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의 제목은 "자본소득(세), 노동소득(세), 그리고 양극화"입니다.  부제는 피케티(Piketty) vs 아제모글루-로빈슨(Acemoglu and Robinson) 입니다.

제가 엇그제 한국의 세재개혁과 연말정산에 대한 감상을 적을 글 ( http://theacro.com/zbxe/5156384 ) 을 쓰고 나서 그 밑에서 길벗님과 한참동안 댓글을 주고 받았는데, 말 나온 김에 썰을 풀어봅니다.

일단 이 글을 쓰는 목적은 크게 두가지입니다. 첫째, 아래의 굵은 글씨체로 쓴 저의 주장의 이론적 근거가 어디서부터 오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그것과 연결된 한국의 복지 정책이 어떻게 되어야하는지에 대해서 조금 다뤄보기 위함입니다. 두번째는 곁가지로 피케티의 주장에 대한 이런 반론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피케티의 주장을 의미없게 만들기보다는 오히려 보완적인 관계가 된다등등의 이야기도 같이 할려고 이 글을 씁니다. (당연하지만 정치가 경제에 왜 중요한지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어서 쓰는 것입니다.)

일단 첫번째로 제 주장을 한마디로 요약해보죠. 

한국과 같이 경제, 사회적 유동성(mobility)이 떨어지는 나라에서 자본소득세는 그대로 놔두고 (또는 낮추고) 임금소득세만 올리면 양극화가 가속될 수 있다.

밑에 어느 댓글에서 피케티의 주장에 대해서 대즐링님이 훌륭한 논평을 해주셨는데, 그 말인즉슨 다음과 같습니다. 피케티의 책의 핵심은 자본주의 역사에서 자본소득의 증가율이 노동소득의 증가율보다 몇몇 예외적인 기간을 빼놓고 항상 높았다. 전자는 약 5%, 후자는 대략 2% 정도 되는데, 결국 이것때문에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양극화는 피할 수 없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낳는다라는 결론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현 정부가 하듯이 자본소득에 대한 세금을 낮추고, 노동소득에 대한 세금을 올리면 피케티 주장에 근거하여 양극화에 기름을 붓는 것이 아니냐라는 것이 대즐링님의 의견이었습니다. (훌륭한 관찰입니다. 하지만 보강되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에 대해서 아래에 다루겠습니다.)

본격적으로 이 논리에 대해서 다뤄보기 전에 그냥 다음과 같은 예를 들어 봅니다.

노동자: 우리는 임금이 2%씩밖에 늘어나지 않는데, (자본가) 너네들은 5%씩 늘어난다. 돈먹고 돈먹기 아니냐, 불공평하다.

자본가: (피식) 꼬우면 너도 자본가 하던가.

약간은 아이들 우스개소리 같지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 노동자와 자본가의 대화에 다 녹아 있다고 보면 됩니다. 


피케티의 책이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에 대한 수 많은 찬사가 있기도 하고 비판이 있기도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이런 논의를 이끌어내서 전세계의 정치/경제/문화관련 종사자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이 불평등에 대해서 토론할 수 있게된 계기를 만들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것은 분명한 피케티의 공헌이라고 인정해야한다고 봅니다. 여기서 곁다리로 한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많은 (특히 한국에서는 전경련이나 그 산하 연구기관이나 보수단체에서 나온) 비판들은 진영논리에 눈이 먼 거의 쓰레기 수준이고, 또 어떤 류의 비판은 피케티가 한 이야기와 동떨어진 헛다리 짚는 경우도 종종 봤습니다. 물론 다른 한편으로는 피케티에 필요 이상의 열광을 하며 그것을 진영논리에 이용해 먹을려고 하는 진보들도 상당히 많이 보여서 불편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제가 이 모든 논평들을 다 두루 볼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지만, 여태까지 제가 본 것중에서 가장 빛나는 비판이 바로 아제모글루-로빈슨 (Acemoglu and Robinson, forthcoming at Journal of Economic Literature)입니다. (워킹페이퍼를 첨부해 놓았습니다. 작년 12월달에 나왔습니다.) 제가 위에서 까맣게 쳐놓은 주장의 이론적 근거가 실은 이 논문과 피케티에서 함께 나오는 것입니다.

아제모글루-로빈슨을 찬찬히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비단 피케티 뿐만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맑스에 대한 고찰과 비판도 함께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피케티가 말하는 general law of capitalism의 근거가 약하다는 것에 대한 지적과 그의 책의 실증분석의 부실함에 대한 지적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결과적으로 중요한 것은 기술(technology)-제도(institution)-정치적 시스템이 맞물려서 낳은 결과로써의 자본이득과 경제성장율과의 관계다라는 주장입니다. 즉, 겉으로 보이는 자본이득률과 경제성장율(또는 임금성장율)을 가지고 하는 이야기는 기술-제도-정치가 만들어내는 내재적(endogenous) 측면이 만들어내는 양극화의 동적 움직임에 대해서 잘못된 시각을 줄 수 있다라는 뜻입니다.

