력 메카니즘을 그대로 변용하고 있다. 노무현의 참여정치에 한국의 모든 구태정치의 엑기스가 녹아들어있다는 말을 듣게 되는 연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좌회전 깜빡이를 넣으며 우회전을 하는 속임수와 마찬가지로 언술상으로는 참여민주주의를 노래하고 있지만 내용은 바로 반민주 파시즘 분열주의 광기 폭력 독선 정치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이율배반적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 살펴보자.


   



  증폭된 신화와 교주문화


노무현 정치 지지자 모임인 노사모 문화는 내부적 비판이 사실상 없다. 여기서 모든 심각한 문제가 출발하고 있다. 정치는 엄청난 권력과 이해관계가 걸려있기 때문에 사람을 쉽게 변화시킨다. 그것도 크게 변화시킨다. 따라서 좋은 정치가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내부비판이 이루어져야 잘못될 가능성이 적어진다.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말과 같이 비판이 없는 권력은 자연스럽게 부패와 오류로 빠지게 되고 그로 인해 공동체에 해가 되는 공해정치가 탄생되는 것이다.


이런 말을 하면 노빠들은 또 노무현정권은 탈권위주의 정치를 하기 때문에 절대권력이 탄생된 적이 없으며 노무현정치가 타락하지 않았다고 항변을 할 것이다. 이런 논리 자체가 사실 정치선동에서 나온 것이지만 내부비판 문화가 없기 때문에 순진한 사람들은 그대로 진실된 것으로 믿으며 또 속게 되는 것이다. (노무현정권의 탈권위주의는 정권차원의 복지부동을 은폐하기 위한 것인데, 민주적 권위democratic authority로 나아가지 못하는 무능과 무철학, 무전략을 은폐하고 속이기 위해 이런 아름다운 말로 위장하고 있다.)


또 다른 일부에서는 내부적인 건전한 비판문화가 있다고 착각을 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 스스로 자기검열하는 식의 비판, 혹은 최고 지도자의 심기를 결코 건드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비판은 사실 비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거짓된 선전선동에 세뇌된 노빠들은 주위에서 바람잡는 이런 얼치기 논리에 현혹되어 노사모 집단 내에 건전한 비판문화가 있다고 확신을 하는 경우가 많다.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며 집단내에서 동조성(conformity)을 이용하여 소수의 사람들이 그런 분위기를 연출하여 이끌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기에 자신들이 반사회적인 야만적 일을 하면서도 야만적인 줄을 모르는 것이다. 잘못된 사이비 종교에 빠져 정신을 잃어버린 경우와 유사한 것이다.  전두환 정권 시절 민주적인 재판절차도 거치지 않고 3청교육대로 사람들을 강제로 보내 격리하는 야만적 행위를 하면서도 자신들은 가장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착각을 한 것과 똑 같은 현상을 노빠진리교 신도들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노빠들이 진정한 비판문화가 있었다면 노무현정부가 결코 반개혁적인 이라크파병이나 김선일씨 참수방치 사건, 아파트분양원가 공개문제,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인정, 한미 FTA강행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없었던 것이다. 먹었나 먹지 않았나는 애 배를 보면 안다는 속담처럼 개혁적인 집단내에서 정상적인 토론이 이루어진다면 결코 위와 같은 반개혁적 사건들은 일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쓰레빠가 된 노빠문화


정치 지도자에 대한 맹목적 지지와 순종 및 충성은 결국 무비판의 함정 속에 빠져 전체주의의 동조 문화를 탄생시킨다. 노무현추종자 집단에서 종교간증과 같은 개혁간증의 분위기 속에서 지지열기만 강화되는 것은 바로 전체주의적 열기가 불게 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이 노무현의 가는 길이 개혁이요 진리요 길이요 빛이라고 찬송할 때 그렇지 않다고 얘기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실제 열린우리당의 국회의원들도 제대로 된 비판을 못할 지경이었던 것이다. 맹목적 추종자, 맹목적 지지자가 된 노빠진리교도들은 이제 전체주의 정치의 한 부속품, 소모품이 되어 지도자가 이끄는 대로 끌려만 가는 존재가 된 것이다. 다단계 피라미드 상층의 지도자가 화장실로 신고 가면 화장실 오물이 묻고, 진흙탕 속을 걷게 되면 진흙탕 물이 묻게 되고 또 노름판으로 끌고 가면 노름판 오물을 묻히는 신세가 된 것이다.



교주 주변의 사람들은 이것을 조장하고 이용했다. 이를 통해서 자신들은 권력을 쟁취하고 강화하고 성장해갔던 것이다. 개혁을 염원하던 순진한 노빠들은 이렇게 자연스럽게 또 부지불식간에 정치판의 쓰레빠가 된 것이다. 이 쓰레빠를 신고 정치적 한탕주의자들은 한미FTA라는 민족불행의 길로 끌고가고 있는 것이다.


사실상 영혼을 빼앗겨버린 노빠진리교도들은 교주가 된 정치지도자가 성조기를 쥐어주면 그것이 개혁이고 자주라 확신하며 흔들어대었던 것이다. 김홍도 신도들과 같은 행동을 하면서도 그것이 개혁이고 자주의 길이요 진실된 길이라 믿으며 춤을 추고 노래하며 성조기를 흔들고 있는 것이다. 쓰레빠는 신은 사람이 임자이고 그 사람만이 의지를 가진 것이기 때문에 수동적 존재가 된 노빠 쓰레빠들은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쓰레빠가 된 노빠들을 통해 노무현정권은 국민들에게 명패를 던지듯이 더러운 쓰레빠를 던지기 사작한 것이다. 국민들을 흑두루미 백두루미도 구별 못한다는 막말을 하며 국민은 21세기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를 잘 못 모신다는 패륜적 망언을 내던지며 국민에게 쓰레빠질을 해댔던 것이다.


          참여 악플정치와 인터넷 훌리건 사병정치


참여정부의 친노 핵심세력들은 이렇게 쓰레빠가 된 노빠들은 한껏 이용하며 한국의 개혁정치판을 교란하고 또 이를 통해 자신들의 권력을 옹호/강화했다. 영혼을 자신들에게 저당잡히고 무조건적으로 또 맹목적으로 따르는 노빠진리교도들을 정치적 사병처럼 이용하여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추구에 방해되는 자들을 매도하여 죽이고 위협하며 무력화해가는 가운데 정치권력을 강화해갔던 것이다. 노빠 언어폭력 악플정치가 새로운 브랜드의 파시즘이라고 명명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분당이라는 민주당 파괴사건과 각종의 친노-반노 숙청 게임은 이런 폭력적 메카니즘을 이용하며 발생한 일이었다.


친노 핵심 세력은 인터넷 시대의 중요성을 간파하며 이를 장악하기 위해 노빠 폭력정치를 자행했던 것이다. 노빠 인터넷 훌리건 정치, 노빠 악플정치는 새로운 브랜드의 용팔이 각목정치였던 것이다.


인터넷정치 시대에 인터넷 공론장의 역할은 여론형성과 장악에 대단히 중요하다. 동시에 권력의 장악과 확장을 위해서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따라서 이 공론장의 장악은 권력의 조성과 유지 및 확장을 위해 대단히 중요하다. 이런 점을 꿰뚫어본 친노 핵심 세력은 노빠신도들을 정치적 사병으로 활용하여 조직적으로 악플 폭력정치를 이용했다. 따라서 사병운용이라는 측면에서는 가히 고려시대로 퇴행한 것이며 특정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백주 대낮이나 야간을 가리지 않고 광범위한 폭력정치를 이용했다는 측면에서는 5공 시절의 용팔이 각목정치를 자행했던 셈이다.


참여정치의 중요한 한 메카니즘이 바로 5공시절 창당방해를 위해 했던 용팔이 각목정치와 성격상 유사한 것이 바로 노빠 악플정치, 노빠 인터넷훌리건 언어폭력정치였던 것이다.



물론 정치적 공론장을 왜곡시키려던 행위가 비단 노빠집단에서만 발생한 일은 아니었지만 조직적으로 또 열성적으로 그래서 여론 왜곡을 실질적으로 또 선도적으로 했다는 측면에서 노빠훌리건들의 역할은 타의 주종을 불허한 것이다. 여권에서 국회의원 살생부라는 말이 흔히 나돌았을 정도로 이들의 위력은 무서웠던 것이며 권력의 장악과 왜곡의 선두에 섰다. 다른 박빠나 창빠 등과 다른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들의 악플정치는 단순한 지지자 찬양/반대 행위를 넘어서는 일로 결코 장난 수준이 아니었다. 권력의 운용과 직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런 야만적 폭력정치는 원래 그 지도자들이 제어를 해야 마땅한 일이다. 자신들이 원하지 않는 일을, 또 자신들이 오해를 받을 소지가 있는 일을 지지자들이 떼거리로 몰려다니며 하고 있는데 짐짓 모른 채 하는 것은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려는 것과 같은 거짓된 일인 것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친노 진영에서는 그 누구도 제어를 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것을 방치하며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야만적인 반민주 반지성적 행위였던 것이다. 이런 일이 그래도 명색이 과거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정치인들이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기에 이들의 정치행태에는 구태 정치의 모든 액기스들이 녹아들어가 있는 것이다.


                사문난적의 친노 참여 악플정치


이들의 야만적 행위의 절정은 이들이 한국 지성사회를 대표하는 양심적이고 용기있는 올곧은 지성인들에게도 과감하게 욕설을 내밷는 야만적 행위를 한다는 점이다. 참여정부의 거짓됨이 서서히 드러나 그 폐해의 심각성이 간과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 우리 사회를 대표하는 양심적 지성인인 이영희 교수, 최장집 교수 등 지성사회의 원로들이 정권의 잘못됨을 신중하고도 정확하게 비판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얼토당토 않은 언어 논리적 폭력을 드리대며 욕설을 해대는 사문난적의 행위를 저질렀던 것이다.


이런 것이 바로 소위 참여없는 참여정부, 개혁없는 개혁정권, 민주없는 민주정권에서 자행된 야만적 행위의 일부분들인 것이다. 과거 군사권위주의 정치하에서 여론조작을 위해 비판을 하는 지성인들을 고문을 통해 침묵시키려 한 것과 같이 노무현정권은 노빠진리교도들의 악플폭력정치를 통해 여론조작을 하려한 것이다. 노빠 악플정치가 새로운 브랜드의 폭력정치라 분석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달이 차면 기울 듯 이제 참여악플정치도 열린우리당의 해체와 함께 종말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한국정치판을 왜곡시키고 교란시킨 참여 사문난적 정권은 이제 역사의 쓰레기통으로 들어가야 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영혼을 빼앗겨버린 노빠진리교도들이 말로 하는 개혁에 현혹되어 저당잡힌 영혼을 되찾게 되는 시점이 바로 그 때일 것이다.


