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IMF 사태의 김대중 책임론의 주요 골자인 '금융 개혁 법안 입법 좌절' 의 책임이 김대중에게 있으며 그래서 김대중이 IMF 사태의 중대한 책임이 있다...는 식의 택도 없는 주장..... 예전에 파해한 적이 있었는데 그 파해한 글은 없어졌고.... 그래서 간단하게 기술합니다.


2. 우선, '금융개혁법안'이 그렇게 중요했다면 왜 김영삼은 날치기로 통과시키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떠올려집니다. 3당 합당 이후 당시 민자당에서 자행한 날치기 회수는 13회. 그리고 당연히 그 중심에는 김영삼이 있었습니다.

또한, 대통령 재임 시에는 김영삼 몰락의 단초가 된 '노동 개악법 및 국보법(당시는 보안법) 개악법'을 날치기한 전력으로 미루어 '금융개혁법안'이 그렇게 중대하다면 훗날 욕을 먹더라도 날치기 통과를 했어야 합니다.

물론, 제14대 총선에 이어 1996년 4월 11일 치루어진 제 15대 국회의원 총선의 결과 신한국당(민자당에서 명칭 변경)의 의석수는 139석으로 의원정족수의 과반에 미달했지만 바로 이 의석수를 가지고 1996년 노동 개악법 및 보안 개악법을 날치기했던 것을 생각한다면, 과반수에서 11석 모자르는 것은 얼마든지 채울 수 있는 의석수였습니다. 

정당별 당선자 수

정당별 당선자 수 (명)
정당 지역구 비례대표 합계
신한국당 121 18 139
새정치국민회의 66 13 79
통합민주당 9 6 15
자유민주연합 41 9 50
무소속 16 16
합계 253 46 299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하나 생깁니다.


"왜 김영삼은 '금융개혁법안'을 날치기 통과를 하지 않았을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아래의 기사들은 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1997년 11월 12일자 동아일보 기사입니다.(기사출처는 여기를 클릭-기사 위치는 우상)

금융개혁안-19971112-동아일보 1면 좌상.jpg  


위 기사에서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11개 법안을 처리하겠다'는 입장에 재정경제원이 반대를 하고 나섰습니다. 아래는 그 반대의 상황 설명입니다. 1997년 6월 4일자 매일경제 기사입니다. (기사출처는 여기를 클릭-기사 위치는 좌상)

금융개혁안-19970612-매일경제 1면 좌상.jpg 


위의 기사와 함께 연결해 보면,

경제 부서 간의 주권다툼으로 인한 알력,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11개 법안만 통과시키겠다는 것을 반대한 재정경제부,
처음에는 일괄통과로 방침을 정했다가 정치적 고려로 입장을 유보한 신한국당,
경제부처들 간의 알력을 조정하지 못하고 대선 등을 고려하여 책임을 회피한 청와대.


핵심은 이 것입니다.

"신한국당은 중앙은행 중립은 찬성하면서도 김독기관 통폐합에는 반대 ---> 감독기관 통폐합에 대한 주장은 재정경제원(강경식)에서 주장 ---> 한은의 강력한 반발 ---> 국민회의나 자민련 역시도 한은 관련 법 등을 제외한 11개 법안은 통과 --> 제정경제원의 반대"


추가 : 그럼에도 강경식이 DJ에게 책임이 있다...라는 주장을 유포하는 것은 후안무치한 짓이죠. 자기가 책임을 져야하는데도 말이죠.


결론?


'날치기도 때와 장소를 가려서 하는겁니다' by YS....


저는 금융개혁법안의 좌초가 IMF를 불러왔다...라는 주장에는 전혀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미 침몰 중인 선박에 기관을 고친다고 그 선박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금융개혁법안의 좌초의 책임은 김영삼, 강경식 그리고 신한국당에게 귀속됩니다.


그런데 뜬금없이 김대중 책임이다?


아, 김대중이 책임질 사항 분명히 있습니다. 그 것은 '대중경제론'을 집필할 정도면 IMF 정도는 예견했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예견하지 못한 책임 분명히 있습니다. 제가 'DJ노믹스는 사기다'라는 주장을 몇번 했는데 경제통은 무슨.... 어쨌든 IMF 사태의 책임에서 김대중도 자유롭지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딱 야당 총재와 국회의섟만큼이죠. 그런데 그 IMF 사태의 이유가 금융개혁법안 좌초 때문이라면 IMF 사태에서의 김대중이 져야할 책임보다 훨씬 더 적다는 것이 역사의 기록들입니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