[잠깐 곁다리지만 MIT 경제학과에 있는 아제모글루(터키말로 그렇게 부른다고 함)의 주요 경제학적 업적이라면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ics)을 현대 거시경제학의 틀안에 잘 접목시켰다라는 것에 있습니다. 기존의 네오클레시칼(그리고 현대의 뉴케인지안)의 사고방식이나 모델안에는 정치가 경제 시스템에 주는 역할이 전혀 없어요. 그래서 기껏 신자유주의자들이 하는 말은 규제 철폐입니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따라서 정치가) 경제에 관여하는 것 자체가 경제에 방해가 된다라는 굳은 신념이죠. (세금도 최소한, 최저임금제도 필요 없고, 기업활동에 방해되는 것은 다 제거해야 하고, 등등등...) 그런데, 아제모글루는 특히 경제 시스템안에서 게임을 하는 소비자-생산자, 그리고 정치인의 역할에 대해서 정교한 해석의 틀을 제공하는 툴을 만들었다라는 것에 큰 공헌이 있습니다. 이제는 정치를 경제학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를 할 수 있게 된 것이죠.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아직 50살이 안된 이 경제학자가 대략 10여년내로 이 공로로 노벨상을 받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제모글루-로빈슨의 피케티 비판은 아제모글루와 그의 동료들이 해왔던 정치경제학 이론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제도가 주어져 있고 이 제도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 경제 시스템과 기술의 발달, 그리고 거꾸로 기술이 발달하면서 또 제도가 변하게 되는 이 과정, 그리고 이 가운데에서 정치가 하는 역할이 서로 내재적으로  연결되어서 - 또는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 나오는 결과를 처다봐야 경제 시스템을 잘 이해할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피케티가 제대로 고려를 하고 있지 못하다라는 것입니다.

정치나 제도에 대해서 전부다 말할려면 끝도 없으니 범위를 좁혀봅니다. 사실 이 글에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바로 정치나 제도의 내재적 결과로 나온  "사회적 유동성(social mobility)입니다. 사회적 유동성이 크다라는 것을 이 논문에서는

(a) 노동자가 자본가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충분하다.
(b) 자본가가 (어떤 외부적 영향에 의해서) 노동자가 될 확률이 높다.

라는 것으로 정의합니다. 이 유동성이 적절한(moderate) 수준만 된다면, (자본이득률이 경제성장률보다 크더라 하더라도) 양극화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online appendix에 증명이 되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감탄사가 나오는 명료하고 아름다운 모델입니다.) 직관적으로 생각해보세요. 내가 그냥 그럭저럭 먹고만 사는 노동자지만, 내 아들은 어느 순간 창업하여 잘나가는 자본가가 되기도 하고, 내 옆집에 살던 자본가 아들은 능력이 없어서 말아먹기도 하고 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면, 단지 자본이윤 상승률이 노동임금 상승률보다 크다는 것으로 양극화를 만들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사회적 유동성이 부족하면서 자본이득이 노동소득 증가율보다 크면, 양극화를 막을 수가 없다는 것이죠. (몇가지 수리적 조건이 더 있어야하긴 합니다만 패스.)

위에 써놓은 (a), (b)를 대한민국의 현실로 고쳐보면 간단하게 다음과 같이 쓸 수 있지 않을까요.

(a') 일반 노동자가 창업을 해서 자본가로 성공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충분하다.
(b') 대기업 2세로 태어났더라도 (능력이 안되면) 말아먹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 이것이 미국사회와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차이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미국이 온갖 사회적 문제를 다 가지고 골치아픈 나라이지만, 여전히 기회의 땅이라는 것에 대해서 미국인들은 상당히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설문조사를 해봐도 예를 들면 유럽인들은 유럽이 경제적 신분상승의 기회가 별로 없다고 생각하는 반면, 미국 사람들은 자국이 그런 기회가 많다고 응답을 합니다. 실제로 소득의 양극화가 커지기는 했지만, 미국은 여전히 사회 유동성측면에서는  과거에 비해서 낮아지지는 않았다는 다음과 같은 보고도 있습니다. 

[참고: Chetty, Klilne, and Saez "“Is the United States Still a Land of Opportunity? Recent Trends in Intergenerational Mobility”" (2014, American Economic ReviewL Papers and Proceedings), 

http://eml.berkeley.edu/~saez/chettyetalAERPP2014.pdf ]

그런데, 한국은 어떤가요. 제가 일일히 말하기도 귀찮으니 장하성 교수가 안철수와의 국회 대담에서 한 말을 긁어와 보죠.