많은 순진한 영혼들을 홀린 참여 다단계 피라미드 정치와 노빠 쓰레빠 문화는 하루라도 빨리 종식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한국정치의 개혁이고 정치발전인 것이다.

KakaoTalk_25af4f9365dae84a.jpg


http://blog.ohmynews.com/omylogic/146495







일단 친노의 종류도 꽤 다양합니다. 핵심 친노, 참모 출신 친노, 친노 의원, 486친노, 범친노등등.. 나름 조금씩 다릅니다. 핵심 친노야 노무현과 오래토록 함께 해온 이광재, 안희정등을 지칭하는 것이고 참모 출신은 참여정부 출범 직후, 청와대에서 한자리씩 맡은 이들을 지칭합니다. 486친노는 탄돌이들이고 계파를 옮겨타는 특성이 조금 있구요. (탄핵 총선 이전) 친노 의원들은 김대중 시절 비주류였던 이들이 노무현과 뜻을 같이 하면서 탄생된 이들이라 봐야되겠죠. 이해찬, 한명숙등이 대표 인사로 보면 될 테구요. 범친노는 친노계와 사이가 좋은 정세균계나 시민단체 출신등을 지칭합니다. 물론, 핵심친노를 제외하고는.. 간혹 친노에서 다른 계파로 갈아타는 경우도 있습니다. 최근 친노들의 활약상(?)을 보자면, 청와대에서 한자리 맡았던 비서관 출신들이 4.11 총선에서 대거 공천되었다는 점이고 혁통 출신들도 친노+범친노 계열이라고 봐야겠죠.

친노중에 청와대 출신들이 적잖게 섞여있는데 이들은 일단 아마추어이자 정치 낭인들이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김해을의 이봉수와 이백만이 있겠네요. 더불어 최근 물러나겠다고 발표한 문재인 캠프의 친노 인사들도 청와대 참모진들이 많습니다. 더불어 이들은 경선이나 총선에서 떨어진 이들로 구성되었죠. 한마디로 노무현 시절의 무능력한 정치 낭인들을 그대로 안고 간 셈입니다. (개인적으로 김경수는 아주 좋게 봄) 참고로 참여정부 청와대 출신 18명이 4.11 총선에서 공천을 받았습니다. 상당한 수치죠. 범친노까지 합치면 총선 공천의 30%를 훌쩍 넘기는 수치가 친노계로 알려져있죠.(언론사마다 분석이 조금씩 다릅니다만 최대 40%라고 보는 언론도 있고 30%로 보는 언론도 있습니다. 이는 범친노의 기준이 조금씩 달라서 그렇다고 보임)  이런 와중에 주로 구민주계 인사들 몇이 공천 학살을 당하고 그 자리를 친노출신이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그랬기에 '보이지 않는 손, 친노 패권주의' 라는 내부 비판이 많았고 지지층에서 여론이 안좋았던 겁니다. 참고로 4.11 총선 이전의 친노계는 범친노를 합쳐도 10명정도 수준이었습니다. 노무현 서거 효과로 화려하게 부활한 셈이죠.

현재 민주당 내에서 친노를 흔드는 것은 계파 싸움, 권력 싸움일 뿐입니다. 즉, 친노를 흔드는 이들의 속내가 마냥 순수하진 않다는 거죠. 권력 다툼이 목적일 뿐, 그들이 뱉는 레토릭들은 실질적인 이유는 아니란 겁니다. 그렇기에 그들 역시 좋게 보이지는 않다는 거죠. 그리고 박지원이 무슨 친노냐? 라며 광분하는 친노 팬들을 보는데 그냥 황당한 수준이에요. 박지원은 당연히 친노 아니죠.. 박지원에게 물러나라는 것은 그 포인트가 다른 겁니다. 당권을 장악한 친노를 최우선 타겟으로 삼고, 구색맞추기로 엮여진 이들까지 다 물러나게끔 만들어야 그나마 '명분'의 모양새를 갖추는 거니까요. 즉, 쇄신과 물갈이라는 명목하에 박지원까지 엮은 것일 뿐, 진짜 목표는 친노라는 얘기예요. 추미애나 기타 비친노 인사들은 실상.. 친노 일색인 지도부에 구색 맞추기 수준으로 들어간 것 뿐입니다. '친노만 물러나라' 라고 하면 당연히 속보이는 짓이니 '모두 물러나라' 라는 명분으로 작업을 하는 거죠. 물론 핵심은 친노지만.

여튼 제발 일부 노무현 팬들의 헛소리들은 이제 그만 봤으면 좋겠습니다. 하다하다 이제 친노가 없다는 헛소리들까지 해대니.. 이거야 원;;;; 그리고 결국 당권력의 핵심은 여당일 경우 대통령 직계, 야당일 경우 당대표와 관련된 계파가 핵심이 되는 겁니다. 박지원과 추미애등이 섞인건 구색 맞추기에 가깝다는 것이죠. 결국 대선 후보 캠프에 친노들로 구성이 되었다는 게 이를 방증하는 겁니다. 대선 후보 캠프의 핵심 인사들은 정권을 잡을 시, 권력의 핵심이 될 소지가 가장 높은 인물들이거든요..

그리고 하나 덧붙이자면 그놈의 남탓도 그만들 좀 하세요.. 조중동 탓, 국민 탓, 새누리당 탓, 호남 탓, 뉴라이트탓, 관료들 탓.. 가만 보면 이명박보다 더 남탓을 많이 하는 게 노무현 팬들입니다. 참여정부 시절에 인터넷 여론과 방송 3사중 MBC, KBS는 노무현에 우호적이었습니다. 인터넷이야 추후 돌아서긴 했지만요. 김대중은 더 열악한 환경이었어요. 노무현은 정말 좋은 환경을 스스로 날려버린 무능함의 산물인데 어찌해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지 모르겠네요..
1350808806.jpg




기실 노무현 지지자들(노빠)과 논쟁을 하면 상당히 피곤해집니다.
어떤 팩트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것 없이 막 질러대는 경우가 흔하죠..

1. 촛불 시위와 노무현
-> 가장 우스웠던 것중 하나가 바로 촛불 시위 당시, 이명박을 독재자로 칭하면서 노무현이 그립다며 설쳐대는 노무현 팬들이었죠. 우습게도..... 물대포 구입을 가장 많이 했던 정부가 참여정부 였으며, 사용 빈도도 가장 높았습니다. 김영삼과 김대중은 각각 1회 사용으로 알고 있는데 김대중은 조계종 사태 진압할 시에 사용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여튼, 한겨울에 새벽 1시에도 물대포를 퍼붓던 게 노무현 정부였습니다. 더구나 테이저 건의 최초 도입도 노무현 정부였죠. 심지어... 시위 진압에 '군부대를 투입' 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전두환 이후 처음이자 (아직까지) 마지막입니다. 아마 이명박이 했다면 희대의 독재자라 비판을 했겠죠. 아이러니하게도, 노무현이 인권을 생각했다는 말은 이런 측면들을 볼 때 꽤나 우습게 보이죠.. 딱 하나 이명박과의 차이점은 있습니다. '노무현은 사과를 했다' 라는 것이죠. 노무현 지지자들은 이걸 꽤나 중시합니다. 노무현의 의도는 그러지 않았다. 노무현이 아니라 관료들 잘못이다. 노건평 잘못일 뿐이다. 등등의 흔한 레토릭중 하나로써, 그래도 대통령이 사과를 하지 않았느냐? 라는 것에 방점을 찍어버립니다. 그럼으로써, 노무현의 과격한 시위진압은 묻어버리는 것이죠..

2. 고 남상국씨
-> 노무현은 티비 생중계 도중, 남상국씨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발언을 합니다. 최고권력자가 권력을 이용해서, 자신의 형을 옹호하고 국민 개인을 비난한 꼴이죠. 남상국씨는 그로 인해 자살을 해버렸죠. 사실상 노무현이 죽인 겁니다. 그렇게 욕을 많이 먹는 임태훈보다 더 심한 잘못이라고 봐야죠.. 한가지 특기할 건, '피의사실공표'라는 범법행위까지 노무현이 저질렀다는 것이죠. 결국, 노건평이 직접 돈을 요구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죠. 임태훈을 그렇게 욕하는 심리라면 노무현은 더 욕을 해야 맞을 겁니다. 한가지 또 웃기는 점은, 한명숙 관련, 그리고 노무현을 수사하던 검찰의 행보에 대해서는 '피의사실공표'라며 무수한 비판들을 쏟아냈다는 것이죠. 정작 자신의 주군이 몸소 실천했던 그것을.. 막상 주군이 당하게 되니 광분을 하던 노무현 지지자들이 많았다는 것.  헌데 기실, 검찰의 정치인에 대한 '피의사실공표'는 일종의 관행처럼 행해진 측면도 있습니다. 허나, 대통령 개인이 자신의 친인척 비리를 옹호키 위해 그런 건.. 노무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죠.

3. 구민주당은 즐~ 한나라당은 콜~
-> 그 유명한 대연정, 대북특검시 한나라당에 주는 선물, 박근혜에게 통일부 장관 제의, 박근혜를 대연정의 상대로 인정하며 총리직을 내놓겠다던 노무현. 최근 박근혜가 노무현 묘소를 참배하니 다들 생난리를 쳐댑니다. 헌데 이것도 개그콘서트이죠. 노무현은 박근혜에 여러차례 러브콜을 보냈습니다. 모두 거절을 당했지만요.. 5공인사를 영입하고 선거운동을 하며 '나를 승리지상주의자로 불러도 좋다' 던 유시민의 모습을 보면 참 아이러니했죠. DJP연합을 그렇게 비판했던 인물이 어느 틈에 승리지상주의자로 변모한 겁니다. 독수리5형제부터 시작해서.. 대연정까지, 이런 이율배반적인 모습이 무수히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구민주당은 절대 안된다! 라고 부르짖었죠. 거기에 덧붙여 노무현 팬들은, 노무현을 비판하는 야당성향을 무조건 새누리당,동교동계 지지자로 몰아넣습니다. 그들 특유의 흔한 스킬인 라벨링이죠. 김근태 지지자라고 무수히 밝혔어도 안통합니다. 그렇게 동교동계 지지자로 몰아넣어야 정신승리를 할 수 있다는 마인드에 가깝겠죠.

