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 내려온지 두어달 쯤 지났나.

 

어릴적 자랐던 완도 읍내는 광주 충장로마냥 을씨년스런 풍경이고, 바다를 매립한 새로운 동네 그리고 여기 연결된

큼직한 바닷가 도로주변은 여느 도시 못지 않게 번듯한 문명의 색채를 보인다.

내게 고향은 고등학교 무렵까지 익숙했던 옛날의 모습, 그리고 그 이후 잠깐씩 들렀다가 이제 내려와 접한 상전벽해풍의 고향, 둘이다.

읍내 중심지의 모습과 넓다란 도로를 빼면 산천은 그대로인 듯.

 

지켜보자니 일단 치안은 괜찮다. 드물고 자전거 같은 거 딱히 자물쇠를 채우지 않고 대충 가게 앞에 세워놓고

다음 날 찾으러 가도 제 자리에 있다고 봐도 무방하고 폭행이나 강도 같은 강력 범죄는 그닥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데 어떻게 버는가로 보자면 후한 점수를 주기엔 조금 힘들다.

나 같은 녀석이 후한 점수를 줄 동네가 얼마나 될까 보냐만. 항산에 항심 구조가 없는 탓이겠지.

 

체감 경기는 그닥 좋아뵈지 않는다. 식당을 가보자면 한 사람을 위한 자리가 없는 경우가 많다.

백반도 기본이 2인분. 전반적으로 음식점이며 횟집 가격은 도시 뺨친다.

공산품, 전기 설비, 통신, 집 수리 등 필수 서비스 비용을 보자면 도시보다 비용이 많이 든다.

경우에 따라 기함할 정도로. 안면이 있어야 눈탱이 보는 일을 당하지 않을 거라고, 사람들 말이.

좋은 곳, 시골 정서를 느낄 수 있는 시공도 많다. 하지만 언제고 악화는 양화를 구축하는 법이라서.

 

환경 때문에 도시와 다른 점도 많지만 여튼 그 저변을 흐르는 얼개는 도시와 많이 달라보이지는 않는다.

일단 목소리 크고 야무지고 눈깔에 힘줘야 무시당하지 않는다. 내 보기엔 왠지 모를 본능적인 두려움 때문에

괜시리 어깨를 부풀리고 배에 힘주고 나 센 놈이야, 나 건드리면 크게 다쳐, 눈 깔아 이 자식아 그러는 것 같다.

 

대개 인간이란 극히 일부를 빼면 그만그만한 존재들인데 저 두려움 탓에 낯선 상대에게 양가 감정을 번갈아 가며 보인다.

그런 모습에 물들까 걱정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대로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렇게 되진 않을 거 같다.

상대가 나를 괜시리 배운 놈, 뭔가 있는 놈으로 보는 태도를 보이는 순간이 있는데 그때면 나는 어뜨케하면

빨리 그 자리를 뜰 수 있을까, 그 궁리를 하느라 좌불안석이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는 법이라서 상석을 권해도 결코 거기 앉지 않는 것이 여태 내다 지켜본 세상살이이다.

무엇보다 나는 전혀 그런 부류의 사람이 아니라 하루하루 민생고에 허덕이는 기층 민중이 아닌가.

 

상대가 기죽었을 때, 나를 뭐나 있는 놈으로 착각했을 때 서푼어치도 안 되는 지식으로 썰을 풀면 돈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살면서 좀 본 적은 있는데 그런 승자독식은 짐승들의 법칙. 판을 벌였으면 개평은 넉넉히 나가야 하는 법인데. 사람 동네라면.

세상 좀 살아본 사람들은 상대를 누르는 게 아니라 그저 지지만 않으면, 잘못 본 것만 아니면 그걸로 족할 법도 한데.

 

세상살이 거래에 익숙하지 않다보니 사람들 속내를 읽는 건 어렵지는 않다.  

그래도 똑같이 처세를 해야 할까 하는 압력이 들어오는 건 참 고역이다.

내가 그런 거래에 뛰어들면 상대는 분명히 손해 본다. 내 말벗은 이런 말 하는 나를 일러 근자감 100%라고.

딴 건 없고 그냥 패를 쫘악 까는 것이다.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고. 내가 보기엔 젤 효율이 높은 문제해결 방식인데.

 

나는 공무원 8급 정도 지식을 지니고 있고 돈은 없고 그렇다. 따라서 사람을 부린다거나 그런 건 엄두도 못낸다. 도시서도 그랬지만

여기서도 창세기 1장에 나오는 말하는 자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그 말에 따라 무언가 행동으로 보이는 것은 꼬붕인 것이다.

따라서 말은 최대한 아끼고 (자기 꼬붕들이 있어야 형성되는) 무언의 분위기로 상대를 부려야 한다. 나이 차, 경제력 차가 있으면 하대를 해야 한다. 나는 그거 잘 안 되는데. 무게 잡는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지켜보면 좀 웃기지 않나.

 

지역 토호들과 새끼 토호들은 꼬붕들 관리하느라 돈도 좀 쓰고 마음도 쓰고 참 여러모로 노력하드라.

돈도 없고 꼬붕도 없으니 것두 나름 복이라면 복일까.

근데 그네들이 도시 토호들보다는 그래도 순수함과 계면쩍어하는 모습이 남아 있드라 우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