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에서였다. 그 녀석을 처음 만난 건.

고 2시절 가을이 막바지이던 어느 날 화장실엔 우리 반 꼴통들이 몇 모여있었다.

그 시절 성인들 모방 심리에서 일찍부터 너구리를 잡던 그 애들한테 한 까치를 빌려 첨 그 녀석을 느꼈다. 뻐끔 담배.


그리고 고 3. 당구장에서 두 번째로 그 녀석을 만났다.

껄렁한 친구 녀석이 뻐끔 담배 피우는 나더러 담배 피울 줄 모른다며 하는 말 '귀한 음식은 삼키는 법이야'.

목 너머로 넘긴 지 채 몇 초 되지 않아 머리가 몽롱해지더니 나도 모르게 비틀비틀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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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삼 년여가 흐른 후 군대 훈련병 시절 다시 녀석을 조우했다.

배급이 나왔지만 그냥 동료들 주다가 어느 추운 저녁 훈련 때 그예 한 개피를 피워 물었다.

많이들 아는 '청자'는 아니고 '한라산' 아니면 '백자'가 아닌가 싶다. 담배갑이 흰색이었으니까.



그때부터 담배는 내곁을 떠나지 않았다.


많은 말들이 오가지만 담배를 피우는 이들은 서민층이 더 많다.

여기에 나름의 함의가 있다면 담배를 피우는 이유가 어떤 결핍에서 오는 것이라는 점이리라.

대충 심리학이나 정신의학에서 말하는 구강기 욕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해석들하고도 맥이 닿는 것 같다.


경제로 놓고 보자면 항산(恒産) 상태에 있지 않을수록 구강기 욕구에서 벗어나기 힘든 것 같다.

고용자가 아닌 이들(노동자나 전문직 종사자 모두 포함) 입장에 있다면 평생고용이 보장되는 것이 항산에 가깝다.

시간이 흘러 저 항산이 월급이나 연봉이 아닌 자기 재산의 형태로 변화(집 장만하고 그럭저럭 일정한 환금성 자산이 있는 경우)하면 그게 보통 '나름의 여유'라는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을까도 싶다.


알코올 중독과 과음을 구분하기란 쉽지 않고 과음 역시도 좋은 게 아니다. 둘을 가르는 잣대라면 일단 '술' 자리가 있으면 많이 마시지만 찾아서 마시지는 않는 것 정도가 과음. 술 마실 자리가 아니거나 술을 마시지 않아야 할 상황인데도 기어이 술을 사서 마시는 거라면 중독으로 보아도 무방하지 싶다. 술이 없으면 찾아나서는 것은 중독. 돈이 없으면 빌려서라도 마시는 것은 중독. 한동안 지독히 중독 상태에 빠졌다가 이윽고 빠져나올 수도 있다. 보통 우리가 한 때 그럴 때가 있었지라도 하는 상황들. 그건 방황이지 중독은 아니다.


담배도 비슷한 구석이 있는데 불쑥 흡연 욕구가 일다가도 일이나 다른 무언가에 몰두했을 때 욕구가 사라진다면 중독은 아니라고 본다.


원시인 시절 인간은 먹이를 언제 또 구할 수 있을지 몰라 포식을 했다고 한다. 담배나 술 역시도 또 언제 마실 수 있을지 몰라 한번에 많이들 마시고 피우고 그러지 않다 싶다. 담배를 피우는 이유가 모두 이 경제적 얼개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다수는 이 얼개에 속한다고 본다.

돈이 넉넉하다면 나중에 대비하여 쟁여둬야 한다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니까.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층일수록 담배나 술을 끊겠다고 마음 먹을 경우 쉽게 끊으리라 본다. 돈이 넉넉하면 따돌림과 열등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 돈이 있음을 과시하거나 스스로 많은 돈을 들여 과시할 필요가 없다. 물론 부자들이야 구강기 욕구를 충족시킬 다른 수단들도 쉽게 접할 수 있고. 먹고 살만한 부자들 대개 대충 입고 다니고 음식도 평범한 음식 먹는다. 고급하고 사치스러운 어떤 재화 역시도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에 들어맞으니까.


(성인의 결핍이란 건 어찌보면 커가면서 그 나이 때에 해보아야 하는 무엇인가를 실제 해보지 못한데서 나오는 것 같다. 그게 60-70 되어서도 불쑥 나타난다)


사회가 구성원들에게 술, 담배를 줄이길 원한다면 술, 담배를 대체할 '건전한' 구강기 욕구 충족 수단이나 문화를 제공하는 편이 낫다. 결국 돈 이야기이고 이익의 분배에 관한 것이다.

뛰어난 소수는 어려운 와중에도 스스로 즐기는 어떤 문화를 만들어내거나 찾아내지만 다수는 그렇지 않다.

뛰어난 소수를 끌어와 평범한 다수를 공격하는 모습은 그닥. 모두들 서편제 속 소희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한 줄 요약:

언제든 술, 담배를 즐길 재산이 있는 이들은 마시멜로 이야기처럼 자신의 욕구 충족을 미룰 수 있다.

서민들 입장에서 미실현 소득이 실현되는 시점이 빠를수록 술, 담배 소비량은 줄어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