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만 모르는 것은 아닐겁니다. 단순한 복사게시물은 운영진에서 순간이동시키는거 아는데, 많은 분들이 보라는 의미에서 코멘트없이 옮깁니다.>


"1960년 '光州 3.15 의거' 역사적 재조명"
<인터뷰> 호남4.19혁명단체총연합회‘김영용 상임대표’
 
소정현기자 
광고
▲ 호남4.19혁명단체총연합회‘김영용 상임대표’   

 
광주 3.15 시위 전국으로 퍼져나간 요원의 불꽃 

4.19 전담부서 설치 입법조례 각계 뜻모아 결실 


4.19혁명은 남북통일 초석쌓은 기념비적 대사건

민간차원의 통일운동 역량구축 호남이 앞장설것



■ 박근혜 대통령의 신정부 출범 1주년 이후 맞이한 4.19 혁명 54주년의 의미는?

▼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빨리 민주화를 이룬 나라다. 그 시발점이 4·19혁명이고 그 발원이 광주 금남로의‘곡(哭) 민주주의 장송’데모다. 박근혜 정부의 호남인에 대한 정서를 고려해 그동안 마산중심으로 인각되어 온, 세계사에 유래 없는 위대한 4·19혁명의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 현대사의 온당한 복원이야말로 4·19혁명 53주기와 박근혜 정부 출범 1주기는 대한민국 민주역사를 바로잡는 원년이 될 것이고 호남소외 회복년이 될 것이다. 

5.16군사정권이 들어서서 4.19혁명을 자신들의 쿠데타를 합리화하기 위해 5.16의 밑그림 정도로 폄하시켰다. 그래서 4.19는 군사정권 내내 ‘의거’로 평가받았다. 노태우 전태통령까지의 군사정권이 종식되고 김영삼 문민정부가 들어서서 맨 먼저 한 일은 4.19를 본래의 혁명으로 환원시킨 것이다. 건국이념으로 복원돼서 헌법에 명기된 것이다.

4.19는 순수 학생·시민혁명으로 제자리를 찾았다. 4.19혁명의 광주 사상자수는 광주 8명이며 전국적으로 186명이다. 그 사연들은 저마다 다양하며 엄청나게 많은 수다. 중요한 것은 이들의 희생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꽃을 피웠다는 것이다. 

호남지역에서는 여수에서 60년 3월 9일, 광산에서 11일 민주당 선거위원들이 피살당했다. 그런 공포분위기 속에서 최초로 혈서를 썼고 광주고에서 타종신호에 맞춰 맨먼저 터져 나왔다. 이를 신호로 광주 전지역에 학생들이 몰려나왔고 충장로며 금남로는 피로 물들었다. 

아쉬운 것은 그 의거로 머문 기간이 너무 오래돼 본래의 정신인 통일이 잊혀졌다. 호남 4.19혁명단체총연합회는 4.19혁명이 광주 금남로에서 맨 먼저 시작됐다는, 4.19혁명의 역사를 바로잡고 근본정신인 통일운동의 기치를 다시 내걸었다. 

 
■ 호남 4.19혁명단체 총연합회의 발족과 연원, 추진사업은?

▲ 호남 4.19혁명단체총연합회는 4.19혁명이 광주 금남로에서 맨 먼저 시작됐다는, 4.19혁명의 역사를 바로잡고 근본정신인 통일운동의 기치를 다시 내걸었다.  

▼ 2011년 4월 호남 7개 4·19 관련단체들이 호남4·19혁명 위상정립사업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공법단체와 임의 단체를 구별하지 않고 협의체를 구성했다. 호남 4·19가 4·19혁명 3대 권역 (호남-광주, 전주·영남-부산, 마산· 서울) 첫 진원지로서의 위상을 정립하고 특히 4·19혁명 전개과정에서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아 4·19혁명의 근본정신인 통일운동에 매진해오고 있다. 

금년의 중점사업은 대한민국 4·19혁명사 바로잡기가 될 것이며 아울러‘곡(哭) 민주주의 장송’데모와 4· 19혁명정신의 뿌리인 통일운동이 될 것이다. 그 시작이 바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시원지인 광주 금남로에서 일어난 민주혁명사를 정리하는 일이다. 광주시와 각 지자체를 중심으로 협력해 호남4·19연구소에서 이미 금남로 민주혁명사 정리작업에 돌입했다. 

 
■ 4.19를 촉발시키며 기폭제가 되었던 1960년 당시 광주에서 촉발된 ‘3․15 의거’에 대해 젊은 세대들은 잘 모르고 있다. 


