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경향 기사 링크에 길벗님이 올리신 댓글의 답글로 달았다가 아무래도 별도 포스팅이 필요한 것 같아서 올립니다.


일단 길벗님이 좌파 진영 전반이나 지평련의 활동에 대해서 갖고 계시는 문제 의식에 대해서는 많은 부분 인정도 하고 공감도 한다는 점을 말씀 드립니다. 특히, 우리나라 진보 좌파 진영의 문제에 대해서는 이번 인터뷰뿐만 아니라 그동안 아크로에서 제가 한 발언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밝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크게 부연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좌파의 그런 문제에 대한 길벗님의 지적 그 핵심을 인정한다 해도 일베의 문제는 완전히 별개로 남는다는 점입니다. 우리나라 좌파가 삽질하는 것의 책임을 왜 호남이 짊어져야 하나요? 우리나라 좌파가 모두 호남 출신이라서? 그게 아니라는 것은 길벗님도 알고 나도 알고 아크로 회원들이 모두 알고 아마 일베 친구들도 다 알 겁니다. 이걸 봐도 일베 친구들에게 중요한 것은 좌파의 삽질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좌파의 삽질은 호남을 짓밟기 위한 구실로서의 기능이 훨씬 중요하다고 봅니다.

저는 우리나라 진보좌파의 변화를 가로막는 핵심 성향의 하나로 그들의 노동자 중심주의, 노동자 편향성을 꼽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진보적 노동운동을 주도하는 민노총을 주도하는 세력이 누구인가요? 다들 알다시피 울산 포항 등 영남동부 공업지역 벨트입니다. 거제 지역이 있는 경남 남부 지역도 빼놓을 수 없구요. 실제로 그 지역 민노총 소속 사업장의 주요 간부들 대부분 영남 출신들입니다. 좌파의 핵심이 영남 출신들인데 왜 그들의 삽질에 대한 책임을 호남이 져야 하나요?

백보 양보해서 설혹 진보좌파의 핵심을 호남 출신이 다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지금 일베의 호남 저주가 정당화될 수는 없습니다. 진보좌파의 핵심 인력 100%가 호남 출신이라 해도 호남 출신 100%가 모두 진보좌파의 삽질에 참여한 것도,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설혹 호남 출신이 100% 진보좌파 삽질에 참여했다 해도 그게 호남 학살의 명분이 될 수 있습니까? 죄형법정주의라는 원칙으로만 비추어봐도 일베에서 횡행하는 논리가 얼마나 인종주의적인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일베가 호남을 반역의 땅으로 몰아가고 호남 출신들을 반역 성향으로 몰아서 몰살시키자고 주장하는데, 정확하게 말하자면 한국전쟁 이후 대한민국의 모든 불법 쿠데타는 영남 출신들이 저지른 것입니다. 호남이 그런 일 한 적 있나요? 혹시 광주항쟁을 그런 쿠데타와 동급으로 또는 그보다 더 악질적인 불법 행위로 보시는 건가요? 한마디로 일베 친구들은 영남의 범죄를 호남에게 덮어씌우는 모함과 야비한 진실 왜곡을 하고 있는 겁니다. fact가 우월하다기보다는 그냥 통계 장난을 즐기는 경우가 많다고 봐야죠.

간단히 말해서 그렇게 팩트 좋아하는 일베 친구들이 1960년 이후 대한민국 대통령은 김대중 딱 한 사람 빼고 모두 영남 출신이라는 것을 외면하고 언급하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하고 굵직한 팩트인데도요. 현재의 대한민국의 모습에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면 1961년부터 2015년까지 5년 빼고 무려 50년, 반세기 동안 마음껏 전권을 휘둘러온 영남 출신 대통령 그리고 그들을 죽어라고 지지해온 영남 유권자들이 져야 하지 않나요? 도대체 현재의 대한민국의 모습을 만드는 데 호남이 무슨 영향을 끼쳤나요?

영남 정권이 잘해보려고 하는데 호남 사람들이 훼방을 놓아서 일이 틀어졌나요? 그렇다고 보지도 않지만 만일 그렇다면 그건 결국 영남정권이 호남 사람들의 마음이나 행동을 관리하지 못했다는 얘기잖아요? 호남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의 사람들도 상당수가 그 호남 사람들의 행동이나 명분에 동조했기 때문에 영남 정권이 어려움을 겪었겠지요. 그렇다면 그건 영남 정권이 국가 운영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것, 정책이나 비전 제시 또는 목표관리, 자원 관리 등의 종합적인 국정 운영 능력이 부족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겁니다. 그런데 왜 그 책임을 호남에게 묻나요?

