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9일 광주직할시에서 열린 ‘호남의 경제 산업 실상과 낙후 극복과제’ 토론회에 다녀왔습니다. 천정배 전 장관이 호남 정치 복원을 내세우며 주관하는 호남 희망 찾기 제2차 토론회로 (사)동북아전략연구원 부설 호남의 희망, (재)향남문화재단, (사)지역미래연구원, (사)서남권균형발전연구소가 공동주최하고 CMB광주방송, 무등일보, DBS광주동아방송이 후원하는 행사였습니다.

함박눈과 빗물이 섞여내리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100여명 정도가 들어갈 것 같은 CMB광주방송 1층 강당이 꽉 차더군요. 행사의 호스트라고 할 수 있는 천정배 전 장관도 “일반인들이 골치아파 할 수 있는 경제 문제를 다루는데다 날씨까지 이래서 빈자리가 많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생각보다 참석자도 많았고, 토론과 질문으로 이어지는 분위기도 뜨거웠습니다. 발제와 토론을 맡으신 분들도 그 내공과 준비도에서 높은 수준을 보였다고 생각합니다.

천정배 장관은 인사말에서 “호남은 5.16 이후 산업화 과정에서 철저하게 배제됐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호남 스스로 발전 전략과 비전을 만들어 실천해야 한다. 현재 호남 지역의 예산자립도가 너무 낮아서 중앙의 지원을 끌어올 수밖에 없다.”며  “광주·전남의 R&D 예산이 충남의 5분의 1, 경북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광주창조경제혁신센터의 비전이나, 광주에서 현대자동차 연산 100만대 생산 계획 등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이것만 잘된다면 정몽구 현대차 회장을 업어주고라도 싶다. 지역 균형 발전은 대한민국의 정의 실현이라는 점에서 당연한 요청이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이 날 발표와 토론에서는 호남의 경제 및 산업과 관련하여 희망적인 내용도 많았습니다. 광주의 자동차 100만 대 생산도시화, 한전 등 혁신도시 이전기관과의 상생형 산업생태계 조성 가능성, 창조경제혁신센터 사업 추진, KTX 개통 등이 희망의 메시지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삼성전자 세탁기와 냉장고 생산라인의 해외이전, 동부대우전자의 공장설비 해외이전, KTX의 서대전 분기점 논란, 광역경제권 설정에서 지역 균형발전을 외면하는 정책, 연구 개발비 예산 배정의 소외 등은 그러한 희망에 드리워진 불안의 그림자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날 발제자나 토론자 그리고 참석자들 모두 호남의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느끼면서도 의식적으로 희망의 가능성을 얘기하려 노력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느끼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희망의 메시지는 너무나 많은 전제조건(~이 충족된다면)을 깔고 있는 반면, 불안과 공포는 너무나 압도적이고 확연한 현실의 데이터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지표 몇 가지만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취약한 재정력을 들 수 있습니다. 2013년 서울의 지방세 수입이 11조7900억원, 경기도가 6조5100억원, 인천이 2조2200억원입니다. TK와 PK를 합한 영남권이 8조6500억원, 충청권이 2조7700억원인 데 비해 호남권은 2조4900억원에 불과합니다. 한 발표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방교부세 아니면 아예 생존 자체가 어려운 수준”입니다.

천정배 전 장관도 언급한 R&D 예산은 지역의 경제와 산업의 미래를 읽을 수 있는 지표입니다. 2014년 기준 수도권의 R&D 예산이 40조1450억원, 충청권이 9조8162억원, 영남권이 6조7376억원인 반면 호남은 2조1144억원에 불과합니다. 수도권의 R&D 예산이 전체의 67.7%, 충청권이 16.6%, 영남권이 11.4%이고 호남권은 3.6%입니다.

지역 총생산 측면에서 광주의 비중은 2008년 2.2%에서 2013년에는 2.1%로 줄었고 전남은 5.1%에서 4.3%로 줄었습니다. 2013년 전국 매출액 상위 1천대 기업에 광주와 전남 소재기업은 25개사에 불과하고 그나마 100대 기업은 단 한 곳도 없습니다(호남 전체로는 1천대 기업 36개). 반면 영남은 100대 기업 10개, 1천 대 기업 177개가 있으며, 충청권은 100대 기업 3개, 1천 대 기업 74개에 이릅니다.

자영업자 문제는 대한민국 경제 전체의 숙제이지만 광주 지역의 경우는 더욱 심각합니다. 연 매출액 4,800만원 미만 즉 중소기업 직원 평균급여보다 못한 매출액(순익이 아닙니다)을 올리는 자영업자가 전체의 59.5% 거의 60%에 근접합니다. 연 매출액 1천만원도 못되는 자영업자 비율이 23.8%로 동일 구간에서 다른 지역 대비 가장 높았습니다. 이 정도면 과장된 표현이 아니라 액면 그대로 엄청난 인구(우리나라의 자영업자 비중은 22.5%)가 ‘기아선상’에 놓여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심각한 지표보다 호남 사람들을 더욱 두렵게 하고 분노하게 만드는 요인은 따로 있는 것 같습니다. 바로 현정부, 집권세력, 의사결정권을 쥔 기획재정부 등 힘 있는 공무원들이 예산 배정 등에서 호남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왕따시키고 있다는 의문이었습니다. 의문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그것은 오랜 현장 경험에서 나온 확신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발제 및 토론자들은 광역경제권 설정에서 인구 중심의 과격한 공리주의적 관점을 유지한 것, 지역낙후도 등을 무시하고 최소한의 정책적 배려도 상실했다는 것 등을 들어 이명박정권 이후 호남에 대한 소외가 본격화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 발표자는 “과거에는 프로젝트 계획을 들고가면 최소한 같이 토론이라도 하던 공무원들이 이명박정권 들어서자마자 ‘거기 두고 가라’며 아예 대화조차도 기피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하더군요. 이 발표자는 이런 일이 되풀이되자 중앙부처 공무원들에게 “아예 삼국시대로 돌아가자는 거냐?” 이렇게 묻기도 했다고 하더군요. 이런 정서에 최근 KTX의 서대전 분기역 문제까지 겹치면서 호남의 소외감과 분노는 치유 불가능한 수준으로 치닫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까지 생깁니다.

