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재능을 발휘하고 사회에 참여하는 것은 극히 바람직하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출산과 가사와 양육과 안살림의 고유 역할이 있는 것이다.
오랜 동안 여성의 덕목을 억압만 했던 것이 아니다.
가족이란 작은 사회를 이끌어 가는 모성은 충분히 존중되었다.
여성의 사회 참여는 적어도 가사와 아이들 양육의 책임을 남성과 공유하며 신장되어야 한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정년이란 사회적 협의의 틀에 의하여 일이 없는 부모 세대는 자손들 양육 등 가사 일에 협력하여야 한다.
그렇게 하여 여성에게도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한다.
그 정도의 남녀 평등의 변화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남녀의 공동 사회를 유지하는 전통 가치관까지 파괴하는 파격으로 남성의 역할이 위축된다면 그것은 모순이 있다.
왜냐면 여성의 지위가 무분별하게 급상승하여 기존의 가치관이 흔들리면 전통적인 질서가 재편성되거나 와해되기 때문이다.
남자나 여자가 가정을 갖지 않아야 할 특별한 일을 하게 되면 그러한 선택을 하여야 한다.
그러나 출산 가사 등의 여성의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서 편의를 원하는 현상이 확산되면 건강한 양육이 이뤄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모성의 자애롭고 인내하는 보호가 빠져버린 양육이 되어버린다.
천박한 정치는 여성의 자유를 여성적 고유 가치를 해체하는 방종의 자유만을 강조하였다.
일종의 지지세력이나 표를 의식한 방편들이다.
그러한 것들을 일일히 나열하지 않아도 모두가 아는 일이기 때문에 거론 할 수는 없지만 전통사회의 질서는 그대로인데 여성에게 법적 동등성을 주게됨으로 가부장적 남성들의 고역을 남겨주게 되었다.
남성의 역할은 책임만 따를 뿐 가족과 주변에 노역과 봉사를 하는 족쇄에 얽매게 되었다.
남성에게 가족을 통솔할 수 있는 권위는 남겨놓아야 한다.
그러한 해체는 결국 물질적 만족을 가져오는 쪽으로 여성이 몰리게 되고 무능과 무관심의 평범한 남성들은 단독자로 남게 되었다.
결국 농촌이나 도시 근로자들은 우리보다 환율이 약한 나라의 처녀들을 사오게 되었다.
즉 여성이 물건으로 취급되는 성매매의 대상이 되는 저열한 사회로의 추락이 이뤄지게 되었다.
그러나 관찰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이주 여성의 가정이 더 가부장적이다.
우리의 여성들이 언젠가는 전통사회의 성숙한 여성성으로 돌아오길 바라는 희망을 갖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