단적인 예가 IMF의 책임을 김대중에게 묻는 행태입니다. 정말 IMF가 김대중의 음모와 훼방 때문에 생겨났다고 보십니까? 국정 운영의 전권은 김영삼이 쥐고 있었잖아요? 그런데 야당 지도자 때문에 국가 부도 사태가 발생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야구 경기하는데 우리 팀 투수가 만루 홈런을 얻어맞았다, 그래서 이건 투수 잘못이 아니라 배트 휘두른 타자의 잘못이니 타자 저 놈을 죽여야 한다... 이런 논리 아닌가요? 야당이 없었다면, 국민들이 좀더 현명하게 경제행위를 했다면, 기업가들이 뛰어난 통찰력을 갖고 움직였다면... IMF는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이거 하나마나한 얘기라는 것은 잘 아시잖아요? 차라리 우리가 천국에 산다면... 이런 전제로 얘기하는 게 낫습니다.

대통령을 뽑고, 정권을 맡긴다는 것은 국가의 문제를 인식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역량을 동원하고 조직해서 목표를 설정해서 자원을 투입하기 위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일하라고, 문제 해결하라고 권력을 맡긴 겁니다. 그런데 결국 문제 해결을 못하고 시끄럽다... 그건 자기 능력 부족을 탓해야지 문제 탓을 하는 게 옳은 건가요? 그 문제가 없었다면 애초에 권력을 맡길 이유도 없는 겁니다.

저는 일베가 가장 두려워하는 게 사실은 호남이 변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습니다. 호남이 좀더 합리적인 의사결정과 행동을 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겁니다. 사실 지금 호남은 합리적인 선택의 길이 막혀 있어요. 죽으나 사나 오직 새정치연합, 좌파 운동권의 길을 갈 수밖에 없습니다. 왜 그러냐구요? 바로 일베 같은 친구들이 호남 다 때려죽이자고 저리 발광을 하는데 호남이 어떻게 일베의 자장 안에 놓여 있는 새누리당을 선택할 수 있습니까?

제가 늘 하는 얘기가 '호남도 반시장 정서, 반기업 정서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만 호남의 그러한 변화를 가장 두려워하고 싫어하는 게 바로 일베 친구들 같은, 영남패권으로부터 수혜를 보는 친구들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호남이 변하면 가장 먼저 영남패권의 유지를 통해 안정적으로 가장 쉽게 확보할 수 있는 혜택이 사라진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안다는 거죠. 그걸 알기 때문에 호남이 진보좌파의 자장에 남아있는 것을 욕하면서도 실은 죽어라고 호남이 그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수작을 하는 겁니다. 그게 일베 같은 활동으로 표출되는 것이구요.

그런데, 이거 실은 영남패권에는 유리한 행보이지만 영남 사람들 나아가 영남이 주도하고 있는 대한민국 체제와 대한민국 자본주의의 미래라는 점에서도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결국 호남의 참여를 배제하는 국가 시스템, 자본주의 체제를 계속 유지하겠다는 거잖아요? 그렇게 특정 지역의 참여를 배제하는, 그것도 인종주의적 편견의 조장을 통해서 그런 결과를 달성하는 국가 시스템이나 자본주의 시스템이 자기 혁신이나 변화 발전이 가능하다고 보세요?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자기 혁신이나 합리성 제고의 길이 막힌 국가나 자본주의 시스템은 100% 몰락의 길로 갈 수밖에 없어요.

