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작년 금년이 시사성 있는 주제의 영화가 많이 개봉하면서 영화를 정치적 시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듯 합니다.

이념성이 없는  도가니부터 시작하여 부러진 화살 그리고 변호인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기득권이나 현 질서에 대한 반감을 증폭 시켰고 

변호인은 노무현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이기에 더 더욱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보수들의 불안감과 불편함속에 이번에는 국제시장이라는 보수의 입맛에 맞는 영화가 상영되자 보수는 일제히 손뼉을 치고 좋아하고 진보쪽에서는 깍아내리고 불편해 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뭐 공산주의 사상에 있어서 예술이든 문학이든 모든 것은 혁명의 도구로 생각하는 것이나 자본주의자들이 예술이든 문학이든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보거나 돈이 안되는 저항적 예술은 혁명의 불순한 선동으로 이해하는 상황에서 영화를 영화 그 자체로 보아야 한다는 말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런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과거 실천 문학과 순수 문학의 논쟁도 있었지만 나는 실천 문학도 필요하지만 순수 문학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작가가 순수하게 글을 써도 읽는 사람들에게는 순수하게 읽혀지는 것이 아니라 체제 순응적 기능을 한다고 비난을 받기 마련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는 순수 문학이나 예술이 있고 또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여러가지 논란에도 불구하고 국제시장은  잘 만든 영화이다.

스토리는 물론 촬영이나 사실감 연기등에서 나무랄게 없는 영화이다.

우리 영화도 이제 리얼리티는 헐리웃 못지 않게 궤도에 올랐구나 하는 생각이다.


국제 시장은 흥남 부두 철수 작전으로 부터 시작하여 우리나라 현대사의 중요한 부분들을 흝어가면서 스토리가 전개되지만 특징이 있다.

그것은 보통 사람들의 경험을 기준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이다.

덕수라는 피난민이 노인이 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부딪히고 경험한 이야기들을 철저하게 먹고 살기 바쁜 서민들 입장에서 조명하고 있다.


아마 거대담론에 익숙한 진보적 사람들은 이런 스토리 전개가 불만스러울 것이다.

민주화 운동이나 독재가 빠져있고 오직 박정희로 대변되는 경제 부흥에 대한 선전으로 읽혀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정치적 상황은 철저하게 배제하고 오직 당시 대다수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그저 먹고 살기위한 몸부림 가족들에 대한 책임감으로 자기희생하는 덕수라는 인물의 개인 스토리에 시종일관 앵글을 고정시킨다.


먹고 살기 위하여 파독 광부, 간호사로 갔던 주인공들 그리고 이어지는 월남전을 통하여 아무것도 없던 덕수가 그래도 집을 장만하고 동생들 가르치고 가게라도 하나 가지게 된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풀어간다.

덕수의 이야기는 흥남 철수때 잃어버린 여동생을 찾는 이산가족 찾기 장면에서 절정에 이르고 오직 먹고 살기 위하여 그리고 가족을 책임지기 위하여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을 위한 삶을 살지 못했던 덕수는 오늘날 퇴직하고 노인이 된 대다수 한국인들의 모습이다.


아크로에도 다음세대에게 부채를 물려주고 착취한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영화에서 덕수가 아내에게 우리 아이들이 이 고생을 안하고 우리가 하는 것에 대해서 다행으로 생각하자는 말을 허지웅이 조롱하고 비난하지만 그것은 다 먹고  살만하게 되니 배불러서 하는 소리라 할 수 있다.


지금 이 시대가 아무리 힘들고 어렵다고 해도 보리밥도 제대로 못 먹고 고무신도 없어서 꿰메신던 세대와 비교가 될까?

뭐 모든 사람들은 자기 시대가 가장 힘들다고 생각하기 마련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국제시장의 힘은 이기주의와 개인주의가 팽배하고 가족이 해체되고 가족을 위한 희생이라는 말이 사라져가는 이 시대에 오직 살기위하여

그리고 가족을 지키기 위하여 온힘을 다해 몸으로 살아온 수 많은 덕수와 그 덕수의 자녀들을 울컥하게 만드는 영화자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