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테러의 정의는  '인터내셔널 해럴드 트리뷴지'의 칼럼니스트인 '윌리엄 파브'의 정의가 정답이라는 판단.


"테러리스트들은 진정한 공격목표인 권력자들에게 결코 접근할 수 없다. 체첸 민족주의자들은 푸틴을 암살하려 하지만 크렘린궁의 경호망을 뚫을 수 없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와 지하드도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를 사살할 수 있다면 결코 이스라엘 민간인들을 사살하지 않을 것이다."


 

프랑스 테러에 대하여 저의 입장은 비행소년님께 말씀드린 것처럼 '을이 똘레랑스를 악용하여 갑질을 한 것'이라고 했는데 막상 이렇게 표현을 하고 보니 동일 국민에게 '갑'과 '을'로 구분하여 표현한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라는 생각에 기사를 뒤벼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번 테러를 '갑'과 '을'의 차이에서 온 것이라는 기사가 두 개 있어 전문을 여기 인용합니다.


 

아마.... (비행소년님께서 질문하실 당시에)뻔한 답인 질문을 비행소년님께서 하신 의도가 바로 이런 것 아니었나... 판단해봅니다.

 


프랑스 테러, 가치의 양극화와 사회의 이중성


[기고] 프랑스 식민주의의 역사와 이슬람



서의윤(평화도서관 나무)
 2015.01.12 12:00


1. 61년 이후 프랑스 최대, 최악의 테러라는 샤를리 엡도 사태는 이틀 뒤 용의자들이 인질극을 벌이다 사살되며 끝났다. 이 사건으로 편집장인 스테판 샤르보니에를 포함한 12명이 사망했고, 이들과 연계된 것으로 보이는 또 다른 괴한이 용의자들이 사살되던 날 벌인 인질극으로 인질 4명이 사망했다. ‘알라후 아크바르(알라는 위대하시다)’를 외친 용의자들이 북아프리카 계 프랑스인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자국민에 의해 파리 한가운데서 일어난 일이라는 사실이 프랑스를 떠들썩하게 했다. 유럽에서는 무슬림 이민자들이 사회문제시 된 지가 한참이고, 반이슬람 정서가 이미 확산되고 있는 중이다. 이 시점에 프랑스는 이 ‘우려의 현실화’의 충격적인 현장이 되었다.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사회의 어떤 중심적인 가치가 훼손되었을 때, 그것을 지키기 위한 즉각적인 반응은 그들이 훼손하려 한 희생자의 업적을 지속시키고 심지어 숭고하게 만드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 편에 서겠다는 선언을 함축한 ‘내가 샤를리다 Je Suis Charlie’라는 한마디가 전 세계적으로 동조하는 사람들의 메아리를 불러왔다. 카투니스트(만평 작가)들의 연대적 만평과 기사도 줄을 잇고 있다. 



어조의 차이가 있지만, 이 대부분은 ‘펜 대 총’, 즉 표현의 자유 대 물리적인 테러, 자유주의 대 극단적 이슬람주의, 서구의 세속주의 대 무슬림 사회의 종교적이고 집단적 가치를 말한다. 똘레랑스(관용)로 유명한 프랑스 사회는 무엇보다 사회의 다양성과 그 다양성의 존재 기반이 되는 자유주의적 가치가 훼손된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아마도 프랑스 사회가 가장 공감하고 있는 것은 바로 권위주의와 금기에 도전했던 68 혁명의 정신과 볼테르가 말했다는 ‘나는 당신에게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당신이 그 말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목숨을 걸고 지킬 것이다’일 것이다. 2011년 이슬람의 선지자 무함마드에 대한 만평으로 비판을 받았을 때 샤를리 엡도가 보였던 반응 역시 ‘무함마드를 풍자할 수 없다면 어느 누구도 풍자할 수 없게 된다’였다.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극단적으로 몰아갈지라도 그 원칙 자체를 훼손하는 모든 금지에 대해서는 대항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로 사망한 샤를리 엡도의 편집장은 안팎의 비난에 대해 ‘무릎을 꿇고 사느니 서서 죽겠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는 결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 사회가 가진 경험과 보편적 가치를 모두 고려하여 약자를 보호하고 부당한 차별을 금지한다는 강력한 전제를 바탕으로 한다. 그리고 보편적 가치마저도 변화, 수정되어갈 수 있는 현대사회에서 보편적 방법론이 그 자리를 대체할 수 있으려면 끊임없이 변화를 조율하고 현 상황을 고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독립적으로 보이는 모든 사건은 사실 큰 흐름 속의 맥락이며, 사회가 말하는 가치 역시 역사에 대한 그 사회의 독해력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유럽 국가들과 프랑스가 민족주의를 경계하고 세속주의를 추구하는 것도 파시즘을 겪은 그들의 경험과 어느 정도 맞닿아 있다. 그래서 표현의 자유에 제한을 가하게 되더라도 인류에 대해 행해진 범죄에 대해 부정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에서 제외된다. 프랑스는 1990년에 제정된 게소법(Gayssot Act)에 따라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것이 불법인 나라들 중 하나다.