한전 본사의 나주 이전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지만 불안감도 있습니다. 지난 4년 동안 호남으로 이전하는 16개 기관이 발주한 사업이 3조7천억원이고 그 가운데 한전의 물량만 2조7천억원에 이르는데 광주 전남 기업이 수주한 물량은 5% 미만이라고 하더군요. 한전의 본사 이전이 실제로는 지역경제와 무관하게 물 위에 뜬 기름처럼 겉도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였습니다.

16개 기관의 이전에 그칠 것이 아니라 관련 기업과 연구소 등을 동반 유치해야 한다는 간절한 바람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이것 때문이었습니다. 16개 기관만으로는 가족까지 동반해도 1만6천 명 내외로 신도시가 성립하는 최소한의 기준인 인구 3만 명을 채우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한전이 지난해 연말 발표한, 2020년까지 단계적으로 500개 연관기업을 유치한다는 계획을 주시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실 저는 이날 행사의 발언 기조가 “호남이 이 곤경을 벗어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해줘야 한다. 그 지원을 끌어오도록 호남이 더욱 노력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가는 것을 보고 약간 당혹스러웠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현정부에게 그런 지원을 기대하는 것은 나무에 가서 물고기 잡는 행동(연목구어)이나 마찬가지 아닌지, 이런 식으로 하소연해서 과연 힘있는 관련 공무원들이 눈이나 깜박할 것인지 의문이었기 때문입니다.

현대자동차의 100만 대 생산계획만 해도 너무 기대를 걸면 배신감만 커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생깁니다. 지난해 연말 ‘호남과 외국인은 응시 금지’라는 채용공고를 내걸어 파문을 불러일으켰던 남양공업이 현대자동차의 1차 협력업체입니다. 남양공업은 하청업체 직원의 실수라고 했지만 취중진담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런 실수에서 기업이나 조직의 비공식적이지만 핵심적인 분위기가 드러나는 법입니다. 현대자동차가 100만 대 생산계획을 어떻게 처리할지 기대 만땅이 아니라 걱정 절반이 끼어드는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너무 정부 지원에 의존하는 것 아니냐”는 제 질문에 발표자들은 조심스럽게 대답하더군요. “지금 호남의 상황에서 자구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최소한 자구 노력을 할 수 있는 여건만이라도 마련해달라는 얘기다.”

광주직할시가 한때 큰 기대를 걸었던 광(光)산업 클러스터는 1조원 가량의 비용을 투입했지만, 현재는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참여기업들의 기술력 자체가 국제경쟁력을 갖지 못해서 중국 업체 등의 추격을 허용하는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작용한 것으로 들었습니다. 저의 경우 이 산업 클러스터를 지원하여 전후방 연관효과를 낼 수 있는 호남지역 전반의 인적 물적 인프라가 매우 취약하다는 것이 결정적인 이유인 것으로 판단합니다.

이런 광(光)산업 클러스터의 사례는 해석하기에 따라 완전히 다른 교훈과 정책방향을 도출해낼 수 있습니다. 현정권의 고위 경제관료나 주류 경제학자들은 “역시 정책적 지원은 그만한 인프라가 갖춰진 곳에 집중해야 효과가 있다”는 명제를 금과옥조처럼 되새길지 모릅니다. 하지만 정반대의 입장에서는 “정책적 지원은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꾸준히 인내심을 갖고 진행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과연 우리나라의 미래라는 관점에서 우리는 어떤 쪽에 보다 큰 비중을 실어야 할까요?

저는 이 문제를 단순히 경제 산업의 관점에서만 접근해서는 정확한 이해가 어렵다고 봅니다. 다른 지방에서 흉악범죄가 일어나면 그냥 그 사람 개인이 저지른 사건이 되지만, 호남에서 비슷한 사건이 일어나면 “역시 전라도 것들은...” 하는 논리구조가 강고하게 자리잡은 이 나라에서는 더욱 그렇다고 봅니다. 어떤 선생님이 어떤 아이는 성공할 때까지 계속 격려하며 가르치고 다른 아이는 실패할 때까지 계속 괴롭히고 왕따를 시킨다면 그 결과는 너무 뻔하지 않을까요?

지금 대한민국의 경제의 주역이랄 수 있는 기업들은 박정희정권 이래 숱한 실패와 시행착오 속에서도 정부가 금융 및 세금 등 제도적 비제도적 측면에서 어마어마한 ‘묻지마 지원’을 퍼부어 이룩한 결과물입니다. 저 기업들에게도 ‘한번 안되는 애들은 안된다’는 기준을 적용했다면 저 중에서 현재 살아남아있을 기업이 과연 몇 개나 될까요?

무엇보다도 호남이 계속 이 상태로, 소외되고 낙후된 상태로 남아있다는 것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유예일 수밖에 없습니다. 실은 유예도 아니고 점점 악화 심화되는 문제라고 해야죠. 지금 100의 비용이 아까워 호남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앞으로 1천, 1만, 1억의 비용을 들여도 문제의 해결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그리고 이 나라의 고위공직자들 그리고 이 나라의 모든 지식인들이 이 문제를 좀더 심각하게 고민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