이율배반과 남탓. 실상 친노와 그 지지자 노빠들의 이런 행태는 새누리당에 못잖은 수준이에요.

20120129160757.jpg121221_00000.jpg

그리고 자칭 '친노' 유시민과 그의 광적인 팬들(유빠)

 

"유시민이 편하게 정치하려고 했으면 민주당에 들어갔겠죠"
라는 헛소리를 종종 봅니다. 마치 유시민을 어려운 길, 고난의 길을 가는..
선지자처럼 묘사하면서 유시민과 그 팬들 특유의 '피해자 코스프레' 로 세팅을 해대죠.

일단 유시민이 민주당을 나간 이유는 (지 입으로) "진보 정치를 할 공간을 찾아 떠난다" 였습니다.
희대의 뻘소리였죠. 진보와는 거리도 멀고, 우리당 정치인중 진보를 가장 짓밟았으며..
복지부 장관 시절에도 시장주의에 충실한, 의료민영화의 초석을 다졌던 놈이거든요.

결국, 유시민의 뻘소리(진보정치 공간). 그 결과물은, '선거조작집단의 우두머리' 로 귀결이 됐지요..

여튼.. 유시민은 기실, 민주당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당 계파중에 유시민과 사이가 좋은 계파는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유시민이라면 학을 떼는 (야권)정치인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 이유야 잘 알려져있죠. 줏대도, 신념도 없이.. 오로지 노무현을 쉴드치고 노무현과 대립각을 세우는 정치인들을 모조리 짓밟아댔습니다. 촉새처럼 시도 때도 없이, 사방팔방 참견하고 한마디씩 던져대는 스타일이죠. 파병 투표에서는 김근태에게 반대를 찍으라고 꼬셔놓고 자기는 찬성표를 던지는 어처구니 없는 행위도 있었구요. 뭐 나열하자면 무수히 많습니다만...

강금원에 의해서 밝혀진 바로는, 최측근 친노들도 유시민을 좋게 보지 않는다는 겁니다. 심지어 노무현조차도 못마땅했다. 라고 얘기를 했죠. "남을 위한 정치를 해야지, 나를 위한 정치를 해서는 안된다" 라는 맥락으로 유시민을 비판했었습니다. 이게 바로 노무현과 최측근 친노들의 유시민에 대한 시각이라고 봐야죠. 즉, 유시민은 그 주변에 아무도 없습니다. 정봉주? 정청래? 천정배? 김근태? 정동영? 박지원? 박영선? 모두 유시민과 사이가 안좋습니다. 김근태는 유시민 얘기만 나오면 고개를 저을 정도로 싫어했다고도 알려져있죠.. 본래 이해찬 비서로 정계에 입문을 했기에 그나마 남는 인물이 이해찬입니다. 그리고 한명숙 재판에 꼽사리 몇번 끼면서 한명숙과도 어느정도 관계를 유지했던 듯 보이고.. 문재인은 워낙 사람 자체가 좋다고 보기에, 문재인과도 나쁜 관계는 아닌 걸로 보입니다.

즉, 손학규가 대표를 먹고 이해찬이 탈당하면서 '끈 떨어진' 유시민도 개털 신세였어요. 당시는 '친노는 폐족이다' 라는 말이 퍼져있던 시절이기도 했구요. 즉, 개털 신세가 됐고 희망이 안보이니 나간 겁니다. 진보정치니 뭐니는 헛소리예요. 물론 노무현이 죽음으로써 상황이 반전될 줄 몰랐으니 그랬겠지만요. (이해찬의 화려한 복귀도 이런 맥락이고)

유시민은 노무현이 죽기 전에 대구에서 주소지를 옮겼습니다. 즉, 항간에 알려진.. 노무현이 죽고 나서 중앙정치로 뛰어들었다. 라는 건 거짓말이라고 보면 됩니다. 쉽게 말해, 대구에서 노무현 코스프레 한번 하고.. 바로 주소지를 옮긴 거예요. 당시엔.. 이해찬도, 문재인도 민주당과 거리를 두었고 한명숙은 재판 받느라 여력이 없던 상태죠. 간단히 말해, 당시에 유시민이 민주당으로 들어가면 그냥 잡아먹힙니다. 대선 후보군으로 지지율 1위를 달렸다고 하나, 그 최대치가 13~14%였습니다. 그것도 얼마 되지 않는 기간이었죠. 계파도 없고, 비토층이 너무 강력해서 유시민이 민주당에 들어가면 정말로 고난의 길이 되는 셈입니다. 유시민도 이걸 잘 아니까 들어가지 않았던 거예요. 바깥에서 당을 만들어 삥뜯는 것이 훨씬 더 이득이 된다는 계산이었죠. 물론 계산은 잘해서 삥뜯기에는 성공했으나.. 선거는 말아먹어버렸지만요.

여튼.. 유시민이 민주당 가면 편했을 것이다. 라는 헛소리는 이젠 그만들 하세요. 그리고 유시민의 기회주의적인 행태는 무척 많습니다. 첫 금배지를 달 때 정동영, 김경재, 호남향우회 도움을 받을 때에는 조용하다가.. 당선 된 후에 민주당을 '지역주의 정당' 이라 욕하고.. 김근태의 뒤통수를 치던 행위, 그렇게 김대중을 비판하다가 김대중이 죽고나니 그제서야.. '나의 첫 대통령 어쩌구 저쩌구' 헛소리를 해댔고 선거 앞두고 권노갑에게 빌빌대는 꼬락서니부터 시작해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비토했던 사람이 애국가를 살짝 언급하면서 언론플레이하고. 후원회 100만원이 뭐가 문제냐더니만 민주당 돈봉투를 언급하면서 은근히 민주당을 디스하고.. 정말 무수히 많습니다. 말과 행동이 다르고, 말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고, 그 때마다 핑계들로 넘쳐나고.. 유시민은 그냥 정계에서 사라지는 것이 야권에 도움이 되는 수준이에요. 하등 도움이 안되는 분란종자일 뿐입니다.
121221_00000.jpg 


인터넷에서 유시민 지지자들을 접하다 보면, 참으로 황당한 소리들을 듣곤 합니다. 그 중 압권인 것을 몇개 꼽아보자면.. '유시민은 민주당(통합신당)에서 쫓겨났다' 와 '유시민은 권력욕이 없다' 정도가 있습니다. 오로지 '노무현을 위해서 (하기 싫은)정치를 하는 것이다.' 라는 반응들도 심심찮게 보이구요. 일단 참여정부 시절의 유시민은 스킵하고, 민주당에서 탈당하던 시기부터 그의 행보를 짚어봅니다....


1. 통합신당에서 개털된 친노계와 정동영계, 손학규의 권력쟁취
-> 손학규가 당대표로 선출되자마자  이해찬이 탈당합니다. 이해찬의 탈당 이유는 간단하고 명확했죠. '한나라당 출신인 손학규가 대표를 하는 것이 싫다'  였습니다. 손학규 체제는 결국 참여정부책임론이 전제되는 것이기에  친노인 이해찬입장에서는 불편했겠죠. 뭐 권력싸움에서도 패배한 셈이었구요. 당시는 한마디로 정동영계, 친노계 모두 손학규에게 털려버린 상황이었습니다.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view.html?cateid=1020&newsid=20080110114311674&p=ohmynews

뒤어이 유시민이 탈당합니다. (기사를 보면 알겠지만 어느 누구도 유시민을 쫓아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유시민의 탈당의 변은 꽤나 추상적이고 모호합니다. 특히 황당한 점은 '진보정치를 할 공간이 없다' 는 그의 발언입니다. 정말이지 지나가는 개가 웃을 수준의 변명이었죠. 참여정부 내내, 진보와는 가장 거리가 먼 행보를 보인 인물이 유시민이었으니까요. 이해찬의 변과 비교해보면 참으로 궁색한 변명이었습니다. 참여정부의 유시민을 복기해보면 그의 발언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자기모순인지는 쉬 판단이 됩니다. 황당한 억지로 탈당의 명분을 만들어 냈다고 봐야죠. 더구나 그는, 탈당 후 4년이 지나는 동안 진보적인 모습을 보인 적이 없습니다.
http://media.daum.net/politics/assembly/view.html?cateid=1018&newsid=20080116123104418&p=hani


2. 노무현 코스프레, 대구 출마 유시민
-> 유시민은 탈당과 동시에 무소속 대구출마를 선언합니다. 유시민의 대구 출마는 뚜렷한 명분이 없었습니다. 더구나 진보정치를 꿈꾼다는 이의 첫번째 행보치고는 조금 핀트가 어긋난 측면이 있었죠. 그래서 '노무현 코스프레' 를 하는 것이 아니냐? 라는 의심을 많이 받았습니다. 또한 대구지역 시민단체들이 일회성으로 끝날 것이냐.. 라는 우려를 표명했는데 유시민은 분명 '아니다' 라고 답변했었죠. 유시민의 대구에서의 행보는 노무현의 그것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지역주의에 도전하는 정치인의 모습치고는 꽤나 구차하고 초라한 모습을 보였죠. '대구의 아들' 이라는 상투적인 선거 문구가 이런 유시민의 모습을 잘 나타내었습니다. 호남의 지역주의를 무수히 언급하고 비판했던 유시민을 감안하면 대구에서그의 행보는 참으로 비루했습니다. 민주당 간판을 버리고 무소속으로 나와서 한다는 소리가 고작 '대구의 아들' 이었으니까요. 여튼 대구에서 낙선한 유시민은 1년여만에 주소지를 옮겨버립니다. 노무현 코스프레 아니냐는 시민단체의 우려가 그대로 적중된 셈이었죠. 한가지 특기할 점은, (영남대 교수의 진술이 팩트라면) 유시민의 주소지 이전은 2009년 3월이고 노무현 서거는 2009년 5월이라는 점이죠. 그러니 노무현의 복수를 위해서 대구에서 중앙으로 방향을 바꾼 것이다. 라는 말들은 헛소리라고 봐야겠습니다. 즉, 노무현을 위해서 (하기싫은) 정치를 하는 것이다. 라는 유시민 지지자들의 말은 틀렸다는 것이죠. 그냥 한번 찔러보고 주소지를 옮긴 겁니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100112122147&Section=01&page=1
- 유 전 장관은 지난 3월에 주민등록 파서 다시 갔다. 대구 사람들은 지금 난감한 처지가 됐다. 모르겠다. 묻고 싶지도 않다. 지난 총선 출마 할 때 '당신 떨어지면 서울로 갈 것 아니냐' 이런 질문들이 많았다. 그러자 본인이 '몇 십 년 만에 새로 맺어진 대구와의 정치적 인연을 바꾸지 않겠다' 이런 취지로 연설을 했다. 그런데 3월에 떠났다. 사람들은 주소를 옮겨갔다는 것도 나중에야 알았다. -


