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딴지일보'쯤 되는 풍자 전문지가 과격무슬림분자의 잔혹한 테러를 당함으로 세계가 다시 한번 표현의 자유의 가치에 번 경각심을 갖게 되었다. 무엇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하는 것에 따라 개인이나 집단의 성격을 가늠할 수 있다.
한 사람이 사용하는 용어는 그 사람의 의식을 말해 준다. 예를 들면 '광주 항쟁'과 '광주 사태' 처럼. 어떤 이가 책을 한 권 추천해 주어서 읽어보려고 서문을 펼쳤더니 '3 번의 민주 정권을 거치는 동안"이라는 표현이 나왔다. 3번? 2번이 아니고? 저자는 3당 물타기로 태어난 김영삼 정권도 민주 정권으로 계산하고 있었다. 나와는 계산이 틀려서 책을 덮었다.

이번 년두 기자회견에도 여실히 본연의 자세를 보여준 것처럼 국민들은 가끔씩 박근혜 대통령은 언어선택 때문에 고개를 갸우뚱거려야 할 때가 종종 발생한다. 직설적이고 솔직한 표현 때문에 '막말 대통령'으로 공격을 당하던 노무현 대통령에 비해 박 대통령의 저급하고 극단적인 표현에 보수 언론이 한 없이 관대한 것은 오늘의 한국언론의 수준을 말해준다. 
극단적 언어를 잘 사용하는 사람은 성격이 극단적이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표현력 부재, 즉 표현할 수 있는 능력, 세밀하거나 자세한 표현을 할 수 있는 지적능력의 결여해서 온다고 볼 수도 있는데 아무래도 박 대통령의 경우는 후자로 보인다. 나는 어려서부터 외유내강이 아니라 외강내유 하다는 평을 듣고 살아왔다. 성격적으로 극단적이 면이 있기 때문에 표현되지 않으려고 내숭을 많이 떤다. 그래서 개발한 것이 가능한 한 유머나 풍자를 많이 하는 편이다.

1970년에 약관의 20대 김지하가 당시 이미 고인이 되었던 김수용 시인의 시세계를 평론하는 ‘풍자냐? 자살이냐?’라는 글을 발표하여 한국 평론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오래 전에 일이라 자세한 내용은 기억되지 않으나 제목이 암시하듯이 풍자를 하지 않고 살 수 없는 세상의 절박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잘 알려진 대로 김수영 시인의 풍자시들은 날카로운 침이 튀기로 유명하다.
도대체 풍자란 무엇인가?
웃음에는 악의 없는 ‘농담 따먹기’에서부터 풍자, 익살, 조롱, 이죽대기, 빈정대기 등 갖가지 형태가 있다.
프로이트는 웃음을 순진한 농담과 자의적 농담으로 나눈 뒤 밤에는 꿈이, 낮에는 농담이 무의식을 대변한다고 했다.
그런데 꿈은 순전히 개인적인 데 반해 농담은 사회적이라고 한다. 즉 농담은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것이다.
나는 풍자의 참맛은 바로 예수의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예수의 말씀은 당시 권세자들에 대한 날선 공격만이 아니었고 독설, 유머 그리고 사회의 비판 등을 적절히 버무려서 당시 민중들을 깨우쳐 일깨우는 방편으로 '풍자 기법'을 이용했다고 생각 한다.

예를 들면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바리새인들이 폼을 잔뜩 잡고 자기들이 얼마나 훌륭하게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며 사는가를 내 세울 때 “그려? 사랑을 하려면 원수를 사랑할 정도는 되어야제? 안 그려?”라는 뜻으로 했을 것이고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는 이미 간음을 한 자이니라.” 고 한 말은 바리새인들이 자기들이 얼마나 경건한가를 내 세울 때 “그려? 진짜로 거룩하다면 여자가 보고도 꼴리지 않아야제? 안 그려?” 라는 뜻의 풍자가 아니었을까?
아마도 그 말을 들은 당시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폭소를 터트렸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