2005년 뱅상 레이누아(Vincent Reynouard)라는 프랑스인이 “홀로코스트? 그 뒤에 가려져 있는 것은 무엇인가…(Holocauste? Cequel'onvous cache...)”라는 16쪽의 팸플릿을 만들자 프랑스는 유럽국 간의 공조를 통해 심지어 벨기에에 살고 있는 그를 체포, 인도받아 프랑스 법정에 세우고 벌금과 1년형을 선고했다. 이런 법의 존재는 어떤 명확한 사실 관계의 왜곡에 대해서만 배타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그 영향이 경계를 갖지 않고 모호하게 사회를 지배한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육십 년이 넘게 국제법을 어기면서 팔레스타인을 점령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도 합당한 비판이나 분석과 닿아있는 시오니즘 관련 홀로코스트 연구나 발언조차 어느 정도의 자가 검열을 거치게 된다. 유럽은 실제로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과 반유대주의(antisemitism) 사이에서 침묵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스라엘은 점령에 대한 비판을 반유대주의, 민족과 종교에 대한 박해로 왜곡하여 공적으로 문제 삼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역사의 집단적 경험은 여전히 이 법안의 기조를 용인한다.



이렇듯 수정을 허용해왔던 동일한 원칙이 무슬림 인구에 대해서는 앞으로 어떤 예외도 없는 무게를 가지고 적용될 우려가 있다. 물리적 테러에서 한번 가해자와 희생자의 구도가 정해지면, 정의를 지키기 위한 조심성으로 인해 균형 잡힌 시각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렇게 되면 가장 큰 문제는, 그로 인해 내부에서 일어날 수 있고 일어나야 하는 수많은 담론이 애초에 무력해진다는 사실이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기본적인 옹호를 지키고, 동시에 샤를리 엡도에 대한 이제까지 정도의 비판을 이어갈 수 있는 여유가 지금 프랑스 사회에 남아 있을까? 언론이 갖는 폭력성은 과연 물리적인 테러보다 덜 파괴적인 것인지, 그리고 그것에 대해 거리끼지 않고 다양한 담론을 쏟아낼 수 있는 분위기는 남아 있는지? ‘나는 샤를리다 Je Suis Charlie’의 홍수 속에 ‘나는 아흐마드다 Je Suis Ahmed’라는 목소리가 비집고 나오고 있다. 전형적인 무슬림 이름을 가진 아흐마드 메라빗(Ahmed Merabet)은 이번 테러 현장에서 사망한 경찰관이다. 그는 한 명의 프랑스 경찰공무원으로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을 뿐이었겠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가 자신의 종교와 문화에 대한 조롱과 무례를 범한 샤를리 엡도를 지키려다 죽은 이미지로서 부각되고 있다. 