제가 서울대 토론에서도 발제를 했습니다만, 그나마 김대중정권이 국정을 맡았던 시기에 비해서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권으로 이어지는 15년간이 무슨 결과를 낳고 있다고 보십니까? 김대중정권과 그 기조를 최소한으로 유지했던 노무현정권 당시에는 대한민국 미래에 대해서 희망적인 시그널이 참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다 기억도 못합니다만 IT 등을 포함해 무슨무슨 경쟁력 세계 1위라느니, 21세기 몇 년쯤에는 한국 경제가 글로벌 Top 5 안에 들어간다느니... 이런 얘기 많았잖아요? 지금은 어떻습니까? 정반대의 시그널, 대한민국이 언제쯤 망할 거라는 메시지만 줄창 들려옵니다. 이거 양놈들이 하는 얘기라서 못 믿겠습니까? 하기야 김대중 노벨상도 로비로 받았다고 그러는 분들이니 이해는 합니다만 평상시 미국쪽에서 들려오는 다른 얘기들은 신주 단지 모시듯 하는 분들이라 영 일관성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지역차별 문제에 대한 길벗님의 선의를 인정하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정말 길벗님 같은 분들이 더 좀 진지하게 고민해주시면 좋겠어요. 이거, 항상 하는 얘기지만 호남이 잘먹고 잘살잘고 하는 얘기만은 아니에요. 영남패권 세력과 그들을 지지하는 분들이 지역 문제를 지금처럼 적대적으로 풀면 비극적인 결론이 나올 뿐입니다. 그리고 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는 사실 영남이 쥐고 있어요. 결자해지라고 하잖습니까? 지역차별, 호남혐오 문제의 매듭을 호남이 묶었다고 보십니까? 그건 아니잖아요? 칼자루를 쥔 분들, 열쇠를 가진 분들이 전향적으로 나와야 합니다. 그러지도 않으면서, 사실상 변화할 힘도 없는 호남에게만 변하라고, 니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하면 이건 결국 문제 풀기 싫다는 선언일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것 다 떠나서 인종주의적 공격부터 중단해야 합니다. 설혹 호남에 천하에 때려죽일 범죄자들이 득실거린다 해도 호남 사람들을 다 목을 베어 죽이자는 표현이 용납될 수 있습니까? 그 근거로 호남은 애초부터 대한민국 다른 지역과 종자가 다르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 용납될 수 있습니까? 제가 그런 표현을 괜히 내란선동죄나 마찬가지라고 하겠습니까? 지금 양자가 잘잘못을 따지는데 한쪽은 목청만 높이는데 다른 한쪽은 시퍼런 칼을 들고 설치면 이거 대화하자는 겁니까 아니면 그냥 니 죽이고 나만 살겠다는 얘기입니까? 지금 누가 칼을 들고 설친다고 보세요?

지역차별 문제를 해결하자고 하는 지평련의 목소리가 너무 과격한가요? 뭐가 과격한가요? 아니 일베는 호남을 모두 몰살하자고 하는데, 저희들이 누구 한 사람 죽이자고 한 적 있나요? 그렇게 잔인한 말, 선동을 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게 잔인한 겁니까?

일베의 역할 분담 얘기는 길벗님이 오해하신 것 같습니다. 제가 인터뷰에서 한 얘기도 조선일보와 월간조선, 일베의 역할이 자연스럽게 분화되었다는 것이지 누군가 조직적 계획적 의도적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인터뷰에서도 오해의 여지가 없이 설명한 것 같은데요... 다만, 일부 악의적인 인물이나 집단이 일베를 악용하고 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영남패권 비판이 영남 출신들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은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사실입니다. 영남 출신들 100%는 아니겠지만 영남 출신이라는 것은 우리나라 다른 지역 특히 호남 출신에 비해서는 매우 유리한 조건 어떻게 보면 특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유리한 요소인 것은 사실입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집중적인 기간산업 배치로 인한 부동산 가치 상승, 공공 및 민간분야 조직에 취업하는 기회와 조직 내에서의 승진 등의 기회를 생각해보세요. 그분들이 영남패권의 수혜를 입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간단히 말해서 영남 출신들이 죽어라고 새누리당 지지하는 것은 결코 자신들의 개별적 이익 구현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저는 유권자들이 철저하게 자신의 이익을 좇아 투표하는 존재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당장은 영남패권을 지지하는 것이 영남 출신들에게 유리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요즘 대한민국 상황이 그것을 잘 보여주지요. 요즘 어딜 가나 생각 좀 한다는 분들 사이에서 '망국론'이 많이 거론됩니다. 나라가 끝장난다는, 아니 이미 끝장났다는, 그건 아니더라도 최소한 더 이상의 성장 발전은 불가능하다는 한계론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습니다. 영남패권은 완벽하게 승리했고, 계속 승리하고 있는데 왜 나라의 분위기는 이럴까요? 이거 이유를 한번쯤 고민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영남 분들이 먼저 주도해서 이 문제를 푸는 전향적인 자세를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길벗님 같은 분들의 고민과 양심이 정말 소중하게 느껴지는 이유이고, 이 답글을 드리는 이유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