3. 정세의 급변, 노무현 서거
-> 노무현 서거 이전엔 대략 박근혜가 40%후반대의 지지율을 보였고 정동영은 12-13%의 지지율이 나왔습니다. 유시민은 언급이 없거나 1% 미만이었죠. 헌데 노무현 전대통령 서거 후.. 상황은 급변합니다. 친노 정치인들에게 관심이 쏠리면서 각종 여론조사에 등장하기 시작한거죠. 안희정, 이광재, 강금실등도 언급이 되었지만 중심인물은 유시민과 한명숙이었습니다. 문재인(부산시장 후보)도 이 즈음 언급이 되기 시작했구요. 당시 민주당은 유시민과 이해찬의 복당에 대해 긍정적이었고 '친노신당' 의 창당에는 부정적인 입장이었습니다. 박지원의 인터뷰를 보면 잘 나와있지만 그는 진작부터 '대통합' 을 강조해왔습니다. 그렇기에 최근 통합반대론자로 낙인찍힌 사례는 황당하다고 봐야죠.. 절차상, 방법상의 문제점을 지적했을 뿐, 통합 자체는 결코 반대하지 않았는데 라벨링 당한 꼴이었습니다.
http://zine.media.daum.net/sisain/view.html?cateid=3000&newsid=20090611095128456&p=sisain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14416
- 박 의원은 "바람직한 것은 10월 재보궐 선거 때에도 가능할 것이고 안 그러면 내년 초에 지방선거 준비를 위한 어떤 이벤트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한 때까지는 대통합이 이뤄졌으면 한다"며, "또 그렇게 되도록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htm_201205131071120102011.jpg


4. 유시민의 국민참여당 입당
-> 대구에서 낙선 후, 유시민은 1년여동안 주로 강연을 하며 활동했습니다. 노무현 서거 전, 유시민은 주소지를 옮겨 대구를 떠났고 같은 해 11월, 참여당에 입당합니다. 참여당은 2008년 말부터 창당 준비를 해왔고 노무현 서거 후 본격적으로 추진된 정당입니다. 정식 창당은 2010년 1월이었구요. 유시민 외에 유력정치인은 없었던 터라, 정치낭인들(민주당에 가면 쩌리 취급당하는 이들)의 집합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죠. 기실 국참당의 창당 주역들은 노무현의 대통령 시절부터 인연을 맺은 이들이 대부분입니다. 유시민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연이 길지 않다는 것이죠. 문국현 캠프를 들락거린 인물들도 있었구요. 오래토록 노무현의 곁을 지켰던 이들은 대부분 민주당에 남아있었습니다. 강금원의 인터뷰에서도 잘 드러나는 내용입니다. 여튼 입당을 하면서 유시민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깨어있는 시민들이 스스로 참여하는 정당의 당원이고 싶습니다. 다른 길이 없기에 이 길을 함께 걷기로 했습니다. 더 많은 행동하는 양심들의 참여를 호소합니다." 민주당 탈당의 변인 '진보정치' 에 관한 언급은 없었습니다. 또한 입당의 변으로 볼만한 뚜렷한 명분도 없었습니다. 정치인들의 흔한 레토릭, 추상적이고 모호한 내용이었습니다. 설득력이 약했다는 것이죠. 유시민은 또한 민주당에 미래가 안보여서 참여당을 택했다는 발언도 덧붙였습니다.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view.html?cateid=1020&newsid=20091120134235712&p=ilyo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110224133331923&p=sisain
- 유시민은 친노 아니다. 어떻게 해서 유시민이 친노 핵심으로 분류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안)희정이도, (이)광재도 유시민을 친노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노 대통령도 같은 생각이었다. 유시민이 어떻게 친노가 된 거냐고 물으니까, 노 대통령이 "유시민은 우리 편 아니다"라고 딱 잘라 말하더라. 우리 편은 아니고 우리와 비슷한 사람이어서 인정한다고 했다. 재임 중에도, 돌아가시기 얼마 전까지도 그랬다. 유시민은 우리와 그 무엇도 상의한 적이 없고 자기 마음대로 갔다. 대통령도 그런 면을 싫어했다. 남을 위해 정치를 해야지 나를 위한 정치는 곤란하다. -

참여당에 입당 후 유시민은 민주당을 향해 날선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유시민의 민주당 비판 논점은 주로 '호남 지역주의+기득권' 이었습니다. 민주당의 (탈당의 변이었던)진보나 정책이 아닌,  '호남 지역주의+기득권' 에 매달렸다는 것. 이는 한나라당이 아닌 민주당의 파이를 노린 행동이라고 봐야겠죠. 또한 유시민의 비판은 한나라당보다 민주당에 집중될 때가 많았습니다. 여기서부터 유시민과 민주당의 간극이 커져나가기 시작한 겁니다. 당시 민주당은.. 동교동계는 진작에 떨어져나갔고 잔민당 출신들은 권력의 핵심에서 멀어진 상황이었습니다. 그냥 간판을 바꿔단 열린우리당이었다는 거죠.  달라진 점이라면, 잔민당 인사들 몇몇 들어왔고 유력 정치인인 유시민과 이해찬(관계는 유지)이 탈당했으며 손학규가 들어왔다는 것인데 중요한 것은 절대 다수의 구성원들이 열린우리당 시절과 똑같았다는 겁니다. 더구나 당시 민주당은 정세균을 필두로 한 친노계가 당권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즉, 유시민의 민주당 공격은 정황상 황당한 비판이었다는 거죠. 우스운 건, 유시민의 이런 선동에 적잖은 사람들이 낚여서 '민주당 = 노무현 배신, 호남 지역주의' 라며 덩달아 비판을 했다는 겁니다. 유시민의 이런 비판들(호남 기득권, 민주당 타파)은 이미 오래전에 제기되었던 겁니다. 분당 시점 전후에 잔민당을 대상으로 이런 비판이 많았죠. 이런 비판들의 성공적인 결과물이 바로 '노무현 당선 + 열린우리당' 이었습니다. 헌데 조순형, 한화갑, 김경재등등 유력 정치인들 대부분 떨어져나가고 나가리 된, 잔민당 인사들 몇몇 들어왔다는 이유로 민주당=잔민당으로 몰아가면서, 시효가 한참 지난 비판을 다시 꺼내든 거죠. 절대 다수는 열린우리당 출신이며, 그 핵심세력또한 친노임에도 불구하고 추악한 라벨링으로 선동을 했던 겁니다. 쉽게 예를 들자면 열린우리당의 모습을 90% 유지하는 민주당에게 '호남 지역주의 + 기득권' 이라며 비판을 한 겁니다. 즉, 10%를 민주당의 정체성으로 규정하고 낙인을 찍은 셈이었다는 거죠. 결국 유시민의 이런 비판은 자기 모순이었고 뒤통수와 다를 바 없던 행위였습니다.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view.html?cateid=1020&newsid=20090929225702879&p=yonhap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view.html?cateid=1020&newsid=20100118161913630&p=yonhap
http://www.polinews.co.kr/viewnews.html?PageKey=0102&num=88463&p=1


5. 김진표와 단일화 경기도 지사 출마, 유시민.. 낙선
-> 유시민이 본격적으로 정치 활동을 재개한 시점은 노무현 서거 이후입니다. 다른 말로 치환하면, 노무현 서거 후 지지율이 급상승 된 후라고 봐도 되겠죠. 여튼 그는 처음엔 서울시장에 눈독을 들입니다. 허나 한명숙과의 대립구도가 부담스러웠는지 경기도지사로 유턴을 하게 되죠. 대표적인 친노관료였던 김진표와의 단일화를 하면서 적잖은 진통이 있었습니다만 결국 유시민으로 단일화(0.96% 차)가 되었죠. 본래 이들이 각각 김문수와 1:1 구도를 펼쳤을 때에도 1%정도로 유시민이 우위에 있었기에 인지도 차이나 경선방식의 유불리를 논할 필요없이 민의가 그대로 반영된 결과물로 봐도 무방합니다. 단일화 직후, 유시민은 민노당을 찾아가 회담을 벌였고 심상정마저 포섭하기에 이릅니다. 서울시 선거에 비하면 완전한 단일화를 이뤄낸 거죠. 헌데, 정작 유시민은 수도권에서 가장 큰 차이로 패배를 하고 맙니다. 부진할 거라 예상했던 한명숙이 꽤나 선전(0.6%차이)한 반면에, 친노중 가장 지지율이 높다는 유시민은 가장 큰 차이(4.4%차이)로 패배 했던 것이죠.
http://media.daum.net/politics/assembly/view.html?cateid=1018&newsid=20100603113114997&p=akn

유시민의 패배후 유력 친노싸이트등에선 호남유권자를 비판하는 분위기가 형성됩니다.  경기도 선거동안 잠잠했던 호남때리기가 다시 떠오른 것이죠. 한마디로, 호남유권자들의 유시민에 대한 반감탓에 유시민이 떨어졌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기실, 경기도지사 선거를 거치면서 유시민과 호남출신 유권자들의 대립이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됩니다. 그 출발점은 바로 유시민이 처음 금배지를 달았던 시절(고양에서 호남향우회와 민주당의 도움으로 당선)이었구요. (따로 글을 써서 링크를 걸 예정) 여튼 유시민은 경기도지사 후보로 나선 후 처음으로, 김대중비판에 대해 사과를 했습니다. 권노갑에게 SOS를 치기도 했죠. 권노갑은 처음엔 거절했으나 박지원과 잔민당 인사들의 노력으로 화해(?)를 하기에 이르렀죠. 선거를 앞둔 사과였기에 그의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한 이들이 많았습니다만 비교적 잡음없이 마무리되었고 민주당의 많은 정치인들(특히 박지원, 손학규, 김진표등)은 유시민을 위해 열성적으로 뛰어주었죠.  민주당과 호남을 향해 무수한 비판의 날을 세웠던 유시민역시 경기도지사 선거에서만큼은 민주당을 한없이 칭찬했고 김진표에게는 '평생 은혜를 갚겠다' 라는 발언까지 했었습니다. 선거 후 박지원은 유시민의 민주당 복귀를 공개적으로 제안하기도 했었죠.
http://media.daum.net/politics/assembly/view.html?cateid=1018&newsid=20100524154837750&p=nocut