표현의 자유라는 틀을 지키기 위해서라며 샤를리적 자유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조차 비난의 대상이 되는 이 복잡한 상황에서, 말 뿐인 자유주의자를 대변하는 샤를리가 아닌 아흐마드의 상징성이 볼테르의 그 한 문장에 좀 더 가깝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테러리스트들에게 틈을 내주었다는 똘레랑스에 대한 후회로 인해 상식적인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샤를리 엡도에게는 무한한 포용으로, 내부의 다양성과 문화 간의 차이에 대해서는 오히려 일원적 가치를 단호하게 적용하는 것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무엇보다 그런 양극화 상황은 이번 사태로 인해 급작스럽게 형성된 것이 아니라 이미 현실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2. 최근 번역도 되기 전에 우리나라에서도 화제가 된 한 소설이 그러한 양극화의 현실을 보여준다. 프랑스의 이슬람화를 그린 ‘복종(Soumission)’이라는 책으로 공쿠르상 수상자인 작가 미셸 우엘베크가 썼다. 2022년 대선에 국민전선(FN, 실존하는 프랑스의 극우 민족주의 정당)과 신생 무슬림형제단만이 남게 되면서 우경화를 우려한 사람들이 이슬람 정당을 선택한다. 그 결과 이슬람 정당이 집권한 후의 프랑스에서는 여성의 사회 활동이 금지되고, 일부다처제가 들어오며, 학교에서 꾸란을 가르친다는 내용이다. 전 유럽을 휩쓸고 있는 최근의 반이슬람 정서, 그리고 이슬람 주도 사회가 현실화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이 책은 이미 프랑스 안에서도 작가의 극우적 해석에 대한 통렬한 비난과 현실을 반영하고 있을 뿐이라는 옹호가 엇갈린다.


 

그러나 주목할 부분은 이 책의 모든 전제가 대선에서 기존의 온건한 좌우파 정당이 모두 탈락하면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것이다. 결국 남은 것은 파시즘을 연상케 하는 극우 민족주의 정당과 현실에 존재하는 모습을 그린 이슬람 정당뿐이다. 실제로 유럽 각국은 경제파탄과 우경화로 인해 서구 문화와 무슬림 이민자 사이의 양극화 현상을 겪고 있으며, 극단적으로 그려졌을지라도 이 책은 그러한 현재 프랑스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이는 유럽, 특히 프랑스에서 무슬림 인구의 숫자가 차지하는 상당한 비중 때문에 설득력을 가진다. 



반이민정책, 낙태반대, 프랑스주권 강화 등의 주장을 해온 실제 극우 정당인 FN에 대한 사람들의 비판적인 접근과 그러한 입장을 지키려다 결국 이슬람화 되어버리는 결과를 낳는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 역시도 간접적으로 볼 수 있다. 또한 프랑스 사회는 이미 파시즘을 직접 겪고 그에 대한 고민을 할 여유가 있었던 만큼 개인들의 합리적인 판단이 국민전선이 아닌 이슬람 정당을 선택한다는 상상도 개연성이 있다. 이는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과 북아프리카/중동 지역 출신의 이민자들이 공유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 현재의 고민들과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프랑스의 무슬림 추정 인구는 오륙백 만 명으로 유럽 최대 수준이며, 현실에서도 이들은 점점 더 동화되지 못하고 이방인, 타자, 심지어 침입자로 남아 있다. 현재 이슬람의 전형적인 관행들은 진정한 이슬람 가치들이 무엇인지 대한 치열한 고민이 아니며, 불과 얼마 전까지도 존재했던 세속적인 아랍국들의 모습과도 차이가 있다. 하지만 많은 무슬림들이 현존하는 이슬람 정권들의 모습을 자신의 정체성으로서 점점 더 공고히 받아들여가고 있으며, 여기에서 가치의 충돌이 일어난다. 파시즘을 겪은 서구 유럽 사회가 자기들만의 자유주의적 가치를 절대화시켜 가는 동안 서구의 식민, 압제, 전쟁을 다각도로 겪은 전 세계의 무슬림 인구 역시 급격히 이슬람화 되어간 것이다.


중동지역은 서구에 의한 분쟁과 분열로 인한 이슬람화가 절대적이다. 단편적인 부분만 보더라도 현재 이슬람주의자들의 무대가 된 이라크와 시리아는 모두 중동/이슬람 세계에서 역사가 깊고 문화적으로 강대했던 나라들로 한때 이슬람화를 경계했었다. 전통적으로 보수적이었을지언정 종교적으로 보수적이거나 극단적인 행태는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을 선두로 한 서구가 건드린 것은 인권과 종교적 합리성이 바닥을 치는 아라비아 반도의 친미국가들이 아니라 바로 레반트 지역(팔레스타인과 시리아 부근)의 세속정권들이었다. 