"한국의 소득불평등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고 일방적인 방향으로 악화됐다. 한국의 저임금 노동자 비율은 저임금 노동자유입이 많은 미국보다도 높다. 임시고용도 높고 비정규직의 임금은 정규직의 50%다. 1등시민과 2등시민으로 나뉘고 있다. 청년의 경우 첫직장의 36%가 비정규직이다. 때문에 청년들은 2년이 지나면 거의 반체제 인사가 된다. 일은 많이 하고, 임금은 불평등하고, 저임금은 많고, 고용은 불안하다. 중산층의 1/3의 고소득층으로, 2/3은 저소득층으로 간다. 국가의 절대부가가치중 노동임금 창출가치 비율이 1997년 80%에서 2013년 68%까지 줄었다.

(중략)

(더군다나) 소수의 그룹이 시장을 독식하고 있다. 미국의 100부자가운데 78명은 창업자다. 22명이 상속부자이다.한국은 딱 반대다. 22명이 창업부자고 78명이 상속부자다."


현재 한국은 유동성이 정말로 심각하게 없는 나라입니다. 특히 최근 10년간 급속도로 사회적 유동성이 거의 완전 고사되었다고 봅니다. (이것의 가장 큰 책임은 그동안의 정부 정책때문이 아니면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지난 20년간 한국의 소득 또는 부의 양극화가 진행되는 속도를 보면 전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입니다. 그런데, 이와중에 세재개혁을 하는데에 있어서 자본이득에 대한 것을 쏙빼고, 임금소득에 대한 누진율만 올린다? 대즐링님 말데로 양극화에 기름을 붓는 것에 불과 합니다. 그러니깐 제가 이런 한국 상황에서는 만약 세재를 개혁할려면 자본소득세에 더 집중을 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여기서 세제라는 것은 사실 곁가지에 불과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세제를 잘못 짜면 양극화를 가속시킬 수가 있지만, 세제를 잘 짠다고 해서 양극화를 완화하는 것에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라는 말이에요. 뭐 효과가 있을 수도 있죠. (뭐 한 10%정도? 많으면 20%?) 하지만, 더 중요한 전제 조건은 무엇이냐. 바로 정치, 경제적인 시스템을 개혁하는 것이고, 범위를 좁혀서 말해보자면 사회적 유동성을 어떻게 활성화를 시키냐라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연구해 볼 것들이 무척 많습니다. 그리고 이미 많은 것들이 지난번 대통령 선거 공약으로도 많이 들어본 것들이기도 하지만, 손쉽게 생각할 수 해답으로 (a')에 대해서 물어보자면, 벤처같은 것을 했다가 한번 망했다고 해도 다시 재기할 수 있는 사회안전망의 확보나 대기업이 쉽게 중소기업이나 작은 기업들을 지배할 수 있는 갑을 관계 같은 것의 개선등등 입니다. (b')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면, 바로 일반적인 경제민주화와 문제와 직결이 된다고 봅니다. 지금의 한국의 대기업을 포함한 기득권이 특혜, 부정, 세습과 편법이 없이 공정한 경쟁과 실력으로 그 자리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그래서 다시 한번 정리해서 말하지만, 큰 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 경제 시스템에 유동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으로 제도를 어떻게 고치면서 재정을 어떻게 쓸지를 먼저 고민하고 실행을 하는 것입니다. 이때, 만약 그 재정 집행시에 각종 세수를 확대해서 걷는 것이 필요하게 되면, 노동소득세보다는 자본소득세를 위주로 접근하는 것이 한국 상황에서는 훨씬 바람직하다라는 말씀드리면서, 긴 글을 마치겠습니다.


-------------------------------------------------

(덧) 쓰고 읽어보니 부족한 것이 있어서 덧붙입니다. 피케티의 주장에 대해서 여전히 논의가 되는 일이라 100% 받아드리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단 그것을 대략 인정하고 나면 크게 두가지 질문을 할 수가 있습니다.

(1) 자본이윤의 상승이 노동임금의 상승률보다 크다니... 그렇다면 이것이 자본주의의 모순인가? 아니면 인간 역사의 모순인가? 그렇다면 이것을 그냥 받아들이란 말인가, 아니면 자본주의 자체를 통채로 바꿔야하는가? 등등의 근본적인 질문

(2) 에잇 모르겠다. 그냥 역사를 통해서 통계적으로 보니 그랬다고 하는데, 그러면 이것은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드리고,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지 양극화를 막을 수 있을까?

저는 여전히 (1)에 대한 질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본문은 논의를 (2)로 좁혀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

(덧2) 이 덧글은 글 작성후 몇일 후에 올리는 글입니다. 자본에 대한 세제는 바꾸지 않고, 노동소득에 대한 세금을 올렸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인지의 한가지 예입니다. 이 예는 에노텐님이 제 글을 읽고 길벗님과 토론하는 와중에 만들어주신 아주 간단하고 이해하기 편한 예입니다. 이글에 덧붙일 수 있게 허락해주신 에노테님께 감사드립니다.