6. 노무현의 김해, 유시민과 이봉수
-> 경기도 지사에서 패배 후, 얼마 되지 않아 은평을 재보선이 있었습니다. 여권의 후보는 이재오였고 민주당(대표 : 정세균)에서 내세운 후보는 장상이었습니다. 참여당에선 천호선을 내세웠구요. 누구를 내세우건 큰 차이가 존재했기에 관심이 많지 않았던 선거였죠. 유시민도 큰 공을 들이지는 않았습니다. 여튼 단일화에선 장상이 승리했었죠. vs 이재오 상대로 지지율 차이는 장상이 천호선보다 1%정도 우위였구요.
http://media.daum.net/society/media/view.html?cateid=1016&newsid=20100726154920418&p=mediatoday

2011년 4월 27일, 김해 보궐 선거가 있었습니다. 노무현의 고향이었던 만큼 관심은 집중되었고 야권의 당선가능성도 높아보이는 지역이었죠. 민주당 내에서도 친노의 움직임이 적극적이었던 선거였습니다. 유시민역시 김해 선거에 사활을 걸었구요. 민주당은 김경수를 후보로 내세웠고 참여당은 이봉수를 후보로 내세웁니다. 유시민이 관여한 선거중 잡음이 가장 많던 단일화였습니다. 유시민은, 시민단체가 제시한 '국민참여50%, 여론조사50% 의 중재안조차 완강히 반대하고 여론조사 100%를 고집했었죠. 또한 순천에서의 민주당 무공천을 폄하하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습니다. "야권연대를 하는 건 한나라당을 상대하기 위해서인데, 거기(순천)는 한나라당도 없는데 무엇 때문에 야권연대를 하나" 라는 발언 탓에 이인영과도 각을 세웠죠. 결국 유시민과 참여당의 압박, 대립 탓에 시민단체들도 비판을 하기 시작했고, 이런 분위기를 견디지 못한 김경수는 불출마 선언을 해버립니다. 이로 인해 유시민은 이해찬, 한명숙등의 친노들과도 대립각을 세우게 되었죠. 단일화의 잡음 속에, 친노 정치인들은 외면을 했고 결국 유시민은 패배했습니다. 박지원이 날려버린 김태호가 유시민에 덕에 부활을 한 셈이었죠. 한가지 웃긴 점은, 친유시민 성향의 싸이트에서 '김해의 패배는 민주당과 호남탓' 이라는 글들이 횡행했다는 겁니다. 여튼 김해 선거로 인해 유시민은 정치인생 최대의 위기에 직면하게 됩니다.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view.html?cateid=1020&newsid=20110428143550542&p=mediatoday
- 김경수 전 비서관이 야권 후보로 나서면 김태호 전 지사는 출마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 일부 참여당 지지자들은 유시민 대표 뜻과 배치되는 언행을 하는 이들에게 날 선 공격을 서슴지 않았다. 그 대상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가까운 이들까지 예외가 아니었다. -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110418132532702&p=sisain
- 출마를 검토하던 김경수 국장을 향한 참여당 지지자들의 공세가 집중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 공식 홈페이지인 '사람 사는 세상'에는 김 국장의 출마가 '참여당 죽이기'와 '유시민 죽이기'라는 글이 잇따랐고, 견디다 못한 김 국장은 불출마를 선언했다. -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민주당이 양보해서 타협이 될 듯하면 참여당이 내부 회의를 거쳐 또 다른 조건을 들고 나오고, 민주당이 한 번 더 양보하면 참여당이 또 다른 조건을 내걸고…. 그러기를 정말 여러 번 했다. 그 와중에 대표라는 사람(유시민)은 언론에 대고 '손학규 대표가 분당에 나가면 적극 돕겠다'고 했다가, '김해을을 참여당에 주지 않으면 협조하기 어렵다'라는 식으로 좌충우돌하더라.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의도였겠지만 이 때문에 이인영 최고위원이 무척 힘들어했다"라고 말했다. -

htm_201205131071820102011.jpg 
7. 진보정당과의 합당.
-> 김해에서 패배 후, 유시민의 지지율은 바닥으로 내려갔고 그의 대체인물로 문재인이 부상하기에 이릅니다. 기실 유시민의 대선 후보 지지율은 정점을 찍었을 때에도 15%를 넘지는 못했습니다. 최근의 문재인, 안철수 지지율과 비교해보면 상당한 격차죠. 여튼 유시민의 힘은 바로 이런 10%초반대의 지지율에서 나왔습니다만 김해 패배이후, 말 그대로 쪽박찬 거렁뱅이 신세가 되어버립니다. 이런 사면초가의 상태에서 유시민은 진보정당과의 통합을 추구하기에 이릅니다. 참여정부 시절, 가장 심하게 진보정당을 비판하고 외면했던 유시민의 이런 행위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습니다. 가장 가까운 시기인, 김해선거에서도 민노당을 디스했었죠. 유시민은 기본적으로 말빚이 많은 정치인입니다. 공격성이 지나치고 신중하지 못한 탓에 스스로를 옭아매는 발언들을 많이 했죠. 사표론, 민노당 비판, FTA, 파병, 대연정, 민주당비판, 진성당원제등등... 입장을 바꾼 발언들이 가장 많은 정치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최근의 발언으로는 위에서 언급한 "야권연대를 하는 건 한나라당을 상대하기 위해서인데, 거기(순천)는 한나라당도 없는데 무엇 때문에 야권연대를 하나" 가 있습니다. 추후 호남지역 선거에서, 유시민이 야권연대(무공천)를 주장하게 되면 또 한번 자기 모순을 하는 셈이 됩니다. 유시민의 말대로면 호남에선 무조건 '경쟁' 을 해야 되니까요.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view.html?cateid=1020&newsid=20111205131906501&p=moneytoday

혁통과 민주당이 통합 논의를 할 때에 참여당도 언급이 됐지만 별반 논의없이 결렬되었습니다. 패잔병인 유시민의 입장에서는 계구우후(鷄口牛後)의 심정으로 진보정당을 택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민주당내의 많은 친노들과 롤이 겹칠 수밖에 없는데다 패잔병 입장에서 전면에 나서기도 힘들기 때문이죠. 진보정당입장에서는 유시민의 대중성과 추후 단일화 논의에서의 역할을 기대했다고 보여지구요. 한편으로는 유시민은 통합을 원했으나 참여당 내부의 반발이 만만치 않아 결렬되었단 시각도 있습니다. 기실 민주당과 혁통 모두 참여당과의 통합에 그리 적극적이진 않았습니다. 민노당과 진보신당등에 했던 제안과 비슷한 수준이었죠. 어찌되었건 '진보정치'를 표방하며 민주당을 탈당했던 유시민은, 4년여간의 방황 끝에 자신이 주창했던 진보정치를 펼칠 공간에 입성했습니다. 물론 방황했던 4년여간 유시민은 딱히 진보적인 모습을 보인 적은 없습니다만....
http://media.daum.net/politics/assembly/view.html?cateid=1018&newsid=20111107145107732&p=moneytoday

htm_201205131071820102011.jpg

http://twitter.com/dogsul/status/37082083767623680
강금원 인터뷰-1 "국민참여당이 친노당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유시민은 친노 아니다. 어떻게 해서 유시민이 친노 핵심으로 분류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안)희정이도 (이)광재도 유시민을 친노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http://twitter.com/dogsul/status/37082840143233024
강금원 인터뷰 -2 "노 대통령도 같은 생각이었다. 유시민이 어떻게 친노가 된 거냐고 물으니까, 노 대통령이 "유시민은 우리 편 아니다"라고 딱 잘라 말하더라. 우리 편은 아니고 우리와 비슷한 사람이어서 인정한다고 했다."

http://twitter.com/dogsul/status/37083687849951232
강금원 인터뷰-3 "재임 중에도, 돌아가시기 얼마 전까지도 그랬다. 유시민은 우리와 그 무엇도 상의한 적이 없고 자기 마음대로 갔다. 대통령도 그런 면을 싫어했다. 남을 위해 정치를 해야지 나를 위한 정치는 곤란하다."


노빠깨시민들의 손학규 전 민주당대표 죽이기

http://m.blog.daum.net/bipamanchwi/7640762?srchid=BR1http%3A%2F%2Fblog.daum.net%2Fbipamanchwi%2F7640762




PYH2012101703460001300_P2_59_20121017111251.jpg 

-노유빠 온라인친노 조폭패거리들의 안철수죽이기-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친노 진영이 박원순에 힘을 실어줬었죠.
박원순도 혁통과의 관계가 무난했구요. (박원순은 민주당 비판을 하긴 했으나, 친노 비판은 없었습니다.)

비노 vs 친노의 예선전격인 서울시장 선거에서 비노측 박영선이 밀리면서 친노가 주도권을 잡았고 곧이은 본선인, 혁통과의 통합에서도 혁통이 주도권을 잡고 승리를 했습니다. (손학규의 삽질이 컸죠)

기실 혁통이 민주당에 입성하기 전 절대 다수의 친노 팬들은 민주당을 욕하기에 바빴어요. 손학새, 구태 정치인 박지원, 지역주의 정당, 노짱님을 배신한 놈들이라며 많은 비판을 쏟아냈는데 재밌는 건 혁통과의 통합 후, 친노 팬들이 민주당을 물고빨고 하더군요. 혁통과의 통합 후, 민주당의 주도권이 '비노-> 친노' 로 바뀌니 180도 입장이 바뀐 거예요. 정치적 판단을 오로지 '노무현 감성 팬덤'에 기인하고 있으니 그런 것이겠지만..

박원순이 대두되면서 불임정당, 정당정치 훼손등의 지적이 많았으나 '국민의 뜻이다' '민주당이 잘한 게 뭐가 있냐!!' '기득권을 내려놓아라!!' 라고 설쳐대던 분들이 이제는 정당정치를 강조하고 친노 기득권 없는데? 안철수가 정당없이 뭘 할 수 있겠냐며 소리를 지릅니다. 물론 서울시장과 대통령의 무게감은 다르겠지만요. 이런 사태의 원인제공, 그 맥락은 박원순부터 시작된겁니다. (참고로 저는 박원순을 아주 좋아합니다. 경선 시에는 정당정치 밖에 있어 지지하지 않았지만요.) 즉, 친노와 그 팬들이 결코 현 사태에서 자유롭지 못하단 거죠. 한마디로 말해 모순된 행동을 보이고 있죠.