▼ 1960년 3.14일 선거 전야, 광주 민주당 이필호의원 뇌리는 암담했다. 이승만 독재정권이 장기화되면 남북분단은 고착화되고 평양 ‧ 개성 ‧ 신의주는 남의 땅이 된다. 여수, 광산에서의 민주당원 살인사건은 투표참관인의 추천을 어렵게 했다. 선거 당일 부정선거 규탄 데모는 예정된 수순임을 직감했다. 보좌관 조계현씨도 같은 생각이었다. 

두 사람은 이의원의 광주 수기동 집에서 다음 날 벌일 데모의 방법과 진영을 밤늦게까지 숙의했다.3.15 선거 당일, 투표개시 시간이 오전 7시였으니 10시경이면 부정선거의 실상이 밝혀질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때쯤 선거무효 선언을 하고 금남로에서 벌일 곡(哭) 민주주의 장송데모를 시작하기로 모의했다. 

3.15일 부정선거 실상은 참담했다. 참관인이 축출당하고, 어떤 곳에서는 참관인에게 수면제를 탄 술을 먹여 쓰려져있다는 보고가 잇달았다. 투표통지표를 받지 못했다는 사람들, 선거부정을 고발하러 온 사람들, 집단 대리투표가 있었다는 군부대의 선거부정 폭로 등으로 이어졌다. 투표소 앞길에 시민들이 집결하고 거리의 행인들도 분노하여 성토하고 데모를 재촉하는 상황이었다. 투표하고 돌아온 유권자들은 하나같이“다 망했어. 이런 놈의 선거는 뭐하러 해”소리 질렀다. 

이필호의원과 보좌관 조계현씨는 전날 미리 계획한‘곡(哭) 민주주의 장송데모를 결행했다. 민주당원 2백여명은 백지를 사다가 백건(白巾)을 만들어 쓰고‘곡(哭) 민주주의 장송(葬送)이라는 프랑카드를 두 개 만들었다. 낮 12시 45분이었다. 대한민국 민주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프랑카드는 이필호의원과 조계현씨가 들었다. 그 다음엔 자동차가 천천히 따르며 자동차에 장치된 스피커를 통해‘아이고! 아이고~ 민주주의 죽었네’외치며 곡을 하기 시작했다. 주권을 박탈당한 광주시민들은 흥분해 민주장송데모에 함께 휩쓸렸다. 순식간에 천여명은 금남로의 물결의 이뤘다. 수많은 부녀자들도 휩쓸렸다. 

▲ 너 나 할것 없이 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차마 여자들에게는 폭력을 쓰지 못하리라 여긴 부녀자들이 데모의 선두로 달려 나왔다. 여자들도 피를 흘리며 순식간에 쓰러졌다. 진압대는 사정없이 몽둥이를 휘갈겼으며 부녀자의 배를 걷어찼다. 그때 이필호의원의 부인 정미란씨는 임신 8개월이었다. 

선두에 섰던 이필호의원도 트럭에 실렸고 조계현씨는 총 개머리판으로 후두부를 맞아 피투성이가 됐다. 데모대의 대부분이 혈흔이 낭자햇으며 묶인 채 연행됐다. 땅거미가 내리자 붉은 금남로는 어스름에 묻혔다. 1960년 3.15일 금남로의 ‘곡(哭) 민주주의 장송’데모는 막을 내렸다. 데모가 시작됐을 때 이미 민주당사의 전화기를 통해 이 소식은 전국으로 전달됐고 4‧ 19혁명은 전국으로 확산돼 불붙었다. 대한민국 민주의 기틀이 세워지는 순간이었다. 

 
■ 호남4.19혁명단체총연합회가 줄기차게 주창해온 4.19 전담부서 대결실 의미가 상당한데.

▼ 광주는 민주· 인권· 통일을 지향하는 메카다. 4‧19혁명은 대한민국 민주교과서의 기틀이다. 그런데도 이런 역사들을 관통해 정리해놓은 것이 없다. 금남로를 중심으로 일어난 민주사 히스토리 텔링작업을 해놓아야 한다. 그래야 이 바탕 위에서 수많은 민주문화상품들이 나올 수 있다. 그때 비로소 광주정신이 생활 속에 스며들게 될 것이다. 

세계가 깜짝 놀라고 있는 대한민국 민주사의 뿌리를 복원하고 보존이 필요한 때에 광주시에 전담부서 설치의 숙원사업 대결실은 너무 감개무량하기만 하다. 

▲ 금남로를 중심으로 일어난 민주사 히스토리 텔링작업을 해놓아야 한다.  
 
■ MB정권은 민주화 완결에 심대한 차질을 빚게 한 정권으로, DJ정부는 민주화의 초석을 굳게 다진 정권으로 평가되는데!