지니계수를 거론하시니 한번 간단하게 계산해보겠습니다.


상황: 3명의 국민이 있는 국가(국민 A: 세후 근로소득 $10, 국민 B: 세후 근로소득 $50, 국민 C: 세후 자산소득 $100).


변화: 근로소득의 누진율을 높여 국민 B의 세후 근로소득이 $50에서 $40으로 줄어듬.


즉,                                     A         B        C

세후소득(변경 전)           $10      $50     $100

세후소득(변경 후)           $10      $40     $100


변 경 전과 변경 후 어느 쪽의 양극화가 심한가요? 길벗님은 근로소득자인 A와 B의 격차가 $40에서 $30으로 줄었으니 변경 후 양극화가 완화되지 않았냐고 주장하고 계시는 셈입니다. 그렇지만 자산소득자 C와 근로 고소득자인 B의 격차는 $50에서 $60으로 늘어났습니다.


이제 길벗님이 양극화의 지표로 삼는 지니계수를 알아보겠습니다. 총 인구가 3명밖에 되지 않아 정확한 계산이 어려우니 상대적인 크기만 비교합니다. 우선 3명 중 하위 2명의 인구누적비율은 67%입니다. 이들 하위 2명(A와 B)의 누적소득비율이 67%에 도달하면 완전한 평등상태이고 여기서 멀어질수록 지니계수가 증가합니다.


변경 전 누적소득비율: 60/160 * 100(%) = 37.5%

변경 후 누적소득비율: 50/150 * 100(%) = 33.3%


즉, 변경 후의 경우가(자산소득은 내버려둔채 근로소득의 누진만을 올렸을 때) 오히려 지니계수가 증가(악화)됨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제 자산소득과 근로소득의 누진을 모두 증가시킨다고 해봅시다. 이 경우 세 사람의 세후소득은 각각 $10, $45, $90이 됩니다. 이때의 누적소득비율은 55/145 * 100(%) = 38.0%로 약간이나마 개선됨을 알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위의 예에서 근로소득에만 누진을 강화하면 지니계수로 표현되는 양극화는 오히려 악화되고 근로소득과 자산소득을 동등하게 누진시키면 지니계수가 개선됨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위의 예는 계산을 단순화시키기위해 자산계층과 근로계층을 완전히 분리했고 세후 소득재분배 효과를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가정을 모두 고려한다고해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뿐 악화/완화라는 추세가 바뀌지는 않습니다.


다시 한번 결론을 말씀드리면, 자산소득과 근로소득이 정확하게 비례하지 않고 소득 수준별 소비성향이 서로 다른 이상 자산소득/근로소득에 대한 차등적 누진 적용은 양극화를 악화시킬 수 있는 충분한 개연성이 존재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예를 마치면서, 한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이 예는 단적으로 딱 1년간의 경우만 보았을 때입니다. 그런데, 앞으로 10년정도 후의 변화를 생각해보면 더 재미있습니다. 기본적으로 C(자본가)의 자산이 불어나는 속도가  임금이 증가하는 속도보다 훨씬 빠릅니다. 그러면 자본가 C의 자본소득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축적되는 자산이 훨씬 더 빠르게 증가합니다. 결과로 당연히 양극화가 훨씬 가속이 됩니다.  몇십년후에는 지니계수가 몇배는 커지겠죠.

여기서 사실 세재는 큰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예에서 세재를 살짝 바꾸면 단기간에는 (소득) 지니계수같은 것이 순간적으로 완화되게도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쨋든 노동세금만 강화되면 시간이 더 지나면 양극화가 더 심해지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또 한번 말하지만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사회유동성(mobility)가 없기 때문에 양극화가 심해지는 것입니다. 유동성이 있다라는 것은 어느 해에는 A가 C가 될 수 있고, C가 B나 A로 떨어질 수 있게 되고 이러면서 위치가 바뀌게 된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세재가 어떻게 되었든, 자본소득이 증가율이 노동소득 증가율보다 크던 적던 양극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유동성이 적기에 일차적으로 문제가 생기고, 이차적으로 이런 상태에서 자본에 대한 세금은 놔두구 임금소득세만 올리면 양극화를 더 심화시키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 글을 읽고, 그럼 (노동)세금을 올리지 말란 말이냐 이렇게 침소봉대할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사회 유동성을 높일려면 어떻게 해야하나를 생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덧)
오마담님께서 아제모글로-로빈슨을 읽고 실제로 세재를 바꾸면 어떤 일이 나는지 시뮬레이션을 보여주셨습니다. 링크는 여기입니다.

http://theacro.com/zbxe/5161670

이런 수고를 직접해주신 오마담님께 감탄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