혁통 역시.. 기득권을 내어놓아라, 양보해라라면서 압박을 했고.. 방법론에 있어서 반대를 했던 박지원은 친노팬들에 의해서 난도질을 당했었죠. 구태, 수구, 지역주의, 부패, 비리정치인등등.. 온갖 마타도어를 당했습니다. 통합자체를 반대한 것이 아니라, 방법론에 있어서 의견 차이를 보였던 것 뿐인데도요. 헌데 요즘 박지원은 또 찬양을 합니다. 왜냐? 친노를 서포트 해주는 위치에 있거든요. 우습죠... 손학규와 박지원이 주도권을 잡았던 민주당은, 어려운 환경에서 나름 선방을 많이 했고 복지이슈, 무상급식등도 공론화 시켜가며 많은 정치적 이슈를 선점하고 잘 꾸려나갔습니다만.. 욕만 바가지로 먹은 셈이죠.

1.jpg 

현재의 안철수는 과거, 혁통이 했던 행태와 비슷한 맥락입니다. 박원순도 마찬가지구요. 그 대상이 바뀌었을 뿐이죠. 헌데 혁통이 했을 때는 적극 옹호하더니.. 안철수가 하니 생난리를 칩니다. 현재 민주당의 기득권은 친노입니다. 지난 총선을 말아먹었구요. 혁통과 친노가 민주당을 접수한 후에는 어떤 정치적인 이슈나 정책보다는 '노무현 팔아먹기'에 여념이 없기도 했었죠.

지난 총선, 참여정부 청와대 출신만 18명이 공천을 받았으며 최종 당선자 수는 범친노(친노, 정세균계, 시민사회)포함해서 40명 정도 됩니다. 순수 친노계만 대략 22명인가? 되는 걸로 알고 있구요. 이해찬과 한명숙이 싸웠으니 계파 공천이 없었다? 손학규계, 정동영계, 구민주계는 아예 한명숙과 싸우지도 못했어요... 김희철은 아예 한명숙이 만나주지도 않았다죠. 지들끼리 해처먹다가 싸운 겁니다. 나머지 계파는 아예 그 권력다툼에 끼지도 못했어요. 오죽하면 박영선이 울분을 토했겠어요. 손학규, 정동영 모두 비례대표에 자기 사람 하나 제대로 심지 못했죠. 한명숙이 자기만의 라인을 구축하려다 이해찬과 트러블이 생긴 겁니다. 비례대표 면면들 보세요. 황당할 지경이죠. 지들끼리 해처먹다 싸운 걸 마치 계파 공천 없었다. 라고 헛소리 하는 분들 많은데.. 이정희와 담판도 문재인이 했습니다. 이게 뭐겠어요? 공천과 관련된 실질권력이 문재인, 이해찬이라는 걸 통진당측에서 인정하고 있다는 거죠. 결국 구민주계는 꼬장 부리다 산화했고, 비노측은 똘똘 뭉쳐 친노를 공격하고 있는 상황이 된 거예요. 자업자득인 셈입니다. 적당히 해먹었어야죠.

여튼.. 참여정부에서 제대로 한 것 하나 없고.. 민주당 어려울 때 니나노 하다가 노무현 죽으니 민주당 들어와 권력 잡고 총선까지 말아먹은 집단입니다. 패권적 행태와 계파 공천으로 그 유리한 선거를 말아먹었어요.

나름 간략히 썼지만 안철수와 비노가 지적하는 건 바로 이 부분입니다. 괜히 친노를 욕하는 게 아니에요.
현재 친노는 자승자박인 셈입니다. 민주당 권력을 잡으려 정당정치를 훼손한 놈들이 역으로 당하는 거죠.
그러니 현재 친노 팬들이 안철수의 정치행태를 욕하는 건 말 그대로 모순이죠.

1354196374.jpg 
- 철저하게 인물론을 망친 친노-
1343236061_20120725194008285.jpg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일단 내 생각엔 깨시민이라는 용어는 꽤 괜찮게 잘 만든 것 같다. ‘깨시민은 노빠와 유의어이지만약간의 어감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1) 노빠라는 말의 기원을 찾자면 노사모부터 이야기해야 할 텐데근래 깨시민 짓하고 넷을 돌아다니는 아가들 중 태반은 노사모 전성기 시절에는 꼬꼬맹이였음.

 

2) 노무현 사망도 이미 5년 전의 사건이 되어서현재 친노’, ‘노빠라고 할만한 세력은 노무현 생전의 친노’, ‘노빠와는 100% 일치한다고 하기는 어려움.

 

3) 개인적으로는 정말 많은 깨시민들의 탄생과 언행이 노무현 사후 그에 대한 일종의 부채의식에서 비롯되었다고 추정함.

 

 정도를 꼽고 싶다.

 

 이런 깨시민들은 마이너리티를 지향하는 일베충에 비해 상당히 메이져한 정치집단이고그 활동량과 파괴성은 숫자대비 기존 한국에 있었던 그 어떤 정치집단보다도 강력하다그리고 그들의 정치적 성향은 학술적으로 파시즘과 상당히 가깝기 때문에언제든 굉장히 문제될 수 있는 집단이라 생각한다참고로 깨시민이라는 용어가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진 근본적인 이유는 누가 봐도 유별나게 깨어있다고 보기 불가능한 뇌내 청순함에도 불구하고 자신들만 깨어있다고 자처하였으며더 나아가 참으로 멍멍이같은 국민 멍멍이론을 웅변하면서 우리들이야말로 깨어있는 시민으로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다!! 같은 되도 않고 기가 막힌 선민의식을 노출증 환자처럼 노출해왔기 때문이라 생각한다물론 깨어 있는 시민이라는 어휘는 탄생 시점부터 깨지 못한 시민의 존재를 상정하고 차별화시키기에 반민주주의적일 수밖에 없었다.

 

 특히 위험한 것은 깨시민 교리의 파급성에 있다깨시민은 깨시민 교리를 받아들인 대체로 평범한 사람들이며깨시민들은 본인 언행의 문제점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나는 이 사회의 여러 근본적인 문제들이 젊은 깨시민들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생각하며파시즘의 확산을 막고 민주주의 체제의 성공을 이루기 위해서는 깨시민이 왜 탄생하고 그들이 왜 그런 모습을 보이는지를 이야기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일단 깨시민의 등장과정을 이해하려면 대선 무렵부터의 노무현 지지자들이 어떤 갈등을 겪고어떻게 분열되고 어떻게 지지세력이 줄어들고 종교화되어갔는지에 대한 대략적인 이해가 필요할 것 같다이 모든 것들에 대해 나는 본문에서 상세한 기록을 남길 생각까지는 없고정말 간단하게 뭉뚱그려서 이야기하자면 다음과 같다.

 

 노무현은 어린 깨시민들의 그릇된 신앙과는 달리 취임과정부터 엄청난 실정을 반복하였고그 실정의 총량은 감히 그 2MB각하를 상회한다고 평할 만 하다그 과정에서 당연히 수많은 논란이 벌어지고 지지자들이 마음의 상처를 크게 입고 이탈을 반복했는데그 과정에서 언제나 노무현은 옳다는 식으로 광신적인 비호를 해대며노무현과 적대하는 모든 이들을 무차별로 공격해댄 세력이 있었으니 이들을 사람들은 노빠라 불렀다.

 

 ‘노빠들은 그들이 처음 등장한 이래 인터넷 세상에서 엄청난 화력과 단결력을 자랑했다물론 그들은 지금도 쉽게 찾아볼 수 있듯이 한나라당을 절대적인 악으로 취급하고그땐 한나라당도 정말 엄청나게 밉상으로 굴어서 노빠들이 큰 힘을 얻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때 한나라당이 하던 짓을 근래는 야권이 하고 있다. - 한나라당이 아닌 모든 정치세력을 노빠 밑에 복속시키고자 하였다그 노빠의 필두라 할 수 있는 정치인은 유시민이었고그들은 조직적으로 움직이면서 거의 모든 인터넷 커뮤니티를 장악했다사실 30~40명 정도가 조직적으로 움직인다면 아무리 큰 인터넷 커뮤니티라도 장악될 수밖에 없다이 당시 이들의 힘은 정말 컸기에열린우리당 정치인들조차 이들의 눈치를 많이 볼 수밖에 없었다그리고 이것은 파국적 결과를 낳았다.

 

 본문은 노빠의 사악함과 광기를 지적하려는 게 주목적은 아니다그러나 그들은 나치 친위대의 인터넷 버전이라 할 만 했다노무현이 정치적으로 워낙 실정을 거듭했고 인기를 금방 잃었기에 이 문제는 현실 속에서 크게 심각해지지는 않았지만대신 실정으로 인한 다른 문제들이 축적되었고그들과 친노 정치인들의 패악질 속에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현재의 야권은 반영구적으로 망가져버리고 말았다.

 

 깨시민들은 온갖 망상과 궤변으로 무시하는 분야이지만현재 30대 후반~50대 초반 정도의 새누리당 지지자들 중 다수는 과거 노무현 지지자였다그들은 노무현의 실정과 야권의 철학 없음그리고 노빠-깨시민들의 패악질에 실망하여 현 여권 지지로 돌아섰다.

 

 본 주제로 돌아가 노무현이 아직 집권하면서 실정을 거듭하고 있을 때이미 열린우리당 내에서도 노빠들이 파시스트 종교집단이라는 지적은 적잖게 있었으나 그 현상이 이런 식으로 진화할 거라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보편적으로 특정 정치인 추종집단의 생명은 그 정치인의 권력이 사그라짐과 함께 같이 소멸되기 때문이다.

 

 이명박으로의 권력승계는 여러 정보로 추론해볼 때 노무현 정권의 의도였지만 고건과 박근혜이명박 중 이명박을 작정하고 골랐다는 의미 - , 두 정권의 거래는 2008년 촛불정국으로 인해 파토나고 만다이명박 정권은 시위 자금의 출처 등을 조사하다 촛불의 주체를 노사모라 판단하게 되었고이명박 대통령은 노무현에게 적잖은 배신감을 느꼈다고 전해진다그리고 내가 판단하기에 당시 친노-노빠 집단은 촛불정국으로 이명박 정권을 뒤흔들어 바닥까지 떨어졌던 권력을 탈환하는 데 주된 관심을 두고 있었다. (이는 결코 당시의 모든 촛불 시위대가 그랬다는 것은 아니다.) 노무현 본인은 아무 생각이 없던 건지다른 노빠들처럼 정치적 재기를 노리고 있던 건지는 모르겠으나 이명박 대통령의 불편을 가중시키는 언행을 반복하였다그리고 촛불정국으로 인한 이명박 정권의 인사 물갈이는 노무현 정권 인맥과의 핫라인이 끊기는 것을 의미했다당신의 혼란 속이명박 정권 내부의 권력 투쟁은 엄청나게 치열했다적잖게 복잡한 과정을 거쳐 검찰 수사가 시작되었다.