▼ 민주· 인권· 통일은 삼위일체이다. 통일의 가장 첫걸음이 햇볕정책인데 이명박 정부는 통일의 싹을 잘라버렸다. 햇볕정책을 퍼주기로 매도하는 것은 무지한 소견이다. 퍼주기가 아니라 투자로 보아야 한다. 지금의 남북경색도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영향이 크다. 남북교류와 통일 이후의 이익을 생각한다면 분단 상황의 낭비가 얼마나 심한지 알 것이다. 

김대중 정부는 통일의 첫발을 뗀 정부로 기록돼야 할 것이다. 그런데 통일정책이 실패한 이유는 북한정권이 통일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통일을 위해서는 세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북한주민들의 평화통일에 대한 각성과 분발이며 둘째 북한내 음지의 기독교 및 종교 단체의 활성화며 셋째 북한정권 자체가 중도자유주의 성향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잘 성찰해서 통일정책을 펴야 한다. 

▲ 외세에서 어느 정도 자유스러운 지금이 통일의 적기라고 생각하고 4·19통일의병정신으로 나선 것이다.   
 
■ 호남 4.19혁명단체 총연합회에서 별도의 조직으로 태동시킨 을 "4.19 통일의병대 결사체"가 
다소 생소하다. 

▼ 호남은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선봉에서 서서 나라를 지켜왔다. 이순신 장군의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로 압축된다. 그 정신이 바로 호남 의병정신이다. 만약 지금 통일에 매진하지 않으면 오랜 세월 이런 기회를 맞이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외세에서 어느 정도 자유스러운 지금이 통일의 적기라고 생각하고 4·19통일의병정신으로 나선 것이다.


■ 통일의 동질성을 확보하게 될 북한 주민의 인권에 손을 놓고 있을 것인가?

▲ 북한 인권은 최악의 상황이다. 이를 위해서도 통일이 필요하다는 것이 4.19단체들의 입장이다.    

▼ 북한인권은 최악의 상황이다. 이를 위해서도 통일이 필요하다는 것이 4.19단체들의 입장이다. 그러나 정권끼리는 이해관계와 국제정세에 얽매어 통일이 불가능하다. 더욱이 우선 북한정권이 통일을 원치 않고 있다. 그래서 호남 4.19혁명단체총연합회는 민간운동으로 통일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호남 4.19단체는 무등산에 통일탑 세우기 운동도 함께 겸하고 있다. 4.19통일의병대 1천만명 서명운동인들의 명부를 모두 무등산 통일탑에 넣어서 통일이 되는 날 타일캡슐로 열자는 것이다. 무등산에 통일탑을 세우고 북한에서 묘향산쯤에 통일탑을 세운다면 민간운동으로 아주 좋은 모양새를 갖추게 될 것이다. 

또한 우리 고유 정신을 살려 두레· 향악· 계 등으로 서로 부족한 물자를 나누고 도와갈 때 분위기는 무르익을 것이다. 남한은 쌀이 남아서 처치곤란인데 북한은 굶어 죽어가고 있다. 또 북한에도 남아도는 물자가 있을 것이다. 이것들을 가져 와서 남한의 기술로 가공해 세계에 내다팔아 이익을 나누는 방식도 생각해볼 수 있다. 

▲ 호남4.19혁명단체총연합회 관계자들. 가운데가 ‘김영용 상임대표’ 맨 오른쪽이 류병호 사무총장

 
이는 북한 주민의 통일염원 반응을 살피는 계기도 될 것이다. 이렇게 민간차원의 통일 분위기가 고조되면 북한정권도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바로 이것이 호남4·19혁명단체 총연합회가 추진하는 통일운동의 기본방향이다. 단 양측 정권이 이를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 

 
■ 잊혀져가는 4.19 부활과 박근혜 정부의 ‘민주 인권’의 선진화에 고언은?

▼ 호남4.19총연합회는 광주 금남로를 세계의 민주거리로 성역화하는 작업에 돌입했다. 그 과정에서 4.19의 시작점인 금남로 ‘곡(哭) 민주주의 장송데모’가 최초의 통일운동이라는 것에 공감대가 급속히 형성될 것이다.통일화하는 운동이 더욱 확산되면서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4.19정신이 되살아날 것이고 민주·인권·통일정신은 복원될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부친의 공(功)은 키우고 과(過)는 갚아나가야 한다. 경제정책은 발전· 계승해나가야 하고 억압했던 민주정책은 갚아나간다는 정신이 필요하다. 특히 대북정책에 대해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 호남지역의 박근혜정부에 대한 지지도가 낮은 것은 선대의 민주탄압정책에 대한 반발이 크다. 이 지역은 민주· 인권· 통일정신의 중심도시다. 이런 정신이 선양될 때 낮은 지지도는 회복될 것이다. 

▲  호남4.19총연합회는 광주 금남로를 세계의 민주거리로 성역화하는 작업에 돌입했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