이들이 무너진 자리에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이 피폐해진 민중들에게 정신적, 물질적인 대안을 제시한 이슬람 세력들이었다. 이후, 곧 이라크에서는 순니-시아 연합 무산된 후 장기집권으로 인한 갈등이, 시리아에서는 극한 분열과 외세가 개입된 내전이 이어졌다. 이 혼란의 틈을 타고 등장한 이름이 이슬람극단주의 세력인 IS이다. 규모를 키운 IS가 처음 국가임을 선언을 했을 때, 특히 레반트 지역의 아랍/무슬림 사회의 즉각적인 반응은 비웃음과 우려였다. 이 지역의 무슬림 공동체는 단일 종교를 내세운 국가가 얘기하는 종교가 얼마만큼 허상이며, 얼마만큼 정치적으로 무자비해질 수 있는지를 이스라엘을 통해서 이미 겪었다. IS가 세력을 키울 수 있었던 것도 이슬람의 성격에 의해서가 아니라 서구와 아라비아 반도의 친서방 국가들을 비롯한 외세가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상황에서라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 강대국의 부당한 대우에 분노하고 있던 전 세계의 무슬림들이 별다른 대안이 주어지지 않은 현실에서 IS가 제시하는 저항의 이미지로부터 해소감을 느끼는 것 또한 사실이다. 유럽 무슬림 이민자의 2, 3세대들이 뿌리 깊은 문화적 차별과 경제적 박탈감, 그리고 최근의 유럽의 경제불황으로 심해진 사회의 우경화로 인해 구석으로 밀리다가 그 중 무시할 수 없는 수가 IS에 몰려든 것이 이를 보여준다. IS에서 군사력과 폭력성만큼 주목해야 할 부분이 그들의 조직력과 이미지를 이용한 호소력이다.


아랍 영웅물 만화를 만드는 요르단의 술레이만 바킷(Suleiman Bakhit)은 아랍/무슬림 세계에 긍정적인 이야기와 긍정적인 롤모델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가 주목한 것은 극단주의자들과 수치심(shame)과의 관계였다. 폭력이란 훼손되었다고 느끼는 무슬림 개개인과 이슬람 공동체를 정화하여 이 수치심을 자부심으로 바꾸는 과정이며, 그런 수치심을 이용한 영웅주의로 치장한 것이 현재의 극단주의 집단들이다. 술레이만은 “중동의 가장 큰 문제는 IS가 아니다. 영웅주의로 가장한 테러리즘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그러한 테러리즘에 대항하는 방법으로, 건강한 영웅, 무엇보다 남녀 모두가 등장하는 영웅물 만화를 통해 대안적인 영웅주의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진정한 이슬람적 가치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고착되어 가고 있는 이슬람 사회 내부를 향해 끊임없이 던질 수 있는 이런 상상력이 중요하다. 그것이 무슬림 사회의 자생력을 결정할 것이다. 유럽에 뿌리를 내린 무슬림들의 경우에는 북아프리카나 중동지역과는 또 다른 상황에 있다. 이들은 타자가 아닌 유럽 사회의 일부로서, 그 안에서 공존을 위한 가능성을 찾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3.  2004년 프랑스는 공립학교에서 종교적 복장을 착용하는 것을, 2010년에는 공공장소에서 얼굴을 가리는 것을 법으로 금지했다. 사르코지 전 대통령의 말에 따르면, 이는 ‘여성들이 강제로 얼굴을 가려야 하는 상황을 막고, 프랑스의 세속주의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함께 살기 위한 기반이라는 것이다. 이 법은 직접적으로 무슬림 인구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 중립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듯 보인다. 얼굴을 가리는 것에는 무슬림 여성들의 복장뿐 아니라 마스크, 헬멧 등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 법의 목적 역시 학생들의 선택권을 존중하거나 공공장소에서 불안을 없애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하지만 여전히 이 법안들은 무슬림들에게 있어서 히잡을 쓸 자유를 훼손하는 법이자 무슬림 인구와 이슬람에 대한 억압으로 받아들여진다. 공존을 위한 법이 공존을 불가능하게 하는 분열의 단계를 밟아 가는 것이다. 여기에서 어디까지가 극단성조차 지켜져야 하는 자유이고 어디까지가 금기에 대한 금지인지를 결정하는 기반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 생긴다. 프랑스 헌법의 대답이 세속주의인 반면, 무슬림들은 종교의 숭고함과 그것을 선택할 자유라고 대답할 것이다.