 

 자살하지 않았다면 노무현은 아마도 감옥에 갔을 것이다내가 보기엔 그가 포괄적 뇌물죄에서 빠져나갈 방법은 거의 없었다그리고 그런 결과가 나왔다면 깨시민이 등장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그러나 그는 자살했고사회 분위기는 급변하였다.

 

 사실 그전부터 우리 사회에는 노무현에 대해 막연한 호감을 가진 이들이 많았다그것은 대부분 그의 단순하고 직설적인 모습 및 이미지 메이킹에서 기인한 것이었지만대통령을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결코 아니고 노무현의 그러한 일면은 다른 정치인들이 가지지 못한 대중적 장점이었다고 노무현에 대한 추모열기는 탄핵 때 이상으로 폭발하였고촛불시위와 노무현 자살을 계기로 정치에 관심을 가졌다는 사람이 많이 등장하게 된다그리고 그들은 위에 이야기했듯 노빠들이 만들어내는 종교적 컨텐츠를 주로 학습하게 된다깨시민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깨시민의 교리는 수많은 사이비 종교들처럼 기존 세상의 상식을 버리는 데서 출발한다.그러면서도 깨시민 교리가 강력한 건 그것이 이 사회의 문화적 약점들을 더할 나위 없이 잘 공략하고 있다는 데 있다이 신흥 종교의 교리는 매우 잘 만들어졌기에평범한 한국 젊은이라면 누구나 깨시민이 될 수 있다.

 

 그들은 가장 먼저 선과 악을 구분하고내 편과 적을 흑백논리로 나눈다물론 당연하게도 내 편이 선이고, ‘진정성을 가진 노무현과 그의 후계자들이 그들의 선한 대표자가 된다그들의 종교관 속에서 교주는 노무현-유시민-문재인-(박원순)으로 이어진다교주에 대한 그들의 신앙은 대체로 종교인들이 그렇듯 굳건하기 때문에양떼들처럼 그들을 따라다니며 교리를 전파하게 된다그들이 이야기하는 정의와 공정’, 그리고 민주주의는 개신교의 믿음’, ‘소망’, ‘사랑과 크게 다를 게 없다.

 

 이러한 행동패턴은 사실 그리 특이할 건 없다인류의 원시적 특성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그런데 문제는 이 행동패턴이 저런 식으로 정치 집단화될 때는 그것이 현대 민주주의 체제에 전혀 어울리지 않으며더 나아가 대단히 위험하다는 데 있다.

 

 쉽게 이야기해보자민주주의는 시민이 정치 지도자를 선택하고 판단하는 체제다즉 이 과정에서는 회의와 계산그리고 재고가 필연적이다그리고 시민과 정치인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동등하며이 사회 구성원들끼리는 서로 다른 정치적 의견을 가지더라도 이해와 대화와 타협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이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거나 잊어버린 기본적 윤리다.

 

 그런데 깨시민들은 이 윤리 자체를 전복한다이들은 자신들이 섬기는 정치 지도자를 내심 시민보다 한 단계 더 높이고그들을 의심하거나 견제하는 것을 거부한다더 나아가 이들은 자신들이 적대하는 집단을 적으로 규정하고자신들에게 협조하지 않는 모든 것들을 적대집단에 끼워 맞추는 모습을 보인다물론 그들의 적대감과 공격성은 상식을 초월한 지 오래다.

 

 그들에게 있어 다른 야권 세력은 굴복시키고 지배해야 할 대상이며여권 세력은 타협의 여지가 없는 제거의 대상이다그러면서도 그들은 자신 스스로를 민주주의의 화신인 것처럼 포장하기 때문에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모자란 사람들은 민주주의의 개념 자체에 엄청난 오해를 하게 되기 쉽다물론 깨시민들은 민주주의에 대해 거의 아는 게 없는 사람들이기에그런 오해를 확산시키는 데 쉽게 앞장설 수 있다.

 

 한국인들이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한국에서 민주주의가 자연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서구의 경우 민주주의의 역사가 오래 되었거나민주주의가 자연 발생했기에 그에 어울리는 문화가 체화되어있다그러나 한국은 민주주의가 이식된 후 그것이 규범화되었고규범화 과정에서 민주주의와 어울리지 않는 다른 여러 가지 기존 윤리적 관점들과 갈등을 빚고 있는 게 현실이다그리고 깨시민 현상은 이런 아노미가 어떤 식으로 폭발할 수 있는지를 매우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충분히 민주주의적이지 않은 문화에서충분히 민주주의적이지 못한 교육을 받고 자라난다여전히 한국 문화는 다분히 군대식이고대화와 타협에 익숙하지 않으며 권위적이고 성급하다또한 쉽게 집단적 불안감을 느끼며무언가 근본적인 잘못됨을 곧잘 체감하지만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충분한 고민이 없다이에는 한국 특유의 반지성적이고 파괴적인 집단주의가 큰 역할을 한다.

 

 깨시민의 비극은 그들이 문화적 진보를 추구하는 것에 비해 실질적인 진화의 노력은 전무하다는 데 많은 것을 기원한다그들은 본질적으로 비이성적인데사람은 본래 자연 상태에서는 감정적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이성을 활용하려면 훈련이 필요한 법이다그런데 깨시민은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훈련이 거의 되어있지 않고그렇기에 종교적이며 타인 또한 종교적으로 만든다.

 

 깨시민 교리는 대부분의 종교 교리가 그렇듯 마음속의 불안감과 문제의식을 자극한다.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 사회는 무언가 잘못되었어.’라고 생각하고 있고그것 자체는 사실이기 때문에 대안을 찾고 싶어 한다그리고 깨시민들은 이 지점에서 그럴싸한 대안을 제시한다이 대안은 받아들이는 사람한테는 매우 편하다딱히 어려운 지식을 학습할 필요도 없고역대 교주들의 진정성에 대한 믿음 하나면 반쯤 끝나기 때문이다.

 

 이들이 언제나 안티질에 집중하는 이유 또한 교리 구조가 그래서이다이들은 기존 체제의 잘못된 점에 불안감을 느끼는 자들에게 매국노 수꼴들이 문제야!’ 라고 포교를 하는 방식으로 세력을 늘려나갔다물론 실제 친일 출신은 야권도 만만치 않은 정도를 넘어 더 많을 지경이고알고 보면 수꼴스러운 건 깨시민이 챔피언 먹을 지경이더라도 말이다그래서 이렇다보니 이들은 새누리당 안티질 자체에 온 능력을 집중할 뿐자신들이 어떠한 사회를 어떻게 만들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성찰이 거의 없다.

 

 그저 종교인들답게 그들은 이상적인 공공선을 러프 스케치처럼 대~충 상상하며, ‘깨어 있는’ 자신들이 그 공공선을 수호해야 한다고 여긴다그리고 그들의 교리에서 그들의 주적인 새누리당 세력은 언제나 그 공공선을 침해하기 때문에기회가 될 때마다 그들을 공격하고 그들의 권력을 빼앗아 와야 한다고 여긴다그러나 이런 방식이 민주주의 체제에 어울릴 리가 없다.

 

 철학적 빈곤과 반지성주의는 깨시민들의 대표적인 특성이다이성의 등불이 밝혀진 곳에 광신이 존재할 수는 없는 법이다그들이 상상하는 공공선은 결코 철학적 완성도가 있지도 민주적이지도 않다그들은 민주주의뿐 아니라 정치 자체에 대한 이해가 없기에 모든 것을 제멋대로 상상하고 재단한다그리고 그들이 창조해낸 종교 교리 가치관에 모든 것을 끼워 맞춘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시민들이 각자의 갈등을 조율하고공동체의 번영을 통해 사익을 지키려는 역사적 기원에서 출발하였다민주주의의 성공사는 그 현실성의 승리라 할 수 있다한 사회 속에서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그 갈등을 평화적으로 조율하는 가운데 가급적 모두의 이익을 챙기는 체제가 다른 체제보다 우월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경우 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성찰이 높은 수준이었기에불필요한 사회 갈등을 줄이고 마침 다가왔던 국가적 위기를 이겨내기 위해 애썼다비록 모든 판단을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그는 어느 정도 진정한 민주주의적 대통령이라 할 만하다그러나 후임인 노무현의 행보는 그와는 정반대였다그는 불필요한 갈등을 키웠고사회분열을 끊임없이 야기했다.

 

 깨시민들은 김대중의 이름을 항상 팔아먹고 다니지만김대중의 가치관이나 정신은 손톱만큼도 이어받지 않은 거짓된 자들이다그들은 취임하자마자 김대중 정권을 무차별로 공격했던 노무현 정권의 종교적 추종자이며그렇다고 노무현 말은 잘 듣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들은 근본주의 종교집단답게 민주주의에서 필요한 화합과 타협 자체를 근본적으로 거부한다노무현이 사악한 세력을 너무 봐줘서’ 죽었다는 망상과 피해의식에 사로잡혀있기 때문이다그들을 보면 종교적 착각에 근거해 피해의식을 키우고앞뒤 안가리는 공격성을 가진 정치적 집단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쉽게 알 수 있다.


 사실 철학의 빈곤 문제는 노무현 정권 자체부터 따져 봐야한다노무현은 민주 정치 뿐만 아니라정치 자체에 대한 이해가 거의 전무했다일례로 노무현 캠프는 경제공약 자체가 없었는데훗날 대선캠프 공약팀장 이병완이 이야기하기를

 

권력을 왜 잡느냐지속적으로 권력을 잡고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죠예전의 박정희라면 권력은 수단이거든요최종적인 가장 큰 수단이 대통령입니다꿈을 잡기 위해 꿈을 이야기 하고 희망을 이야기 합니다그런데 대통령 중에 유일하게 꿈과 비전을 애기하지 않은 분이 딱 한 분이 있었습니다노무현 대통령노무현 후보였습니다.”

 

원칙과 상식, (노무현 후보는이 가치만 이야기 했습니다가치를 내세워 대통령이 된 유일한 분입니다노 대통령은 정치적 성공이 아니라 정치 자체와 싸움을 벌였습니다.대통령은 정치와 싸우기 위해 정치를 시작했습니다. (후략)”

 

 이 모양 이 꼴로 이야기하는 수준의 형편없는정말 순화해서 이야기해 어린 소년 같은 수준의 정치철학을 가지고 있었으니 정치가 제대로 될 리가 없었던 것이다.