프랑스의 세속주의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되 종교가 국가적 권한을 가질 수 없으며, 어떤 종교적인 강제도 허용하지 않는다. 이것은 이슬람뿐 아니라 원칙적으로 다른 모든 종교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하지만 기독교는 유럽 역사의 일부로 이미 상당 부분 세속화가 이루어진 데 비해, 이슬람은 그렇지 않다. 또한 초창기부터 이슬람 공동체, 즉 움마를 운영하는 과제를 지고 있었던 이슬람은 기독교와 달리 생활규범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그래서 히잡이 과연 이슬람에서 지켜야 하는 종교적 관행인지 여부를 떠나서도, 프랑스의 세속주의는 많은 면에서 무슬림들의 일상과 부딪히기 쉽다. 종교로 대표되지만 사실 보다 뿌리 깊은 문화와 가치관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프랑스식 다양성과 관용이란, 무슬림들에게는 오히려 불평등과 강요가 된다. 이렇게 이질적인 특성으로 인해 프랑스 일반 대 동화되지 않는 무슬림 이민자의 구도가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이번 테러의 범인인 쿠아치 형제(Said Kouachi, Chérif Kouachi)는 알제리 출신 프랑스인이다. 프랑스는 유럽에서 가장 많은 무슬림 인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슬람 관련 테러 대책에 대해 다른 어떤 유럽국보다 적극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무슬림 인구를 관리할 수는 없어서’ 그 뚫린 틈 사이로 이런 충돌이 일어났다고 말한다. 그러나 무슬림 이민자들이 그저 초대받지 않은 손님으로 프랑스 사회에 찾아온 것이 결코 아니다. 여기서 되돌아 볼 것은 61년 프랑스에서는 일어났던 또 다른 테러다.


1961년 프랑스는 알제리 전쟁(1954~1962)을 치르는 중이었다. 이름만 들으면 프랑스와 알제리 사이에 전쟁이 있었던 것처럼 들리지만, 이 전쟁의 또 다른 이름은 프랑스에 대항한 알제리 독립전쟁, 혹은 알제리 혁명이다. 1999년까지 프랑스는 알제리 독립전쟁이라는 명칭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알제리 사태’라고 불렀다. 프랑스의 식민지배는 알제리가 독립하게 된 1962년까지 132년 동안 계속되었다. 독립전쟁이 한창이었던 61년 10월 17일, 야간통행금지에 대항하여 알제리인들이 대규모 비무장시위를 조직했다. 


그리고 파리 경찰은 이 시위를 대규모로 유혈 진압한다. 파리 경찰은 알제리인 시위대들이 의식을 잃거나 죽을 때까지 구타한 후 센느강에 던졌다. 어느 정도까지 말하는 것이 축소고 과장인지도 알 수 없다. 확실한 건, 당시 생미쉘 다리에 내걸렸듯이 ‘여기 우리가 알제리 인들을 센느에 던져 버렸’으며, 그와 함께 르몽드의 표현처럼 ‘정의는 센느 강에 던져져 버렸다’는 것이다. 이때 공식적으로 발표된 사망자 숫자는 3명이었고, 당시의 상황을 기록한 다큐멘터리인 ‘파리의 10월’은 상영금지 당했다. 실제 사망자는 200여 명까지도 추정되지만, 이 역시 제대로 알 수 없다. 이 날의 책임자는 아무도 없다. 유일하게 이름이 거론되던 사람이 당시 파리 경찰국장인 모리스 파퐁Maurice Papon이지만, 그는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개인과 다양성을 존중하고, 자유주의적 가치를 지키고자 하며, 센느강 주변의 카페에서 담소를 나누는 문화예술의 중심지인 파리의 모습에, 불과 오십여 년 전 알제리인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고 제국주의의 패악을 부려왔던 또 다른 얼굴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불과 몇십 년 전, 알제리계 프랑스인들은 프랑스 내에서 피식민지인으로 분류되고 ‘프랑스적 가치’를 공유하지 못한 채 버려져도 괜찮은 대상이었던 것이다. 오늘날 프랑스 사회에서 젊은 무슬림 인구들이 왜 튕겨져 나가고 있는지를 이해하려면, 그들에게 이 역사를 각인시킨 그 사회의 맥락을 알아야 한다.