 

 정치를 해야 할 대통령이 정치와 싸우기 위해 분노를 품고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올랐다그리고 그는 정치를 하지 않고정치와 싸웠다그것은 종교적인그리고 정치를 혐오하는 행위이고 그의 파괴성에 한국 정치는 많은 부분이 부서졌다초대 교황이 이랬으니 깨시민들도 그를 이을 법 하다.


 그리고 정말 안타까운 건 노무현이나 깨시민아니면 더 나아가 어떤 야권 지지자들의 착각과는 달리 현 한국 정치 시스템은 완벽한 민주주의고그들이 적대하는 정치는 민주 정치’ 그 자체라는 데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민주주의의 가장 강력한 적이며민주주의의 파괴자인 것이다그리고 그들이 보이는 집단주의와 타자에 대한 심각한 배타성일상적인 낙인찍기종종 보이는 강력한 민족주의도덕주의와 이중잣대, 무한한 피해의식과 선민의식 등등은 종합하여 학술적으로 보면 영락없는 파시즘이기에 참으로 우려스럽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첨언하고 싶은 이야기사실 극단적인 깨시민 자체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다그러나 그들은 인터넷 사회 전반을 잠식하고더 나아가 소위 진보언론의 대부분을 잠식하여 광신적이고 위험한 정보조작을 일상적으로 자행하고 있다그에 정말 많은 이들이 큰 영향을 받고 있으며그 폐해는 너무 광범위해서 어디에서나 악령처럼 튀어나올 지경이 되었다심지어 여초에서 요리 레시피를 찾아보더라도간단한 유머글을 보더라도 뜬금없는 문재인찬양박원순찬양을 볼 수 있을 정도다.

 

 어떤 친구는 광신 노빠는 실제 야권에서 진짜 일부일 뿐이라고도 한다야권 지지하는 사람들 중 노빠 싫어하는 사람들 정말 많다고 한다그러나 깨시민과 그들이 지지하는 친노들은 현실 속에서 야권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한다그들은 뜬금없이 민주당 당권을 장악하고 총선에 나선 후거기서 어이없이 실패한 후에도 손학규를 물리치고 안철수까지 꺾고 국민들 사이에서 듣보에 가깝던 문재인을 대선후보로 앉히는 만행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른 위인들이다나는 사람들이 그들의 위험성을 보다 더 제대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유시민과 노무현 열혈지지자들이 한국정치에 끼친 대표적인 해악의 하나는
정치를 '가치'나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특정인물' 팬클럽중심으로 수십년 후퇴시켜놨다는겁니다.
정치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가치분배에 관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우선순위가 달라지고 그 가치에 따라
얼마든지 합종연횡할 수도 있고 자기의 소신에 따라 어제의 동지와 대립각을 세울수도 있죠.
그러나 유시민과 열혈친노들은 정치를 수십년 후퇴시켜버렸습니다.

그들은 정치를 가치의 개념이 아니라 누군가에 대한 '충성'의 개념으로 바꾸어 버렸죠.
노무현에 누가 더 충성했느냐.....가 정치적 신뢰도의 기준이라는 것.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이죠.
반대로 노무현을 배신했느냐....노무현에 정치적 대립각을 세웠느냐가 정치인 판단의 주요논거라는건
정말 비극적인 일이고......정치를 후퇴시킨 일이죠.

유시민과 열혈친노는 노무현 집권부터 지금까지 10년간.....
누군가가 노무현에게 반대한다 싶으면 일단 그 인물의 과거 행적을 샅샅이 뒤집니다.
모든 행적, 어록을 뒤져서 이 사람은 이런 인물이라는 공개재판을 시도하죠.

홍위병이란 말이 그냥 조선일보의 소설같은 창작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노무현 사후 3년이 됐지만...지금도 친노직계에 반대한다 싶으면 과거가 고스란히 드러나고
이런식으로 노무현을 반대한 인물이라는 선동이 이뤄지죠.
김한길이라는 인물에 대해 호불호가 있을수 있겠지만.....
김한길이 총선에 공천됐을때만 해도 온라인 야권에서는 호평이 주류였습니다.

전략가고 민주당에 도움되는 인물이다....선거도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 전략공천받았지만 낙승했죠.
그런데 이해찬과 대립각을 세우고 대표에 출마하자 그때부터 비토가 쏟아집니다.
원래부터 형편없는 놈, 무능한 놈, 허약한 놈, 노무현을 배신한 놈...

언제나 스토리는 같습니다.

그냥 친노계가아니고 끝내는 노무현을 배신한 놈이라서 안된다는거죠.
심지어 김한길은 야권연대 끝내자는 입장이고 이해찬은 야권연대 계속 하자는 입장인데
이것도 꺼꾸로 얘기하죠. 김한길이 되면 야권연대 끌려다닐것이다.

야권연대는 친노직계를 형성하고 있는 PK친노의 약한고리이기 때문에 통진당에 아쉬운 소리할 수 밖에
없다는 구조적인 약점을 안고 있는데도 말이죠.
PK 지역에 정치적 진출을 하는게 그들의 수십년간 숙원인데 PK지역에선 통진당의 지지율이
일정한 수준으로 있기 때문에 PK친노는 그들의 표를 받아야만 승리할 수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1343236061_20120725194008285.jpg
다시 논지로 돌아가서, 대체 언제까지 인물 중심의 사고를 하시렵니까?
김근태가 아파트 분양원가 문제로 노무현과 충돌하자 난리를 쳤던게 유시민과 열혈유빠와 친노입니다.
아주 인터넷에서 김근태를 몹쓸놈 만들고 죽여놓았죠.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가 노무현과 충돌하면 죽일놈이 되어야 하는겁니까?
김한길이 처음에 선도탈당한게 문제라면 나중에 탈당한 사람들은 왜 탈당했나요?
김한길의 탈당이 이치에 맞으니 결국 다 민주당으로 모인거 아닙니까?


이런식으로 과거를 파면 대선후보 경선까지 나왔다가 나중에 손학규가 대표된게 기분나쁘다고
탈당한 이해찬은 어떤 문제가 있는걸까요?
차라리 김한길은 정동영 낙선에 책임을 지고 4년간 정계은퇴라도 했지요.
제가 누차 말하는건 친노직계의 증오의 정치를 버리라는겁니다.
이런식으로 인물중심으로 사고하는건 끝없는 분열만을 낳을 뿐입니다.
언제부턴가 정책과 가치라는 부분이 사라졌어요.

친노직계가 할줄아는건 정치싸움밖에 없고 우리편과 적을 가르는 분열의 정치니까요.
유시민뿐만 아니라 문재인도 정치판에 뛰어들어서 아무런 정책이나 가치조차 말하지 못한다는게
우연이거나 시간이 없어서라고 생각하십니까?

민주당내에서 가장 유력한 대권후보라면 지금쯤이면 어떤 슬로건을 걸고 정책하나라도
뇌리에 박히게끔 들고 나올텐데 이런게 없죠.
검찰개혁같은 소리는 중도층에겐 정치보복하겠다는 얘기로밖에 들리지 않는거고요.
이런게 민생에 중요한 것도 아니죠.

손학규가 말하듯 '저녁이 있는 삶' 같은 슬로건을 내걸고 무언가의 그림을 그려주는게
정치인이 해야할 일입니다.
맨날 정당개혁이 어쩌구 내편, 니편 싸움하다가 결론은 노무현을 배신한 놈으로 귀결되는
정치는 정말 그만해야죠.
인터넷 자체가 노빠 편향이기도 하지만.......
정말 웃긴게 이번에 김한길 대 이해찬 구도에서도.....
김한길 편에 가담했다고 알려진게 정세균과 김두관입니다.
둘 다 친노고.....흔히 말하는 범친노죠.

그런데 친노직계...- 친노직계의 주류가 흔히 말하는 PK친노입니다 - 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그들은 친노가 아니다....이런 소리 해대고 있어요.
그러면서 민주당에서 친노를 몰아내려고 한다는둥.....
아쉬울땐 범친노도 다 친노고....대립하면 너희는 가짜친노 타령입니까?
심지어 한명숙도 친노가 아니라고 하고 있죠.....
이렇게 빼기만 하는 뺄셈 정치.....이 정치놀음을 그만해야 발전이 있습니다.
누구는 이렇게 노무현에 대해 반대했으니 친노라 할 수 없어....라는
너무나도 유치한 발상들.....

정치는 가치와 정책의 싸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노무현에 충성했다, 반대했다가 정치의 어떤 기준이 되어서는 안돼요.
2012년 대선을 바라보고 당대표를 뽑는데 아직도 노무현에 반대했다가 정치적 선택의
주요한 기준이 된다는것.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문제는 이번만 그러는게 아니라 항상 그런다는거죠. 
노무현을 배신한 놈이거나 덜 충성한 놈 타령이요.

이런 분열과 증오의 습관을 고치지 않는한 문제는 반복될 뿐입니다.
도돌이처럼 노무현의 행적에서 왔다갔다 할 뿐인거죠.
이것이 친노가 일정한 지지율을 갖고 있지만 표의 확장성을 가지지 못하는 문제입니다.
정치를 인물 중심에서 다시 가치와 정책 중심으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요?



기자가 만나는 세상 현장 21.E77.121023.정치와 강남스타일 外.HDTV.XviD-KOR.avi_000877877.jpg 기자가 만나는 세상 현장 21.E77.121023.정치와 강남스타일 外.HDTV.XviD-KOR.avi_000883049.jpg 기자가 만나는 세상 현장 21.E77.121023.정치와 강남스타일 外.HDTV.XviD-KOR.avi_000884784.jpg 기자가 만나는 세상 현장 21.E77.121023.정치와 강남스타일 外.HDTV.XviD-KOR.avi_000887654.jpg 기자가 만나는 세상 현장 21.E77.121023.정치와 강남스타일 外.HDTV.XviD-KOR.avi_000893159.jpg


profile

仲尼再生 " 夜 의  走筆  " 취임사

 

저를 아크로 주필로 추천하시는 회원여러분의 글을 읽고, 오늘 본인은 본인의 향후 거취를 놓고 깊이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프루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끝없이 되뇌며, 다수 회원의 요청대로 아크로 "밤의 주필" 직을 기꺼이 수락하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내 일신의 안녕 만을 위한다면 봉급 한 푼 못 받는 이 명예직을 수락할 수 없었겠지만, 이미 공인 아닌 공인이 된 몸으로서 이 위기의 시대에 역사가 제 어깨에 지운 이 짐을 떠맡기로, 본인은 이 아름다운 밤 위대한 결단을 내렸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