오늘 참담한 테러를 겪은 프랑스 사회가 그 정신을 잇고자 하는 건 68혁명이지만, 이 지경까지 와서 진실로 돌아봐야 하는 것은 61년 10월의 학살이다. 이는 너희도 잘못했다는 식의 양비론적 힘빼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흐름 끝에 지금 여기에 서 있는지, 어떤 가치를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지를 고민하기 위한 첫 단계로서 필요하다. 프랑스의 무슬림 인구를 단순히 고정화된 프랑스 사회에 외부에서 유입되어 온 이질적인 존재라는 구도에서만 볼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타자의 피를 딛고 자기들끼리 이룬 다양성과 관용의 문화는 그 타자와 접촉하고 공존하는 방법을 모색하지 않는다면 또다시 편리한 자기들끼리만의 천국으로 돌아갈 선택을 하기 쉽다. 표면적인 자유, 관용, 다양성, 민주주의의 허상을 넘어 진정한 공존으로 가기 위해서는 그 불편하고 지리하고 알 수 없는 단계가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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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정치지형 변화 속도 붙이는 ‘프랑스 테러’

 ㆍ영국 등 8개국 총선 앞두고 우려했던 극우파 부상 현실화


“공포영화 같은 일이다. 우린 늘 차별을 받으며 살아왔지만 지금의 상황은 두렵다.” 프랑스 파리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가 일어났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대규모 시위가 프랑스 전역에서 벌어졌다. 하지만 지금 누구보다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은 독일의 터키계 이민자들이다. 베를린에 사는 29세 터키계 여성 시린 사크는 12일 BBC방송에 최근의 상황을 ‘공포영화’라고 표현했다.


 이날 독일 드레스덴 등 곳곳에서 열린 ‘페기다(PEGIDA)’의 시위는 무슬림 이민자들에게 들이닥친 반이슬람 바람의 위력을 그대로 보여줬다. 페기다는 ‘서구의 이슬람화에 맞선 애국적 유럽인들’이라는 정치운동으로, 지난해 10월 드레스덴에서 시작됐다. 지난해 10월20일 첫 집회 참석자는 350명이었으나 지난 5일 집회에는 1만8000명이 모였다. 파리 테러 뒤 처음 열린 12일 집회에는 사상 최대 인원이 참석했다. 하이코 마아스 법무장관이 집회를 취소하라고 요구했지만 페기다 측은 듣지 않았다고 도이체벨레는 전했다.


페기다 시위는 유럽의 반이민 바람을 보여주는 상징에 불과하다. 파리 테러 뒤 우려됐던 극우파의 부상과 반이민·반이슬람 조치들이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2004년 마드리드 동시다발 테러를 겪은 스페인은 유럽 내 자유로운 이주를 보장한 ‘솅겐 조약’ 개정론을 앞장서 들고나왔다. 호르헤 페르난데스 스페인 내무장관은 11일 일간 엘파이스 인터뷰에서 “국경 통제를 강화하고 솅겐 조약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 극우파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대표도 조약을 개정하자고 주장했다. 유럽연합(EU)과 미국·캐나다는 이날 파리에서 내무장관 회의를 열고 국경 통제를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이들은 공동성명을 통해 솅겐 조약 개정도 시사했다.


파리 테러는 유럽 내 정치지형 변화를 가속화할 가능성이 높다. 이날 파리에서 열린 테러 희생자 추모행진에 프랑스의 각 정당 지도자들이 초대받았지만 르펜 국민전선 대표는 배제됐다. 그러자 르펜은 “국민 통합이라는 가면이 벗겨졌다”며 맹공했다. 르펜은 2017년 대선 유력후보로, 지지율이 30%에 육박한다. 


올해 유럽에서는 영국 등 8개국에서 총선이 실시된다. 극우파가 처음으로 EU 회원국 정부에 입성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이날 대행진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등 유럽 지도자들이 대거 참석해 ‘연대’를 강조한 데에는 각기 자국 내 극우파들의 부상을 견제하려는 의도도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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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